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연금 보험 제도는 1990년대 개혁의 산물이다. 이번 개혁 이전까지는 도시의 중앙 국유기업, 성급·시급 국유기업, 그리고 기타 다양한 고용 형태의 집단들이 각각 다른 연금 관리 체계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중앙 정부가 연금 시스템을 통일하려 한 시도는 거대한 사회 변동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다. 지역별 경제 조건이 극단적으로 달랐고, 다양한 소유제 기업들은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했으며, 이에 따라 각 지역 정부는 서로 다른 고려 사항을 가졌다. 오늘날까지도 지역별 연금의 안정성 차이는 여전히 연금 보험 체제의 난제로 남아 있다.
프레이저(Mark W. Frazier)는 수년 동안 중국 연금 제도의 변화를 관찰했다. 2004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관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금 시스템의 '통합'과 '권한 이양'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기록했다. 구체적으로는, 성급 및 시급 정부가 얼마나 많은 권한을 보유했는지는 각 지역의 개혁 과정을 직접 살펴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프레이저의 이 개괄적 글은 관련 탐구를 시작하는 데 있어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원제: After pension reform: Navigating the “Third Rail” in China(2004)
개발도상국과 전환기 경제체제에서 연금 개혁을 연구한 기존 문헌들은 국가가 야심 차고 복잡한 연금 제도 개혁을 시행하여 은퇴자들에게 노후 소득을 제공할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본문은 중국의 연금 관리 체계가 파편화되고 분산된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연금 개혁의 의도치 않은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계획경제 시대에 남겨진 정책 문제, 개혁 시기에 나타난 위임-대리인 문제, 그리고 연금을 둘러싼 항의 시위의 위협이 도시 정부가 연금 관리를 대거 장악하게 만든 배경이 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 정부는 연금 개혁의 정책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지만, 연금 기금에 대한 행정적 통제권은 획득하지 못했다.
서문
1990년대 초, 중국 정부는 국가가 연금 소득 제공자로서 맡아온 역할을 축소하기 위해 일련의 야심 찬 연금 규정을 제정했다. 중국 공산당은 국유기업 인력 과잉으로 인해 대규모 정리해고 위협을 받는 도시 근로자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연금 규정은 이 목표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연금 개혁은 퇴직 급여에 드는 재정 부담을 국가에서 고용주와 근로자로 전가했고, 이들에게 임금세를 납부하게 하여 도시 근로자의 현재와 미래 퇴직 급여를 충당하게 했다. 도시 정부는 적절한 임금세율(즉, '연금 보험료')을 계산하여 기업으로부터 비용을 징수하고, 지역 내 퇴직자 수와 시장 여건에 따라 연금 기금을 투자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연금 보험 개혁이 시행된 지 10여 년이 지나자, 약 4,000만 명의 은퇴자들이 극도로 분산되고 자금이 부족한 지역 연금 기금의 희생자가 되었다. 도시 정부는 약 2,000개에 달하는 연금 기금을 관리했다. 이들 중 거의 모든 기금이 퇴직자 복지 지급을 충당할 만큼 충분한 임금세 수입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재 강제로 퇴직 계좌에 납부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미래 연금 지급을 위한 부채는 말할 것도 없다. 1990년대 동안 중앙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차례 규정을 내놓았고, 그 방법의 하나는 연금 보험 기금을 31개 성정부 단위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더 넓은 납부 기반을 바탕으로 각 성 내 퇴직자 복지를 충당하려 했다.
하지만 도시 정부는 중앙 정부가 연금 관리 권한을 성급 정부로 이양하려는 노력과 성정부가 추진한 조치에 완강히 저항했다.
이 글은 도시 정부가 어떻게 이 원래 어려운 임무, 즉 지역 퇴직자들에게 연금을 빠짐없이 지급하려는 노력 약속을 지켜낸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퇴직자가 거리로 나서 국가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국가가 평생 고용과 연금을 약속했기 때문이다(Hurst and O’Brien, 2002).
이후 논의는 주로 2001년 봄과 2002년 여름에 베이징, 상하이, 그리고 두 개 성·시에서 진행한 조사에 기반하여, 성·시급 관료, 기업 관리자, 정책 분석가, 기타 관련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나의 분석은 더 넓은 차원에서, 연금 개혁을 비교 연구할 때 개혁 직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복잡한 개혁 조치를 관리할 능력이 제한된 국가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개발도상국과 전환기 경제체제 국가의 연금 개혁 비교 연구는 주로 연금 개혁 법안의 시기와 내용을 설명하고, 왜 일부 국가는 연금을 민영화하고, 다른 국가는 점진적 개혁을 선택했는지를 묻는 데 초점을 맞췄다(Brooks, 2002; Madrid, 2002a, 2002b; Müller, 1999; Nelson, 2001; Orentstein, 2000).
하지만 새 연금법이나 규정이 통과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묻는 연구는 거의 없었다.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국가가 새로운 연금 제도를 시행할 능력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정책 입안과 결과에 주목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과 전환기 국가에서는 국가의 행정 능력이 심각하게 제한되기 때문에, 국가 기관과 사회 세력 간의 광범위한 협상이 없으면 개혁이 실현되지 못한다.
정책 설계가 아무리 정교해도, 다양한 이익 집단과 행위자들이 새로운 연금 정책을 유지·저항·수정하려는 시도 때문에 정책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모이세스 아르세(Moisés Arce, 2001)는 페루의 연금 제도를 사례로 들어, 연금 개혁 이후 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었다. 1990년대, 새롭게 권력을 쥔 펀드 운용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하고 이를 관철하면서 제도는 중대한 조정을 겪었다. 따라서 연금 개혁은 초기 입법 내용을 크게 수정할 수 있는 새로운 이해관계자를 탄생시켰다.
연금 개혁은 비교 연구의 유망한 영역을 제공한다. 이 분야는 정책 경로가 고도로 정치화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연금 개혁은 금융 자유화나 무역 자유화 같은 구조적 개혁보다 정치적으로 달성하기가 훨씬 어렵다.
존 마일스(John Myles)와 폴 피어슨(Paul Pierson, 2001)은 연금 개혁이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을 연구하는 고전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한 번 선택된 정책이 이후 개혁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제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많은 개발도상국과 전환기 경제체제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연금 개혁이 경로 의존성을 따르지 않는 듯 보이고, 오히려 현상을 급격히 바꾸는 경우가 많다. 라틴아메리카와 동유럽 여러 국가는 국가가 보조하던 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조처를 했다.
그러나 문헌은 입법 결과에만 주목하고, 연금 관리에서의 정책 시행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제도적 설계, 규제 구조, 사회 세력 같은 유산적 문제들이 급진적 연금 개혁을 약화하거나 심지어 뒤집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중국 정치 연구자들에게는, 연금 개혁이 중앙과 지방 정부 간 이해 충돌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지방 정부의 자율성 정도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지만, 지방 정부가 산업 개발, 재정 징수, 사회 복지 관리에서 계획경제 시절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Shue, 1988; Oi, 1992, 1995; Shirk, 1993; Whiting, 2001).
케네스 리버탈(Kenneth Lieberthal) 등은 권한 하향이 많은 정책 분야에서 관리권한 중복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지방 정부가 중앙 부처의 운영 예산, 인력, 자원을 제공했기 때문에, 정책 집행은 지방 정부의 의사결정에 따라 좌우되었다.
따라서 정책이 지방 관료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앙 정부도 집행을 강제하기 어렵다.
중앙 정부가 지방 관료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중앙 정책이 지방에서 왜곡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중앙이 지방 관료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정도에 대한 견해는 갈린다.
예를 들어 오브라이언(O’Brien)과 리(Li, 1999)는 개혁 이후 농촌 관료들이 더 큰 자율성을 얻게 되어 중앙이나 사회 하층의 통제를 받지 않고 '선택적 집행'을 일삼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에딘(Edin, 2003)은 중앙 정부가 관료에 대한 평가·승진·징계 수단을 통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정책 집행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끈다고 평가했다.
어떤 정책이 '우선 정책'인지 사전에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웨드먼(Wedeman, 2001)은 중앙-성-현-향-촌의 다섯 계층 위임 대리 관계가 중국에서 정책 불이행을 '자연스럽게'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말, 베이징 지도자들은 연금 개혁을 국유기업 개혁 성공의 열쇠로 간주하여 '우선 정책'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연금 개혁은 여러 차례 연금 위기를 불러일으켜 사회 불안에 민감한 정부에 심각한 문제를 안겼다.
과장 없이 말하면, 중국의 연금 개혁은 선진 복지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현 정부에 치명적인 '제3의 궤도'를 제공했다.
이후 연금 개혁 논의가 보여주듯, 중국 연금 개혁의 결과는 정책 집행의 복잡성 때문에 단순히 성공이나 실패로 결론 내릴 수 없다. 중앙이 시작한 연금 개혁은 도시 정부에 수입 증대 기회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행정 부담도 떠넘겼다. 이는 중앙이 퇴직자에 대한 의무를 줄이려는 이익과 일치했다.
한편으로 중앙은 연금 관리 권한을 국유기업에서 도시 정부로, 성공적으로 이전해 개혁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 수준에서 연금 기금을 통합하겠다는 중앙의 반복된 선언과는 달리, 연금 관리 구조는 여전히 분산된 상태로 남았다.
중앙 입장에서 보면, 연금 개혁은 정책 목표 달성이라는 측면에서 성공했지만, 연금 관리의 심각한 결함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중국의 연금 정책 개혁
중국은 많은 개발도상국 및 전환기 경제체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은행 보고서가 제시한 일반적 추세를 따랐다. 이 보고서는 개발도상국과 전환국이 기존의 '현금 수급형(PAYG)' 제도를 대체하고, 공적 계좌와 개인 계좌를 결합한 방식을 채택해 사회 지출을 줄이고 임금 공제율을 높여 자금을 조달할 것을 촉구했다(세계은행, 1994, 1997).
중국의 연금 개혁은 대체로 세계은행의 정책 지침과 일치했지만, 다른 전환국들과는 출발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였다. 중국은 연금 개혁 이전부터 연금 구조가 국유기업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국유기업은 일종의 '미니 복지국가' 역할을 했고, 근로자들은 주택, 교육, 의료 등 기본 복지 혜택을 제공받았다. 이 복지 혜택은 퇴직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퇴직자들은 자신이 근무하던 기업을 통해 연금 소득과 의료 서비스를 의존했다.
1990년대 초까지, 약 10만 개 국유기업과 1억 명의 근로자, 그리고 빠르게 증가하는 퇴직자 집단이 연금과 의료 비용을 관리했다. 연금 수급자는 1985년 1,640만 명에서 2000년 3,880만 명으로 급증했다(중국 인력사회보장부, 2001).
1950년대 초부터 중국의 국유기업과 도시 집단기업 근로자들은 기본 의료, 산재, 출산, 퇴직, 사망 보험을 보장받았다. 1951년 노동보험조례는 남성은 60세, 여성은 50세가 넘고 일정 근무 기간을 충족하면 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기준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50~70년대 후속 규정들은 연금 자격을 집단기업 근로자들에게까지 확대했지만, 여전히 도시 주민만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연금 소득 대체율(퇴직자가 과거 소득 대비 수령하는 연금 비율)은 대체로 마지막 해 기본급의 80% 이상 수준이었다.
계획경제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 연금은 기업이 임금의 3%를 납부해 마련한 기업 연금 기금으로 충당되었다. 이 기금은 기업 내부(주로 노조)에서 관리했고, 퇴직자는 누적된 기금에서 연금을 수령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에서는 임금과 이윤이 국가에 의해 고정되었기 때문에, 연금 재정 책임은 결국 국가가 지게 되었다.
1980년대 산업 부문 개혁 이후, 기업들은 이윤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자체 예산으로 퇴직자 지원을 해야 했다. 개념상, 기존의 '현금 수급형' 자금 조달 방식은 유지되었지만, 이제는 국고 대신 기업 예산에서 지급했다.
퇴직자는 1980년 820만 명에서 1990년대 말 2000만 명을 넘어섰고(노동사회보장부, 2000), 국유기업은 심화된 경쟁과 수익 감소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금 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해 통합 조치(統籌辦法)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연금 징수와 지급을 기업 간 집합적으로 분리해, 퇴직자가 많은 대기업들의 부담을 경감시켰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일부 도시는 연금 통합제도를 시범 도입했다. 그러나 퇴직자의 복지 수준은 유지되었다.
중국 정부는 세계은행이 제안한 '3 기둥 모델(three-pillar model)'의 기본 원칙을 채택해 기존 현금 수급형 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대체하려 했다(세계은행, 1994).
1991년과 1995년 규정에 따라, 중국 정부는 지방 통합 기금과 개인 퇴직 계좌를 결합한 개정 모델을 도입했다. 고용주와 근로자가 임금의 일정 비율을 납부하여 현재 및 미래 퇴직자를 위한 연금 재원을 마련하게 했다.
이러한 임금 공제는 현존 퇴직자 복지를 지원하는 강제적 '공공 기둥'과 개인 계좌 기반의 강제적 '개인 기둥'으로 나뉘었다.
이 가운데 개인 기둥은 기존의 보편적 퇴직 복지('확정급여형')를 개인 저축액 기반('확정기여형') 복지로 전환하는 기본 정책 변화를 의미했다. 새 규정 도입 전 은퇴한 사람들은 개인 계좌에 저축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공공 기둥에서 연금을 수령했다.
세 번째 기둥은 선택적 민간 퇴직 보험으로, 1·2 기둥을 충족한 후 추가로 연금을 보완하려는 기업이 제공했다.
하지만, 이 3 기둥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은 여러 관리상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조건과 퇴직자 규모가 크게 다른 행정 단위(성, 지역, 현, 시) 간에 통합 기금을 어떻게 구축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통합 기금은 더 넓은 보험 가입 집단 내에서 위험 비용을 분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일부 지역 기금은 다른 곳보다 현저히 열악했다. 특히 동북부와 서남부처럼, 1940~60년대 설립된 국유기업과 퇴직자가 밀집한 지역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게다가, 개혁 이전 연금 정책의 두 핵심 요소인 퇴직 연령과 소득 대체율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중국 연금 개혁은 이 두 기준을 유지하되, 도시 정부가 지역 퇴직자 수와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사회보험료율을 계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퇴직자 1인당 10년간 평균 월 소득 수준의 급여를 보장해야 했다)
이에 따라 산정된 임금 공제율은 상당히 높았다. 규정상 연금 비용은 총임금의 20%를 넘지 않아야 했지만, 실제로 많은 도시에서 30%를 초과했다.
또한 개인 퇴직 계좌 납입금까지 포함하면, 일부 지역은 사회보험료율이 50%를 초과했다.
설령 기업이 이 세금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임금세를 징수하는 데 필요한 권력과 강제력은 많은 도시 정부 능력을 초과했다.
사회보험료는 공식 세금이 아니라 기관에 납부하는 '사회보험 기여금'이었기 때문에, 통상 기업 회계를 조사·감독할 수 있는 세무국이 아니라 별도의 사회보험 기관이 징수해야 했다.
설령 사회보험 기관이 충분한 정보와 권한을 갖춘다 해도, 중국의 행정 구조는 집단 행동 문제를 초래해 책임 회피를 부추겼다.
이 구조에서는 각 시·현이 임금세 징수를 느슨하게 하면서, 다른 도시나 성, 혹은 중앙 정부가 연금 부족분을 메워주기를 기대하게 했다.
1990년대 개혁 이후 중국의 행정 구조와 연금 통합
도시 정부는 성 정부에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해 지역 퇴직자에게 연금을 지급할 의무를 이행하려고 했다. 성급 정부는 중앙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이 자금은 각 도시의 연금 기금이나 성급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퇴직자에게 배분되었다.
1990년대 전반 동안, 중국 중앙 정부는 도시 정부가 상위 정부의 구제 지원에 의존하며 임금세 징수 노력을 게을리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연금 기금과 관리권을 성급으로 통합하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1991년 규정에서, 국무원은 각 도시가 자체 연금 기금을 포기하고 이를 성급 정부 관리로 이관할 것을 촉구했다. 이 규정은 부분적으로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아직 기본 연금 보험 기금의 성급 통합을 실시하지 않은 지역은 적극적으로 조건을 마련하고, 기존의 시·현급 통합 기금을 점진적으로 성급 통합으로 전환해야 한다."
1995년과 1997년에 마련된 공사(公私) 혼합 연금 자금 조달 메커니즘 관련 규정 역시, 각 성이 연금 통합과 관리 기능을 맡을 것을 독려했다. 이는 각 도시가 연금 관련 기능을 성급 정부로 이관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을 포함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제로 자체 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성급 정부는 네 곳에 불과하며, 이 중 세 곳은 사실상 성급 직할시인 상하이, 베이징, 톈진이다.
나머지 28개 성급 단위는 단지 "재분배 기금"이라는 명목상의 기구만을 설립했다. 이 체제에서는 성급 정부가 각 도시와 협상해, 일정한 금액이나 비율을 성급 정부로 이체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재분배 기금은 성 내 도시 간에 연금 징수액과 복지 혜택을 재조정하는 기능만 수행했을 뿐, 중앙 정부가 기대했던 것처럼 연금 기금을 성급 정부 내부에 공식적으로 집중시키지는 못했다(Yang, 2001).
2001년, 중앙 정부는 전국사회보장기금(NSSF)을 설립해 연금 복지 배분을 위한 자체 재정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앙 정부는 여전히 국가 예산을 통해 직접 자금을 공급하기보다는 국유 자산 매각을 통해 이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자금 조달의 딜레마
국가가 민간이나 지역 기반의 연금 기금 체계 위에서 국가 단위 연금 기금을 구축하려 할 때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면, 중앙 정부가 추진하는 '성급 통합'(즉, 성 단위로 연금 기금을 통합하는 작업)에 직면하여 지역 기반 연금 관리와 자금 조달 체계가 얼마나 끈질기게 지속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연금 개혁은 고용주와 근로자의 "납부"를 통해 노후 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총임금, 고용 인원수, 근로 시간, 임금률 등의 기본 데이터를 축소 보고할 유인을 가진다. 이 데이터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근로자 개인과 기업 관리자들인데, 이들은 연금 재원을 위해 임금세를 징수하는 당국을 상대로 정보를 은폐하거나 왜곡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반대로, 근로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용주의 허위 신고를 내부고발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기업 내부자가 국가 공무원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으며, 이들은 임금의 일부를 공제해 다양한 연금 제도 재원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연금 제도를 민영화하더라도, 기업 내부자는 개인 퇴직 계좌를 운영하는 금융기관에 쉽게 허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정보 비대칭성과 연금 관련 중요 데이터 조작 동기는 국가 내부에도 존재한다. 연금 개혁 초기에는 연금 의무 부담이 연금 징수액을 크게 초과했기 때문에, 정부는 반드시 개입해 재정 격차를 메워야 했다. 대개 이는 이미 심각하게 긴축된 국가 예산에서 추가 재정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만약 이러한 재정 지원이 장기화한다면, 중앙 정부는 임금세 징수자가 징수를 미루거나 축소 보고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임금세를 징수하는 기관이 여러 관할 구역에 분산돼 있기 때문에, 지방 기관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 지역이 더 많은 임금세를 징수해 전체 연금 시스템을 유지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 정부는 지방 기관들에, 임금세 징수에 대한 유인책을 마련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공 재정 수입과는 달리, 연금 기금용 임금세는 현재와 미래 퇴직자에게만 배분되는 전용 수입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지방 기관에 일부 세수 보유를 허용하는 식의 수익 공유 제도를 설계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또한, 임금세를 징수하는 기관과 연금 복지를 지급하는 기관이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도 정보 비대칭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집단이 징수한 임금세가 정부 수직 체계를 따라 상급 기관으로 이동한 후, 또 다른 기관에 이관되어 통합 연금 기금이 관리된다. 이어서 또 다른 기관이 최종적으로 퇴직자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이 '징수자', '관리자', '지급자'라는 각 기관은 자신이 보유한 자금 규모를 축소 보고하려는 유인을 가질 수 있다. 이 기관들은 자금 징수, 투자, 그리고 미래 연금 준비금을 직접 결정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연금 개혁 계획의 성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성급 및 기관 구조에서는, 주요 데이터를 은폐하거나 자금을 숨기려는 경향이 연금 개혁의 실행을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관료제의 구조 — 수직적, 수평적 관계, 지방 정부의 능력, 그리고 국가 차원의 통합 및 조정 능력 — 이 야심 찬 연금 개혁을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된다.
결국 연금 개혁을 위한 자금 마련이 초래하는 딜레마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중앙 정부는 막대한 연금 지출로 인한 예산 압박을 줄이려는 목표로, 고용주와 근로자에게 강제 연금 가입을 요구해 비용을 전가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중앙 정부는 새 강제 연금 제도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입을 징수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중앙 정부는 더 많은 현지 정보를 가진 대리인에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중앙 정부는 대리인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즉, 대리인의 행동이 중앙 정부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 대리인을 감독하고, 평가하고, 제재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중앙 정부는 심각한 자금 조달 문제에 직면했다. 중국 연금 개혁이 가져온 자금 문제는 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출처: 중국 노동사회보장부, 뉴스 보도, 1998~2002년(http://www.molss.gov.cn/news/) 2002년 6월 19일 자료.
중국 노동사회보장부(MOLSS)가 제공한 연금 징수 및 지급 공식 통계는 이런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표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기업과 근로자에게서 징수한 임금세가 연금 지급액을 초과하여 명목상 흑자를 기록했다. 2001년 누적 흑자는 1,050억 위안(2002년 환율 기준 약 27억 달러)에 달했다. 연금 지급액은 1998년 1,460억 위안에서 2001년 2,490억 위안으로 증가했지만, 이 증가는 표 1에 열거된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충당되었다.
첫째, "수입" 항목에는 개인 퇴직 계좌에서 전용한 자금이 포함되어 있다. 2002년에 인터뷰한 한 정보 제공자(22번)는, 1991년 이래 근로자들이 매년 약 500억 위안을 개인 계좌에 납부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지방 정부는 이 자금을 당기 퇴직자 연금 지급에 사용하는 데 써버렸다. 결과적으로 1억 명 이상의 근로자가 납부한 개인 계좌 자금은 현재 완전히 소멸한 상태다. 이른바 "공(空) 계좌" 문제는 중국 연금제도의 숨겨진 부채를 낳았고, 그 규모는 2조 위안에서 7조 위안 사이로 추산된다.
이처럼 막대한 미래 연금 부채(GDP의 25%~85%에 해당)는 중국의 상대적으로 이른 퇴직 연령과 높은 소득 대체율(최종 연봉의 70~85%)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방 정부가 각자의 연금 기금을 독립적으로 징수·관리하는 불균형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 정부는 지역 퇴직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무거운 책임을 외부에 넘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임금세 징수는 재정과 연계된 도시 정부에 추가 수입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정보 제공자 11, 86).
연금 기금의 '성급 통합'을 추진하려는 시도는 특히 징수 기반이 크고 부양해야 할 퇴직자 수가 적은 도시에서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한 성안에서도, 퇴직자가 적은 부유한 도시는 연금 기금에 흑자를 쌓았지만, 경제가 침체한 도시는 퇴직자 급여를 지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재정을 경험했다(정보 제공자 11, 86).
광둥성은 지난 20년간 중국에서 빠르게 성장한 지역 중 하나였고, 선전과 광저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8년 선전은 2만 3,400명의 퇴직자를 보유했고, 1999년 광저우는 36만 명의 퇴직자를 보유했다(MOLSS, 2000; Jiang and Lee, 1999).
반면, 2000년 현재 290만 명의 퇴직자와 수많은 파산 국유기업을 안고 있던 랴오닝성에서는 다롄이 상대적으로 부유했는데, 33만 5,000명의 퇴직자를 대상으로 19억 6,000만 위안의 연금을 징수했다고 보고했다. 이 금액은 모두 성 정부로 송금되지 않고, 다롄시는 20억 4,000만 위안을 퇴직자 연금으로 직접 지급했다고 밝혔다(노동사회보장부, 2001). 마찬가지로, 산둥성의 경제 성장 중심지인 칭다오시는 2000년에 19억 1,000만 위안의 연금을 징수하고 19억 3,000만 위안을 지급했다(노동사회보장부, 2001).
이런 공식 수치는 도시 정부가 노동사회보장부에 직접 보고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최소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강조한다. 즉, 상대적으로 부유한 도시는 연금 징수액과 지급액이 대략 균형을 이룬다고 보고할 강력한 동기가 있다. 도시 정부는 연금 기금의 흑자를 성 정부로 송금하면 이 자금이 다른 도시로 재분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노동사회보장부의 공개 통계 외에는, 각 도시별 연금 징수액을 알 수 있는 공개 자료가 거의 없다. 비록 이런 데이터가 국가 기밀은 아니지만, 지방 정부들은 이를 철저히 통제했다.
만약 한 도시가 연금 징수액이 목표치를 초과했다고 보고하면, 성 정부는 이 흑자를 다른 도시로 재분배하려 들 수 있다. 반대로, 목표치에 훨씬 못 미치는 징수 실적을 보고하면, 그 도시는 사회 안정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정보 제공자 21, 49, 81).
성급 정부, 더 정확히는 공산당 성급 위원회는 시장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간부 평가 체계가 있더라도(Landry, 2001), 지방 관료들은 성 정부의 연금 기금 통합 요구를 견제할 수 있는 정보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보 비대칭성만으로 도시 정부가 연금 관리권 이양을 꺼린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연금 관리권 이양은 막대한 비용과 정치적 위험을 수반했다. 특히 퇴직자에게 연금을 제때, 충분히 지급하지 못할 경우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성 정부가 도시 관료의 승진이나 좌천을 통제할 수 있다면, 왜 직접 명령해 국무원의 지침을 따르게 하지 못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1998년 중앙 정부가 대형 국유기업 연금 기금을 성급 정부로 이관하려 했던 사건을 살펴봐야 한다.
1990년대 초, 은행, 보험, 석유, 광산, 철도 등 전국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국유기업들은 자체 연금 및 사회보험 기금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1990년대 말까지 전국적으로 11개의 이런 연금 기금이 운용되었다. 1997년 말, 이들 기업은 1,390만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420만 명의 퇴직자를 관리했다(노동사회보장부, 2000). 이들의 연금 기금은 1997년에 356억 위안을 징수하고, 306억 위안을 지급했다. 다시 말해, 대형 국유기업 연금 기금이 전국 연금 임금세 총액의 26% 이상을 차지했다. 부문별 연금 기금을 관리하는 중앙 정부 기관들은 비교적 낮은 납부율로 자사 직원들에게 후한 연금 복지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쓰촨성에서는 일반 퇴직자의 평균 연금이 월 400위안이었지만, 국유 대기업 퇴직자는 월 800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정보 제공자 49). 상하이에서도 산업 통합 기금에 가입했던 기업 퇴직자들은 평균보다 30~100% 높은 연금을 수령했다(Jiang and Lee, 1999).
한편, 이런 국유 대기업들은 임금의 4~5%만 연금 보험료로 납부했고, 다른 일반 기업들은 20% 이상의 비율로 납부해야 했다. 1998년, 중앙 정부는 부문별 연금 격차를 줄이려 하고, 부문 기금을 성급 정부로 이관하려 했다. 9월 1일, 공식적으로 이들 기금은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문 기금 관리자들은 통합 직전에 연금 기금을 대거 소비했다. 마지막 순간에 복지 혜택을 늘리고, 수십만 명의 신규 조기 퇴직자를 등록시켰다(赵和徐, 2000). 1998년 18개월 동안, 약 80만 명의 조기 퇴직자가 새로 등록되었고, 이 중 55%가 30~40대였다. 재정 상황도 악화하였다. 부문 기금 147억 위안 중, 겨우 40억 위안만이 성급 계좌로 넘어갔다(Jiang and Lee, 1999). 중앙 정부, 특히 당시 총리였던 주룽지(朱镕基)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통합을 밀어붙이면, 관리 주체들은 기금 이관 직전에 자금을 소진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확장하면, 도시 정부도 연금 기금 '성급 통합' 압박을 받을 경우, 같은 방식으로 기금을 낭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문제는 "연금 기금의 소유권"에 관한 것이다. 이 기금에는 다양한 잠재적 청구자가 얽혀 있다. 즉, 기존 퇴직자, 개인 계좌에 기여한 근로자, 연금 기금을 자체 수입으로 보고 싶은 도시 정부가 모두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연금 기금 소유권의 불명확성만으로 도시 정부가 먼저 기업에서 임금세를 징수하려는 동기를 설명할 수 없다. 도시 정부는 상급 기관이 징수한 임금세를 빼앗아 갈까 봐 저항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관리권을 성급 정부로 넘기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록은, 도시 정부가 연금 관리권을 보호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움직였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퇴직자와 그들의 정책 실행에 미치는 영향
정치경제학 관련 기존 문헌은, 개혁 이전 체제의 수혜자들이 보유한 자원과 개혁 추진 정도가 반비례한다고 지적했다(Haggard와 Kaufman, 1995). 즉, 개혁 반대자가 충분한 자원과 조직력을 갖춘 경우, 정책 개혁은 영구히 정체되거나 점진적으로만 추진된다.
비록 개발도상국과 전환국의 연금제도는 고령 인구의 일부만을 커버하지만, 기존 제도의 수혜자들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동시에 조직력이 강한 집단이었고, 이들은 개혁에 반대하거나 지연시킬 가능성이 컸다. 기존 연금 제도에서 직접 금전적 이익을 얻는 집단 외에도, 금융 이익집단, 정당, 노조, 상공회의소 등 다양한 세력이 연금정책 변화(정책 내용과 시행 모두)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연금 개혁 비교 연구는 연금 정책 변동 폭이 정치제도 변수(특히, 입법기관, 행정부, 사법부 등 '거부권' 행사 기관의 수)와 반비례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Bonoli, 2000; Orenstein, 2000). 기관이 많을수록 연금 민영화와 같은 급진적 정책 변화는 적게 나타났다.
또한, 기존 연금제도 안에는 국가와 특정 사회집단 간 암묵적 '사회계약'이 내재하여 있었다. 연금 개혁은 이러한 사회계약을 변경하려는 국가의 시도였고, 이는 종종 정권의 합법성 근거였던 사회 집단을 위협했다(Myles and Pierson, 2001).
따라서, 퇴직자는 단순히 투표권을 가진 존재일 뿐 아니라, 과거 전쟁이나 독립 투쟁에 기여하거나, 빈곤과 결핍을 견뎌낸 세대로서 사회적 존경을 받는 집단이었다.
중국에서는 국유기업 근로자들이 기존 제도의 명백한 수혜자였고, 이들은 예상대로 개혁에 반대했다. 중국의 연금 개혁과 더 광범위한 국유기업 개혁은 근로자들이 기업이 제공하던 보장된 복지를 잃게 했고, 그 결과 이들은 퇴직 소득과 기타 복지에서 시 정부에 의존하게 되었다. 중국 국유 부문 퇴직자들은 전국적 혹은 지역 간 조직 네트워크가 거의 없었지만, 여전히 연금정책실행에 제약을 가했다.
1990년대 초 이후, 수십 개 도시에 걸쳐 퇴직자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복지금 체불, 파산기업 퇴직금 분배 불공정 등을 이유로 항의했다(Hurst and O’Brien, 2002). 이러한 항의는, 1990년대 대규모로 도시 퇴직자 대열에 합류한 수백만 명에게 충분한 연금 소득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개혁 실패를 보여줬다.
중국은 정치적 조직활동에 대해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퇴직자들은 단순한 이해집단으로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정부는 연금개혁을 추진할 때 퇴직자들의 선호를 반드시 고려해야 했다. 중국 퇴직자는 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가 보유한 조직 자원이나 법적 수단을 가지지 못했다(Frazier, 2004).
그러나 퇴직자들은 법적·준법적 경로를 활용해 불만을 표출하고 권리를 주장했다(Lee, 1998; Thireau와 Hua, 2003; Cai, 2002). 이들은 조직적 집단 행동 외에도, 국가가 고령층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는 데 대한 사회적 반감을 이용했다. 중국 퇴직자는 이전 세대의 산업 노동자로서, 사회주의 공장에서 고용 안정과 복지를 누렸지만, 젊은 세대에 비해 낮은 임금과 물질적 결핍을 겪었다.
이러한 배경은 연금에 대한 광범위한 중요성과 연금개혁에 대한 강한 반대 여론을 설명해 준다. 윌리엄 허스트(William Hurst)와 케빈 오브라이언(Kevin O’Brien, 2002)은 퇴직자 및 해고노동자 인터뷰를 통해, 연금이 실업수당이나 의료보험보다 훨씬 더 확고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연금이 "국가와 기업이 근로자의 오랜 헌신에 대해 상징적으로 보상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실업급여 체불에 항의하는 것보다, 퇴직자가 연금 체불에 항의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정당성을 가졌다.
또한, 연금 수급자들은 국가가 연금 제공에 강력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활용할 수 있었다. 1996년 광저우와 상하이 도시 거주자 대상 여론조사(Lee와 Wong, 2001)에서는, 90%~96%가 "국가는 광저우/상하이 노동자들에게 연금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거나 강하게 동의했다.
반면, "연금은 개인 문제이며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광저우 응답자의 45%, 상하이 응답자의 32%만이 동의했다. 허스트와 오브라이언(2002), 그리고 리와 웡(2001)의 연구는, 연금이 도시 주민에게 물질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를 모두 지니며, 따라서 국가가 제공하는 연금에서 개인적 저축 기반으로 전환하는 연금개혁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입증했다.
이처럼 퇴직자는 동원될 힘을 지녔고, 연금 체불에 대한 요구를 제기했다. 이는 도시 정부가 연금 행정업무를 포기하려 하지 않은 이유를 일정 부분 설명해 준다. 도시 정부는 지역 퇴직자들을 달래기 위해 연금 복지를 직접 늘리려 했고, 최소한 외형상으로라도 복지 증대를 선언했다.
아래 표에는 1998~2000년 동안 각 성별 퇴직자 수와 1인당 연금 지급액 변화를 보여준다. 연금 재정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연간 1인당 연금액은 이 기간에 20% 이상 증가했다. 이는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저인플레이션 시기였고, 전국 퇴직자 수가 3,440만 명에서 3,770만 명으로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다른 조건이 일정할 경우 1인당 연금은 오히려 감소했어야 정상이다.
이러한 연금 증가의 주요 동력은 시·현급 도시 정부가 연금 복지를 지역(상승하는) 1인당 소득 수준과 연동시킨 데 있다. 도시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아니라 소득 상승에 맞춰 퇴직자 연금을 올렸다.
비록 공식 통계 시스템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지만,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도시 정부들이 각자 관할 도시의 연금 수급자 복지 수준을 지속적으로 인상했으며, 이에 따라 중앙 정부 관료들은 상당한 불만을 느꼈다(정보 제공자 89).
또한, Whiteford(2003)가 정리한 1999년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국 동북부 '러스트 벨트' 지역 성들이 중앙 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사회보장 보조금을 수령했다. 사회보장 보조금은 연금, 의료보험, 실업보험 비용을 충당하는 데 사용되었다.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지린성은 중앙으로부터 각각 전국 보조금의 14.0%, 11.9%, 5.9%를 받았고, 이들 지역의 국유기업 퇴직자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8.6%, 3.0%, 5.2%였다(Whiteford, 2003: 57).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만으로 중앙 정부가 보조금을 퇴직자 불만이 큰 성으로, 의도적으로 이동시켰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비록 동북 지역 도시들에서 항의가 특히 두드러졌지만 말이다. 남서부 지역인 쓰촨성과 충칭시 역시 1990년대 말 연금 관련 시위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 두 지역은 중앙으로부터 받은 사회보장 보조금이, 국유기업 퇴직자가 차지하는 전국 비중과 대체로 일치했다. 충칭은 전국 사회보장 보조금의 3.2%를 받았고, 국유기업 퇴직자 비율은 2.4%였으며, 쓰촨성은 각각 4.6%와 4.9%였다.
확실한 것은, 1998~2000년 동안 중앙 정부의 보조금 이전이 동북 성들의 연금 지급 능력을 개선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 2에 따르면, 이 시기 동안 동북 성들의 1인당 연금 지급액은 21%에서 28%까지 증가했다. 결국, 퇴직자와 시위 위협은 도시 정부가 국가 연금법을 어떻게 집행하는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런 압력이 있다고 해서 도시 정부가 항상 제때, 충분히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도시 정부가 지역 연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떤 심각한 구조적 제약에 부딪혔는지를 이해하려면, 도시 정부 관료 조직의 구조와 이들이 그런 제약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료 구조의 제약 요인
중국 관료기구의 일반 규칙에 따르면, 성급 노동사회보장부(MOLSS) 인사 배치는 중앙 노동사회보장부가 아니라 성 정부가 결정했다. 또한 성급 노동사회보장부의 연간 예산은 인사 배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정보 제공자 11, 89).
특정 성급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중앙 정부 부처의 우선순위와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성 정부는 제한된 행정 자원을 연금 규정 집행이 아닌 다른 행정 기능에 배분했다.
베이징에 있는 한 공식 정보 제공자에 따르면, 성급 노동사회보장부는 평균 100명의 공무원과 직원을 보유했다(정보 제공자 11, 18, 49, 86). 성급 인터뷰에서도 이 수치가 확인되었다. 이들은 연금 보험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사회보험과 노동·고용 정책까지 담당했다. 부서별로 5명 정도만 있어도 인력 배정이 '충분한' 것으로 여겨졌다.
구체적 사례로, 동북 지방인 지린성 노동사회보장청 감사과는 2001년에 단 5명의 관료로 약 50개 성급 기업(7~8만 명 근로자)의 노동법 준수 여부를 감시했다. 이는 연금 징수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노동규정 감독을 포함했다. 지린성 연금보험과의 또 다른 5명의 관료는 이들 기업 퇴직자의 퇴직 심사와 관리를 담당했다.
결국 지린성과 다른 성들도, 성급으로 연금과 사회보험 기금을 징수하고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극심한 자원 부족에 시달렸다. 도시 정부 내부에서도 비슷한 관료적 문제는 만연했다. 시 정부가 노동사회보장국 인사 및 예산을 직접 관리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대체로 도시와 그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도시 사회보험국 직원 수는 성 정부보다 많았지만, 업무량은 여전히 엄청났다. 이론상, 이 관료들은 도시 내 모든 기업의 임금세 납부 이행 여부를 감독해야 했다.
예를 들어, 2001년 쓰촨성 성도 청두시의 사회보험국은 약 100명의 인원으로 4,000개 기업을 관리했다(정보 제공자 42). 후베이성의 한 현급 노동보험국은 1999년에 단 15명의 인력과 연간 예산 5,000위안으로 구 산업기지 내 2,000명 이상의 퇴직자를 관리했다(Xu, 1999). 상하이는 행정등급이 성급에 해당하지만, 2002년 사회보험국 본청 직원은 40~50명, 20개 구청은 각각 20~30명 수준이었다(정보 제공자 24). 800만 노동가능 인구를 관리하기에는 이마저도 부족했다. 특히 비국유 부문(집단기업, 민간기업, 외자기업 등)은 연금 징수와 관리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상하이에서는 800만 노동자 중 430만 명만이 연금 및 기타 사회보험에 가입했다.
이는 소규모 민간기업이 여전히 지방 노동사회보장국 통제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 근로자들은 사회보험법 위반을 신고하면 해고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다른 경우에는 임금 공제를 거부하기도 했다(Chen H., 2002; 정보 제공자 21).
결국, 관리자도 노동자도 연금 기금에 기여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소규모 기업은 규모가 작고 노동자 이동성이 높아 감독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집중된 국유기업이나 도시 집단기업이 감시 대상이 되기 쉬웠고, 지방 사회보험국 직원들도 이들 기업을 주로 단속했다. 반대로 민간 부문은 세금 및 사회보험료를 강제 징수하면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였기 때문에, 지방 관료들은 이를 꺼렸다. 특히 광둥성과 푸젠성 등 대만·홍콩 자본이 몰린 지역은 사회보험 기피로 악명이 높았다(정보 제공자 11; Chen T., 2002).
결국, 연금 징수 관료들은 인력 부족, 예산 부족, 정보 비대칭이라는 이중 삼중의 제약에 시달렸다. 이들은 중앙 노동사회보장부 소속이지만 인사와 예산은 지방 정부가 장악했다. 또한 민간 부문은 정보 은폐에 유리했고, 국유 부문은 정보 접근이 쉬웠지만 기업 자체가 재정 파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과 지방 정부 모두에 있어, 세금 납부가 연금 납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다.
이처럼 극복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와 연금 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도시 정부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임금세를 징수할 수 있었을까?
1998년 이후, 도시 정부는 지역 퇴직자 연금 지급 책임을 꺼리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의 '미니 복지국가'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기업은 임금세를 국가에 납부했지만, 여전히 자체적으로 퇴직자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도시 정부는 대형 국유기업 관리자가 직접 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필요시 은행 대출을 알선해 퇴직자 항의를 방지했다. 또한, 도시 정부는 지역 연금기금을 투자에 활용하려고 유인했다. 기업은 연금 기금을 기부하되, 실제 필요한 복지 비용만 차감하여 송금했다(정보 제공자 18).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연금기금 100만 위안을 체납했더라도, 실제로는 60만 위안만 송금하고 나머지 40만 위안은 퇴직자 복지 지급에 충당했다. 이러한 관행은 중국 연금제도의 만성 적자를 초래했고, 1990년대 연금 체불에 따른 대규모 퇴직자 시위로 이어졌다.
1998년, 중앙 정부는 기업이 직접 퇴직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했다. 기업은 오히려 기뻐하면서 이 규정을 준수했고, 부담을 줄였다. 이제 퇴직자는 도시 정부가 운영하는 연금 기금에서만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도시 정부는 막대한 재정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 변화는 도시 정부가 지역 기업에서 연금 보험료를 적극적으로 징수하고 자체 보유하도록 유도했다.
1999~2000년 국가정책회의와 공산당 제15기 4중전회 등에서도 "두 가지 확보"를 강조했다. , 사회보험기관을 통한 실업·연금 복지 지급과, 지방 정부 관료가 실업자와 퇴직자에게 제때, 충분히 복지를 지급할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신화사, 2000a, 2000b). 도시 정부 관료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정보 제공자 48, 82).
결국, 1999년 말 기준으로 지역 사회복지기관을 통한 연금 수급자는 전체의 48%였으나, 2001년 말에는 98%로 급증했다. 수급자 수는 1,380만 명에서 3,120만 명으로 늘어났다(신화사, 2002). 비록 정부는 이를 '성공적인 개혁'으로 홍보했지만, 이 수치는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기업들이 연금 지급 책임을 지방 정부로 전가하고자 했던 동기 덕분에, 연금 지급 기능이 지방 정부로 빠르게 이전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1999년, 중국사회과학원이 4개 성 21개 도시의 416개 국유기업을 조사한 결과, 평균 97%의 퇴직자가 지방 정부로부터 연금을 수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규정이 도시 정부에 연금 복지 지급 책임을 부여한 이후, 각 도시는 다양한 규제 수단을 활용해 지역 기업들이 연금 보험료를 지역 연금기금에 송금하도록 강제했다. 비록 그 이행 수준은 제한적이었지만, 도시 정부는 기업들을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중국 기업들은 영업허가증, 세금등록증, 공공위생증명서, 가족계획증명서(한 자녀 정책 준수 증명) 등 각종 서류를 반드시 갱신해야만 영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런 다양한 허가증 발급은 여러 지방 기관이 관할했는데, 노동사회보장부는 각 부처에 지시해 사회보험료를 체납한 기업에 대해 허가증을 취소하거나 갱신을 거부하게 했다(정보 제공자 11, 17, 18). 물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관리비'나 부수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기관들은 허가증과 무관한 이유를 들어 발급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많은 도시 관료는 최소한 지역 퇴직자 일부를 부양할 수 있을 만큼 연금 보험료를 확보하려고 애썼다(정보 제공자 82). 약 절반의 성 정부는 더욱 논란이 많지만 널리 알려진 조치를 채택했다. 바로 '세금 징수 대행' 방식을 통해, 지방 세무기관이 기업으로부터 연금과 사회보험료를 징수하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중국재정보》, 2001).
이 제도는 지방 세무기관이 노동사회보장국보다 기업의 노동력 규모와 총임금액에 대한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의존했다. 세무기관은 기업이 세금 신고서에 기록한 자료를 사회보험료 신고서와 대조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고용주들은 사회보험료 신고서에서 고용 인원수나 총임금을 축소 신고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정보 제공자 86).
그러나 사회보험 기금이 여전히 도시 단위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 정부가 도시 정부로부터 기금을 성급 연금기금으로 이관받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지방 당국은 '공익적 정보'를 활용해 체납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많은 지방 사회보험국은 '내부 고발' 전담 부서를 두어, 근로자나 제삼자로부터 연금 보험료를 체납한 기업을 신고받았다. 시 정부는 지역 기업들의 체납 사실을 중앙 TV 방송을 통해 보도하게 하여,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정보 제공자 13, 17, 18; Liao, 2002). 전국적으로도, 노동사회보장부는 2001년 가을에 연금 보험료 1,000만 위안 이상을 체납한 20개 기업 명단을 발표했다(신화사, 2001). 2002년 초에는 추가로 33개 기업 명단을 발표했고, 이번에는 각 기업의 체납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노동사회보장부는 이들 기업이 "납부 능력이 있음에도 기본 연금 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노동사회보장부, 2002).
결론
중국 도시 정부는 거의 공개적으로 중앙 정부의 연금 기금 이관 규정을 위반했고, 여전히 연금 기금 통제권을 손에 쥐었다. 도시 정부가 연금 관리와 통합에 대해 반발하면서도 대체로 중앙의 의도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이는 중앙 정부가 지방 수준에서 국가 정책을 집행할 능력이 부족함을 더욱 명확히 보여줬을 것이다.
1990년대 초 제정된 규정이 연금 관리를 국유기업에서 도시 정부로 이관하라고 요구했을 때,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도시 정부가 급증하는 지역 퇴직자에게 연금을 제공할 책임을 떠맡을 것이라고 기대할 이유는 거의 없었다. 비록 지금도 도시 정부가 퇴직자의 연금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켰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도시 정부가 지역 기업으로부터 임금세를 징수해 연금을 제공하려 한 긴급성과, 연금 복지를 반복적으로 인상한 사실은 정책 집행 과정의 미묘한 변화를 보여준다. 즉, 관료 구조와 사회적 압력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지방 정부의 선호도가 변했다.
사회적 압력은 구체적으로, 연금 체불에 시달린 퇴직자들이 공공질서와 공산당 정권의 통치 능력에 위협을 가했다는 점에서 나타났다. 추상적으로는, 중국 시민들이 국가가 제공하는 연금에 매우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났다. 그러나 연금 항의 위협만으로는 도시 정부가 왜 연금 기금과 관리권을 고집스럽게 지키려 했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퇴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도시들조차 연금 기금을 성급 통합하려는 시도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현상은 행정 구조와 개혁 유산에서 기인한 제도적 요인으로 설명해야 한다. 재정권과 다른 행정 임무의 분권화, 그리고 지역 기업에 대한 감독권 이양은 도시 정부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을 발전시키게 했다. 이러한 능력은 원래는 과중하고 과도한 임금세를 요구하는 연금 제도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도시 연금기금의 상당 부분은 다른 용도로 전용되었지만, 도시 관료들은 연금 개혁이 복지 지급 책임을 완전히 도시 정부에 전가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다. 연금 개혁과 기타 구조적 개혁은 새로운 이해관계자들을 만들어냈고, 이들은 개혁 내용 자체를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 결과, 중국 도시 정부는 연금 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고자 선택적으로 정책을 집행했으며, 동시에 중앙 정부의 개입을 유도해 연금 지급 위기를 피하려고 했다. 결국, 국가가 공적 연금 재정에서 철수하려 한 개혁은 오히려 국가가 연금 관리에 다시 개입하게 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지방 차원에서의 국가 역량이 향상되었는지 약화하였는지를 논의하려면, 사회적 압력과 관료 구조가 중앙의 개혁 시도에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많은 나라에서는 지방 행정 단위가 국가 차원의 구조 개혁을 집행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Snyder, 2001; Wibbels, 2001; Jenkins, 1999). 따라서, 국가의 역량과 중앙 정부가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은 지방 정부가 가진 자원, 인센티브 구조, 그리고 이들이 지역 사회 세력과 맺는 상호작용에 의해 중대한 영향을 받는다.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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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W. 프레이저(Mark W. Frazier)는 미국 뉴 스쿨(The New School)의 정치학 교수이며, 인도 중국 연구소(India China Institute)의 공동 소장이다. 연구 분야는 중국의 노동 및 사회 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의 도시화, 이주 및 시민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연구한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