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집권 10년 "앞으로 할 일이 더 중요"

[인터뷰] 볼프강 곤살레스 베네수엘라 대사대리

베네수엘라 개헌이 54%의 찬성으로 15일(현지시간) 통과됐다. 국내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차베스 대통령이 영구집권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독재자'라는 암시적 이미지도 덧씌웠다. 과연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에 대해 뭐라고 할까? 궁금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공식적인 개표 결과가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은 16일(한국시간) 오후 베네수엘라 대사관을 찾았다. 대사관에는 '베네수엘라볼리바르공화국'이라는 국호가 선명했다. 여느 대사관과 다름없이 집무실에는 차베스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개헌 통과는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헌법적 승인

볼프강 곤살레스 대사대리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에 동의한다는 의미"라고 이번 개헌투표 결과의 의미를 설명했다.

  곤살레스 대사는 개헌 통과가 보다 발전된 사회주의를 향한 비준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이정원 기자

"우리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21세기 사회주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계속 전진해 나가겠다는 의미를 가진 하나의 헌법적 승인이다. 더불어 보다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국민들의 비준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개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 기존 정당의 후보인 살라스 로메르로를 누르고 58%의 지지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제헌의회를 소집하는 일이었다. 친 차베스 진영은 1999년 7월 열린 제헌의회 선거에서 131석 가운데 119석을 차지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 해 12월 국민투표에서 새 헌법은 71%의 지지를 얻어 통과됐다. 그리고 이 헌법은 남미 해방투쟁을 이끌었던 혁명가의 이름을 따라 '볼리바르주의 헌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볼프강 곤살레스 대사는 이번 개헌 보다 1999년에 만들어진 헌법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돼 있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1999년 새 헌법을 승인했다. 당시 새 헌법은 역사적인 과정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이 직접 참여해 새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새 헌법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새로운 정치적 권리를 부여했다. 이 권리는 사회적 참여, 민중의 참여를 만들어 냈고 그 결과 새로운 사회 건설로 이어졌다."

보수 언론이 모른 척하는 한 가지

그러나 새로운 사회 건설로 향하는 길은 험했다. 2002년 차베스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반혁명 쿠데타, 2003년 석유 파업, 2004년 차베스 소환 국민투표...이번 개헌 국민투표까지 차베스를 반대하는 세력의 논리는 한결 같았다. 지난 6일은 차베스 대통령의 집권 10년 째 되는 날이었다. 곤살레스 대사는 "그들이 지난 10년 간 해온 반혁명 전략은 바로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곤살레스 대사는 베네수엘라의 빈곤과 높은 범죄율 등 고질적 폐해를 극복하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고 말했다./이정원 기자
"민중들을 속이고 새 헌법과 혁명과정을 폄하하고, 차베스 대통령이 결국 독재자의 길로 가고 있다는 거짓선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거짓선전은 엄청난 권력과 영향력을 쥔 베네수엘라 우파 보수언론을 통해 이뤄졌다. 그들은 어제 국민투표 결과조차 '이제 차베스가 평생 대통령을 하게 됐다'는 식으로 폄하하고 있다. 이런 정치조작은 자기무덤을 파는 결과일 뿐이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그게 하나의 정치선동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곤살레스 대사는 주류 언론들이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알아도 모른 척 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지적했다.

"1999년 새 헌법은 국민투표로 선출된 모든 공무원을 끌어내릴 수 있는 국민소환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누군가 아주 압도적으로 대통령, 혹은 주지사, 시장을 당선됐다고 치자. 그래도 민중이 그의 정책이나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소환투표를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을 원하지 않아'라고 표현하는 거다. 국민 소환절차는 아주 단순하고 쉽다. 개헌투표 결과가 말하듯 이미 정치의식이 성장한 국민들은 정치조작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차베스 정부의 집권 10년의 성과 중 참여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정치의식 성장에 후한 점수를 줬던 곤살레스 대사는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고질적인 문제는 있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의 고질적인 병폐를 없애기에 "10년은 너무 짧았다."

"지난 10년간의 사회주의 혁명과정을 통해 빈곤을 줄이긴 했지만, 앞으론 그 이상으로 빈곤 타파를 위해 더 많이 싸워나가야 한다. 높은 범죄율을 비롯해 오랫동안 고질적 사회 불평등과 같이 산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공들여 일해야 한다."

"석유산업 의존하면 정치위기 불러올 수도"

이야기를 좀 비틀어 사실상 베네수엘라가 석유에 의존해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석유로 흥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석유 때문에 쇠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곤살레스 대사는 "석유산업에 의존하면 경제위기는 물론 정치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국제유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오래전부터 거시경제안정기금을 만들어 지금과 같이 국제유가가 떨어질 때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충당한다. 차베스 정부 이전에도 운용되던 것이지만, 차베스 정부 이후 기금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이와 별도로 모든 국민에게 세금을 강제하는 재정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누진세다. 당연히 거대기업들의 반발이 컸다. 거대기업에서 자본을 받는 보수 언론들의 악선전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금정책은 크게 성공해 지금은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국가 수입이 석유로 벌어들은 것보다 더 많아졌다. 그래서 국제 석유파동이 일어나도 과거처럼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석유 의존을 줄이기 위해 다른 한편에서는 제조업과 농업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곤살레스 대사는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상품으로 수출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와 함께 미주볼리바르대안(ALBA)를 출범시켰다. 미국이 추진하는 전미자유무역지대(FTAA)에 대항하는 대안적 무역질서다. 적어도 이 미주볼리바르대안에 함께하고 있는 니카라과, 쿠바, 온두라스,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의 국가에 대해 석유는 '수출품'이 아니다.

"차베스 정부의 석유 수출정책은 과거와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린 미주볼리바르대안(ALBA) 회원국에 석유를 수출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환은 오로지 이윤을 얻기 위해 수출하는 자본주의적 수출과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미주볼리바르대안(ALBA) 회원국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브라질과도 상품을 교환한다. 그 나라에 없는 것을 주고 우리에게 없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아주 발달한 목축생산물을 받는다. 이런 상품 교환의 토대는 바로 '연대의식'이다. 이런 연대에 기초한 수출정책은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구조 아래서는 작동할 수 없다."

제국주의 저항의 아이콘이 된 차베스 정부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의문이 들었다. 곤살레스 대사에게 물었다.

"차베스 정부를 대표하는 대사대리로서 힘든 점은 바로 차베스 정책에 대해 공격하고, 거짓말하고 폄하하는 우파 보수언론에 대응해야 한다는 거다. 언론과 전쟁 속에서 늘 무엇이 진실인지, 그들이 무엇을 왜곡했는지 낱낱이 알리고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시작할 즈음 곤살레스 대사의 얼굴에 숨은 긴장감의 이유인듯하다.

"차베스 뒤에 묵묵히 일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봐 달라"

아픈 질문도 던졌다. 차베스 집권 10년이 넘었는데 탄탄한 지도력을 구축하진 못한 것 같다. 전세계 진보진영도 차베스 1인의 카리스마에 기댄 혁명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답은 '외교적' 이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실험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기도 하다.

"혁명은 언제나 리더를 필요로 한다. 모든 사회.정치운동에는 늘 지도자가 있었다.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전쟁을 벌일 때도 프란시스코 미란다, 볼리바르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 차베스라는 지도자 한 명만 보이는 듯하다. 실은 그 위에 묵묵히 일하는 민중들이 있다. 자치공동체, 노동조합, 여성, 소위원회, 주민위원회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지도자와 한 팀으로 일하고 있다."

곤살레스 대사는 인터뷰를 끝마치면서 <민중언론 참세상>에 고마운 응원의 한 마디 보탰다.

"우리가 처음 새로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할 때 제국주의의 후원을 받는 언론의 반발이 컸다. 제국주의 메카니즘은 아주 복잡하고 거대하다. 정부, 군대, 대학, 의회, 언론, 국제기구 등을 모두 포괄하고 통제할 만큼. 그런 의미에서 <참세상> 같은 대안적 매체는 꼭 필요하다. 대안 매체는 권력은 없지만 대신 '연대'할 수 있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대안매체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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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 베네수엘라 , 차베스 , 볼프강 곤살레스 , 시몬 볼리바르 , 21세기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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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해적

    가슴 짜릿한 감동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아니 자본주의 몰락에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가슴이 먹먹합니다. 차베스, 아니 베네주엘라 민중 홧팅

  • 사회주의자

    베네주엘라의 아래로부터의 변혁의지는 주목해야 하지만 차베스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은 조금도 사회주의적이지 않다. 그리고 21세기 사회주의에는 내용이 없다. 사민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전면부정으로 이어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사민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애초에 사회주의가 아니었고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이어가야 한다. 21세기 사회주의 구호는 필요 없다. 불필요한 수식어 없이 사회주의를 당당히 주장하자!

  • 짜증나서

    기사나 좀 제대로 읽으셔!!!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문맹인가?

  • 관찰

    사회주의자에게/
    이론이 아니고 실제다.

  • 짜증나

    경험 없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나? 20세기 사회주의가 비록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사회상은 아니었을지라도 그건 분명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그 유산을 계승/극복해야지, '그건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면피해가지고서야 어떻게 책임있게 현실의 대안을 만들어가겠나. 또 누구의 신뢰를 얻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