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조간부 금품수수 사건의 교훈

민주노총 '징계와 도덕재무장' 요지의 사과는 부적절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변혁성 깊이 되새겨야

노동자는 자주적으로 권력을 만든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의 생존권과 생활권을 지켜내고, 착취와 억압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고 단결하고 투쟁한다. 경제적 이해를 지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노동법률과 제도,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바꿔내는 실천을 한다. 자본과 정권의 개량적 조처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돈을 모으고, 민주주의 운영원리를 실현하고, 민중과 연대하면서 노동운동을 펼친다. 아래로부터의 단결과 투쟁에 기초한 노동조합운동의 힘, 그것은 단연코 권력이며, 따라서 권력은 모든 노동자의 소중하고 절박한 소망이다.

자본은 이러한 노조의 사회적, 정치적 관심과 실천을 단 한 번도 고운 눈초리로 바라본 적 없다. 단사 노무관리에서부터 법제도와 공권력을 등에 업고 억압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왔다. 때로는 회유와 포섭을, 때로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노동자의 모든 실천을 적대시했다.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발언은 틀어막고, 총파업투쟁은 진압으로 일관했다.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해치기 위해 전방위적 교란과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시기 노동조합운동은 자본의 공세로부터 자주성과 변혁성을 견지하며 안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를 지켜왔고, 밖으로 곧 한국 사회 민주주의 발전의 거름이 되었다. 유무형의 착취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만들고 사수해온 것이 노동조합이고, 그 끈질긴 과정이 노동조합운동이며, 어느덧 당당한 사회적 발언권을 갖게 된 것이 민주노총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이, 민주노총이 더 많은 힘, 더 많은 권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불편부당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마땅하고, 정당하고,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일이다.

- * -

민주노총은 지난 26일 기아자동차 노조 간부 인사 청탁 비리와 관련해서 '대국민사과'를 하였다. 자본과 대부분 언론들은 '10년 만에 생긴 좋은 일'이라며 툭툭 치고 지나간다. 머리 스다듬는 시늉 마냥 훈계하기도 하고,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며 성을 내기도 한다.

대국민 사과는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노동운동 간부", "노조 간부들에게는 더 엄격한 도덕률이 요구된다", "진상조사를 통해 엄격한 징계 조치로 도덕성을 회복하겠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더 건강하고 높은 도덕성을 가진 집단으로 거듭날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비정규개악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단호한 투쟁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사과문은 한마디로 인사청탁 금품수수 비리 사태의 진단과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담지 못했다. 사과문은 상투적이고 외교적인 것 이상의 내용이 없었다. 민주노총이 사과할 내용은 노조 간부의 인사청탁 금품수수 비리 자체로 족하다. 그 점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노조 간부의 '땅에 떨어진 도덕' 문제가 사태 배경과 원인의 핵심인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은 간부 비리 사과와 함께 노동조합의 간부조차 인사청탁 금품수수 비리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 구조와 똑바로 싸우고 있지 못한 노동조합운동의 현재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는 언급을 해야 했다.

노동자는, 노조 간부는 하느님 나라에 간택된 선민이 아니다. 지옥구덩이 같은 고된 현실에서 투쟁과 저항으로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이다. 도덕은 가진 사람들, 부자들, 지배자들, 여유있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 없는 사람들, 빈자들. 피지배자들,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 끼 밥부터 챙기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니다. 빵을 훔쳤다 하여 죄를 묻더라도 배고픔과 굶주림의 정상 참작이나 그 배경 맥락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되듯, 징계와 도덕 재무장을 사과의 핵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심각하게 돌아볼 일이다.

현재 검찰이 확보한 정·관계 인사가 포함된 추천인 리스트에는 단체장과 국회의원뿐 아니라 광주시 간부, 시의원들도 다수 포함돼 있으며, 특히 광주시와 시의회 관계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금품수수를 한 민주노조의 간부가 예외는 아니지만, 정작 도덕과 바른생활 책이 필요한 사람들은 도덕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한다.

민주노총이 사과할 대상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대국민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이어야 한다. 우선 실업과 불안정노동에 처해 있는 민중을 향해야 한다. 수천만 원의 돈도 없고, 정치인이나 지역 유지, 심지어 노조와의 빽마저 없어 몸뚱이만 믿고 입사원서를 낸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적시하며 사과해야 한다. 그들이 느꼈을 절망과 좌절과 분노를 헤아리고, 비리 간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현실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공세와 싸우고 있는 노동자 민중에게 반성의 언급이 없다는 점도 아쉽다. 당장 불법 파견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와 곳곳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민중을 향해, 자본의 관행을 폭로하고 응징하지 못하는 노동조합운동 전반에 널려있는 실리주의적 행태를 반성한다는 이야기를 담아야 했다. 자본과 정권의 노무관리, 노동정책에 맞서 현장의 모든 일상에서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까지 이제 민주노조운동이 협상과 타협과 실리 중심이 아니라 자주성과 변혁성을 견지하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약속하는 내용을 넣어야 했다.

이 참에 물을 만난 듯 민주노조운동의 권력을 비난하는 일이 많아졌다. 절대권력은 절대 망한다는 잣대를 갖다대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습다. 노동조합운동은 아직 힘이 없으며, 권력이라 하기에는 볼품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은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싸울 최소한의 저항력마저 잃어가고 있다. 공세에 맞서 뭐라도 좀 할라치면 내부교란, 이데올로기 공세, 공권력 투입 등을 통해 즉각 진압해버린다. 공세에 맞선 투쟁에서 좀 버텨내기도 하고, 역공세도 취하고, 자본과 정권이 위협도 좀 느끼고 그럴 때 '아, 노동자가 이제 권력이 좀 있구나'라고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노조가 기업 경영 일부에 겨우 한 발 들여놓은 것을 두고 절대권력이 어쩌네 하는데 정말 낯 간지럽지 않는가. 더군다나 지금 노조의 기업 경영 참가의 수준이란 게 자본이 노조의 저항을 순치하기 위해 열어놓은 노무관리 영역을 벗어난 게 있기나 한가.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의 권력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약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더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 다만 노조 간부 일부가 행사하는 상층의 권력이 아니라 현장에서 아래로부터의 단결에 기초한, 조합원 민주주의에 기초한 권력이어야 한다.

- * -

노조는 인사, 투자, 합병, 고용 등 기업 경영 전반에 지금보다 더 많이 개입하고 더 많이 발언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노조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인사청탁 금품수수와 같은 비리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기업경영 참가의 모든 사안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전 조합원에게 투명하게 보고하고 승낙받아 집행함으로써 이런 비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정규직 비정규직 양극화 논리, 대기업노조와 정규직 책임 논리, 강성노동운동 비난 논리 등 노동조합운동을 괴롭히는 논리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자본과 정권은 마치 호기를 잡았다는 듯이 민주노조운동 죽이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비정규법안 통과 시도와 노사정 타협체제 구축 시도는 10년 민주노조운동의 분수령이 될 사안이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원장, 그리고 이목희 제5정책조정위원장이 비정규직법안을 2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탁한 틈을 타고 미뤄왔던 비정규법안을 처리하는 동시에, 노동조합운동의 상층을 동물원 우리와도 같은 노사정 타협체제로 몰아 길들이겠다는 심사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동조합운동의 자주성을 키우기 위한 전향적인 결단도 내려야 한다. 금품수수 비리 사건은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이 명백히 실리주의의 덫에 빠진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자주성을 상실한 반노동자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의 근본 원인인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자본의 포섭에 실리적으로 휩쓸리게 되는 한 비리는 언제든지 재연될 것이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무장한다 하더라도 실리적 유혹 앞에서는 누구나 흔들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재정의 자립, 재정 운용의 자주성 확보는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이미 대영빌딩 건물 임대와 운영 기금을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고용보험과 국가예산 확보 및 남북교류협력 기금'을 요청해서 받게 된다면 노동조합운동의 자주성의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정부의 기금에 의존하는 재원 확보가 아니라 조합비에 대한 조합원과 노조, 연맹의 자주적 결의를 기초로 힘을 키워야 한다.

징계와 도덕 재무장이 아니라 단결과 투쟁을 통해 자본과 정권의 내외 공세에 맞서고, 이로부터 노동조합운동의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키워가는 것, 이것이 오늘 인사청탁 금품수수 비리 사건이 노동조합운동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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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 기아비리 , 진정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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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도 모르고…”

    현자노조 전 부위원장 ‘기아차 사태’ 노동운동에 직격탄…“환골탈태의 기회”

    기아차노조 채용비리 연루 파문으로 노동운동의 도덕성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노조 전 부위원장인 하부영씨가 노동운동의 ‘또다른 치부’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이번 사태를 도덕성을 재무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부영 전 부위원장은 <월간 노동사회> 2월호에 게재될 예정인 “노동운동 ‘환골탈태’의 기회다”라는 글을 통해 “그동안 ‘노동운동의 도덕성 재무장’이 필요함을 외쳐 봤지만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져버렸다. 노동운동 선배들이 경고음을 울려 주었는데도 자정하고 고칠 수 없었던 노동조합의 메커니즘이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사실 현장에서도 사사건건 기준과 원칙이 무너지고, 잘못임을 느끼지도 못하는 도덕 불감증이 만연해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너만 잘났느냐’하는 냉소뿐이었으며,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는 혼돈만 일어났다”며 “이미 여러 노조에서 부정부패와 타락의 문제가 불거졌으나 노동운동 역시 미봉책으로 묻어두고, 단순 사건으로 바라보았을 뿐 심도깊게 분석하고 조사하여 칼을 대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 박홍귀 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이 24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노조 긴급 대의원대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의 뜻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 전 부위원장은 또 “노동운동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건 그 만큼 전 사회적으로 도덕적 우월성이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지난 18년여를 지나며 한국사회에 또 다른 권력으로 등장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라며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거나 높아진 만큼 우리 노동운동은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일에 대해서 소홀히 하거나 회피해 왔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날마다 요구만 하고 투쟁에만 전력투구를 해오다 보니 사회적 책임이라는 질적 성장에 소홀히 해왔다. 그러다 보니 사회 현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고 무책임한 세력으로 전락하며 국민들이 기대를 접고 지지와 박수를 철회한 것이다. 국민들은 언제인가부터 본능적으로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적을 해왔지만, 우리는 그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옛날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1998년 IMF 사태를 겪으며 세상이 크게 변화했는데도 노동운동은 아직도 87년의 관성으로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노동운동의 관성이 집단적인 도덕 불감증까지 불러오게 됐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현장 대의원 선거에서도 조합원들이 후보에게 ‘당신이 당선되면 나 근골격계 산재되도록 해 줄 거냐’며 표를 흥정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노조에 사택 조기입주를 부탁하고, 조·반장 승진까지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조합원들이 사적인 이해관계 관철을 요구하니, 대의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한다. 우리 내부가 얼마나 썩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부당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또한 이런 도덕적 불감증은, 일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착취의 수단’으로 삼는 현실까지 불러오게 됐다고 말했다.

    하 전 부위원장은 “우리 속에는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 여차하면 비정규직을 정리해고 시키자는 묵시적 합의가 숨어 있다”며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과 섞여서 일하고 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비정규직과 위치가 바뀌었다면 현재의 정규직들은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님에도 남의 일이기에 못 본 척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하 전부위원장은, 이번 사태의 진정한 해법은 노동운동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도덕적 타락에 대해 준엄한 ‘정의의 칼’을 빼어 드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덕적 기준은 비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금속산업연맹 임원선거가 ‘무효표’를 던져 무산시키는 사건이 있었고,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 마음에 들지 않는 안건이라 해서 회의장을 빠져나가 유회시킨 일이 있다. 금융노조는 선거부정 시비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일들만 벌어진다. 이 모두가 자신들이 한 행위가 얼마나 더럽고 타락했는지 모르고 자랑처럼 떠벌리는 게 지금 노동운동판이다”고 비판했다.

    하 전 부위원장은 나아가 “훨씬 높은 노동운동의 도덕적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동조합도 이젠 견제와 감시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특혜와 특권이 있다면 다 반납하고 87년 절박했던 그 심정,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이 위기와 고립으로부터 해방 될 길이 열린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하부영 전 부위원장의 <노동사회> 기고문 전문.

    노동운동 ‘환골탈태’의 기회다
    -기아차 입사비리가 노동운동에게 주는 교훈-

    기아차 사태를 접하는 순간은 앞이 캄캄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리 비관만 할 일이 아니었다. 그 동안 ‘노동운동의 도덕성 재무장’이 필요함을 외쳐 보았자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버리고, 노동운동의 선배들이 경고음을 울려 주었는데도 스스로 자정하고 고칠 수 없었던 노동조합의 메커니즘이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

    사실 현장에서도 사사건건 기준과 원칙이 무너지고, 잘못임을 느끼지도 못하는 도덕 불감증이 만연해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너만 잘났느냐”하는 냉소뿐이었으며,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혼돈만 일어났다.

    1987년 이후 벌써 18년 차를 바라보는 민주노조운동이지만 자정의 기회를 놓쳤왔던 것이 이런 사태로 나타났다. 이미 여러 노조에서 부정부패와 타락의 문제가 불거졌으나 노동운동 역시 미봉책으로 묻어두고, 단순 사건으로 바라보았을 뿐 심도 깊게 분석하고 조사하여 칼을 대지 못했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 이유도 이러한 도덕적 타락을 경계하라는 일종의 경종이었음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태의 본질을 보자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며 언젠가 터질 일 ‘잘 터졌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노동운동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건 그만큼 전사회적으로 도덕적 우월성이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지난 18년여를 지나며 한국사회에 또 다른 권력으로 등장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거나 높아진 만큼 우리 노동운동은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일에 대해서 소홀히 하거나 회피해 왔다. 날마다 요구만 하고 투쟁에만 전력투구를 해오다 보니 사회적 책임이라는 질적 성장에 소홀히 해왔다.

    그러다 보니 사회 현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고 무책임한 세력으로 전락하며 국민들이 기대를 접고 지지와 박수를 철회한 것이다. 국민들은 언제인가부터 본능적으로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적을 해왔지만, 우리는 그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옛날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1998년 IMF 사태를 겪으며 세상이 크게 변화했는데도 노동운동은 아직도 87년의 관성으로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우리의 힘이 얼마나 커졌고,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졌는지 스스로 모르고 사회적 책임 세력으로서 세상을 두루 살피며 새로운 방향과 목표를 정해야 할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집단적인 도덕불감증에 빠졌다

    우리는 비리사건이라는 현상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 내부의 도덕적 흠결을 샅샅이 발굴하여 치유하고 고쳐나간다는 혁명적인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양극화와 노동자간 격차와 차별이라는 화두를 안고 있다. 이 내용도 상세히 들여다보면 일부 정규직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회사와 담합하여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공동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 여차하면 비정규직을 정리해고시키자는 묵시적 합의가 숨어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한다는 ‘살인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생각까지 올라가면 세상 살아가는 게 섬뜩하다.

    왜! 우리가 언제부터 남을 죽이고 내가 살아야 한다는 ‘살기’를 품고 살았달 말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집단적인 범죄공모가 용인되는 곳이 되었단 말인가! 또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과 섞여서 일하고 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비정규직과 위치가 바뀌었다면 현재의 정규직들은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님에도 남의 일이기에 못 본 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도덕적 가치와 기준을 다시 세우자

    우리는 ‘살기’를 품고 살아가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만큼 집단적으로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걸 인정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해법은 우리 스스로도 모르고 빠져든 도덕적 타락을 정의의 칼을 높이 치켜들고 베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높은 노동운동의 도덕적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동조합도 이젠 견제와 감시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특혜와 특권이 있다면 다 반납하고 87년 절박했던 그 심정,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이 위기와 고립으로부터 해방 될 길이 열린다.

    도덕적 기준은 비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금속산업연맹 임원선거가 ‘무효표’를 던져 무산시키는 사건이 있었고,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 마음에 들지 않는 안건이라 해서 회의장을 빠져나가 유회시킨 일이 있다. 금융노조는 선거부정 시비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있어서는 안될 일들만 벌어진다. 이 모두가 자신들이 한 행위가 얼마나 더럽고 타락했는지 모르고 자랑처럼 떠벌리는 게 지금 노동운동판이다.

    현장속 대의원 선거에서도 조합원은 후보에게 “당신이 당선되면 나 근골격계 산재되도록 해 줄 거냐”며 표를 흥정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사택에 조기입주를 부탁하고, 조·반장 승진까지 개입하는 일도 있다. 조합원들이 사적인 이해관계 관철을 요구하니, 대의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한다. 우리 내부가 얼마나 썩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부당하고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젠 바로 잡아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게 문제의 본질이다. 민주노총은 진상을 조사해서 원인을 밝히고 사과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를 책임질 세력으로, 말로만 세상의 주인이 노동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주인답게 행동하고 살아갈 도덕적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 교육하고 생각을 바꾸도록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잘하라고 꾸짖어 주는 건 아직은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포기 당하는 게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가다가 넘어지면 쉬었다 가자”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기왕 넘어졌으니 확실히 고쳐서 가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노동운동이 제대로 서도록 ‘탈태환골’의 기회로 삼고 현재의 위기와 고립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이 준엄한 심판을 순간적으로 모면하고 피하며 숨기고 축소하려 한다면 노동조합의 간판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번 기회에 노동운동은 양심을 회복하고 도덕성을 재무장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추고, 이 사회를 진정으로 책임질 정정당당한 세력으로 다시 태어나자.

    지금 현장에서도 희망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전직위원장들이 과거 청산을 위해 반성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용기 있는 행동이 나오고, 대의원들이 스스로 '행동강령'을 만들어 자정을 물결이 일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 개뿔

    썩어빠진 노조가 변혁성을 가진다고요? 지금이 8/90년대인줄 착각하나본데..

  • 무명씨

    2% 부족한 듯한 느낌이네요.
    이수호집행부가 과연 무슨말인지 알아듣기나 할까라는 생각도 들고..
    겉은 산별인데 속은 산별의 내용이 관철되지 않고 있는 허황한 노조와 대기업노조가 총연맹을 좌우하며 거기서 대장노릇하고 패거리 세력싸움하는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그 유명한 '정파'들이 바뀌지 않는한 민주노총에게 더이상 희망은 없을 듯하네요. 우울하지만...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