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낮 12시 덕수궁 앞 언론사 기자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에 나선 학생들을 취재하기 위해 늘어서 있었다. 기자들은 학생들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어디선가 "야! 넌 편집이야"라는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한 학생의 명랑한 목소리였다. 뜨거운 취재열기에 대부분의 학생이 인터뷰를 한 번씩은 했고 서로의 인터뷰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중학교 3학년생으로 담임교사가 덕수궁 체험학습을 허락해서 나왔다. 이날 일제고사는 중학교 1, 2학년 대상이었고 이들은 이미 10월에 일제고사를 본 학생들이었다. 이미 본 시험인데 왜 체험학습에 나왔는지 물어봤다.
"졸업시험 본 다음부터 학교에 안 나오는 얘들도 있어요",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 시험이라도 시험 보는 게 부담스럽잖아요", "일제고사 보기는 했지만 고등학생 돼서도 봐야 되는데 싫어요", "학교 줄 세우는 시험이잖아요. 그런 시험은 나빠요"
여기저기서 대답이 쏟아졌다. 대화 도중 이들은 '쩐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들 표현대로라면 '쩌는' 일제고사 경험자로서 일제고사에 반대하기 위해 체험학습에 나선 길이었다. 체험학습장인 덕수궁을 잠시 돌더니 발길을 서울시청 앞 스케이트장으로 옮겼다. 오후 4시 보신각에서 열리는 '일제고사 반대행동 보고대회'에 가기 전 잠시 놀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체험학습은 학습과 체험, 적당한 '땡땡이'가 버무려졌다. 긴장이 풀어지자 아이들은 기자에게 거꾸로 질문을 쏟아냈다.
"기자는 어떻게 됐어요?", "월급은 얼마에요?", "대학교는 나왔어요?" 벌써부터 대입과 취직의 두려움이 묻어났다. 이제 겨우 16살인데. 이어지는 질문들은 "서울 말고 지방도 일제고사 봐요?" "지방도 서울처럼 일제고사 반대하나요?", "아저씬 일제고사를 어떻게 생각해요? 찬성이에요? 반대예요?" 내가 오히려 취재 당하고 있었다. 일제고사 반대행동에 대한 정보도 요구했다.
"우리 선생님 짤리면 안 되니까 기사 똑바로 써요"
스케이트 타면서 담임 선생님 자랑을 늘어놨다. 한 학생이 "우리 선생님 짤리면 안 되니까 기사 똑바로 써요"라고 했다. 지난 10일 일제고사 선택권을 인정해 해임당한 교사들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던 10명의 학생 중 5명은 집으로 돌아갔다. 학원 때문이거나 '시위'가 부담스러워서였다. 남은 5명은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열심히 엄지족을 놀려댔다. 체험학습은 가지 않았지만 오후 4시 종로에서 열릴 '문화제'에 가려고 학교를 마친 뒤 달려오는 3명의 다른 친구와 통신중이었다.
이들은 나중에 합류한 3명과 함께 보신각으로 향했다. 보신각에는 이미 '문화제'가 시작됐다. 잠시 어색해하던 이들은 "일제고사는 똥덩어리다. 공정택은 그만 꺼져"라는 구호가 나오자 '까르르' 웃으며 한 편에 자리 잡았다. 얼마 후 이들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담임 선생님이 이들에게 "밥 먹고 그만 집에 가야지"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이들은 "촛불집회까지 가야죠. 그래서 옷도 두껍게 입고 왔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반 33명 중 10명이 체험학습을 나갔고 이후 3명이 일제고사 반대 문화제에 합류했다. 절반 가까이 일제고사 거부행동에 동여했다. 이들의 담임 선생님은 징계 부담감이 없을까.
"불안하죠. 하지만 해임교사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학부모님과 대화하면서 체험학습에 대한 의견을 나눴어요. 그리고 졸업시험 후 정상적인 수업도 안 되는데 체험학습으로 학생들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예요" 8명의 학생들에게 떠밀려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시교육청으로 가면서 담임선생님이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