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탄핵, 당연하다 vs 잘못이다

[2004년 민중운동 쟁점 보고서](2) - 민중탄핵
'민중탄핵'의 정신과 기조는 지금도 민중의 가슴에 살아 있어

올해 민중운동의 주요 쟁점보고서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민중운동의 주요 쟁점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것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지하게 토론된 것도 많이 있다. 미디어참세상은 연말을 맞아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차분하게 진행된 올해 민중운동의 다양한 쟁점을 찾아 하나씩 소개한다. 두 번째로 '민중탄핵'을 정리하였다.

3월 9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흘 후 3월 12일 새벽,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진입해 대치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전 11시 5분쯤 박관용 국회의장이 국회 경위들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와 경호권을 발동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물리적 저지를 막았다. 무기명 투표에 들어갔고 한-민-자 등 투표에 참석한 195명의 야당 의원 중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올해 정치적 사건으로 손꼽히는 사건이라 하겠다.

대통령 탄핵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해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3.12.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은 국면 전환을 통해 자신이 처한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수구세력의 대반격이었다"고 말하고 "이 반격은 그러나 대다수 국민에게 합법을 가장한 의회 다수세력의 폭거로 비췸으로써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어떻게 나든 이들 수구세력의 몰락을 재촉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탄핵정국이 초래된 데에는 노무현 역시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수구세력의 악수로 이른바 개혁세력이 이번 사태의 최대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열린우리당은 제1당이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달콤한 휴가를 끝내고 청와대로 돌아왔다.


노-반노 전선 속 '민중탄핵' 논쟁 확산

탄핵 사태가 까마득히 먼 과거로 느껴진다. 그만큼 정치적 사건이 파란만장했던 한 해였다. 탄핵 당시 총선논쟁 싸이트 another0415.net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듯 하다. '다른세상을여는사람들'과 '참세상방송국'이 2월부터 공동으로 기획하고 준비해서 3월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있은 직후 오픈한 싸이트다.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가', '없는 사람은 국민도 아닌가', '우리의 정치는 어디에' 등 세 이슈와 '다른영상' 등의 메뉴로 구성되었다. 어나더0415에서는 다양한 토론과 논쟁이 이어졌는데, 가장 큰 것은 역시 '민중탄핵'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노무현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지자, 전체 전선은 노-반노 국면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진보진영의 대부분도 '민주수호, 탄핵반대' 슬로건을 들고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 지지를 했던 '범국민행동'으로 결집했다. 민주노총은 '노무현 지지' 성명을 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고, 민주노동당은 '노무현정권과 보수정치권 심판, 헌재의 탄핵안 즉각 기각 처리' 등의 입장을 발표했다.

3월 17일에는 '민교협·전국교수노조·학단협·시민의신문·오마이뉴스 공동주최'로 '탄핵관련 긴급토론회 : 탄핵정국과 한국민주주의의 위기'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은 토론회 다음날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을 경계하자'는 제하의 글을 발표하였다. 채만수 소장은 토론 참가자들의 전반적인 의견들, 즉 '의회쿠데타'라거나 '탄핵안 의결의 부당성 확인과 항의 지속의 필요성' 등의 주장과 뚜렷한 구분을 갖는 발언을 하였다. 가령 기본적인 정세 인식에서 채만수 소장은 "현재의 정세 형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다툼·이해대립이 마치 전 국민의 혹은 전계급의 결정적인 이해의 대립이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어 선동되고 있고, 그 광기가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을 향해서 줄달음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규정하였다.

채만수 소장의 글을 비롯, another0415.net에 올라온 대부분의 글은 보수-개혁, 노-반노 구도에 우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노무현정권이 두 차례나 파병을 하고, 노동자들의 연이은 분신과 자결을 야기했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고, 교육정보행정시템(NEIS) 강행 지시를 하고, 부안 핵 폐기장의 일방적 설치를 추진하는 당사자인데, 노무현을 살리는 운동을 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논조였다.

김성구 한신대 교수는 "자유주의자들이 설정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또는 수구 대 개혁의 구도는 노무현의 재신임을 위한 구도"라고 못박고, "이는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민중전선을 교란시키고 민중운동을 신자유주의로 포섭하여 그 세력을 강화시킨다는 것, 따라서 민중운동은 자유주의 개혁전선을 비판하고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복원,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노무현정권의 실정, 또는 반민중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모아졌고, 이를 위해 민중탄핵 주장과 '범국민행동'이 아닌 별도의 대응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 이후 민중탄핵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나왔는데,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은 잘못된 것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탄핵이 필요한지 모른다"고 쓰고 "노 대통령이 그동안 저지른 평화파괴, 민중생존권 파괴, 인권파괴, 환경파괴, 그리고 부패에 대한 민중탄핵"을 언급했다. 노무현정권의 반민중적 정책에 대한 '탄핵'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 탄핵을 받을 거면 노무현정권도 탄핵 대상이라는 이 기조는 논쟁 과정에서 '민중탄핵' 슬로건으로 굳어졌다. 최초 민중탄핵이 노무현정권의 반민중정책에 반대하는 기조로 사용되었다면, 논쟁 과정에서 슬로건으로서의 민중탄핵이 강조됨으로써 한차례 논란을 빗기도 하였다.

another0415.net가 3월 19일 주최한 정세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여러 논란 끝에 '탄핵무효, 민주수호'를 기조로 한 범국민행동을 넘어서 민중탄핵을 기조로 한 '...민중행동'을 구성하기로 하고 다음날 '신자유주의반대! 전쟁반대! 민중탄핵을 위한 민중행동' 건설을 호소하였다.

한신대 세 교수와 채만수 소장 논쟁 계속 이어져

한편 이날 토론회에 남구현, 이해영, 최형익 한신대 교수 3인은 '탄핵정국에 대한 올바른 정치적 접근과 '민중탄핵론'이라는 제목의 비판글을 제출했는데, 이 글을 계기로 민중탄핵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이 촉발되었다. '민중탄핵론 비판'글은 대중관, 중간계급, 정세관, 전략전술 문제에 있어 민중탄핵을 주장하는 견해와 뚜렷한 차별점을 가졌다.

세 교수는 글의 도입부에 "지난 김대중 국민의 정부, 현재 노무현 참여정부 들어 집중적 공세에 시달렸던 노동자 운동 내부, 특히 좌파 일각에서의 양비론 혹은 민중 탄핵론 제기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며, 현재 사태를 바라보는 정세관, 나아가 실제로 전략 전술을 세워 정세 개입적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하는 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밝히고 탄핵 국면에 대한 정세 인식과 좌파운동의 대응방향을 제출했다.

세 교수의 글이 제출된 후 논쟁 게시판에서는 '민중탄핵'과 관련한 여러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약 일주일 후 김성구 한신대 교수는 '대중의 정서와 좌파의 정치'라는 글을 통해 "맑스주의 3인의 교수는 탄핵국면을 맞아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니 반파시즘 통일전선이니 하는 정세에 어울리지 않은 정치학 지식을 늘어놓으면서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현 정세를 공화국의 위기로 각색하고 신자유주의의 강화에 기여하였다"고 비판했으며, 채만수 소장 역시 후에 '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 운동과 그 비판에 대해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 운동의 독자성' 등의 글을 통해 세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채만수 소장의 평가와 관련한 글이 제출된 후 남구현 교수는 '채소장의 글에 대하여' 제하의 글을 통해 당시 제출한 글의 문제의식을 "수구 반동과 함께 민중탄핵에 나서는 것은 반동적 계급의 이해에 복속하게 되는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지금의 정세에서 주된 공격의 방향을 어디로 하여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이견을 제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등 세 가지 문제의식을 담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논쟁은 민중탄핵 외에도 여러 수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가령 '광화문 네거리'와 관련해서는 광화문 촛불집회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비판적 지지 한번만 더'에서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태도를, '민주노동당 의회진출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는 총선에서 열 개의 의석을 차지한 민주노동당의 향후 활동과 전망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민주수호, 탄핵반대 열망은 이루어지고

한편 another0415.net에서의 논쟁과 관계없이 총선 결과는 '민주수호, 탄핵반대'의 열망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제1당이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직 복귀를 선언하였다.

총선이 끝나자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도 모두 성공했다고 자평했고, 민주노동당도 성공했다고 기뻐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노무현정권과 지지자들은 민주-반민주 구도 속에 민주와 개혁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고, 위기에 몰린 정권을 거뜬히 살려냈다. 날개를 단 노무현정권은 집권 후반기를 구상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가속을 더했다.

'민중탄핵'은 탄핵 국면에서 그 논쟁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탄핵이 논쟁으로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도 생존권과 노동권과 생활권을 사수하고자 노무현정권과 싸우는 모든 민중의 가슴 속에 '민중탄핵'의 정신과 기조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민중탄핵' 논쟁 관련 글은 www.another0415.net'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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