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픈 세월

[칼럼] 용산 철대위원장 이충연의 싸움

서울구치소 수번 29,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 그에게 애달픈 세월이 흐른다. 그의 몸 상태는 그리 녹록치 못하다. 망루에서 연기를 많이 마셔 폐를 상해 젊은 나이에 평생을 약을 먹어야 할 형편이다. 망루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져 기브스조차 풀지 못한 상태에서 형사들에 의해 끌려가, 기브스를 푼 다리는 재활치료를 않으면 굳어버릴 터인데 감옥 안이라 그마저 여의치 않다. 그래도 그는 차라리 감옥에라도 들어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삼을 처지다. 위원장인 아들이 망루에 올라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함께 올라가신 아버지는 불길에 휩싸여 돌아가시고 이충연은 저만 살아남은 것이 평생의 멍에로 남을 터이기에. 그렇게 지난 1월 20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이충연은 살아남아 구치소에 있고,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와 함께 망루에 올랐던 아버지를 비롯한 5명의 동지는 죽었고, 5명의 동지는 그와 함께 구속되어 있다.

아버지는 5개월째 냉동고에 누워계시고, 맏상주인 형님 이성연은 영안실을 지키느라 어머니 전재숙은 현장에서 경찰과 싸우느라 면회할 여유조차 없다. 색시 정영신이 새벽에 면회를 가고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현장에서 경찰과 싸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몸 챙기는데 무심한 신랑에게 부아가 난 색시 정영신이 밖에서 교도관과 싸워가며 그의 몸을 돌본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감옥 안에 있는 것이 마음이야 편할 터이지만, 다른 가족을 생각하면 도저히 안에 앉아있을 처지가 못 된다.

남일당을 본당으로 이강서 신부님이 주임신부로 문정현 신부님이 보좌신부로 매일 미사를 올린다는 얘기에, 부모님과 사랑하는 색시하고 직접 칠하고 닦고 만들었던 레아가 공연공간으로 꾸며졌다는 얘기에 그리도 고마워하던 그였다. 그런데 지난 달 29일 고 노무현대통령 장례지내는 날 새벽을 틈타 명도가 집행되면서 노신부님이 용역에게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용산에서 한 성질하고 강단이 있기로 이력이 난 이충연의 속에 천불이 난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던 유송옥이 감옥에 앉아있는 그를 대신해서 직무대행을 맡아 싸우다 경찰서를 드나드니 속이 탄다.

법원의 명령에도 검찰이 수사기록 3천 쪽을 내놓지 않으면서 먼저 변호사들이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일단 법정에서 수사기록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그래도 내놓지 않으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고 그래도 재판부가 바뀌지 않으면 변론 거부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어차피 짜인 각본의 예정된 결론에 이를 바에야 싸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러자 가장 반기는 사람이 이충연 위원장이었다. 화염병을 던져 아버지를 태워 죽였다는 범죄 혐의에서 벗어날 길은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그러나 변호인이 변론을 않으면 불리하게 작용을 해서 더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낼 수도 있다는 얘기에, 그는 차마 내놓고 찬성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 역시 의견이 다르지는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연대투쟁을 하러 와서 같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 때문에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때문에.

요즘 각계의 시국성명이 잇따르고, 천주교 신부님들이 시국성명을 내고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사를 올리고 농성을 한다는 면회 온 색시의 얘기에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이제 아버님 장례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그러나 그를, 그의 아버지를 도심의 테러리스트로 매도한 주역이자 수사기록 3천 쪽을 쥐고 내놓지 않는 자가 검찰총장이 됐다는 소식에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다. 어차피 이 싸움은 그의 몫이기에.

이충연 그에게 이 애달픈 세월의 끝은 어디인가.
덧붙이는 말

이종회 님은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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