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자와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해요"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3) 고용허가제라고 다르지 않다

정부는 2004년에 도입된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래 필리핀 출신 H씨와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말은 완전히 다르다.

H는 2006년 6월에 한국에 처음으로 왔다.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이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등록비, 한국어학원비, 항공비, 기타 경비를 대기 위해 결국 6백만 원을 써야 했다. 첫 공장에서 기본급이 700,600원밖에 되지 않아서 경비를 그녀 대신 빌려 주었던 할머니에게 갚는데 6-7개월이 걸렸다.

생활 조건

다른 고용허가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H의 회사는 그녀에게 기숙사를 제공했는데, 그건 그냥 컨테이너였고 다른 3명이랑 같이 쓰는 것이었다. 공장에서 남성 직원들의 아파트 근처로 옮겨진 컨테이너는 그녀와 동료들에게 불편한 공간이 되었다.

“매일 밤 남자들이 찾아와서 술을 같이 마시자고 해서 우리는 실제로 거기 사는 게 두려웠어요.”

“태풍에 지붕이 꺼졌을 때 우리는 2-3주 동안 거기에 있을 수 없었어요. 우리더러 남자들하고 같이 살라고 했어요... 우리들 중 2명은 다른 3명의 남자와 함께 한 방에 머물러야 했어요.”


학대

저임금과 열악한 생활조건 이외에 H와 동료들은 곧 더욱 잔인하고 모욕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공장에서 2주간 일하고 나서 정비기사(한국인)이 내 동료와 강제로 섹스하려고 했어요. 그는 새벽 두시에 문을 두드려서 들여보내 달라고 했어요...그는 술 취해 있었고 밤을 보내고 싶어 했고 내 동료와 강제로 섹스하려고 했어요.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매달리면서, 싫다는 답을 들으려고 않았어요.”

정비기사가 주의하고 있지 않을 때, H와 동료는 도망을 쳤다. 공장에서 상급자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 정비기사는 처벌받지 않았다. H는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가 만약 우리가 고발하면 우리는 집에 돌아가야 할 거라고 얘기했어요. 내 동료는 그걸 두려워했고 그녀가 피해자였기 때문에 나는 물러섰죠. 그녀가 무서워해서 나는 그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어요.”

H와 그녀의 룸메이트는 심지어 필리핀해외노동자국(Philippines Dept for Overseas Workers, POLO)로부터 그 사건은 정비기사를 먼저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했기 때문에 그녀들의 잘못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H의 룸메이트가 좀 진정되었을 때, H는 공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계약이 끝나는 1년 뒤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사업장 이동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은 노동부 고용지원센터가 소개한 회사에서만 직장을 구할 수 있고 이 공장들이 대부분 조건이 매우 열악해서 -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곳보다 더 열악하하다 - 대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법에 따르면 2개월 안에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법체류가 된다. H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직장을 구하는데 3개월 걸렸어요. 2개월을 넘겨도 되었던 것은 내가 넘어져서 허리 디스크가 어긋났기 때문이죠. 너무 아파서 일을 찾으러 다닐 수 없다고 했더니 연장을 해주더라고요.”

“한 열두 군데 정도 가봤지만 대부분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구했어요. 다른 곳들은 진짜 안좋았어요. 또 다른 곳들은 월급이 너무 낮았고요.”


결국 H는 필리핀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을 괜찮은 등록사업장에 연결해주는 대신 자기를 통해 송금을 하게 하는 어느 필리핀 가게주인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다.


또 다시 가혹한 조건

용인의 새 공장에서 H는 과도한 초과노동과 야간근무 등 너무나 힘든 상황에 처했다.

“우리(필리핀 노동자들)는 한 달에 쉬는 날이 하루밖에 없었어요. 매일 저녁 8시 30분부터 아침 8시 30분까지 일했어요. 나는 야간만 했어요. 그들은 강제로 연장근로를 시켰어요. 자기들이 원하면 휴일도 취소했어요.”

더욱이 노동자들은 얘기해서도 안되었고 같은 위치에 앉아서 적절한 냉난방 없이 밤새 일해야 했다. 그래서 허리 통증이나 다른 질병들이 생겼다.

아마 H와 다른 이주노동자 전체에게 가장 나빴던 것은 매일 같은 차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필리핀 노동자들을 아이처럼 대했어요... 욕설도 했고요. 우리 관리자는 자주 욕설을 퍼부었죠. 그들은 우리를 그냥 ‘야’라고 불렀어요. 또 한국인들은 원할 때 언제라도 휴일을 쓸 수 있었는데 필리핀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었어요.”

“한 번은 불량을 낸 필리핀 노동자가 있었는데, 관리자는 그녀를 밀치더니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말했어요.”


문제제기

마침내 H는 노동부에 진정하기로 했다. 이는 공장에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이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전액 주지 않았고 한 부서 노동자들에게 불량품에 대해 변상하라고 강제해서 내가 진정을 냈어요.”

“노동부는 모든 사항을 시정하라고 회사에 일주일을 주었지요. 나는 회사랑 협상했고 결국에 진정을 취하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몇 가지를 시정했어요. 예를 들어, 퇴직금을 주지요.”


비자연장 문제

그러나 진정은 부정적인 결과 역시 가져왔다. 진정이 접수된 뒤에 회사 관리자들은 H가 진정을 취하하지 않으면 3년의 비자기간이 끝났을 때 필리핀 노동자들을 아무도 재고용하지 않을 거라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이 비자 3년을 갱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현재의 회사에 재고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H와 동료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되었다. 실제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거나 임금(또는 퇴직금)을 포기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종종 비자연장 권한을 활용한다.

특히 H는 비자가 끝나면 회사가 자기를 재고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 다른 직장을 한 번 더 찾고 있고 한국을 떠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이곳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나는 캐나다로 가는 걸 고민하고 있어요. 정부가 지금 노동자가 기숙사비와 식비를 내야 하는 것으로 고용허가제 내용을 바꾸려고 하는데 이건 우리 월급에서 너무 많이 빼앗아갈 거예요. 달러 환율도 진짜 너무 높아요.”

이주노동자에게 더 나은 제도에 대한 희망

그래도 H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고 더 공정한 제도로 대체되기를 희망한다. 특히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 것을 바라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우리에게도 실질적으로 적용되어야 해요. 그렇게 적용한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우리는 사업장을 바꾸는 기회가 기껏 네 번(원래 세 번이고 예외적으로 한 번 더 허용된다) 있을 뿐이죠. 네 번으로 제한된다는 건 학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에요. 우리는 한국노동자들과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해요. 우리는 똑같이, 아니 훨씬 힘들게 일하고 있어요.”

기획의도와 순서

경제위기 상황은 가장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공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월급을 삭감당하기도 하고 높이 뛴 물가 때문에 생활고도 가중되고 있다. 환율이 높아서 본국에 송금할 돈도 턱없이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성생공단 일대에서 벌어진 정부합동 단속으로 1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연행 되었다. 경찰까지 동원된 유례없는 대규모 단속은 체류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이뤄졌지만 토끼몰이식, 군사작전식 단속으로 인권침해의 표본이 되었다. 이미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눈보라 몰아치는 혹한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탄압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침묵의 겨울 이주노동자후원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경종이 될 수 있도록 5회에 걸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기획을 매주 싣고자 한다.

다음은 기획의 순서이다.

1. 이주노동자로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
2. 야만적인 단속은 이주노동자와 한국사회를 병들게 한다.
3. 고용허가제라고 다르지 않다.
4. 이주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5. 한국정부, 한국사회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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