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노동자를 감시하는 수 백 개의 눈...CCTV와 암행감시단

[감시 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지난 1월과 4월, 롯데백화점에서 근무하던 판매노동자 두 명이 연달아 투신자살했다. 두 명 모두 ‘가매출’의 압박에 시달렸고, 그 중 한 명은 해고자였다. 7월에도 이랜드그룹의 NC백화점에서 일하던 판매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 이상 백화점 일 못 하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언론은 ‘연쇄자살’을 일으킨 용의자들에 주목했다. 판매 여직원들에게 가매출을 강요하고, 감시와 통제를 일상화 한 백화점 및 입점사가 제1의 용의자였다. 노동자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일명 ‘진상고객’도 용의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여론과 경찰은 금세 용의자들의 혐의를 묵인했다. 제1의 용의자들이 신속히 ‘셀프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대형 백화점들이 발표한 ‘셀프 개혁안’의 대략적 내용은 이렇다. ‘백화점-협력업체’간의 계약서 작성 시 ‘갑’과 ‘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말장난에 불과했지만 여론 환기에는 제격이었다. 잠잠해진 여론을 따라,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감시와 통제는 더욱 은밀해졌다. 이제 피해자들은 누가 진짜 자신의 ‘갑’인지도 알지 못한 채, 수많은 감시의 눈을 견뎌내야 한다.


그녀를 지켜보는 수 백 개의 눈
CCTV와 암행감시로 노동자 감시, 통제...‘감정’까지 평가


17년 째 대형 백화점에서 화장품 판매노동자로 일 하고 있는 A씨. 그녀는 요즘 들어 허공에도 눈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줄곧 허공에 대고 인사를 한다. 사람이 있건 없건 상관 없다. 그녀를 은밀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진짜 ‘사람’의 눈이 아닌, 백화점 곳곳에 설치된 CCTV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서비스라인’이라는 제도가 생겼어요. 백화점에는 ‘직원동선’과 ‘고객동선’이 있는데, 직원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올 때 ‘고객동선’에 인사를 하는 제도죠. 서비스라인에는 금테로 표시를 해 놨는데, 그 앞에 정 자세로 서서 빈 공간을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목례를 하며 인사를 해요. 사람이 없어도 인사를 해야 해요. CCTV가 있잖아요. 인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적발하는 시기도 있고, 이를 어긴 사람들의 명단을 체크하기도 해요.”

‘이해할 수 없는 제도’라고 말하자 “나도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적응이 돼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백화점이 시행하고 있고, CCTV라는 분명한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 적응이 빨랐던 셈이다.

CCTV가 그들의 일상을 감시하고 있다면, ‘미스터리 쇼퍼’라는 암행 감시단은 보다 구체적인 그들의 감정과 말투, 행동을 감시한다. ‘미스터리 쇼퍼’는 백화점이나 입점업체가 ‘고객’으로 위장한 감시단을 현장에 내려 보낸 뒤, 노동자들의 감정과 말투, 행동 등을 평가하는 제도다. 바른 자세와 눈 맞춤, 언행, 화법, 배웅인사 등의 행동 이외에도, ‘진정성’과 같은 감정에 대한 평가도 내린다.

“점수가 잘 나오면 다행인데, 만약 점수가 안 나오면 백화점 인사고과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압박이 많이 들어오죠. 만약 안 좋은 점수가 3번이 나오면 해당 백화점에서 퇴사해야 해요. 다른 곳으로 로테이션 되죠. 특히 백화점에서도 직원들 블랙리스트를 관리한다고 들었어요. 점수가 안 좋아서 퇴사 당하면, 다시는 그 백화점에 들어올 수 없어요.”

13년간 백화점에서 판매노동자로 일했던 김연우 한국시세이도노조위원장 역시 여러번 암행감시단을 경험했다. 김 위원장은 “점수가 나쁘게 나오면 서비스교육을 다시 받거나, 직원들 출근 시간에 출입구에 서서 인사를 시키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자원봉사를 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발표한 <백화점 판매 분야 건강실태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노동자 447명 중 89%(385명)가 ‘회사에서 파견 또는 고용한 모니터 요원 경험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또한 약 52%의 응답자가 암행방식의 모니터링 이후 ‘평가점수가 낮은 사람들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조치가 이뤄졌다’고 답했다. 약 34%는 ‘가혹한 인사고과가 이뤄졌다’고 설명했으며, 약 62%는 ‘개인 평가 결과를 팀 전체에게 책임지우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백화점 노동자 지갑까지 털어가는 입점사와 백화점
‘가매출’ 부추기는 관행...감시와 압박 도 넘어


최근 대형백화점들은 계약서 상 ‘갑’와 ‘을’의 명칭을 없애 백화점-입점사 간의 동등한 파트너쉽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동등한 파트너쉽’의 기회는 두 명의 ‘갑’ 아래에 짓눌려 있는 ‘병’에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백화점 판매노동자들의 90%이상은 입점사 소속 직원으로, 백화점으로 파견돼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사용자는 ‘입점사’지만, 감시와 통제, 지시, 압박은 백화점과 입점사 모두에게서 온다.


“제가 일하는 지점은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은 곳이에요. 그러다보니 백화점의 매출압박 스트레스가 심해요. 매출이 없는 것을 부수적인 것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주는 거죠. 틈만 나면 백화점 서비스 매니저들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녀요.

저희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식사, 간식 시간을 보내거든요. 그러다보니 혼자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있어요. 그럴 때 행여 데스크 근무(전산작업)를 하면 직원들이 적발을 해요. 1인 근무 시간에 데스크 근무를 하지 말고 앞만 쳐다보고 근무하라는 거죠. 서비스를 위한 적발인지, 적발을 위한 적발인지 모르겠어요.”
(A씨)

“예전에는 ‘1일 매출’이라고 해서, 매일 매일 백화점에 매출을 보고했어요. 백화점은 그것을 분석한 뒤, 노동자들에게 고객수와 매출액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요. 사회적으로 문제가 계속 생기다보니, 요즘은 예전만큼 심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엄연히 구역마다 백화점 담당 관리자들이 있고, 매출에 대한 압박은 여전히 있죠.”(김연우 위원장)

백화점과 입점사의 매출 압박은 노동자들의 ‘가매출’을 부추긴다. 올해 백화점 여직원들을 줄줄이 자살로 몰아놓은 것도 가매출의 압박 때문이었다. 매출하락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는 ‘관행’이 됐고, 두 명의 사용자로부터 압박을 당하는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 천 만원어치의 카드를 긁어댄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본사에서 매출액 1억을 목표로 했는데, 8천만 원 밖에 팔지 못하면 직원들이 얼마씩 채우라고 해요. 우스갯소리로 매니저 하려면 신용불량자도 될 수 없다고 말하곤 했어요. 카드로 긁고 나서 대부분 취소를 하는데, 취소를 못하는 경우도 있죠. 최근에는 그런 일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류 쪽에는 아직도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해요.”(A씨)

“굉장히 오래된 구조예요. 저도 최고 2천만 원까지 가매출을 해 봤어요.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 원까지 가매출을 해요. 백화점이랑 본사 양 쪽에서 압박이 들어오니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는 거죠.”(김연우 위원장)

감시와 통제는 넘쳐나도...노동자 문제해결 방법은 없어

감시와 통제는 넘쳐나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용자는 없다. 진상손님들의 언어폭력, 성희롱, 직업병 등은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몫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노동자 중 70%가 고객으로부터 인격무시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으며, 45.9%는 욕설 등 폭언에 시달렸다. 13.4%는 고객으로부터 신체 위협을 당했고, 14.5%는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피해를 가한 고객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경우는 3.8%에 불과하다. 54.3%의 노동자는 그저 말로 위로를 받을 뿐이었고. 회사가 ‘그냥 참으라’고 한 경우도 21.8%에 달했다. ‘시비를 가리지 않고 고객에게 무조건 사과하라고 했다’는 응답도 18.1%였다.

“백화점에 있는 상담실로 가라고 해요. 근데 상담실에 일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우리를 적발하러 다니던 서비스매니저들이예요. 상담실 직원들이 발령이 나면 또 다시 우리를 적발하러 다니는 식이예요. 굳이 거기 가서 이야기해도 개선의 여지가 없고, 누가 이야기 했는 지만 노출이 되는 거죠. 차라리 외부에서 영입하면 믿음이라도 갈 텐데, 다들 자기네들끼리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가봤자 불이익만 받게 돼요.”(A씨)

“많은 수는 아니지만 악성 고객들이 있어요. 고객 부주의로 트러블이 난 건데 소리 지르는 것은 기본이고 욕을 하거나 제품을 던지고, 어떤 직원은 따귀를 맞은 경우도 있어요. 남자분이 오셔서 핸드마사지를 해달라고 해도 거절을 못해요. 핸드마사지 도중 느낌이 이상해도 대응할 방법도 없어요. 어떤 화장품을 직접 얼굴에 발라달라는 남자 분들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하죠.

그런 고객이 온다고 하면 백화점 보안에 이야기는 하지만, 보안팀도 그냥 지켜보는 정도예요. 직원들이 백화점에 자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해도 별 도움이 안돼요. 백화점은 자신들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이 싫어서 대응에 소극적이거든요. 어떤 상황이던 마지막은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구조예요”
(김연우 위원장)

회사에서 배급한 하이힐을 신고 10~12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버텨내야 하는 통에 직업병도 달고 산다. 김연우 위원장은 백화점 판매직원들의 고질적인 직업병인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거나 골반이 틀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우울증과 자살충동, 탈진 등을 겪는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백화점 판매노동자들을 상대로 우울수준을 조사한 결과, 심리상담이 필요한 집단 비중이 무려 40%에 달했다. 최근 1년 사이 자살 충동을 느낀 경험은 33.6%였고, 9.3%는 실제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와 관련해 탈진을 경험한 경우도 59.3%였다.

백화점 판매노동자들은 올 해와 같은 ‘연쇄자살’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회사의 과도한 업무, 강압적 친절교육, 고객폭력에 대한 회사 측의 적극적인 방어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호소한다.

고객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기업차원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노동자 중 20.5%는 ‘과도한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으며, 19.5%는 ‘암행방식의 모니터링이 없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16.1%는 ‘고객으로부터 폭력인지 시 피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김연우 위원장은 “회사는 노동자들의 우울증이나 업무 환경 등의 문제와 관련해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해결책이나 예방책이 전무하다”며 “무엇보다 구체적인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백화점 종사자의 감정노동과 우울수준 등의 사항은 회사의 과도한 업무 목표 설정과 권력형 괴롭힘, 모니터링 등과 상당히 관련되어 있다”며 “현행법에 따라 직무스트레스 원인조사를 수행하고 건강장애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재 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 이 기획은 뉴스민, 뉴스셀, 미디어충청, 울산저널, 참세상, 참소리 공동기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