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가 ‘이념’이 아닌 ‘주고받는 장사’라 한다. ‘퍼주고 망한 장사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퍼줘도 될 까 싶을 만큼 밀려있는게 한미FTA 협상 지형이다.
한미FTA는 IMF가 몰고 온 후과처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주도할 ‘이념’이며 또 하나의 분기점이다. 과연 지금까지의 협상이 그대들의 주장처럼 주고받은 장사였을까. 주요 인사들이 한미FTA 협상 내용에 대해 ‘낙제’점수를 겸손히 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꼼꼼히 셈’하고 있는 장사일까. 글쎄.
도대체 산수의 기초도 안 된 한미FTA
한미FTA 체결 반대론자들은 협상이 가져다 줄 최종 결과물도 모르면서 ‘유령’과 싸우고 있다.고 한다. 한미FTA가 ‘유령’이 될지, ‘괴물’이 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멕시코처럼 대다수의 국민들은 빈곤해 지더라도 경제 수치는 뛰어 오를 수도 있다. ‘태풍’이 오기 전의 기상 예보처럼, 지금의 한미FTA 협상 결과에 대한 전망은 예상치 일수밖에 없다.
이를 차치하고...
장사를 하려면 ‘셈’에 빨라야 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에 대해 어떤 셈의 결과가 나왔을까.
지난 3월 13일 모 인터넷 매체에서는 아주 재밌는 통계 자료를 냈다. 양측 협상단이 공히 마지막 실무 협상이라고 밝힌 ‘8차 협상’ 직후, 그간 얘기 됐던 쟁점 30개 중 과연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쟁점은 몇 개일까에 대한 계산이다.
그간 쟁점으로 꼽혔던 30개 쟁점 중 한국 협상단의 입장이 반영 된 것은 총 3개, 단 10%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한국 측의 내용이 반영된 3개가 농업 세이프가드(safeguard, 임시수입제한)의 도입, '재벌도 공정거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각주 삭제, 미 정부조달 시장의 입찰 참가조건 완화 등 너무 당연한 내용이거나 미미한 사안들 뿐이다.
반면 미국 측은 30대 쟁점 가운데 존스 액트(Jones Act, 미국 내 인적·물적 자원은 미국인 소유의 미국산 배에 의해 수송돼야 한다는 규정)의 유지, 섬유제품에 대한 얀포워드(Yarn Forward, 원사 기준 원산지 기준) 적용 원칙 등 최소 13개(43.3%)의 쟁점에서 자국 측 입장을 반영하거나 관철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거듭 말하지만, 3:13이라는 비율과 숫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 협상단이 관철시킨 내용이 한국 협상단이 관철시킨 내용과는 질적으로 무게의 축이 다르다는 것이다.
유연하고 당당한 장사꾼의 ‘낮은 수준의 합의’
우리 측 협상단은 어느 때 보다 적극적이고 유연하며 당당하다. 그래 보인다. 유연하고 당당하게 한미FTA 협상 ‘종결’을 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낮은 수준의 합의”까지 거론하며 가이드 라인을 낮춘 상황에, 청와대는 한미FTA 타결을 위한 사전 정비 작업을 마친 듯하다. 청와대는 여전히 한미FTA 특보직과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한덕수 총리 지명자를 세웠다.
홍보특보로 컴백한 이백만 전 수석의 경우도 홍보수석 재직 시절 '한미FTA…멀리 보고 크게 생각합시다'라는 연재물을 '청와대브리핑'에 게재했던 사수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든 한미FTA 협상을 체결하겠다는 내심이 공공연히 드러낸 셈이다. 이는 '낮은 수준의 협상'을 기준축으로 제시하며 수석대표 협상의 짐을 덜어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너무 유연하고, 당당해서 문제다. 한미FTA 협상의 얼굴마담이 됐던 김종훈 수석대표의 말을 따라가 볼까. 한미FTA 협상 추진 목표 중에 가장 큰 핵심은 ‘무역구제’였다. 큰 시장인 미국에서 경쟁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이 받는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한미FTA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TV 토론회에서는 “무역구제는 꼭 얻어 내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리고 그 유연하고 당당한 입장은 이후 협상 과정에서 여지없이 빛을 발했다. 1~2차 협상에서는 “무역구제 꼭 얻어낸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3차 협상에서는 ”무역구제 관련 9가지 요구사항 제시“, 4차 협상에서는 ”무역구제 관련 6가치 추가 요구사항 제시“, 5차 협상에서는 "15가지 중 요구사항 중 6가지를 마지노선으로 미국 측에 제시, 특히 비합산 조치가 핵심 요구사항" 그리고 6차 협상에서는 "무역구제 받기 힘들면 다른 것 받아내기 위해 지렛대로 활용하겠다”고 하더니 7차 협상에서는 "비합산 조치도 받기 어려우니, 자동차 및 의약품 방어 수단으로 쓸 것"이라며 팩퀴지 딜까지 물러섰다.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줬을까. 성과라고 꼽은 정부조달 부문의 협상 타결 내용도 마찬가지다. 결국 미국 주 정부 조달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몇가지 단서 조건을 거는 것으로 WTO 수준으로 마무리 됐다. 학교급식 예외조항도 미국에 있는 제도를 이름 그대로 양측이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이 쯤 하면 한국 협상단의 유연성은 이미 극에 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 있다”고 했던 약속은 어디가고 미국의 거센 공세 속에 내 놓았던 요구들을 후퇴, 정리해 간 셈이다.
잔챙이 격으로 “가장 대표적인 상품무역 분야에 있어서 현재까지 두나라의 관세 즉시철폐비율은 우리측이 품목수 기준으로 85.2%(수입액 기준으론 79.1%), 미측이 85.4%(66.5%)로 개선됐다”고 목소리 높이지 말라. 송사리 미꾸라지로 생색내고, 내용 공개가 아닌 숫자들만 나열하면서 기세 싸움 하듯, ‘성과’와 ‘유연성’을 따지기엔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협상 결과가 너무 옹색하지 않은가.
시한에 쫓기지 않겠다는 약속은 어디가고
한미FTA 8차 협상이 마무리 됐고, 오늘(19일) 부터는 고위급 수석대표 협상이 시작된다. 사실상 실무협상이 마무리 됐고 쟁점만 남았다고 하지만 협정문 까지 완료된 협상분과는 경쟁, 통관, 정부조달 등 3개 분과에 불과하다.
의견 접근을 이뤘고, 한 두가지 확인 사항이 남았다 하지만 협상 마지막 날 브리핑 시간 까지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 외 분과들은 ‘종결’ 되지 못했다.
한국이 그간 진행해 온 FTA 협상의 추진 과정을 보면 평균 3~4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공동작업반도 하고 실질 협상도 하고 검토도 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진행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오직 두 나라만 반대한 가운데 148개국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됐다. 이후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중국 등 54개 국이 비준을 마쳤고 지난 18일에는 국제법으로 공식 발효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다. 정부 부처 간 이견이 많지 않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정부는 “이견 조율하고 내용 검토 중”이라는 답 뿐이다. 외교통상부의 의도인지, 실제 정부 부처 간 드러나지 않는 갈등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과연 비슷한 시기에 검토 물망에 올랐을 한미FTA의 협상은 벌써 실무 협상을 마무리 하고 ‘종결’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시간 타이밍을 비교해 봤을 때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답답함이 남을 뿐이다.
수석대표간 고위급 협상과 장관급 2차 고위급 협상 마지막 대통령의 가서명까지, 남은 2주간에 해결 하겠다는 것이 양측의 공식 입장이다. 진정, 시한에 쫓기지 않고 있다면 정부 고위 인사들이 독단으로 쟁점을 해결하는 게 아닌, 국민의 여론 수렴을 위한 절차를 가져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어떻게 한미FTA만은 이렇게 닫혀 있는가.
한미FTA, 한국 사회의 미래 이념이 될 것
이제는 기업이 정부 정책을 문제 삼아 분쟁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한국 기업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분쟁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것을 보장하는 투자자국가제소(ISD) 조항이 지뢰처럼 박혀 있다.
기대 이익이 침해 됐을 경우, FTA 협정을 잘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국가대 국가가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기업이 압력을 행사해 국가가 제기할 경우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비위반 제소 조항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지뢰 처럼 박혀 있는 조항들이 꿈툴꿈틀 살아서 위세를 떨칠 것이라는 점이다. 메탈 클레드 처럼, 캐나다에서 UPS 처럼 기업의 이익과 시장 장악을 위해 ‘공공의 이익’과 상관없이 소가 제기 될 수 있다.
많이도 필요 없다. 한 두 번의 사례로도 그 여파와 영향력은 충분할 것이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한국의 정책을 근거로 소를 제기하고, 미국 정부가 한 번 나서 준다면 이후 한국 정부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혹시 분쟁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검토는 이제 필수 코스가 될 것이다. 공공 정책은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은 분명하다. 어떤 분쟁이 발생할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또한 SPS분과의 위원회 설치, 통관소위원회 설치, 정부조달 작업반 설치 등 많은 분과에서 협상 창구들이 생겼다. 좋게 말하면 협상 채널이겠지만, 한미FTA 협상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국내 정책에 개입하고, 제도에 개입할 수 있는 위원회들이 명문화 된 셈이다.
한미FTA협상 결과와 체결이 결국 한국 사회에 기업 천국의 세상, 이윤 만능의 세상을 만들고, 이런 현상이 사회의 중심 이념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단순한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