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우 당의장이 노동당에 남아 있는 이유

[인터뷰] 자신의 피고인 제안으로 진보정당에 뛰어든 영원한 당의장


2015년 6월 28일 밤 9시 50분께 서울 강서구민회관. 노동당 당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긴장이 감돌았다. 구역별로 나뉜 좌석 앞에선 감표 요원들이 부지런히 찬성표를 세고 있었다. 한 구역에서 투표자 수를 세는데 늦어졌다. 당대회 무대 의장석 뒤 스크린엔 찬성표 합계가 끝난 구역 투표 결과가 하나둘 나왔다. 대의원들은 목마르게 진보결집 추진을 위한 ‘당원총투표’ 표결 결과를 기다렸다. 누군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마저도 들릴 것 같았다. 순간 스피커에서 경쾌한 노래가 나왔다. 비장함과 긴장감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터질 것 같던 당대회장은 릴렉스 해졌다. 대의원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자신의 핸드폰에서 노래를 틀고 마이크에 댄 사람이 의장석에 앉아 있던 흰머리가 그윽하게 어울리는 이덕우 당대회 의장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노동당 당가였다. “우리는 길을 이어 가는 사람들 무너진 길을 다시 열어 미래로 한 발 또 한 발 가슴을 펴고 당당히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시련에 굴복하지 않으리~”

이 의장은 “지금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여기 계신 모두가 이 노래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개표 결과는 부결이었다.

이덕우 당의장이 의장석에 앉아 노동당 당가를 틀고 당가를 잊지 말자고 했을 때 두 가지가 생각이 들었다. ‘저 양반은 노동당 당가를 핸드폰에 넣고 다니는구나’가 첫 번째 생각이었다. 두 번째 생각은 대규모 탈당 사태 이후에도 이덕우 의장이 노동당에 남아 있다면 인터뷰를 해 보고 싶었다. 당의장 석에 앉아 표결에 참여한 그는 바로 직전에 이뤄진 진보결집 추진 당원총투표 부의 안건에 탈당한 진보결집파들의 요청인 ‘찬성’ 표찰을 들었다.

그 뒤로 2개월여가 지난 어느 날 이덕우 의장이 여전히 노동당에 남아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미 진보결집을 추진하던 나경채 전 대표 등 진보결집파의 유력한 정치인과 활동가 800여 명 이 탈당한 상태였고 노동당은 비상대책위 체제에서 새로운 당대표를 뽑기 위한 선거에 돌입한 때였다. 그리고 지난 9월 18일 노동당 대표 선거 투표 결과가 나오기 직전 이덕우 당의장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창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6.28 당대회 때 당원총투표 표결 결과를 발표하는 이덕우 의장

노동당에선 통상 이덕우 의장을 영원한 당의장이라고 부른다. 민주노동당 창당 당대회 의장, 민주노동당 분당 당대회 의장, 진보신당 진보대통합 안건 당시 당대회 의장, 노동당 진보결집 당원총투표 안건 당시 의장 등 굵직한 당대회 안건이 있을 때마다 의장을 맡았다. 대부분 의견 그룹들이 공정한 회의 진행에 대한 신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덕우 당의장은 자신의 피고인 때문에 2000년도부터 진보정당운동에 함께 하게 됐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 시절 총파업 주도 혐의로 기소됐을 때 피고인과 변호인 사이로 만났다.

“제가 권영길 대표 변론을 맡다 보니까 자주 연락하게 됐어요. 98년도로 기억하는데 국민승리 21이 전부 해산하고 10여 명도 안 남았는데 끊임없이 권영길 대표가 끌어안고 진보정당을 만들자 해서 98년도부터 원탁회의에 참가했어요. 그때 권 대표는 대단했어요. 울산, 창원은 말할 것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노조 위원장들을 만나고, 진보정치의 꿈을 던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같이 하자고 하면서 당을 만들었죠. 물론 권 대표는 피고인이었고 저는 변호인이었는데 저도 진보정당을 만드는 게 꿈이었고, 자주 얘기를 듣다 보니 원탁회의만 가서 얘기를 듣는 것만 하겠다고 했죠. 시간이 날 때마다 원탁회의에 나가서 인증 사진을 열심히 찍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함께하게 된 거죠”

인권변호사였던 이덕우 변호사가 진보정치의 꿈을 가진 이유는 간단했다. 인권변호사를 하다 보니 정치권력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개별 인권 침해 사건을 이기는 것으로는 한계가 너무 컸다. 그래서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봤다. 그런 고민은 참여연대를 결성할 당시에도 이어졌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데 시민사회단체만 커지고 정당이 할 일을 시민단체가 전부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본의 아니게 의원이 없는 당 활동만 한 꼴이 됐다. 민주노동당 분당 당시 진보신당으로 나와 간신히 조승수 전 의원을 한 명 배출했지만, 그나마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2011년 진보대통합 때 모두 탈당해 버렸다. 그리고 진보결집파들이 심상정, 노회찬 전 대표들과 다시 원내 교섭단체를 꿈꾸며 탈당할 때도 당원총투표엔 찬성했지만 노동당을 떠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때도 의원 한 명 없이 활동 잘했다”

그가 노동당에 남은 이유도 간단했다.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던 민주노동당 시절 김주익, 배달호 열사 사건 등 노동현장 진상규명과 핵폐기장 문제, 연평도 사건 등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했더니 신뢰가 쌓이고 국회의원을 10명이나 배출하는 결과를 봤기 때문이다.

이 의장은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던 민주노동당 시절이 가장 재미있어 보였다. 후배 변호사들과 1인 1표제가 위헌이라며 1인 2표제 헌법소원을 내서 위헌 결정을 얻어내 한국 정치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국회의원 10명 배출은 1인 2표제와 민주노동당의 활동력이 결합한 결과였다. 노동당도 일상에서 현장에서 차근차근 해보면 언젠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당원 수를 늘리자는 것보다는 지금 당원들이 당에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찾고 각 지역 삶 터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차근차근 하나씩 다시 쌓자고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장수 당협이나 은평 당협이 잘하고 있는데 은평 당협은 하나고등학교 양심선언 교사 보호를 위해 매일 아침 1인시위하고 현수막을 걸고 있어요. 장수 당협은 꼭 가보고 싶은데 그 지역 농민과 몸을 부대끼면서 열심히 농사짓고 활동하고 있어요. 민주노동당에서 의원이 한 명도 없을 때도 해 왔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하다 보면 우리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당 당대표 개표 현장을 찾은 이덕우 의장

“노,심,조, 진보결집파 당원 마음 못 얻어...탈당 옳지 못해”

2008년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한 이후 진보신당에서 노동당까지 7년여 동안 두 번이나 집단탈당 사태를 겪은 것은 안타깝지만 탈당파들이 너무 조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011년 진보신당을 탈당했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전 대표와 올해 탈당한 진보결집파에 개인적으론 이해한다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은 국가권력을 잡는 데도 필요하지만 당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쓴소리일지 모르지만 나경채 (전) 대표가 공약으로 진보통합을 얘기하면서 출마했고 어렵게 당선됐지만, 당대표로 출마하면서 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는지 근본적으로 의문이 들어요. 그걸 공약으로 내 걸었기 때문에 그 이후 일정에 쫓겨 당원들의 마음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똑같은 일(당대회 후 집단 탈당)이 반복되는 것이 좀 아픈 거예요. 사실 2011년(진보대통합 당대회)도 마찬가지로 당시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노,심,조) 대표 이 양반들은 그야말로 진보대통합을 하라는 것이 당시 정치지형으로 봐서 옳다고 판단했던 것 아니겠어요. 그뿐 아니라 바깥에서 가해졌던 통합 압력이란 것은 굉장히 심했으니까 만약 하나로 합치지 않으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죠, 그래서 통합 논의 진행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당대회에서 통합(진보대통합) 안 표결을 어렵게 연기까지 해 가면서 통합 안을 다시 당대회에 올렸기 때문에 노,심,조 세 사람과 통합 추진 당원들이 그야말로 당원들을 제대로 설득해서 마음을 얻었으면 자연스레 통합 되는 거죠. 당원의 마음을 얻을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얻지 못했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 볼 수 있어요.

첫째 가장 기본적이고 우리가 지키자고 했던 당헌, 당규를 따라야 했어요. 당대회에서 부결 됐으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어쨌든 최소한 기본이란 말이죠. 두 번째는 바깥에서 (통합) 압력이 거세다 해도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당원의 판단은 틀리니까 나중으로 미루자고 하면 외부압력이나 비난도 당 전체가 먹는 것이죠. 그랬어야 하는데 그분들이 탈당한 것은 옳지 못하다고 봐요. 정의당과 4자 통합 이런 얘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냉정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2011년도에도 그랬지만, 지금 탈당한 사람들이 2/3이상 압도적 찬성을 얻을 자신이 없으면 그것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다시 당을 깰 만큼 이유가 되느냐는 것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어찌 보면, 정당이란 것이 1-2년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수십 년은 해야 할 것인데 진보신당부터 불과 7년인데 그 7년 사이에 두 번이나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너무 조급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는 6.28 당대회에서 당가를 틀어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긴장을 풀자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이미 표결 결과는 예측이 가능했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2011년에 한 번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의장으로서 사회 보는 사람이 ‘탈당하지 말아라’나 ‘여기서 더해보자’고 얘기하는 것도 걸맞지 않고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탈당하는 사람들은 하는 사람대로 나름 명분이 있고 여러 고민 끝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같은 꿈을 꿨던 사람들이 당가에 담겨 있는 길을 열어나가고 이어나가고 잊지 않고 각자 열심히 하다보면 또다시 만날 것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보지 못할 정도로 서로 상처 주거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그들이 진보신당부터 꿨던 같은 꿈이란 무엇일까. 이덕우 의장은 자유주의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최소한 자본주의 체제 혹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공통으로 같이 동의할 수 있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그는 진보정당 운동이 앞으로 최소 10년 동안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당장 정의당도 합당이 아니라 재창당 수준으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정치지형으로 봐선 2016년 총선은 그야말로 안갯속이거든요. 새누리당도 무조건 우세하다고 속단할 수 없고, 새정치연합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내년 총선이 지나고 그때까지 노동당은 노동당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정의당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총선이 끝나고 시간을 갖고 일을 하면서 신뢰를 쌓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대표 선거 개표 후 신임 당대표, 당직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맨 왼쪽이 이덕우 의장

변호사로서 이 의장은 최근 한 전환기를 맞은 듯했다. 변호사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서 자신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24년 전을 되돌아봤다. 2013년 대한문 쌍용차 집회에서 민변 변호사들이 집회를 방해하는 경찰관을 체포하려 한 행위에 대해 검찰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했지만 지난 8월 20일 1심에서 무죄로 결론 났다.

이 의장은 결심공판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최후진술을 했다. 최후진술에선 역사의 한 페이지가 흘러나왔다. 그는 “24년 전 토요일, 1991년 5월 25일 전화를 받았습니다. 성대 여학생 김귀정이 시위 도중 죽었다며 변호사 선배가 와서 도와 달라고 사정하더군요. 밤새 고민하다 다음 날 백병원으로 갔습니다. 백병원을 포위한 경찰관들과 심하게 싸우다 겨우 학생들의 안내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하 영안실 복도에는 쇠파이프를 든 학생들이 서 있었고 수십 개의 LPG 가스통이 촘촘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경찰에 시신을 탈취당하면 터뜨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거리로 나갔습니다...변호사 등록 취소가 될 수 있는 피고인이 되자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 그리고 일부라도 보았던 여러 사람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정성이 모자라지 않았는지 성찰하였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만났던 이들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입니다. 이 사건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서는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라고 최후 진술을 마무리 지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덕우 의장은 신임 당대표 개표가 진행되는 영등포 당사로 가기 위해 서둘렀다. 개표를 5분 앞두고 당사 앞에 도착하자 개표 준비를 하던 당직자들과 후보들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선거 실무를 맡았던 한 당직자가 이 의장을 부둥켜 안았다. 그 당직자는 ‘이제 선거가 끝났어요’라며 이 의장의 출현에 위안을 받았다. 개표가 진행되자 이덕우 의장은 부지런히 핸드폰으로 개표 현장 스케치를 했다. 이날 개표 결과 구교현 후보가 새 당대표로 당선됐다.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