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불복종하라
[기고] 2006년 5월 우리가 확인한 ‘국가폭력’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 2006년05월13일 6시32분
2006년 5월 4일과 5일, 난 그 ‘전쟁’의 한 복판에 있었다. 그 전쟁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월등히 우월한 우위를 점한 한 쪽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인한 파괴로 끝났다.
전의경 110개 중대, 1만 1천명. 군 병력이 2천명이 넘는다고 했고, 용역으로 동원된 이들만도 7백 명이 넘는다고 하는 이들과 맞서서 싸워야 했던 이들은 겨우 1천 명이었다. 황새울 들판과 대추분교를 두고 접전을 벌였지만 거의 맨몸이었던 평택 지킴이들은 5월 4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당해야 했다.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대추분교에서 3백 명 가까운 이들의 저항이 끝나고, 대추분교 지붕 위의 신부님들이 내려온 뒤 투쟁의 거점이자 상징이었던 대추분교는 포클레인 삽날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도 전에 황새울 들녘은 헬기들이 공수한 철조망으로 차단되었다.
그렇지만 5월 5일 1천 명 정도의 비무장 시위대는 황새울 들판의 철조망을 20여 군데 절단하고, 민간인 접근 금지 팻말을 달아놓고 국방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선포한 그곳을 행동으로 부정했다. 군인들은 처음에는 분명 당황한 모습으로 민간인과의 충돌을 피하는 소극적인 대응의 모습을 보이다가 곧 태도를 돌변하여 민간인 시위대를 땅에 엎어놓고, 마치 미군이 이라크 전쟁 포로를 묶듯이 포승줄로 손을 묶고 목에 걸었고, 그 위에다가 곤봉과 몽둥이, 군홧발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화풀이를 하듯이 경찰은 그날 밤 주민 촛불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민들을 한밤중에 영장도 없이 무조건 연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행 이유를 묻지 말라! 그들은 당당했다. 그리고 온 마을을 새벽 무렵까지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정부의 각 부처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때를 만난 듯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군인을 공격한 시위대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군에게 폭력적인 대응을 선동하고, 시위대를 빨갱이로 매도했다. 주민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평택범대위) 간의 분열을 획책했다. 반미단체들이 주민들을 선동하고 투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주민대책위의 간부들은 수십억의 갑부들인데 생존권은 말도 안 된다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의미를 폄하했다.
경찰은 수시로 마을 외곽을 봉쇄하고, 마을 곳곳을 떼 지어 다니며 이동했고, 수배 중인 대추리 이장 김지태 씨를 찾는다고 영장도 아무 집이나 들이닥쳤다. 군인들이 마을 주민 소유의 시설물들을 마구 파괴했고, 도두2리 주민들이 식수도 차단하는 짓을 저질렀다. 마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논농사로 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논을 바라보며 울어야 했다.
그 ‘전쟁’에서 현 정부가 걸핏하면 내놓던 ‘인권’이란 카드는 없었다. 오로지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의 살육이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인권’은 없었다.
상상할 수 있는 인권침해는 거의 모두 일어났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그와 같은 아수라장에서 죽지들 않고 살아났는지 의아할 정도다.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시위대가 ‘비무장’의 군인을 공격하는 장면만을 주로 강조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안다. 국방장관이 비무장으로 투입한다던 그 군인들은 이미 곤봉을 지급받고 있었다. 황새울 들에서 시위대를 맞닥뜨린 군 병력들은 곤봉과 작업에 쓰는 몽둥이를 들고 민간인 시위대를 공격했다. 1980년 광주 이후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제압하는 장면이 국방장관의 말이 거짓임을 증거라도 하겠다는 듯이, 군에 대항하면 용서가 없다는 듯이 그들은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었고, 제압했다. 그러고도 앞으로는 자위수단을 강구하겠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대는 것이 국방장관이다.
그 군인의 자위수단이란 게 총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절로 돋는다. 거기에 지만원이란 자는 군이 발포했어야 한다고 충동질하는 망언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한 것이 더 큰 문제이지, 민간인 시위대가 군과 맞섰던 것이 문제라는 이 전도된 의식 속에는 아직도 광주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속내를 갖고 있음을,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군이 권력도 독식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제 나라 백성을 향해 평상시에도 폭력을 휘두르는 군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우리는 이 장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헬멧을 비롯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거의 대부분 비무장이었다. 처음 경찰을 맞닥뜨린 시위대는 노동자 대오였다. 시위현장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가 처음 만날 때 어쨌거나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은 그런 장면이 거의 없었다. 시위대를 만난 경찰들은 곧바로 곤봉과 방패로 공격하고 바로 그 후미의 경찰이 시위대의 측면을 무차별 공격하는 색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퍽퍽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경찰의 폭행은 주로 안면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부상자의 60% 가량이 모두 안면부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이 환각제를 복용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적개심에 불타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연좌하고, 누워있는 이들을 짓밟고, 폭행하면서 연행하고, 연행되는 사람들에게 미란다 고지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폭행을 하거나 여성들에게는 성추행을 집단적으로 감행했다. 그날 경찰은 기자들의 카메라도 의식하지 않았고, 기자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돌을 비롯한 온갖 불법적인 수단들을 총동원하였기 때문에 시위대의 부상은 더욱 심했다. 유혈이 낭자했던 대추분교에서 경찰은 유리창을 모두 깨고 그것을 농성 중인 시위대를 향해 던졌다. 2층에서 농성 중이던 이들을 연행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상황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우리는 지난해 하반기 전용철․홍덕표 농민의 사망사건을 통해서 경찰의 폭력성을 확인했고, 그 시정을 요구했지만 경찰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총수가 사퇴한 것에 대한 적개심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가 한꺼번에 화풀이해대는 모습이었다.
경찰 폭력의 백미는 5일 밤에 일어났다. 주민들과 촛불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민들은 분명 현행범도 준현행범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그렇더라도 경찰이 연행할 때는 미란다 고지를 비롯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 번의 명령에 의해 대추분교 위 골목길에 있던 시민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연행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했던 경찰은 동네를 샅샅이 뒤지면서 어둠 속에서 시위 참가자들을 찾는 인간사냥꾼들의 모습이었다.
그 시간 도두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사람들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피신했고, 상황이 끝나는 새벽까지 불을 끈 어둠 속에서 공포에 질려야 했다. 마치 시계바늘이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과도 같은, 아니면 저절로 광주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런 공포를 조성한 경찰은 그날 이후에도 대추리와 도두리에 비상계엄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는 하여 주민들에게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모습
지난 5월 4일, 5일. 우리는 ‘국가폭력’의 실상을 확인했다. 야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국가폭력의 본질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군인과 경찰의 폭력을 제어할 어떤 장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폭력집단은 분명 군과 경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를 폭도로 몰아가는 수법은 이미 26년 전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내몰았던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시위대를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몰아세우며 624명의 연행자 중 총 60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 법원이 증거 불충분과 도주의 우려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을 이유로 16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해 검찰은 반발하여 불법적으로 채증한 사진 자료 등을 분석해서 재청구하겠다고 하니 어제만 해도 ‘인권검찰’을 떠들던 게 가증스러울 뿐이다. 법의 외피마저 벗어던진 총체적인 국가의 타락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너무 나간 것일까.
다른 이들이 전략적 유연성을 비롯한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언급했으므로 굳이 여기서는 이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으로 표현되는 한미동맹의 재편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인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 때 지극히 쉽게 ‘무장화된 세계화’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미국이 FTA를 추진하는 것과 함께 한미군사동맹의 재편을 서두르는 것은 결코 다른 게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굳이 논증하지 않겠지만 종종 한미FTA 저지투쟁과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을 별개로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노무현은 쉼 없이 추구하고 있고, 그는 임기 전까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할 과제로 한미FTA로 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법이나 노사관계 로드맵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한미FTA를 추진하는 것과 한미동맹 재편을 서두르는 것은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 공권력으로 대표되는 국가는 그 폭력적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평택투쟁에서 나타난 국가폭력은 전용철․홍덕표 농민을 죽이고, 하이스코 노동자들을 개 패듯 뭇매를 안기고, 앞으로 의료, 교육, 문화 시장 등의 개방을 위해 그에 저항하는 민중세력들을 진압할 그 국가폭력이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그럴싸한 허울조차도 필요 없다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구체적인 표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저항하는 운동은 민주주의운동이고, 인권운동이다. 인권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국가의 폭력에 맞서 인간의 자유를 확보해가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인권이 탄생했고, 평등을 향한 투쟁 과정에서 인권의 지평을 넓혀왔듯이 이런저런 결들이 다른 운동일지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모든 운동은 인권운동적 속성을 갖게 된다. 인권은 총체적인 인권의 부정체계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양립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으므로(만약 이에 타협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수용한다면 인권의 자유와 평등, 연대라는 가치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본질적으로 저항의 언어로 탈바꿈한다.
인권운동은 그래서 그 저항의 언어를 실천해가는 급진적인 저항운동을 선도할 임무를 스스로 부여한다. 아무리 소극적으로 인권운동의 역할을 규정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 생존권,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받는 민중들의 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럴 때조차도 인권운동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억압하는 세력들에 대해 저항할 수밖에 없다.
현 시기 인권운동은 불복종운동이자 저항운동
인권활동가들은 평택투쟁에 임하면서 ‘평화적 생존권’을 주창했다. 전쟁의 참화를 불러온 화근이 될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은 평화적 생존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평화적 생존권은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모든 기본권의 전제를 이룬다. 그래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투쟁에 당연히 인권활동가들은 결합한다.
또 그 주민들이 주장하는 것에는 민주주의 원리가 배어 있다. 정부가 언제 한 번 대추리와 도두리 들녘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논의나 했냐고 항의한다. 한미간의 협상이니 너희가 받아들이라고 이미 계획은 모두 확정한 뒤에 주민들에게는 고작 이주하지 않으면 강제로 떼밀어내겠다는 설명만 하려던 것에 주민들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부안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국책사업은 종종 밀실에서 위정자들의 담합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지역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던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던 간에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하기는 마찬가지다.
현대 인권의 중추적인 원리의 하나가 자기결정권이고, 그런 자기결정권에 근거하여 발전권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그 발전권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온 몸으로 싸우면서 현대 인권의 원리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발전은 공동체 구성원이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고, 그 과정에 함께 하며, 그 발전의 이익을 공동으로 분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때 발전은 소수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는 불평등한 개발이 될 것이고,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권조차 빼앗기게 된다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서조차 출입을 통제하고, 주민들의 식수원을 차단하고, 사유 시설도 훼손하고 있다. 볍씨 뿌린 논에서는 벼가 싹을 틔우고 보리는 벌써 이삭을 패고 커간다. 철조망 안에서나 밖에서나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희망은 꺾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곳에는 군인과 경찰로 대표되는 국가폭력에 노출된 인권피해자들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투쟁할 때 그들은 유엔이 말하는 인권옹호자가 되며, 우리는 그들의 인권옹호활동에 연대하는 인권옹호자가 된다.
5월 4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안성천에 부교를 띄워 장비를 들여오고, 헬기로 철조망을 공수하고, 민간인을 상대로 진압 훈련을 시키고, 민간 시위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신교육을 시켰을 때 이제 그 국가는 인권의 ‘적’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규정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농지를 빼앗으므로 이제 통보한 시한만 지나면 마을에서 무참히 주민들을 몰아낼 것이다. 지금의 계엄 상황은 바로 그와 같은 때를 예비하기 위한 것이다. 주민들의 투쟁을 꺾기 위해 주민대책위원장을 체포하려 하고, 평택범대위와 분열시키면서 평택범대위의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불법을 해서라도 공권력을 총동원한다.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다. 부당한 공권력,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폭력에 불복종하는 것이고, 그 불복종운동을 저항운동으로 발전시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저지, 파탄시키는 일 밖에는 없다. 국가가 인권의 수호자이길 포기하고, ‘법의 지배’가 인권을 억압하는 상황을 낳았으므로 이제 그 국가와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저항만이 요구된다. 이 저항을 통해 우리는 빼앗긴 평화와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치를 바로 세워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권의 가치를 지향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다.
다시 투쟁의 날이 밝아오고 있다. 누군가 대추분교 폐허 위에 세운 ‘평화’ 깃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5월 14일,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인권옹호자가 되어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아니 달려가야 한다.
전의경 110개 중대, 1만 1천명. 군 병력이 2천명이 넘는다고 했고, 용역으로 동원된 이들만도 7백 명이 넘는다고 하는 이들과 맞서서 싸워야 했던 이들은 겨우 1천 명이었다. 황새울 들판과 대추분교를 두고 접전을 벌였지만 거의 맨몸이었던 평택 지킴이들은 5월 4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당해야 했다.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대추분교에서 3백 명 가까운 이들의 저항이 끝나고, 대추분교 지붕 위의 신부님들이 내려온 뒤 투쟁의 거점이자 상징이었던 대추분교는 포클레인 삽날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도 전에 황새울 들녘은 헬기들이 공수한 철조망으로 차단되었다.
그렇지만 5월 5일 1천 명 정도의 비무장 시위대는 황새울 들판의 철조망을 20여 군데 절단하고, 민간인 접근 금지 팻말을 달아놓고 국방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선포한 그곳을 행동으로 부정했다. 군인들은 처음에는 분명 당황한 모습으로 민간인과의 충돌을 피하는 소극적인 대응의 모습을 보이다가 곧 태도를 돌변하여 민간인 시위대를 땅에 엎어놓고, 마치 미군이 이라크 전쟁 포로를 묶듯이 포승줄로 손을 묶고 목에 걸었고, 그 위에다가 곤봉과 몽둥이, 군홧발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화풀이를 하듯이 경찰은 그날 밤 주민 촛불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민들을 한밤중에 영장도 없이 무조건 연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행 이유를 묻지 말라! 그들은 당당했다. 그리고 온 마을을 새벽 무렵까지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정부의 각 부처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때를 만난 듯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군인을 공격한 시위대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군에게 폭력적인 대응을 선동하고, 시위대를 빨갱이로 매도했다. 주민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평택범대위) 간의 분열을 획책했다. 반미단체들이 주민들을 선동하고 투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주민대책위의 간부들은 수십억의 갑부들인데 생존권은 말도 안 된다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의미를 폄하했다.
경찰은 수시로 마을 외곽을 봉쇄하고, 마을 곳곳을 떼 지어 다니며 이동했고, 수배 중인 대추리 이장 김지태 씨를 찾는다고 영장도 아무 집이나 들이닥쳤다. 군인들이 마을 주민 소유의 시설물들을 마구 파괴했고, 도두2리 주민들이 식수도 차단하는 짓을 저질렀다. 마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논농사로 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논을 바라보며 울어야 했다.
그 ‘전쟁’에서 현 정부가 걸핏하면 내놓던 ‘인권’이란 카드는 없었다. 오로지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의 살육이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인권’은 없었다.
상상할 수 있는 인권침해는 거의 모두 일어났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그와 같은 아수라장에서 죽지들 않고 살아났는지 의아할 정도다.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시위대가 ‘비무장’의 군인을 공격하는 장면만을 주로 강조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안다. 국방장관이 비무장으로 투입한다던 그 군인들은 이미 곤봉을 지급받고 있었다. 황새울 들에서 시위대를 맞닥뜨린 군 병력들은 곤봉과 작업에 쓰는 몽둥이를 들고 민간인 시위대를 공격했다. 1980년 광주 이후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제압하는 장면이 국방장관의 말이 거짓임을 증거라도 하겠다는 듯이, 군에 대항하면 용서가 없다는 듯이 그들은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었고, 제압했다. 그러고도 앞으로는 자위수단을 강구하겠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대는 것이 국방장관이다.
그 군인의 자위수단이란 게 총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절로 돋는다. 거기에 지만원이란 자는 군이 발포했어야 한다고 충동질하는 망언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한 것이 더 큰 문제이지, 민간인 시위대가 군과 맞섰던 것이 문제라는 이 전도된 의식 속에는 아직도 광주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속내를 갖고 있음을,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군이 권력도 독식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제 나라 백성을 향해 평상시에도 폭력을 휘두르는 군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우리는 이 장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헬멧을 비롯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거의 대부분 비무장이었다. 처음 경찰을 맞닥뜨린 시위대는 노동자 대오였다. 시위현장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가 처음 만날 때 어쨌거나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은 그런 장면이 거의 없었다. 시위대를 만난 경찰들은 곧바로 곤봉과 방패로 공격하고 바로 그 후미의 경찰이 시위대의 측면을 무차별 공격하는 색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퍽퍽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경찰의 폭행은 주로 안면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부상자의 60% 가량이 모두 안면부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이 환각제를 복용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적개심에 불타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연좌하고, 누워있는 이들을 짓밟고, 폭행하면서 연행하고, 연행되는 사람들에게 미란다 고지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폭행을 하거나 여성들에게는 성추행을 집단적으로 감행했다. 그날 경찰은 기자들의 카메라도 의식하지 않았고, 기자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돌을 비롯한 온갖 불법적인 수단들을 총동원하였기 때문에 시위대의 부상은 더욱 심했다. 유혈이 낭자했던 대추분교에서 경찰은 유리창을 모두 깨고 그것을 농성 중인 시위대를 향해 던졌다. 2층에서 농성 중이던 이들을 연행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상황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우리는 지난해 하반기 전용철․홍덕표 농민의 사망사건을 통해서 경찰의 폭력성을 확인했고, 그 시정을 요구했지만 경찰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총수가 사퇴한 것에 대한 적개심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가 한꺼번에 화풀이해대는 모습이었다.
경찰 폭력의 백미는 5일 밤에 일어났다. 주민들과 촛불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민들은 분명 현행범도 준현행범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그렇더라도 경찰이 연행할 때는 미란다 고지를 비롯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 번의 명령에 의해 대추분교 위 골목길에 있던 시민들을 무차별 연행했다. 연행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했던 경찰은 동네를 샅샅이 뒤지면서 어둠 속에서 시위 참가자들을 찾는 인간사냥꾼들의 모습이었다.
그 시간 도두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사람들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피신했고, 상황이 끝나는 새벽까지 불을 끈 어둠 속에서 공포에 질려야 했다. 마치 시계바늘이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과도 같은, 아니면 저절로 광주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런 공포를 조성한 경찰은 그날 이후에도 대추리와 도두리에 비상계엄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는 하여 주민들에게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모습
지난 5월 4일, 5일. 우리는 ‘국가폭력’의 실상을 확인했다. 야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국가폭력의 본질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군인과 경찰의 폭력을 제어할 어떤 장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폭력집단은 분명 군과 경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를 폭도로 몰아가는 수법은 이미 26년 전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내몰았던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시위대를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몰아세우며 624명의 연행자 중 총 60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 법원이 증거 불충분과 도주의 우려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을 이유로 16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에 대해 검찰은 반발하여 불법적으로 채증한 사진 자료 등을 분석해서 재청구하겠다고 하니 어제만 해도 ‘인권검찰’을 떠들던 게 가증스러울 뿐이다. 법의 외피마저 벗어던진 총체적인 국가의 타락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너무 나간 것일까.
다른 이들이 전략적 유연성을 비롯한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언급했으므로 굳이 여기서는 이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으로 표현되는 한미동맹의 재편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인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 때 지극히 쉽게 ‘무장화된 세계화’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미국이 FTA를 추진하는 것과 함께 한미군사동맹의 재편을 서두르는 것은 결코 다른 게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굳이 논증하지 않겠지만 종종 한미FTA 저지투쟁과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을 별개로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노무현은 쉼 없이 추구하고 있고, 그는 임기 전까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할 과제로 한미FTA로 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법이나 노사관계 로드맵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한미FTA를 추진하는 것과 한미동맹 재편을 서두르는 것은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 공권력으로 대표되는 국가는 그 폭력적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평택투쟁에서 나타난 국가폭력은 전용철․홍덕표 농민을 죽이고, 하이스코 노동자들을 개 패듯 뭇매를 안기고, 앞으로 의료, 교육, 문화 시장 등의 개방을 위해 그에 저항하는 민중세력들을 진압할 그 국가폭력이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그럴싸한 허울조차도 필요 없다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구체적인 표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저항하는 운동은 민주주의운동이고, 인권운동이다. 인권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국가의 폭력에 맞서 인간의 자유를 확보해가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인권이 탄생했고, 평등을 향한 투쟁 과정에서 인권의 지평을 넓혀왔듯이 이런저런 결들이 다른 운동일지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모든 운동은 인권운동적 속성을 갖게 된다. 인권은 총체적인 인권의 부정체계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양립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으므로(만약 이에 타협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수용한다면 인권의 자유와 평등, 연대라는 가치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본질적으로 저항의 언어로 탈바꿈한다.
인권운동은 그래서 그 저항의 언어를 실천해가는 급진적인 저항운동을 선도할 임무를 스스로 부여한다. 아무리 소극적으로 인권운동의 역할을 규정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 생존권,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받는 민중들의 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럴 때조차도 인권운동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억압하는 세력들에 대해 저항할 수밖에 없다.
현 시기 인권운동은 불복종운동이자 저항운동
인권활동가들은 평택투쟁에 임하면서 ‘평화적 생존권’을 주창했다. 전쟁의 참화를 불러온 화근이 될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은 평화적 생존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평화적 생존권은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 원칙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모든 기본권의 전제를 이룬다. 그래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투쟁에 당연히 인권활동가들은 결합한다.
또 그 주민들이 주장하는 것에는 민주주의 원리가 배어 있다. 정부가 언제 한 번 대추리와 도두리 들녘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논의나 했냐고 항의한다. 한미간의 협상이니 너희가 받아들이라고 이미 계획은 모두 확정한 뒤에 주민들에게는 고작 이주하지 않으면 강제로 떼밀어내겠다는 설명만 하려던 것에 주민들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부안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국책사업은 종종 밀실에서 위정자들의 담합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지역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던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던 간에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하기는 마찬가지다.
현대 인권의 중추적인 원리의 하나가 자기결정권이고, 그런 자기결정권에 근거하여 발전권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그 발전권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온 몸으로 싸우면서 현대 인권의 원리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발전은 공동체 구성원이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하고, 그 과정에 함께 하며, 그 발전의 이익을 공동으로 분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때 발전은 소수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는 불평등한 개발이 될 것이고,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권조차 빼앗기게 된다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서조차 출입을 통제하고, 주민들의 식수원을 차단하고, 사유 시설도 훼손하고 있다. 볍씨 뿌린 논에서는 벼가 싹을 틔우고 보리는 벌써 이삭을 패고 커간다. 철조망 안에서나 밖에서나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희망은 꺾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그곳에는 군인과 경찰로 대표되는 국가폭력에 노출된 인권피해자들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투쟁할 때 그들은 유엔이 말하는 인권옹호자가 되며, 우리는 그들의 인권옹호활동에 연대하는 인권옹호자가 된다.
5월 4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안성천에 부교를 띄워 장비를 들여오고, 헬기로 철조망을 공수하고, 민간인을 상대로 진압 훈련을 시키고, 민간 시위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신교육을 시켰을 때 이제 그 국가는 인권의 ‘적’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규정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농지를 빼앗으므로 이제 통보한 시한만 지나면 마을에서 무참히 주민들을 몰아낼 것이다. 지금의 계엄 상황은 바로 그와 같은 때를 예비하기 위한 것이다. 주민들의 투쟁을 꺾기 위해 주민대책위원장을 체포하려 하고, 평택범대위와 분열시키면서 평택범대위의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불법을 해서라도 공권력을 총동원한다.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다. 부당한 공권력,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폭력에 불복종하는 것이고, 그 불복종운동을 저항운동으로 발전시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저지, 파탄시키는 일 밖에는 없다. 국가가 인권의 수호자이길 포기하고, ‘법의 지배’가 인권을 억압하는 상황을 낳았으므로 이제 그 국가와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저항만이 요구된다. 이 저항을 통해 우리는 빼앗긴 평화와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치를 바로 세워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권의 가치를 지향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다.
다시 투쟁의 날이 밝아오고 있다. 누군가 대추분교 폐허 위에 세운 ‘평화’ 깃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5월 14일,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인권옹호자가 되어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아니 달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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