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노동자’가 ‘애물단지’ 된 노동운동

열사정국, ‘희망버스’만으로 반전시킬 수 있나

열사정국을 맞게 된 노동계와 민중진영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범 민중사회진영이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해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현안문제조차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 전반에 깃든 절망적 분위기 역시 반전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한 인수위 대응 투쟁부터, 박근혜 정권 5년 기간 동안 어떤 투쟁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연대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인지 등 고민거리도 산적해 있다. 때문에 비상시국회의는 8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노동현안 시국대토론회를 개최해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이후 방향을 모색했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애물단지’된 노동운동

최근 잇따라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이 ‘조직화된 활동가’였다는 측면에서, 노동계의 충격은 컸다. 때문에 투쟁의 현장에서도, 정치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한 절망감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권영숙 서울대 교수는 “2012년 죽음은 싸움의 전망부재와 주체의 무력감과 절망, 그리고 자신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체제와 노동배제의 민주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노동의 절망을 대변하는 죽음”이라고 진단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노동운동 내부에서조차 ‘투쟁하는 노동자’가 배제된다는 점이다. 장기투쟁사업장의 경우, 투쟁의 장기화만큼 운동진영 내부의 편견도 고통스럽다. 김태연 쌍용차범대위 상황실장은 “장투사업장이라는 단어는 우리 운동에서 ‘일부의 문제’, ‘특수의 문제’라는 함의가 있다”며 “이는 전체 운동 조직이 이 문제에 전면적으로 달라붙지 않게 만드는 이상한 단어”라고 지적했다.

김혜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앞서서 투쟁하는 분들이 지나가는 말로 ‘우리는 연맹에서 애물단지다’라고 말한다”며 “비효율적으로 장시간 투쟁해 연맹에서 피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현재 우리의 운동은 투쟁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고, 연대를 집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지들의 약함을 비웃거나 법에 기대지 않는 태도를 지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를 지치게 하고 있다”며 “투쟁하지 않는 상태가 정상인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상태가 권리를 지키는 정상적 상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싸움의 주체가 무너진 절망의 현장은 단지 몇 차례의 희망버스로 ‘희망’을 되찾기 어렵다. 무기력증에 빠진 노동진영에 ‘희망버스’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노동계와 민중진영은 노동운동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권영숙 교수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의 자기 혁신과 재구축이 없다면 바깥에서 (싸움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희망버스의 교훈”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연 실장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운동과 시민운동 등의 큰 세력이 투쟁으로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며 “현재 민주노총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정말 비상한 시국이라 한다면 민주노총 또한 비상하게 달라져 최소한 간부와 상근활동가부터 즉각적인 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김혜진 집행위원은 “성과를 남기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현재 한 사업장의 권리 해결이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해결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현실가능한 대안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를 압박하는 것이 아닌, 사업장의 문제를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의 권리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희망버스’와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의 사이에서

지난 5일,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가 울산과 부산으로 출발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수천의 인파를 실어 나르던 ‘희망버스’가 1년 만에 재시동을 건 셈이었다. 결과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약 2천 명의 희망버스 탑승객들이 부산과 울산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를 내놓은 노동, 민중진영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2011년, ‘희망버스’는 ‘흥행’했지만, 희망버스의 목적지였던 ‘한진중공업’은 ‘절망’ 속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까닭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김태연 쌍차범대위 상황실장은 “희망버스는 폭넓은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진행돼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고 최강서 열사의 자살과 한진중공업에서 가해지는 노동탄압은 2011년 ‘희망버스’의 한계를 드러냈고, 이를 뛰어넘는 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절망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김태연 실장은 “2011년 수준의 희망버스가 다시 움직인다면 문제해결이 어렵다”며 “무엇보다 주체가 중심이 되는 조직적 투쟁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진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 역시 “지금은 무정형의 광범위한 시민 연대가 아닌, 민주노총과 민중운동 단위들의 주체선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희망버스’로 조직된 연대체들이 어떤 고민으로 연대를 형성하는지가 희망버스의 ‘도약’과 ‘정체’를 판가름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졌다. 김혜진 집행위원은 “희망버스 탑승객들은 ‘시혜’와 ‘연대’의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다”며 “누군가가 고통스러우니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 저 사람들의 문제가 나의 문제라는 인식이라는 공감을 넘어서는 연대가 확장되지 않으면 넘어서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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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에사슬을넘어

    김태현과 혜진씨 주장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희망버스가 어디를 향할 것인지 논의해야 할 시간이다. 목적이 없는 조각배는 폭풍시 풍랑에 휩싸여 모두 죽는다. 따라서 쥐세끼도 그 배에서 이미 내렸다. 이땅에 이성과 양심있는 국민들이 존재한다면 다시 광화문 아니라 청와대를 향해야 한다. 투쟁!
    그란디 민주노총과 금속지도부는 도대체 뭘하나, 당장 광화문광장에 노대회를 박아라. 이것만이 죽어가는 노동자가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