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희 통합진보당 당대표는 2007년 7월-10월께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 인권변호사 시절에 노동탄압 사업장인 제주 P사업장 사측 변론을 맡은 바 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07년 D법무법인 변호사 재직 중 제주도에 소재한 P사업장의 노사분쟁 관련 회사 쪽 소송대리인을 맡아 사실상 노조의 패배를 이끌어 낸 사실이 드러났다.
P사업장 노조는 3인의 핵심 노조 간부가 해고된 후 사실상 와해의 길을 걸었다. P사업장 노조 변호인단은 당시 노사분쟁을 단순 노사문제 사건이 아닌 회사 쪽의 악성 노조탄압으로 보고 소송에 대응했다.
특히 P사업장 사측은 대표적인 노동탄압 사례인 단체협약 해지 후 노조 핵심 간부 해고 등의 탄압을 했다. 이때 노조 쪽 해고무효 확인소송의 사쪽 변호사는 D법무법인 이정희 대표와 최모 변호사였다. 이정희 변호사는 이 소송이 끝난 지 6-7개월여 뒤인 2008년 4월 9일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노동조합 쪽 변론을 맡은 변호인단의 한 관계자는 “변호인단은 당시 소송을 노조탄압 사건으로 보고 대응했다. 그런데 노조탄압 사건에 민변 인권변호사인 이정희 변호사가 회사 쪽 변호인으로 나와 많이 불편했고 의아했다”고 설명했다.
06년부터 07년 사이 노조 쪽은 해고 무효 확인 소송, 근로자지위보전 및 임금지급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회사 쪽은 노조 간부와 평조합원 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과 노조 쪽 임금지급 소송 1심 승리 후 강제집행정지 신청 등을 진행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P사업장 노조 핵심 관계자로 해고를 당한 김 모 씨는 “이정희 변호사가 당대표가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언론에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위선자 같았다”며 “이정희 변호사가 언제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노동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얘기할 때 기분이 묘하고 허탈했다”고 밝혔다.
2010년 당대표가 된 이정희 변호사는 각종 노동조합 투쟁에 나가 사측의 노동탄압 비정규직 계약해지,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주장해 왔다.
노조 변호인단의 다른 관계자는 “당시 이정희 변호사는 통상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의 변호사들과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며 “이정희 변호사가 법정에서 밝힌 변론 취지는 인권을 말하는 변호사로 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소송 당시 P사업장은 투쟁을 시작한지도 오래되고, 악성분쟁 사업장이었다. 조합원 22명인 조그만 사업장에 비조합원 구사대로 인해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구사대가 노조 간부들을 헐리우드 액션으로 고소하는 그런 사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변 소속의 변호사라도 법무법인에 속하다 보면 어쩔 수없이 사용자 쪽 사건을 맡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인권변호사라면 최소한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핵심쟁점에서 합리적으로 공방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 이정희 변호사의 도장이 찍힌 근로자지위보전및임금지급가처분 |
이정희 측, “P사업장 고문인 동료변호사 의뢰로 맡은 듯”
이정희 대표 의원실 한 관계자는 <참세상>과 통화에서 “인권변호사로서 노동악법이라고 지적받는 부분을 변론 취지로 삼은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같은 법무법인에 있던 최 모 변호사가 P사업장의 고문을 맡고 있어 최 변호사가 이정희 대표에게 의뢰를 한 것 같다”며 “변호사라는 직무에 충실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현재 이정희 대표와는 여러 당내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직접 통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해당사건은 04년 제주에서 돌고래 및 바다사자 쇼와 기타 서비스업을 제공하는 P사업장 노조가 사쪽과 비정규직 계약해지 투쟁 후, 임금협상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노사분규다. P노조는 직원 44명 중 22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노조였다. 노조 쪽은 입금협상이 풀리지 않자 04년 8월 5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거쳐 조합원 전원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결의 했다.
이어 04년 8월 9일부터 연월차 휴가, 생리휴가 신청 등의 준법투쟁에 돌입했지만 회사는 04년 8월 17일 노조원들을 상대로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12월 6일에 직장폐쇄를 해제했다. 노조는 회사의 불법적인 직장폐쇄에 맞서 전면파업과 동시에 사쪽에 직장폐쇄 해제를 요구하는 각종 투쟁을 벌였고, 회사는 업무 방해 금지 소송 등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노사분규는 민형사상 소송으로 이어져 3년여를 끌었다. 노조원들은 직장 폐쇄가 풀리고 나서 업무에 복귀했지만 2006년 단체협약해지와 노조 핵심간부 징계 해고로 파국으로 치닫고 소송 전까지 이어졌다.
이정희 변호사 도장 찍힌 답변서, 인권변호사 변론이라 보기 어려워
이 과정에서 이정희 변호사가 직접 도장을 찍은 해고무효 확인소송 청구취지나 임금지급가처분 신청취지 답변서를 두고 노동계는 인권변호사의 변론이라고 하기엔 과하다는 지적이다.
이 답변서에 따르면 이정희 변호사는 노동계가 악법이라고 규정한 쟁의행위의 목적이 임금인상이 아닌 비정규직 계약 만료 사원 해고 문제가 교섭요구 사항이라 불법 파업이라고 파고들었다.
또한 전면 파업 전에 노조가 합법적인 연월차 투쟁, 생리휴가 투쟁 등 준법투쟁을 벌인 것도 불법이라고 몰아붙였다. 노조의 준법투쟁이 불법이기 때문에 사측의 직장폐쇄가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법원은 사측의 직장폐쇄를 불법으로 판정했다. 노조원들은 직장폐쇄기간 임금을 받지 못하고 투쟁에 내몰렸다.
이 대목도 철도노조나 전교조가 벌이던 준법투쟁과 유사한 부분이지만 이정희 변호사는 불법으로 몰았다. 이정희 변호사의 이런 변론 취지는 노사분규에서 회사 쪽 변호인들이 보인 대표적인 직장폐쇄 악용 사례와 같다.
결국 장기투쟁과 생계 문제 등으로 압박을 받던 노조 관계자들은 여러 항소심에서 임금지급 소송은 승소하지만, 해고무효 소송에서 패소하고, 손해배상 소송도 일부 패소해 2천 여 만원의 손해배상을 할 처지가 돼고 사쪽과 임금 문제 합의를 하고 해고를 받아들였다. 이후 노조는 거의 와해됐고 현재는 조합원이 2명만 남은 상태다.
노조 해고자 김 모 씨는 현재도 민주노총 활동가로 활동 중이다. 김 모 씨는 “이정희 변호사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그 해 중순에 모 호텔 노조 직장폐쇄 투쟁에 왔다. 이정희 의원과 저는 3-4미터 거리에서 마주했지만 이정희 의원이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려는 것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모 씨는 “그때 제가 집회 현수막도 걸고 해서 충분히 봤을 텐데도 이정희 의원이 저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며 “이정희 대표가 그 이후라도 ‘입장이 이래서 미안하다’고 말만했어도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연락도 한 번 없었고 우연히 한 번 부딪히는 기회도 있었는데 미안하단 표현이 없어 지금도 심정이 안 좋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영혼 없는 변호사와 다를 바 없어”
민주노총 소속 한 중앙노동위원회 위원도 “민주노총이나 수많은 투쟁 사업장이 투쟁을 통해 돌파하려고 한 것이 노동법상 쟁의행위를 임금 문제 정도로 제약하는 조건이었다”며 “이 제약조건을 돌파하기위해 수많은 구속자와 해고자가 나왔다”고 이정희 변화사의 변론 취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자본 쪽의 법조인이라면 그들의 일반 된 주장이라고 그냥 넘길 수 있겠지만 노동운동을 변호하겠다고 참칭하는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은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노조 탄압 변호를 맡아왔던 한 변호사는 “노조탄압을 했던 사측을 위해 노조반대편에서 변호를 맡았던 사람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정당에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