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배기열 부장판사)는 24일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도피를 도운 조합원을 성폭행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상완 민주노총 전 조직강화특위위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해자는 술에 만취해 기억이 없다고 하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모함할 이유가 없으며, 진술이 구체적인 점을 봤을 때 피고인의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증거자료로 제출된 CCTV 영상에 대해 피해자가 일부 과장된 진술을 한 점은 인정하나 전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성폭력 전과가 없고, 범행을 반성하고 깊이 사죄하며, 계획적으로 의도한 범행이라고 의심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우발적 범행이라고 판단했으며, 실제 범행 미수에 그쳤고 강간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면서도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취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여 징역 3년 실형에 처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가 가해자의 성폭력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하더라도 성폭력 가해자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술에 취한 무의식 상태’와 ‘우발성’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밝힌 양형 이유도 피해자와의 합의가 되지 않았던 것에 무게가 실렸다.
이번 사건은 민주노총 간부가 위원장의 수배 도피 과정에서 숙소를 제공해 준 조합원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데서 그 파장이 전사회적으로 퍼졌다. 또한 진보진영 내에선 한국 진보운동의 상징이었던 민주노총과 전교조 일부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사건의 은폐를 조장했다는 데서 반성폭력 운동 10년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재판부는 “가해자 김상완이 성폭력을 시도했을 당시의 행위를 봤을 때 술에 만취되어 의사결정 할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심신이 미약한 상태라는 변론은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김 씨의 변호인은 지난 14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에서 성폭행을 시도할 당시 두 번이나 베란다에 나가 핸드폰 얘기를 하며 중얼거리는 등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했고, 피해자 집 앞까지 갔다가 계단으로 걸어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등의 행위를 한 것으로 봐서 술에 취해 맨 정신이 아니었다”고 변론했었다.
성폭력 사건시 술에 의한 우발성 쉽게 인정
그동안 여성단체 등은 법원이 성폭력 범죄에 있어 ‘우발성’을 쉽게 인정하고 있으며, 가해자가 술을 마셨다면 더욱 쉽게 인정한다고 지적해 왔다. 또 가해자가 술을 마신 후 성폭력을 저지르면 법원이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두고 ‘봐주기 판결’이라고 문제제기해 왔다. 최근 일각에서는 술에 취해 성폭력을 저지르면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가해자 쪽 변호사의 변론 취지는 ‘술에 취한 무의식 상태’에 맞춰졌고 가해자 김 씨 역시 ‘전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피해자에 죄송하다’고 최후진술에서 밝힌 바 있다.
성폭력 피해자 지지모임의 이향원 대표는 “법원이 가해자의 정신적 공황은 반영하고 피해자의 정신적인 공황은 반영하지 않은 판결 이유를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지지모임에 참가하는 유현경 씨도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이 아니라 이례적인 행동이라 판단 한 것”이라 비판했다.
한편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도피를 도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이용식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과 전교조 손 모 씨는 벌금 500만원을, 전교조 전 간부 박 모 씨와 민주노총 간부 박 모 씨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