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집회·시위는 혼란, 폭력, 불법 자체라는 식의 인식은 내 주변 극히 일부만이 가진 생각이 아니라, 집회에 대한 대중들이 가진 일반적인 시각일 것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은 과연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돌 맞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가 표방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진정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안에서 집회·시위가 가지는 가치와,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집회의 가치는 무엇일까?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 또는 나쁜 일만 계속 겪는 것은 아니다. 기쁜 일이 있다가도 성낼 일이 생기기도 하며, 슬픈 일이 있다가도 즐거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희로애락을 끊임없이 느끼고, 또 이를 적당한 방식으로 표출하기도 하는데, 이는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써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바로 이 점에서 집회나 시위의 기본적인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기쁘거나 즐거운 일, 또는 슬프거나 억울한 일이 극히 개인적인 일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원인을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하는 팀이 아슬아슬하게 이기거나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이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을 때, 우리는 일종의 공동체 의식과 함께 희열을 느낀다. 반면 지난 2002년 일어난 미선이·효순이 사건이나 각종 범죄, 학대 사건과 같은 사회적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는 공분을 느끼기도 한다. 생전 본 적 없는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 또는 가족의 일인데도 말이다.
즉 각 개인이 희노애락을 느끼는 것, 그리고 이것을 표출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듯이, 사회를 이뤄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 일반 대중이 사회적 일들에 대해 공동의 의견·생각·느낌을 갖고 이를 분출하는 것 역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본성상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행위라 할 수 있는 이것은 집회·시위라는 하나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로써 집회·시위는 일반 대중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표출하는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집회·시위가 사회적 사안에 대한 느낌과 의견을 표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기도 하고, 출판이나 각종 퍼포먼스와 같은 문화적 행위로 나타나기도 하며,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언론매체를 통해 표시될 수 있고, 정당이나 의회와 같은 대의기관을 통해 접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아직까지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 행위에 가까우며, 의견이 맞는 이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문화적 행위를 펼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기술이 있어야 하며, 집중·독점된 언론매체로부터 일반대중은 소외되어, 이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집회나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만한 정당이 없거나 미약하여, 의회나 행정부와 같은 대의기구에서 이미 무시되거나 소외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집회·시위는 특별한 능력을 갖지 못한 정치적 의미의 ‘소수자’인 일반대중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가치도 갖는다.
정리하자면, 집회·시위는 단순한 혼란이나 어지러움이 아닌,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하는 행위 그 자체이며, 따라서 이성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소수로서의 일반 대중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공간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대의정치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집회·시회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민주적 여론형성, 참여정치의 실현에도 참여하는 것이다.
현 집시법의 문제점
집회나 시위가 갖는 위와 같은 가치를 집시법은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헌법과 집시법의 관계를 살펴보자. 우리 헌법은 집회에 관하여 제21조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갖고, 제2항에서는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집회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 경우라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정리하면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를 위해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으며, 법률에 따라 이 자유에 제한을 가할 수 있더라도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따라서 집시“법”이 집회․시위에 제한을 가하더라도 실질적인 허가제를 통해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하지만 집시법의 입법목적을 규정하는 제1조만 보더라도, 이러한 헌법과의 관계는 바로 깨지고 만다. 왜냐하면 이 법은 「1)“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2)집회 및 시위의 권리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적법과 위법을 나누는 기준은 결국 집시법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이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영역에 있는 집회라고 하더라도 집시법에 의해 위법이 되어 금지될 수 있는 것이다. 실례로 근래의 반FTA 집회는 분명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이었지만, 집시법 제8조 ‘집회 및 시위의 제한 또는 금지 통고’에 따라 금지되어 위법 집회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의 권리가 기본적 인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안녕질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할 법익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여기서 공공의 안녕질서라는 것도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너무나 많다. 최소한의 불편함을 주지않는 집회가 어디 있으며, 그 불편함이 안녕질서를 넘어서는 기준이 어디까지란 말인가?
그리고 집시법의 실제 운영에 있어서도 여러 문제가 도출된다. 집시법 제6조 제1항은 “집회의 목적, 일시, 장소, 주최자·연락책임자·질서유지인의 주소·성명·직업·연락처, 참가예정단체 및 참가예정인원과 시위방법을 기재한 신고서를 옥외집회 또는 시위의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시행령 제2조에서는 시위방법으로 “1. 시위의 대형, 2. 차량·확성기·입간판 기타 주장을 표시한 시설물의 이용여부와 그 수, 3. 구호제창의 여부, 4. 진로(출발지·경유지·중간행사지·도착지등), 5. 약도(시위행진의 진행방향을 도면으로 표시한 것), 6. 차도·보도·교차로의 통행방법, 7. 삭제, 8. 기타 시위의 방법과 관련되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집시법은 집회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빠진 것이 있다면 이후 보완통고, 집회금치,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집시법 제8조 제1항 단서를 보면 “집회 또는 시위가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는 남은 기간의 당해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신고서를 접수한 때부터 48시간이 경과된 경우에도 금지통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집회․시위 과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충돌에 대해 경찰이 이를 빌미로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하여 남은 기간의 집회․시위에 대한 일괄적인 사전적 허가제로 운용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허가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과 상충된다.
또한 집회를 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일종의 ‘성역’이 존재한다. 집시법 제10조는 일출시간 전과 일몰시간 후의 옥외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조명 시설, 시위자의 상황 등을 감안하였을 때, 야간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제11조는 “1. 국회의사당, 각급법원, 헌법재판소, 2. 대통령관저, 국회의장공관, 대법원장공관, 헌법재판소장공관, 3. 국무총리공관, 4.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로부터 1백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제12조에서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주요도시의 주요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요도로는 각 도시 내 거의 대부분의 주요도로를 포괄한다. 이러한 금지는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범위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는 측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가 ‘대시민 홍보’라고 할 때 그 기능마저 무력화시키는 것이라 평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집회․시위의 자유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헌법에 규정된 권리이다. 뿐만 아니라 집회․시위 자체로 하나의 정치를 구성하고, 소수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반면 현 집시법은 입법목적부터 그 문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집회․시회가 실질적 허가제로 운영되도록 하여 그 권리를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집시법은 수적으로는 다수이면서도 사회적 약자인 일반 대중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집회․시위를 통제하여 개별적으로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말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 많은 집시법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적 의사표현과 결정을 가로막는 이 법은 분명히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집회․시위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편함은 무시해도 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싶다. “미국과 일본에는 조례가 있을 뿐 집시법은 없다. 당장의 혼란이 두려워 악법을 그대로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 덧붙이는 말
-
이호영 님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원으로 건국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