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특공대 망루 내 인화물질 양도 모르고 작전

컨테이너 두 대로 계획했지만 한 대만 와 작전 변경

24일 열린 용산철거민 진압 참사 재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의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원들과 망루 진압에 직접 투입된 1제대장은 망루 내에 시너와 인화물질의 양이 정확히 얼마인지 보고를 전혀 받지 못하고 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망루 외부 구조는 항공촬영 등으로 파악했지만, 내부 구조는 모른 채 작전에 투입됐다. 심지어 화재가 나기 바로 직전인 망루 2차 진입 당시 소화기는 대부분 소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애초 동원하기로 한 진압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작전을 일부 변경하기도 했다.

  20일 작전 당시 경찰특공대는 컨테이너 두 대를 동원해 한 대는 망루 지붕을 뜯고 위에서 진입할 계획을 세웠지만 현장에 컨테이너는 한 대만 지원됐다. 특공대 1제대장은 '두 대가 있었으면 덧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특공대 작전도 수월하고 농성자 입장에서에도 안전에 더 낫다"고 증언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날 변호인들은 경찰 특공대의 진압작전이 충분히 준비되고 나서 진행됐는지를 주로 심문했다. 특히 1차 망루 진입으로 상당수의 철거민을 연행하고 2차 진입 전 10여 분 동안 현장의 위험요소를 확인하지 않은 이유를 집중 추궁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특공대원들은 “20리터 들이 세녹스가 60통 있었고 화염병이 120개, 염산이 100개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느냐?”는 질문에 전부 못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망루 안 상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소화기도 부족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 모 1제대 팀장은 “1차 진입 때 화염병이 날아와 불이 번지면 불붙은 대원들 소화용도로 사용해 화재 무렵까지는 거의 소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망루 진입 검거를 맡은 1제대에서 팀을 맡아 1차 진입 당시 망루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진입했었다.

“시너 20 리터 60통, 염산 등이 있는 상황에서 1차 진입 때 화염병을 던지고 했으면 위험한데 1, 2, 3층을 제압했으면 그걸 다 꺼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최 팀장은 “시위자 안전진압이 목적이라 내부 상황판단은 못 한다”고 밝혔다.

그는 “1제대장에게 인원을 보충해서 4층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1제대장의 2차 진입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사항은 잘 생각이 안 난다”고 말했다.

신 모 1제대장도 “다량의 시너 통 얘기는 전혀 못 들었다”고 말해 작전 당시 경찰 정보라인의 허점도 드러났다. 진압이 이뤄진 다음날인 1월 21일,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경찰 진입계획서 작전계획에는 ‘철거민들이 20ℓ짜리 시너 60여개, 화염병 5박스 등을 보유’ 등이 명시돼 있었다.

1제대장은 “망루에서 붓는 시너 양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고 물을 계속 살수해 건물 밑으로 흘러내렸다.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투척해도 바닥에 불이 붙지 않았다”고 말해 인화물질의 양은 고려하지 않았음을 내비췄다.

왜 망루상황을 점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1제대장은 “검거가 주목적이고 화염병을 던져서 주변 관측을 못했다. 세밀하게 살피라 얘기 안했다”면서 “농성자들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검거하는 것이 목적이라 (내부 관측은)주요 고려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두 대 동원했으면 특공대 수월, 농성자도 더 안전

1월 20일 오전 세부진압작전은 1제대장이 세웠지만 1제대장이 세운 대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1제대장은 애초 컨테이너 두 대를 동원, 나머지 한 대는 망루 지붕을 뜯고 대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컨테이너는 한 대만 지원돼 한 대로 작전을 수행했다. 1제대장은 변호인이 ‘빨리 작전을 하라고 안했으면 두 대가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두 대가 특공대원에게 수월하고, 농성자 입장에서도 안전은 두 개가 더 낫다”고 밝혔다.

진압장비가 없었다는 증언은 다른 대원에게서도 나왔다. 5제대 이 모 대원은 “팀장이 먼저 장비를 구비하기로 했는데 장비가 없어 3제대에 합류 했다”고 말했다.

2제대도 장비가 안와 현장에서 작전을 변경했다. 2제대 정 모 팀장은 “소방바스켓차가 없어 작전을 변경 했다”면서 “바가지차가 안와 5제대 지원으로 배속 받고 계단을 올라가는 임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2차 진입 때 특공대장 압력이 있었나 논란

변호인들은 당시 작전에서 특공대 작전이 적절했는지 심문했다. 특공대가 작전을 언제 준비했는지도 주 논란이었다. 1제대장은 “19일 오전 8시 20분에 특공대 참모회의에서 특공대장에게 출동하라는 전화가 왔지만 어디서 전화가 왔는지는 모른다”고 밝혔다. ‘진압작전은 누가 짰느냐?’는 질문엔 “컨테이너 결정은 현장답사를 다녀와서 직원들과 제가 짰다. 특공대장은 없었다”면서 “제대장이 자기 섹터는 자기가 알아서한다. 세부사항을 특공대장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재차 변호인이 ‘1제대와 2제대 임무는 어디서 나눴냐?’고 질문하자 “참모회의에서 각 제대 임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참모회의는 누가 주관하느냐?’고 묻자 “특공대장이 주관하고 개괄했다”고 실토했다. 그는 “컨테이너로 하자는 것은 참모회의에서 대장이 짰고 점심 전에 결정했다”면서도 “그때 작전 투입이 결정된 것은 아니고 청에서 출동시킬 것이라 예상해서 사전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오산 세교 지구는 54일 농성 후에 진압을 해 화염병도 다 소진하고 농성을 이탈한 사람들을 통해 내부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다. 이처럼 내부를 파악할 작전 준비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시간이 많아 세밀한 파악을 하면 좋지만 명령이 떨어지면 그런 고민 않고 바로 진압해야 하는 게 특공대다. 명령이 떨어져서 검거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차 투입 전에 10분여간 시간이 있었는데 안에 뭐가 있는지 위험물질과 구조 파악을 왜 안했느냐?”는 질문엔 “검거가 주목적이었고 주변을 파악 할 여건이 안 돼 세밀하게 살피라 얘기 안했다”고 말했다.

2차 진입 전 특공대장과 한 교신내용도 논란이 됐다. 1제대장이 “아직 멀었다. 저항이 심해 못 들어가고 잠잠해지길 기다린다”고 하자 특공대장은 “내가 올라갈까”라고 말했다. 1제대장은 “(특공대장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을 던지고 그래서 진압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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