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참석자들의 연좌제, 공모공동정범이론

[집시법연속기획 : 헌법 21조를 지켜라](5)

억울한 집회참가자들

2006년에는 평택미군기지이전, 한미FTA 등 굵직하고 중요한 사안들이 많이 있었으며, 사안이 중요한 만큼이나 이를 둘러싼 찬, 반의 의견대립이 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대화나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 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강력한 탄압을 시도하였습니다. 따라서 운동진영이 모이는 집회에서 시위대와 경찰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연행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연행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웃기는 일들이,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일들이,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졌습니다. 즉, 단순히 집회에 참가했다가 연행되었을 뿐인 사람에게 집회과정에서 경찰관을 다치게 한 책임을 지우고(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부서진 경찰차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웃기는 일들이, 어떤 단체의 책임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참가하지도 않은 집회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적으로 발생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난 하지 않았다, 난 집회에 참가만 했을 뿐이다라는 항변이 누군가가 죽봉을 휘두르는 사진, 누군지 모르지만 저를 때렸어요 라고 하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전경의 진술서와 다쳤다고 주장하는 전경의 진단서, 먼발치에서만 봤을 뿐인 경찰차가 어느새 부서져 있는 사진 등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증거들에 밀려 법적으로 조금도 고려되지 않는 억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억울함의 주범- 공모공동정범이론

위와 같이 나름 황당한 일들은 모두 공모공동정범이론이라는 법 논리의 존재, 아니 그 무차별적인 적용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원래 공모공동정범이론이라는 것은 직접 행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범행의 계획을 수립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실제 행위자들로 하여금 계획된 범죄를 실행하게 하는 드러나지 않은 조직의 수뇌부들을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법이론입니다. 즉, 공모(계획수립 & 명령)만 해도 실제 행위한 자(정범)와 똑같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공모공동정범이론을 사례에 적용함에 있어 2인 이상이 공모하여 범죄에 공동가공하는 공범관계에 있어서 공모는 법률상 어떤 정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서 ①비록 전체의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한다 할 것이고, 이러한 ②공모가 이루어진 이상 실행행위에 관여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서의 죄책을 진다(대법원 1994. 3. 8. 선고 93도3154판결 등)라고 하여 공모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확정함이 없이 단순히 공모의 절차와 방식만을 적시하여 공모라는 것의 범위를 매우 폭넓게 인정하고 있고, 또 공모가 이루어진 일시나 장소 등에 대하여 특별히 밝힐 필요가 없고, 단지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는 사실만 밝히면 된다고 하여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여진다는 간단한 판단만 있으면 공모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있어 공모의 추상성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즉, 대법원은 공모공동정범이론의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이 이론을 아주 추상적이며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적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법원이 위와 같이 추상적인 공모공동정범이론을 집회에 관하여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위와 같은 판례에 따르면, 집회에 참가한 자는 다른 사람이나 매체를 통하여 집회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참가했을 뿐이라도(즉 폭력행위 등에 대한 아무런 사전준비나 고의가 없었더라도), 그 집회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있기만 하면 순차적 또는 암묵적으로 폭력행위에 대한 상통으로 물리적 충돌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어 물리적 충돌에 대한 공모가 인정되게 되고(①), 공모가 인정되는 이상 실제로 행한 바가 전혀 없더라도 물리적 충돌행위의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게 됩니다(②).

실질적인 집회 ? 시위의 자유의 침해

이러한 법원의 태도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는데, 먼저 경찰과 검찰은 시위현장에서의 연행자들이 시위에 참석하였다는 사실만 밝히면 누군가에게 맞아서 다친 전경의 진단서, 누군가가 파이프를 휘두르는 사진 몇 장만으로 연행된 모든 사람들을 폭력행위자로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경찰들에 의한 제대로 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일단 연행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강력한 진압과 폭력적인 연행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법원에 의해서 경찰, 검찰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이루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법원 역시 위와 같은 태도로 연행자들을 판단하기에 집회에 참가만 했을 뿐인 대학생에게 전경의 부상과 전경차의 손괴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지게 하고, 시위에 앞서 기자회견에만 참석하였을 뿐인 평택 시위참가자에게 경찰차의 손괴와 경찰의 부상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등 단순 집회참가자들에게도 중형을 선고하고 있는데,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집회참가자들에 대한 연좌제의 역할을 하여 집회참가자들을 위축시키고, 결국 집회의 자유(집회에 참가할 자유)를 훼손시키는 것이 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행위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형법의 중요한 원리원칙까지 흔들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원의 태도변경의 필요

따라서 집회의 자유의 실질적인 보호를 위해서 앞으로는 공모공동정범이라는 법논리의 무분별한 적용은 제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하여 사회적 여론의 환기와 법원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리라 보여집니다. 법원의 태도가 일단 바뀌게 되면 그에 따라 경찰이나 검찰이 집회나 시위, 또는 그 참가자들에 대해 갖는 태도도 역시 고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덧붙이는 말

박주민 님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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