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정연설, 민중에 대한 공공연한 도발

2주년 본회의장,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세력의 대화합 연출
신자유주의 지배논리 압축된 '선진한국' 강변

오늘 오전 10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여야 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수로 노무현 대통령을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야 의원 모두의 환영과 기대 속에 연설을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연설을 하면서 이번만큼 많은 박수를 받은 적도 없었다. '선진한국'을 강조한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저작권'을 거론하자 여야 의원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로열티를 지급하겠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연설 시작 전 국회의장단과 여야 정당 대표들과의 10여분 간 가진 미팅에서도 '선진한국' 용어를 놓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이 언급할 '선진한국'이 한나라당이 지난해 연구하고 주장한 것"이라고 말하고, "선진한국을 만들기 위해 여야 정치권이 힘을 합쳐 나가자"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약 50분간, 41쪽 분량의 국정연설을 했다. 경기회복 여부, 선진경제, 선진한국, 선진정치, 선진사회 등의 정의와 설명을 이어가며 정당과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연역 논리를 펼쳤다. 당선 후 '동북아경제중심 추진', 1년차 '소득 2만달러 시대'로 표현되어온 국정 방향이 3년차를 맞으며 '선진한국'으로 압축되어 표현된 셈이다. 들여다보면 기조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되, 굳이 따지자면 한나라당의 지적재산을 공유했다는 점이 유일하게 달라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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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2주년 국정연설의 정치적 의의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지배질서와 지배논리를 안정화한다는 데 있다. 여야는 지난해 말 4대개혁입법을 둘러싸고 크게 대치했지만, 신자유주의 투자관련법안의 정치적 타결,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 자본의 요구 수용 등으로 타협의 여건을 만들어왔다. 더군다나 재정 조기 집행 및 일자리 창출을 골자로 한 종합투자계획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포괄적 동의가 신자유주의 세력간 지배질서의 안정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국정연설은 이러한 흐름을 '선진한국'이라는 키워드로 효과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또한 국정연설에는 비정규법안과 로드맵 추진에서 확인되듯이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다. 지금 노무현정권은 체제 내외의 여러 장치를 가동, 민주노총 상층을 포섭, 무장해제 수준까지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향한 다양한 방식의 공세를 펼침으로써 위기 관리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정권의 대노동 위기 관리의 자신감은 국정연설 중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한 대목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국정연설은 한마디로 지배세력의 마수가 민중의 삶의 모든 부분에 미쳐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민중의 삶에 대한 심대한 도발이라는 점에서 실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정연설은 대안 없는 경제정책, 개방통상정책, 해묵은 선진한국의 지배논리, 국민연금, 교육, 의료, 문화, 환경 등 민중의 삶의 기초 영역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 비정규직 착취 정당화, 반동적 한-미 동맹체제 강변 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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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와 관련, 이런 현상이 벌어진 원인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수출과 내수, 대형할인점과 재래시장 간의 경쟁력 격차, 계층간의 소득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풀기 위한 방법 역시 제시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을 살리자',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살리자'며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지만 고용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은 아무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집값, 사교육비, 신용불량자 문제'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그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선진경제'는 위험한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금융, 법률, 회계, 연구개발, IT, 컨설팅, 디자인 등 기업지원 서비스산업과 레져문화산업의 발전의 필요를 거론하며 이 분야에서 해외로 나간 돈 28억 달러와 유학 비용으로 나간 돈 70억 달러, 의료비로 나간 돈 10억 달러를 언급하며, 이를 서비스산업의 확산과 교육 의료 개방의 근거로 삼고 있다.

"공교육의 가치와 제도가 무너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면서도 "그러나 교육과 의료서비스의 산업적 성격은 그것대로 살려나가야 한다"는 모순된 발언을 쏟아냈다. 즉 개방화 시장화를 근간으로 교육, 의료 등 민중의 삶의 기초 영역을 상품화하는 시도를 중단하지 않고, 그 영역을 문화, 관광, 레져까지 확대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최근 김진표 교육부총리 임명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으며, 성장과 개발 위주의 정책이 환경파괴로 이어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진통상국가로의 도약' 부분도 민중의 삶에 대한 심각한 도발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WTO, FTA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적극적 전략이다"라고 인식한다. 이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농업 붕괴와, 초국적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및 노동유연화 강화에 따른 노동자의 삶의 질의 악화는 거론하지 않는다.

선진사회, 선진한국의 논리는 대화와 타협, 법질서의 강조로 같은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되풀이한 것으로, 해묵은 지배논리를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연금, 교단 붕괴,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대목에서는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해 지급액을 낮추고 보험료를 더 올리는 것을 당연시하게 말하고, 심지어 투자를 못하게 한다고 생떼를 쓰기까지 한다. 교단 붕괴는 개방화 시장화 정책으로 교육을 시장으로 내몰아온 신자유주의정권의 잘못에 따른 것인데, 이 모든 책임을 교단에 선 교사들에게 떠밀고 있다. 방사성폐기물처리 문제의 책임은 다시 지역 주민의 집단 이기주의로 모는 구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비정규직 언급은 아주 코미디에 가깝다. 비정규직의 주머니를 털어 자본의 배를 불려놓고 정규직 한테 그 주머니를 채우라는 허위와 억지 논리를 멈추지 않았다. 연대임금제나 일자리 나누기를 노동자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이야기 한 대목은 코미디를 넘어 아주 분열증에 가까운 발언이다.

북핵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는 거나 매한가지며,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동맹적 질서가 안정되어 있으니 아무 걱정 말라는 주문을 빠뜨리지 않았다. 제국주의 미국과의 동맹에 어떤 문제도 없다는 반동적 지배논리를 스스럼없이 내뱉고 있다. 그리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을 가지길 호소하고, 이어 마무리 안부 인사도 놓치지 않았다.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 새해 여러분 가정에 희망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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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구리

    한대 후려치고 싶다...간사한 XX

  • 영찬맘

    연대임금제나 일자리 나누기를 노동자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이야기 한 대목은 05년 민주노총 임금방침과 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