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촌 마을에 들이닥친 ‘근대’와 ‘혁명’의 얼굴

[새책] 산촌 (예쥔젠, 갈무리, 2015)


예쥔젠의 『산촌』은 1927년 무렵 중국 중부의 한 산촌 마을을 배경으로 ‘대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는 시기를 그린 일종의 작품이다. 소설은 한 소년의 가족을 중심으로 산촌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농경적 삶과, ‘혁명-반혁명’의 역사적 파도에 휩쓸려 고난을 겪는 민중의 가난한 삶을 통해 혁명의 맨얼굴을 조명하고 있다. 근대적인 문학 장르로서의 소설이 ‘역사’에 시선을 던질 때, 그것은 종종 역사적 이행기를 증언하는 역사소설, 즉 문학적 연대기의 형식을 취한다. 예쥔젠의 『산촌』 역시 봉건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동,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근대국가로서의 중국이 형성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920년대 중국의 사회상을 잠시 살펴보자. 알다시피 중국은 아편전쟁 때부터 줄곧 봉건적 잔재와 외세의 침략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었다. 봉건적 질서를 바탕으로 ‘제국’을 이룬 과거 중국은 세계는 중국을 필요로 했으나 중국은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자족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제국’의 자족성은 서구 열강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세계사보다는 ‘제국’의 패권을 다툰 군벌과 봉건적 잔재는 중국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10년대에는 신해혁명과 5·4운동이 일어나 명목상으로는 중화민국이 건국되었으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소설 『산촌』은 바로 이 무렵의 한 산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산촌』의 2장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한 실을 팔기 위해 시장을 찾은 국화 아줌마는 상인에게 “듣기로는 지금은 새 왕조, 공화국이라던데요?”(79쪽)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공화국’은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중화민국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가 상승의 원인을 “총독이 무기 사들이는 데 돈을 충분히 마련하려고, 직물에 세금을 새로 매겼다구요.”(84쪽)라고 설명하는 상인의 말에는 중화민국이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군벌’이 문제임이 드러나 있다.

근대 초기 중국인들은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었는데, 그 선두에는 천두슈나 양치차오 등의 지식인이 있었다. 당시 5·4운동을 계기로 베이징 대학 주변에 마르크스주의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즉 근대를 지향하던 당시의 중국 지식인들, 특히 천두슈를 중심으로 한 계몽지식인들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의 모델을 더 선호했으며, 때마침 천두슈가 베이징 대학에 자리를 잡고 신문화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의 영향력도 커졌다. 그 결과 1921년에는 중국공산당이 창당되었고, 이후 공산당은 빠르게 농민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나갔다. 당시 농촌에서는 공산당이, 도시에서는 국민당의 세력이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도시에 위치한 ‘공장’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는데, 『산촌』에서 산촌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간 소년의 형이 “노동조합에서 개최한 야학”(170쪽)에 참여했다가 “새 군대 정치국에 들어가 상하이”(260쪽)로 이동했다는 것은 그가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1924~1926년 무렵 국민당과 공산당은 ‘국공합작’을 통해 이른바 ‘대혁명’을 전개했다. 중간에 쑨원이 사망하는 변수가 생겼으나, 중국 역사상 최대의 농민과 노동자가 동원된 ‘대혁명’은 짧은 시간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1927년 외세와 결탁한 장제스가 반혁명 정변을 일으킴으로써 혁명은 결국 실패한다. 장제스는 공산당과의 약속을 배신하고 2만 6천여 명의 공산당원과 30만 명 이상의 노동자·농민을 살해했고, 이 참담한 배신을 경험하고 공산당(모택동과 주은래)은 무장혁명을 통해 정권을 쟁취한다는 노선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예쥔젠의 『산촌』은 바로 이 ‘대혁명’과 ‘반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산촌』은 봉건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동, 대혁명과 반혁명이라는 정치적 격변 과정,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던 산촌 마을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근대’와 ‘혁명’의 얼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서사의 한 축이 봉건적인 질서, 특히 그것의 양면성을 부각시키는 데 바쳐지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 특히 여성에게 가해진 봉건적 억압과 ‘추민’으로 상징되는 소작인에 대한 지주의 봉건적 수탈과 착취의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봉건 사회가 지니고 있는 안정적인 측면에서 비롯되는 긍정적인 요소 또한 없지 않다. 판 삼촌과 암소 간의 유대감, 주인공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인간과 신의 전통적 관계, 혁명의 기운이 영향을 끼치기 이전까지 ‘변화’보다는 ‘지속’에 의지해 비교적 평온한 질서를 유지해온 마을 공동체 특유의 안정감은 근대로의 이행 과정을 부정적으로 조명하는 많은 역사소설들이 취하는 공통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러한 요소들은 한국의 근대 경험을 배경으로 한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이나 박경리의 『토지』 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한 사회가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급격한 ‘변화’가 기층 민중들의 삶을 어떻게 위협하고, 또 바꿔놓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정확히 그 이상의 무엇이 없다는 점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변해 버렸어요. 우리 마을도 낯설어요. 읍내도, 알란마저도…….”(371쪽)라는 판 삼촌의 넋두리가 이 변화에 대한 민중들의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촌』의 특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먼저, ‘땅’과 연결된 농경적 삶의 입장에서 혁명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하자. 작품의 여러 장면에서 반복되듯이 산촌 마을 사람들의 삶은 ‘변화’에 취약하다. 그것이 혁명이든 혹은 반혁명이든 급격한 변화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작품의 종결부에 등장하는 “우리는 돌아온다!”라는 진술은 그 표어를 작성한 ‘혁명가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강력한 회귀의식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변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농민조합’이다. 외부에서 온 혁명 세력은 산촌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농민조합’에 가입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지금까지 무엇을 조직해서 유지하고 있지는 않았다.”(287쪽)라는 독백이 암시하듯이 그것이 그들의 삶에 긍정적 변화일 수 있는지는 따져볼 문제이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공동체의 모든 쓸모 있는 사람은 생산적인 일에 종사해야”(295쪽) 한다는 원칙에 따라 강제로 농사를 지어야 하고, 더욱이 “판 삼촌, 나를 세 무의 땅에서 자유롭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농민이 아니었답니다. 난 땅을 바라지 않습니다.”(298쪽)라는 호소처럼 농사와 무관한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마저 그것을 강요할 때 ‘혁명’은 그 단어의 매력과 달리 폭력일 수 있다. 이 소설이 이데올로기의 재현물이 아니라 혁명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조명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어머니와 ‘나’가 고향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선조들의 고향”을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어머니와 “대도회지의 새 삶을 위해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고향을 어서 빠져나가고 싶어”(407)하는 ‘나’의 태도는 ‘고향’, ‘농촌’, ‘봉건적 질서’에 대한 세대 차이만큼이나 분명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만을 놓고 보면 이 소설에서 자신의 의지만으로 ‘산촌’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판 삼촌처럼 변화된 산촌의 환경에 절망하여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거나, 혁명-반혁명의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거나, 어머니와 ‘나’처럼 내쫓기다시피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신세이다. 요컨대 작가를 포함하여 이들 모두에게 ‘변화’는 반가운 것이 아니며, 일면 익숙한 세계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것으로 경험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봉건적 질서를 갈망한다고 말해도 좋을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작가는 마지막에 “우리는 돌아온다!”라는 표어를 등장시켜 그것을 쓴 혁명가들의 의도와는 별개로 ‘나’와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얘야, 네 말이 맞구나. 우린 돌아와야지. 이곳이 우리 고향이고 우리 선조들과 우리 친지들이 살아온 곳이니까.”(411쪽) 다만 이들의 귀향은 “우리가 가는 길이 얼마나 머나먼 여행이 될지 모르고 있었다.”(411쪽)가 암시하듯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아니 십중팔구는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불가역적인 행로(行路)일 것이다. 과거-전통으로부터의 벗어남, 고향으로부터의 추방, 결코 안착할 수 없는 영원한 떠돌이로서의 여행. 작가는 이것들을 근대적인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향한 대장정을 그리려고 했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모든 ‘근대’로의 이행에 동반되는 원초적 경험의 일부처럼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