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해지게 병원서 뛰어다니는데 웃으라고요?

[감시 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간호사들의 양말은 고작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 고가 브랜드의 ‘좋은 양말’을 선물 받으면 눈 호강만 하고 어머니께 드린다. 3교대에 장시간 근무로 밤낮 병실을 뛰어다니다보면 양말은 어느새 해져있다. 양말과 단짝인 흰 간호화도 금방 해진다. 하루 8~10시간 대부분을 서서 근무하는 탓에 신발이 불편하면 족저근막염(발 염증)을 앓는다. 병원에서 간호화를 제공하지만 질이 나빠 사비로 사서 신기도 한다.

피하고 싶은 밤 근무도 한 달에 6~7번은 해야 한다. 새벽 4시가 되면 졸음이 밀려온다. 놀아도 힘든 시간이라는데, 일까지 하려니 더 피곤하다. 어떤 날은 졸릴 겨를도 없다. 응급환자 치료는 기본이고, 잠이 오지 않는다며 콜벨(Call Bell)을 누르는 환자 병실에도 가봐야 한다.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야근 수당 받은 돈으로 보약 한 첩 지어먹어 보충한다.

그런데 병원 측은 간호사들에게 매일 웃으라고 한다. 환자에게 ‘선생님’은커녕 ‘간호사’로도 불리지 못하고, ‘아가씨’에서 ‘00년’으로 불려도 웃으란다. 심지어 성추행을 당해도 환자가 해당 간호사를 예뻐하는 거라며 참으란다. 병원 측은 ‘돈 벌어봤자 체력관리비로 쓴다’며 헛웃음 짓는 간호사들을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보이지 않는 감정에다 점수를 매겨 묶어둔다. 성추행 가해자에게 제재를 가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민원에 신경쓴다.

충북대병원 간호사 김세은(8년 근무), 노영미(7년 근무), 이혜영(16년 근무), 임수미(11년 근무) 씨는 자신이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인지, 고객을 만족시키는 서비스업 종사자인지 헷갈린다.


아가씨, 이봐요, 저기요, 00년이라 불리는 간호사
간호복 더럽다며 환자민원...사시사철 하얀 바지 입으라는 병원


“입원 환자는 치료받으러 병원에 왔다기보다 쉬러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요. 간호사에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응급상황에만 병실 콜벨을 눌러야 하는데 ‘물 떠다 주세요’, ‘오늘 저녁밥 넣지 마세요’ 등의 이유로 간호사를 불러요. 우리는 각 병실을 돌아다니며 치료하다 콜벨이 울리면 뛰어갑니다. 기본적으로 호칭도 ‘아가씨, 여기요, 저기요’예요. 간호사님 이라고만 불러주면 좋겠습니다”

‘진상 환자’에게 욕설과 폭언을 당한 사례가 있냐고 묻자 간호사들은 ‘늘 있는 일’이라며 하나하나 따지는 것도 귀찮아하는 분위기다. ‘반말을 하거나 간호사의 말투와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시비를 걸기도 하는데, 간호사의 치료설명을 듣지 않을 때가 특히 난감하단다. 환자에게 무시당하면 간호사로서의 자존감마저 땅에 떨어진다.

“간호사를 의사 밑에서 부하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환자 컴플레인은 간호사가 먼저 처리해요. 간호사의 치료설명을 듣지 않고 ‘얘들이 뭘 알겠어’라며 무시하다가 의사가 와서 설명하면 아무 말도 못하고 수긍합니다. 같은 설명이라도 말이죠.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간호사에게 욕하고, 손이 올라가고 난리도 아닙니다. 전화해서 욕하는 일도 다반사예요”

환자들은 간호복이 더럽다며 민원을 넣기도 한다. 단정한 복장은 이미지화된 ‘친절’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은 간호복을 깨끗하게 입을 수 없다. 간호사들은 사시사철 반팔에 하얀바지다. 긴팔 웃옷은 사비로 사서 입는다.

땀에 젖은 간호복은 집으로 가져가 일주일에 2~3번씩 빨아야 한다. 간호복을 다림질해서 출근해도, 근무 시작한 지 5분 만에 피가 묻는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주머니에서 손을 넣다 뺐다 하기 때문에 주머니 윗부분이 금방 해진다. 병원 측은 간호복을 1년에 한 벌만 준다.

“간호복이 더러워지면 그만큼 열심히 일한 것 아닌가요? 병원 중간관리자들은 간호복이 더럽다고 타박해도, ‘옷을 한 벌 더 줄게’라고 절대 말하지 않아요. 망으로 된 머리핀으로 머리카락을 묶으라면서도 이를 제공하지 않아요. 불필요할 만큼 단정한 복장을 강요하는 곳이 병원입니다”

근무복이 하얀 바지인 것도 간호사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깨끗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하얀색 바지는 업무 편리성을 고려한 근무복이 아니라 ‘남들 보기 좋게 제작’한 근무복 같다. 여성 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인 것을 고려한 근무복인지도 의문이다.

“생리하면 하얀 바지에 혈이 묻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동료 옷장에서 맞지도 않는 바지를 꺼내 입죠. 분만실과 수술실의 경우 가운이라도 걸칩니다. 때때로 물도 못 마시고, 밥도 못 먹고, 생리하는 데 화장실도 못가고 일하는 데, 환자에게 웃기만 할 수 있나요? 왜 친절을 강요하는 지 이해가 안 돼요. 우리도 감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환자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사과하고, 성희롱도 참아라?
친절도 근무평가 -> 승진과 임금 불이익, 왕따 -> 순응하는 노동자


병원은 환자의 각종 민원을 간호사 개인 근무평가에 반영한다. 환자 민원의 90%이상이 치료 관련 업무민원이 아닌 친절도 평가란다. 1년에 2번 받는 친절교육 내용도 웃는 방법, 말하는 방법, 전화응대 방법 등이다. 간호사들은 백화점 직원을 교육하던 강사가 간호사에게 친절교육을 하는 게 이상하다.

“백화점 민원과 병원 민원은 내용이 다릅니다. 일례로 환자가 병원의 방침에 따라 치료 받기를 거부했을 때 우리가 친절하게 웃으며 응대해야 하나요? 의료인의 입장에서 보면 불친절한 게 정석대로 한 거예요. 하지만 병원 경영진이 ‘환자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무조건 먼저 사과하라’는 입장이죠”


간호사들은 근무평가로 승진과 임금의 불이익까지 받는다. 공개되지 않는 근무평가라 객관적인 자료인지 확인할 수 없다. 중간관리자 맘에 들면 좋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자연스럽게 평간호사들은 수간호사에게 줄서기를 하게 된다. 그 틈에 끼지 못하면 어느덧 왕따가 된다. 그 사이 간호사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이미지화된 감정을 파는 기계가 되어간다. 반복된 악순환은 조직 문화로 구조화 된다.

“수간호사에게 미움을 사서 작년에 살이 20kg이나 쪘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막 먹은 거죠. 직장 상사의 기분에 따라 하루가 좌지우지 됩니다. 상사가 출근해서 웃으면 하루가 평탄한 거죠. 그게 다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한 번은 제가 둘째 임신으로 만삭이어서, 콜벨이 울려도 뛰어갈 수 없었죠. 급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환자 보호자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거북이처럼 기어왔다’며 민원을 넣었고, 수간호사는 제게 사과문을 쓰라고 했죠. 출산휴직 중 병원에 나와 사과문을 썼는데 수간호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작성하라고 했어요. 저는 항의하며 다시 쓰지 않았습니다. 근무 3~4년차 간호사들은 수간호사가 불러주는 대로 사과문을 쓸 수밖에 없어요”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간호사들이 보호받지 못하기도 했다. 병원 측에 알려도 피해자가 참아야 한다며 성추행 가해자들을 제재하지 않는다. 민원이 들어오면 일이 커질까봐 간호사들에게 ‘참으라’고 한단다.

“성추행 당한 일을 알리자 수간호사가 ‘나중에 시내에서 만나면 그 환자 엉덩이 한 번 쳐주라’고 하더군요. 환자가 간호사 뒷모습을 몰카 촬영했는데, 수간호사는 ‘참아라’, ‘니가 예뻐서 그런가보다’라고 했어요. 엉덩이 주사 놓을 때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는 환자도 있어요. 끔찍합니다”

자연스럽게 간호사들은 사회적으로 고정화된 그들의 이미지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친절한 간호사, 순응하는 간호사에 이어 ‘성적 놀이개’로 전락한 간호사까지. 간호사라는 직업을 비하하는 이미지는 사업장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재생산된다. 가장 큰 손해를 입는 사람들은 바로 간호사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간호사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요. 차트를 양손으로 가슴 쪽에 안아 들고 맹하게 따라다니면서 의사에게 혼나죠. 간호사라는 직업을 성(性) 상품화 하는 것도 매우 불쾌합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간호사를 무시하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죠”

타인에게 쏟아내며 버티는 간호사들...“환자는 고객이 아니다”

간호사들은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없다. 개인이 감내하는 삶에 익숙해 진 것인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해소법을 말해달라고 하니 동료와의 수다, 술 마시기, 다른 사람에게 신경질 내기, 잠자기 등을 들었다.

“타인에게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요. 컴플레인 받아본 사람이 컴플레인 하는 것도 잘한다잖아요(웃음). ‘나는 이렇게 힘들게, 자기 전까지 계속 일하는 데’라는 생각이 강한 거죠. 그러면서 남들 노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 오전7시반~3시반, 오후3시반~10시반, 밤10시반~다음날 아침 8시반까지 근무하는 교대업무는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예요. 간호일과 가사일 모두 열심히 해도 티 안 나는 일이잖아요”

“언젠가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겠지 하면서 버텨요. 근데 기약이 없는 거죠. 환자에게 민원이 들어오면 ‘내가 왜 그 자리에서 그 환자를 만났을까’ 생각하며 또 버텨요. 하필 왜 내게... 복불복 게임 같아요”

“병원장과 교수(의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 사람이 결국 승진하니까 ‘저렇게 사는 게 똑똑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죠. 비위 맞추고, 웃으며 살아야 하나요? 정의롭게 살아봤자 남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정작 내가 어려울 때,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을까봐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방패막이가 필요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고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업무상 스트레스로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숨통이 트이게 하는 일을 넘어 구조를 바꾸는 고민이 필요하단다. 사업장에 노조가 있으면 수많은 부조리한 일들이 그나마 걸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개별화의 대안은 집단화다.

“중간관리자는 민원이 제기되면 ‘머리가 어때요? 화장이 어때요?’라고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해당간호사를 찾아내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요. 그렇게 ‘차출’된 간호사는 그야말로 개인입니다. 하지만 노조에서 제기해서 고쳐진 일들이 많아요. 노조가 간호부에 ‘근무표 똑바로 짜라’고 경고하기도 하죠. ‘간호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인데, 노조가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노조마저 없으면 근무환경이 정말 열악해질 거예요”

간호사들은 또한 의료를 상품화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가 ‘고객’이 되어 ‘치료’가 아니라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인식하는 순간이 의료 공공성 해체의 바로미터다. 간호사의 목에 걸린 친절 스티커표가 아픈 곳을 치료하는 일과 무슨 상관일까. 되짚어볼 시점이다.

“병원마다 친절교육이 성행하고 노동자에 대한 감정 통제가 극심해진 건, 삼성병원과 아산병원 같은 기업형 사립병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터예요. 의료의 상품화죠. 그래서 ‘환자’가 아니라 ‘고객’인 거죠. 삼성병원이 ‘고객 감동’을 내걸고 개업했잖아요? 학생 때 삼성병원으로 실습을 나갔는데, 간호사가 친절 스티커표를 달고 다니더라고요. 부서마다 친절 그래프가 있어요. 놀랐습니다”

<연재 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 이 기획은 뉴스민, 뉴스셀, 미디어충청, 울산저널, 참세상, 참소리 공동기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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