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까지 외면한 ‘노동현안’, 노동계 ‘수난시대’ 시작되나

갇히고 끌려나오는 노동자들...인수위만 ‘불통’? 국회도 ‘불통’

대선 직후부터 ‘열사정국’을 맞은 노동계가, 결국 벼랑 끝의 투쟁으로 몰리고 있다. 쌍용차,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 콜트콜텍, 유성기업, 택시노동자 등 전국의 노동자들은 100일이 넘는 고공농성을 이어오거나, 농성장을 침탈당하고, 옥쇄투쟁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대선 이후 1달여 만에 긴박한 정세에 부딪힌 노동계는 각 현안투쟁에 대응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범 민중진영 역시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해 노동현안 해결에 나섰다.

반면, 쏟아지는 노동현안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은 냉랭하다. 작년 대선 시기, 노동계 표심잡기에 나서며 ‘현안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여·야당의 기세는 한풀 꺾여버렸다. 심지어 노동현안에 대한 여·야당의 무관심이 노동현안의 장기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진중공업, 쌍용차, 콜트콜텍, 현대차, 유성기업, 재능교육 등
넘쳐나는 절박한 노동현안...갇히고 끌려나오는 노동자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8일째 공장안 ‘옥쇄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0일, 최강서 열사 시신을 메고 공장에 진입한 이들은 회사가 협상에 나설 때까지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회사 관리범위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협상은 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출처: 한진중공업 조합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공장진입 이틀 후, 부평 콜트 공장에는 용역과 경찰의 침탈이 이뤄졌다. 공장에서 끌려나온 노동자들과 문화예술인, 연대단위들은 3일 공장을 다시 탈환했지만 5일, 경찰은 농성자 전원을 연행했다. 충돌 과정에서 방종운 콜트지회장은 경찰의 방패에 맞아 머리를 다쳤으며, 이인근 콜텍지회장은 갈비뼈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쌍용자동차지부과 범대위는 5일, 인수위 앞 끝장투쟁에 돌입했다. 민주통합당과 한나라당의 ‘여야합의체 구성’합의로 국정조사가 좌초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3명은 국정조사 실시 등을 요구하며 79일째 송전탑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유성기업 홍종인 지회장의 고공농성은 이미 100일을 훌쩍 넘겼다. 겨울을 내내 고공에서 보낸 셈이다. 하지만 법적 판결도 끝난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와 사회적 논란이 된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

거기에다 6일에는 6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2명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소속 택시노동자 역시 지난달 7일부터 부당해고 철회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야구장 조명탑에 올랐지만 6일, 농성장은 강제 철거됐다.

민주통합당까지 외면한 ‘노동현안’
“긴급 구호와 중재에도 묵묵부답...여야당 할 것 없이 분노 느껴”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의 사망과 고공농성, 옥쇄투쟁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권의 움직임은 둔하다. 심지어 대선전, 여·야당의 노동현안 해결 약속마저 무산돼 가는 분위기다.

일례로 쌍용차지부는 그야말로 정치권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은 상황이다. 대선 전, 쌍용차 국정조사를 강하게 요구했던 민주통합당은 한나라당과 ‘여야합의체’ 구성을 합의하며 사실상 국정조사 포기를 선언했다.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송전탑에 올랐던 3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고공에 발이 묶였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한진중공업 열사투쟁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도 냉랭하다.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사망 이후인 지난해 12월 31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한광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 등이 최강서 열사의 빈소를 찾았다. 올해 1월 17일에는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민주통합당 비대위원들이 대거 최강서 열사 분향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1월 30일부터 조합원들이 최강서 열사의 시신을 메고 공장에 진입해 긴박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대책 마련이나 중재는 찾아볼 수 없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최강서 열사 사망 초기에는 여·야당 할 것 없이 대표들이 조문을 했지만 단지 인사치레였다”며 “30일 공장 안 투쟁이 시작된 이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어떤 의원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심지어 노조와 대책위가 12월 말부터 1월 중순까지 국회가 긴급 중재에 나서 줄 것을 환노위 측에 요청했으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유족들 또한 정치권에 긴급구호와 중재를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어서, 여·야당 할 것 없이 실망을 넘어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일,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농성에 돌입한 재능교육지부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1일, 법원이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면서 국회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 보호입법’ 논의가 시작됐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등은 해당 법원이 11월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요구하며 정치권과의 면담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법안은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고공농성에 돌입한 오수영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은 “11월~12월 국회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안이 논의되는 듯 하더니 교착상태에 빠졌다”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관계자 역시 “특수고용노동자 보호입법과 관련해 국회 차원의 논의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며 “2월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민주통합당은 대선 후인 1월 7일, 노동대책위원회를 출범하고, 쌍용차 국정조사와 현대차, 한진중공업 등 시급한 노동현안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현대차와 한진중공업, 쌍용차, 유성기업 등 어느 한 곳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그야말로 ‘수난시대’를 맞은 노동계의 고민은 깊다. 전국적인 현안 투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방어적인 투쟁만을 이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금속노조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전에, 긴급한 현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현장 투쟁을 묶어 공동의 전선을 만들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각 현안 거점이 있는 만큼, 거점을 사수하면서 어떻게 공동의 전선을 만들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