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2004년 노동절, 축제의 현장에서 만나자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투쟁의 길은 지금까지보다 더 험난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노동절 114주년을 맞는다. 초등학생들이 봄, 가을에 한 차례씩 가는 소풍을 기다리듯 노동자는 5월 1일 노동절과 11월의 노동자대회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린다. 노동절 행사 내용도 늘 관심꺼리고, 현장 일에 시달려 얼굴조차 잊고 지내던 동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도 한결 가볍다. 노동절은 오래 전부터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연대와 투쟁의 시간으로 기억되어왔다. 배만드는 노동자, 자동차 부품 만드는 노동자, 서비스 일을 하는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이름은 서로 달라도 노동해방의 부푼 꿈을 잃지 않는 이 땅의 주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올해 노동절을 앞두고 예년과 다른 분위기를 꼽자면 지난 총선에서 노동자의 힘이 얼마나 커졌는가가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보수 정당의 인물들만 나오던 뉴스 시간에 노동자 출신 의원들이 고정 출연을 하고,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오는 민주노동당 출연자들의 모습도 익숙해지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농담조차 신문에 오르내리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노동절을 앞둔 4월 27일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올해 노동절을 '승리와 축제의 장'으로 치를 것을 결정했다. 4월 30일 전야제는 "파견법 개악 저지! 차별 철폐·정규직화! 4.30 노동자 결의대회"로 이주노동자, 장애노동자, 저임금노동자, 정규직노동자 등의 투쟁발언과 상황극과 가수 초청공연 등이 진행된다. 그리고 5월 1일 본대회는 12개 지역별로 진행되며, 수도권은 대학로에서 '노동자 정치원년 한마당'을 중심으로 치를 예정이다. 이밖에 양 노총 대표자와 조합원 300여명은 5월3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 '2004년 5.1절 남북노동자 통일대회'를 개최한다.

노동절 행사를 축제로 치른다는 것에 불평할 이유는 없다. 1년 내내 자본의 통제 아래서 고통받으며 지내는 노동자가 노동절 하루만큼이라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겠다는 것, 이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생각으로 어떤 축제의 시간을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총선 승리를 자축하고,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자본은 노동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심혈을 쏟고 있다. 자본은 노동의 죽음을 불사한 저항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WTO 개방, FTA 추진, 경제자유구역,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등 신자유주의 공세를 멈추지 않고 전개해왔다. 이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업 기반을 모조리 내놓았고, 한-일 자유무역협정과 한-중 경제협력 등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을 추진함에 있어 노동유연화가 핵심을 이룬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한-일 FTA 산관학공동연구회는 노사관계 부분에서 무노동무임금 원칙 준수, 불법파업에 대한 정부의 즉각 대처, 퇴직금제도 유연화, 연월차 휴가 수당에 대한 사용자 의무 폐지, 노동위원회의 노동쟁의 해결과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작년에 통과시킨 경제자유구역법 내용보다 훨씬 강도 높은 내용들이 들어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자본은 대 노동 통제와 관리에 있어 치밀한 작전을 펼친다. 자본의 전략에 방해가 되는 노동의 저항과 반발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큰 틀에서 흡수해나가고, 장기불황으로 인한 실업과 빈곤, 사회 불안 같은 문제는 일자리나누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방어막을 설치하고, 의회 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길들이기 작업을 지속할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회자되는 자본의 공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도를 빨리 하고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다만 이 흐름이 한 눈에 쉽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자본은 노동의 저항과 요구에 대해 자본의 이해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양보하고 타협할 것이다. 이 자본의 공세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탄압이 예고되는 가운데 2004년 상반기를 경과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4년 노동절, 축제의 현장에서 만나자. 그리고 이 축제의 현장에서 한 가지만은 꼭 새겨두자. 그것은 선거에서의 승리는 아주 작은 승리일 뿐이며, 가야할 투쟁의 길은 지금까지보다 더 험난할 것이라는 생각과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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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