아르헨티나: 부르주아 정치제체 파산상태

노동자 민중투쟁 지도력 구축이 절박한 상황

이명재(노동자의 힘 회원)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에는 거지들이 어슬렁거리고, 번화했던 중심가
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이 맥도널드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햄버거를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릴 음식
찌꺼기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에 3,600만 명의 인
구를 가진 아르헨티나의 모습이다. 지금 인구의 절반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몇주 전 두할데 대통령은 재임 4개월만에 전면 개각을 하면서 워싱턴과 IMF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새로운 긴축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무도 새로운 조치
가 제대로 실행될 것이라고 믿지 않으며, IMF가 파산한 경제를 부활시킬 만큼
의 충분한 자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언제라도 선거를 치를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계속되는 투쟁, 그러나 여전히 필요한 정치적 지도력

작년 12월의 민중봉기 이후, 매일 평균 19건의 시위가 벌어진다. 사회의 모든
계급-계층들이 들고일어났다. 소농민들은 트랙터와 농기구로 도로를 봉쇄하
고, 피케테로스(picketeros)라고 불리는 실업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요구하며 전
국의 간선도로망을 봉쇄하고 있다. 지방의 공무원들은 몇 달째 체불된 임금을
달라고 정부청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인다. 일부 중산층 시위대는 예금을 동결시
킨 은행 앞에서 유리창과 벽을 두드리며 항의하고 있다.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바리오(Barrio)라고 불리는 주거지역
단위로 자연발생적 민중회의들이 소집되어 정기적으로 모인다. 이들 민중은 현
정부만이 아니라, 의회와 법원을 포함한 정부기구 전체의 사퇴와 즉각적인 선
거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위기와 격변의 시기에, 반정부세력은 분열되어 있다. 무능
하고 부패한 과두제 양당세력(즉 급진당과 페론당)에서 이탈한 평등공화국을
위한 대안(ARI)에서 전투적 좌파정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들은 단일한 요
구와 주장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전투적으로 반정부 생존권투
쟁을 주도했던 실업노동자들은 세 개의 전국조직으로 나뉘어 있다. 현정세를
돌파할 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진 반정부 지도자도 없다.

NO IMF!!! -- 새로운 사회적 합의

다양한 세력에 의해 현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에 제출되고 있다. 심지어 보수적
인사들도 이제는 "IMF의 도움없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조합은 재분배 충격요법을 제시하고, 빈곤문제를 다루는 조직들은
IMF의 요구에 따라 사회기금을 삭감할 것이 아니라, 이 기금을 빈민과 실업자
들에게 분배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필요에 의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도스(nodos)라고 불리는 물물교환방
식으로 생활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인 350만
에 이르고, 연말이면 두 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노동자들은 폐쇄된
공장을 접수하여 재가동하면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개입과 독재체제로의 회귀에 맞선 민중투쟁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정치 체제는 사실상 파산상태
다. 미국 제국주의에게도 두할데 정권은 못미더운 존재다. 미국과 유럽, 특히
스페인의 군부 및 금융-경제 엘리트들은 아르헨티나의 미래에 대한 합의를 도
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그 결론은 다름아닌 군사독재체제로의 복귀
이다. 이들의 조종으로 주요 언론은 현재의 혼란과 불안을 언급하며, 새로운
군부독재체제의 복귀를 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수준에서 폭발하고 있는 노동자, 농민, 실업자, 도시빈민의 투쟁을 새
로운 대안적 체제를 위한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와 당위에도 불구하
고,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운동은 아직 정치적 지도력 구축에 성공하고 있지
못한다. 민중회의들은 민중의 자발적 결사로서 등장했지만, 실질적 이중권력체
제를 구축할 만큼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간섭
과 극우군사정권의 집권기도는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과의 처절한 내전을 피
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