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3일 오전, 부천 소사고등학교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밀려온 것처럼,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지난 2010년 9~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고, 공포되었다. 이후, 경기도내 학교들은 생활규정을 포함한 규정개정을 진행했고, 그 작업은 학생인권조례안의 내용과 기준에 맞도록 추진되어야 했다. 부천 소사고등학교 또한 그에 발맞춰 학생, 교사,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규정개정심의위원회’를 구성했고, 규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도 진행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서는 기존의 규정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똑같이 학생들의 생활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내용의 규정을 들이밀었고, 그것은 공청회에서 나온 학생들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학생들 몇몇이, 이 ‘규정개정심의위원회’ 회의에 참관하기를 요구하였으나 그 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학대운영위원회(학부모 등)에 의해 거부를 당했다. 사건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회의 참관을 거부당한 다음 날인 22일 아침, 학생들 몇몇이 모여 교문 앞에서 “근조 학생인권”이라는 피켓을 들며 항의 의사를 전했다. 학생들은 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 학생들이 참관이 가능하도록 할 것과 더불어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교장과의 면담을 함께 요구했다. 그러나 몇몇 교사들이 피켓을 빼앗아 머리를 때리고 욕설을 하는 등 피켓팅을 하는 학생들을 제지하였으며 ‘집시법 위반’ 운운하며 협박을 가하는 등 무개념하고 몰상식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은 다음 날인 23일 오전, 더 많은 학생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10분 동안 기습적으로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통과되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이다. 소사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보여주는 것처럼, 학생인권조례안에 맞춰 규정을 개정하는 작업이라고 그것이 민주적이지도 않고, 실질적인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학생인권조례, 학교 문화 바꾸는 것
소사고등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 경기도내 학교의 학생들은 지금 앞으로의 학생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규정안에 대한 논의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이다. 언론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과한 자유를 준다’하며 떠들어대지만, 정작 이러한 학생인권이 무시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찌 된 일인지 입도 뻥긋하지 않는 것 같다. 몇 줄 기사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중심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스스로의 상황을 결코 자각할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는 단순하게 학교의 생활 규정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교 문화 전체를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학교는 준비되어있는가? 학생들의 위원회 회의 참관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거부당하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피켓 하나 든 학생들에게 폭언과 협박을 가하는 학교의 모습은 과연 무엇을 보여주는가?
부천 소사고등학교의 23일 학내시위 이후, 교장과의 면담도 간신히 추진한 학생들은 그 공간에서도 ‘주동자에게 징계를 내릴 것’이라는 협박을 들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포스터 그리기, 글짓기 등을 통해 그저 보여주기만을 위한 방법으로 인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는, “피켓팅을 해도 된다는 내용은 조례안에 없으니 너희들의 피켓팅은 잘못됐다.”라는 이야기가 아무 성찰 없이 나올 수 있는 이런 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과 기준, 그 취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 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규정개정심의위원회’와 민주적인 절차, 소통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학생들의 이러한 외침은 예정되어있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하고, 학생에게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소사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인권’에 맞춰 규정을 개정한다는 자리에서도 학생인권을 짓밟았다. 결론은 간단하다.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핵심을 바라봐야 한다. 인권을 말하는 것은 한 인간을 ‘권리의 주체’로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인권이 아니고 교육이 아니라면, 우리가 바라는 학교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고 공포되었다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소사고등학교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해준 것은 학생들의 외침이었고,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번 부천 소사고등학교 학내시위를 계기로 학생인권조례는 실현과정 자체가 인권이어야 하며, 인권적인 방법이 교육적인 방법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하루아침에 모든 학생들의 생활이 바로 인권적으로 짜잔 하고 바뀌는 것을 보장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학생인권조례를 디딤돌 삼아 지금까지는 제대로 내지 못했던 학생인권보장에 대해 ‘말할’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사고등학교 학생들의 외침은 이러한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학생들 스스로가 본인의 상황에 대해 알리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학교현장을 보다 인권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므로. 아무도 듣지 않았던 학생인권의 외침을 이제는 학생들이 직접 말해야 하고, 그 목소리에 자꾸만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장의 변화를 가져오진 못하더라도 부천 소사고등학교 학생들의 외침에 대한 어떤 대답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경기도학생인권조례와 학생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힘을 합쳐 바꿔나갈 어떤 학교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