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양적완화 공조, 새로운 글로벌 통화질서 되나?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23) 과감한 통화정책, 풀린 돈의 행방


지난번 연재에서 ‘아베노믹스’의 뜨거운 쟁점인 글로벌 환율전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그 2주일 동안 엔화약세에 대한 논란은 더욱 심화되더군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미국의 재무차관이 ‘아베노믹스’의 양적완화정책에 대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적절하고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이로써 논란이 되었던 엔화약세를 사실상 용인한 것인데요, 엔화약세의 추세는 더욱 가파르게 변화하리라 예상됩니다. 벌써부터 달러당 100엔선까지 밀릴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 재무차관 “아베노믹스 지지” “디플레 탈피 노력” 옹호 발언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장 유럽에 발등이 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우리도 환율개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통화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 입장인 독일은 일본의 의도적인 엔화약세에는 반대하지만 섣부른 대응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유로화개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통합 없는 화폐통합의 한계로 인해 유로화의 통화가치는 금융위기가 불거지면 순식간에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보았던 유럽의 채무위기가 이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보니 유럽은 가뜩이나 꼬여있는 내부의 정치적 갈등에다가 외부적인 환율갈등이 하나 더 얹게 된 형국입니다.

그런데 지난 15일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인위적인 환율개입을 반대한다”라는 2010년의 G20 선언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이 문제는 봉합되었습니다. 과열된 환율논쟁을 좀 가라앉히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요, 논란이 되는 엔화약세에 대한 논의는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엔화약세의 추세가 숨고르기를 할지 아니면 재차 지속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과연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회심의 한방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환율전쟁의 기폭제가 될 것인가? 좀 더 유심히 지켜 볼 일입니다.

그런데 가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디플레이션 탈출을 외치는 일본의 통화정책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욕을 먹을 정도로 논란이 될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정간섭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미국만 빼고 다들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한마디씩 하는 모습이 좀 의아스럽습니다. 일본은 분명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이라고 강조하는데 말이죠.

풀린 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5년 동안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대거 푼다는 뉴스를 자주 접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풀린 그 돈들이 어디로 갈까? 다시 부동산 거품이 생기려나? 혹시 내 호주머니로 좀 들어올 수 없나? 주식시장이 들썩이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 돈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려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왠지 나도 그 대열에 좀 껴야 뭐라도 건질 수 있는 건 아닌지 혼란스런 생각들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현실을 돌아보면 참 의아스러울 것입니다. 지난 5년 동안이나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변동성 높은 식료품물가를 빼고 전반적으로 물가는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인도, 브라질처럼 성장국면에 있는 나라들을 빼고 완화된 통화정책을 수년째 하고 있는 미국, 일본 등은 여전히 실물부문에서 돈이 줄어드는 디플레이션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뉴스에서 그토록 많이 풀렸다고 떠들었던 그 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이들의 행방을 찾기 전에, 먼저 돈을 푸는 방법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낮아진 금리로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시중은행들이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쉽게 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 선진국들은 장기불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시중은행들은 확실한 이익을 볼 수 있는 우량사업체나 주택담보대출처럼 담보물이 확실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출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시중은행들이 일반인들에게 대출하는 금리는 기준금리처럼 이렇게 낮지 않습니다. 가령 미국의 학자금 대출 금리는 6.8% 수준입니다(한시적으로 연방정부가 대출금리의 절반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담보가 없다면 얼마 못 빌릴 것입니다. 그것도 10%가 넘는 높은 금리를 물고서 말입니다. 은행들은 저금리로 돈을 조달하지만 서민들은 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합니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은 가까운 이웃이지만, 이들과 돈이 정말 절실한 가계 사이엔 건너기 힘든 커다란 강이 놓여 있는 거죠. 중앙은행이 “뿌려준다”는 어마어마한 돈들 중에서 강 건너에 있는 우리에게 돌아갈 몫은 애초부터 없던 거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초저금리 정책을 5년째 지속해도 대출을 통한 경기부양에 별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금리 정책에 가려진 진실입니다.

중앙은행의 새로운 대안, 양적완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출기피로 인한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서 돈을 공급하고자 합니다. 방법은 중앙은행이 채권거래시장에서 국채와 같은 여러 채권들을 매입하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양적완화라는게 이런 거죠. 현재 미국과 같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취하는 방법인데요. 채권을 매입하면 지불한 돈이 시중에 풀리니까 이 돈이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강 건너로 화살에 돈을 매달아 직접 쏴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근데 가만 생각해 봅시다. 과연 국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보통 일반시민들이 국채를 들고 있을까요? 여러분 주변을 둘러보면 이해될 것입니다. 혹시 이런 채권 갖고 계신 거 있냐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과연 누가 얼마나 들고 있는지. 미국이라 해서 가구당 국채를 한 묶음씩 가지고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상당한 부를 축적한 금융자산가들이거나 기관투자를 담당하는 글로벌 자금운용사, 시중은행, 금융자산 형태로 사내보유금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중앙은행한테 채권을 팔아서 생긴 돈을 어떻게 할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로 흘러들어갈까요? 아니면 다른 금융자산을 사려고 할까요?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로 흘러갔다면 미국이 5년째 양적완화를 외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양적완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원자재시장은 들썩거렸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만 돈이 돌고 있는 거죠.

이로써 우리는 그 많은 돈들이 어디로 갔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금융시장의 안정만으로 본다면 양적완화정책은 효과를 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은 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채권가격도 날로 높아졌습니다. 누군가(?)에겐 이런 양적완화가 정말 절실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금융자산과는 거리가 먼 서민들에겐 그저 별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베노믹스’가 시도하려는 혁신적(?) 조치, 중앙은행의 국채 직매입

그러면 여기서 ‘아베노믹스’가 시도하려는 양적완화는 어떤 쟁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하고 있는 국채매입과 어떤 점이 다를까요? 바로 중앙은행이 국채를 정부로부터 직접 구매한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양적완화는 채권거래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입니다. 물론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서 구매한 양만큼 다시 정부가 발행시장에서 채권을 쏟아낸다면, 산술적으로 볼 때 결국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국채를 구매한 것이 됩니다. 허나 금융시장에서의 최소한의 규율을 유지하려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쨌든 시장논리에 따라 채권을 사고 파는 과정을 거친 것이라 보이는 거죠. 이 과정에서 수요공급의 밀고 당기는 시장논리에 따라 금리결정이 이뤄지니 적어도 무질서한 양적완화는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아베노믹스’에서 추진하는 양적완화 방식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사도록 하여 정부가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 돈을 조달하는 것입니다. (참세상 논평 참조, ‘일본의 도박: 윤전기 아베경제학의 미래는?’) 그렇다 보니, 세계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불거지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을 맘대로 주무르는 군부독재 하에 있는 소국들에서나 볼 수 있는 조치라고 우려하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쪽에서는 20년째 디플레이션이 빠진 일본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재정투여로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요?

‘양적완화’라는 ‘흑묘백묘’, 결과만 좋다면 할 수 있는 놈은 한다

누구 말이 맞고 자시고 할 것 없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그냥 옳은 게 되는 셈입니다. 줄에서 떨어지면 죽고 떨어지지만 않으면 사는 거죠. 뭐 이런 막무가내식 주장이 있나 싶으시겠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현실이 그러합니다. 요동치던 경제가 정치적 결정과 타협에 의해서 순간 진정이 되었다가도, 예기치 못한 정치적 사건으로 하루 사이에 위기논란이 불거지는 형국입니다. 가령 두 달 전 ‘재정절벽’이라는 이상한 말을 가지고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가면극을 떠올려 봅시다. 세계경제의 향방이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협상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들 한참 떠들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재정 감축 시한을 두세 달 연장하고 나서 금새 잠잠해 지더니, 요즘 미국의 경제지표가 좋게 나오고 있다며 완만한 경제회복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냉온탕을 오가며 불안정한 줄타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이라 평가받던 예외적 조치가 일상화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바로 예전엔 상상하기 힘들었던 양적완화라는 예외적 상황이 5년간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5년 전 누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제한적 양적완화’라는 표현에 동의했었습니까? 다들 미친 헛소리라고 말했지만 지금 어떻습니까? 신자유주의 금융지배질서의 첨단을 걸었던 미국과 여기에 복속된 일본이 양적완화라는 통화정책에 있어서 함께 공조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일본은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국채를 받고 돈을 정부에 직접 주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본을 비판하는 다른 나라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도 수년간 600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중앙은행도 2011년부터 알게 모르게 국채매입을 급격히 늘려 돈을 풀고 있습니다. 심지어 캐나다달러 환율은 엔화약세보다도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유럽도 내부적 진통은 있지만 작년 역내 금융안정을 위해서 유럽중앙은행이 채무위기 국가의 국채를 무제한적으로 매입하겠다는 선언을 했었습니다. 1조 유로 규모의 중장기 대출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구요. 앞에서는 일본의 양적완화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다들 뒤에서는 자국의 경기부양과 금융안정을 위해 과감한 양적완화를 거침없이 하고 있습니다. 마치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국제적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형국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신자유주의 교과서에 적혀있는 내용 중에서 해서는 안 되는 철칙 중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서 근본적으로 이탈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참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감한 통화정책을 취할 수 있는 나라들은 몇 나라 없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나라들은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G7(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라 불렸던 선진국들입니다. 국제화폐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만이 이런 과감한 양적완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적완화의 부작용인 고인플레이션을 완충시킬 장치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바로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입니다. 2008년 미국에서 벌어진 금융위기 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달러를 구하느라 목숨 걸었던걸 상기해 봅시다. 양적완화에 의한 달러의 과잉을 말하지만 교역을 위해서 모두가 달러를 원하기 때문에 달러가치는 폭락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달러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통화항목에는 유로 57.6%, 엔(일본) 13.6%, 파운드(영국) 11.9%, 캐나다 달러 9.1%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통화안정을 위해서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한 식구라는 얘기죠.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왜 별다른 얘기들이 없었는지 이해되실 것입니다. 식구끼리 싸우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꼴은 막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논란이 벌어질지 모르겠으나 이들 내부에서는 암묵적 합의가 도출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글로벌 통화질서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신통한 ‘흑묘백묘’가 될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런 갈등과 봉합이 아닙니다. 그들이 뭐라 한들 내정간섭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외환시장을 통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투기적 핫머니들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 쪽은 양적완화를 맘껏 펼치는 그들이 아닙니다. 바로 외환위기를 대비해서 그들과 통화스왑을 체결해 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한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니들도 할 수 있으며 해봐!”

(다음에는 요동치는 외환시장 때문에 왜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들이 피해를 입고 반발할 수밖에 없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