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그림자 아래 치러진 캐나다 총선

[번역자주] 28일 진행된 캐나다 총선에서 현 총리인 마크 카니(Mark Carney)가 이끄는 자유당이 보수당을 누르고 승리했다자유당은 관세 폭탄으로 캐나다를 위협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비판을 핵심 기조로 총선을 치뤘다애초 경제 위기로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물러나는 등 자유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총선 당일에도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말하는 등 자극하자 캐나다 국민들이 다시 자유당으로 집결했다.

결국 자유당은 하원 343석 중 168석을 확보했으며보수당은 144석에 그쳤다퀘벡블록당은 23신민주당(노동당 성향)은 7석을 확보했다.

총선 직후 마크 카니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통화를 통해 캐나다와 미국이 독립적이고 주권을 가진 국가로 상호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두 정상이 동의했다고 캐나다 총리실은 밝혔다.

출처: 마크 카니 페이스북

캐나다에서는 오늘(4월 28조기 총선이 실시된다이번 총선은 집권 자유당 정부의 새 당 대표가 된 마크 카니 신임 총리가 소집한 것이다자유당은 수년간 저스틴 트뤼도의 지도 아래 있었지만그는 2024년에 인기가 급락하고 정부 지도부 내부의 분열이 심화되면서 사임했다그 뒤를 이은 당내 선거에서 카니가 당권을 넘겨받았다.

마크 카니는 은행가 출신 정치인의 전형이다그는 골드만삭스에서 13년간 일한 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이어서 영국 중앙은행 총재직을 7년간 맡았다해당 직책에서 물러난 뒤 그는 정치 경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야심가에게는 행운이 따르기 마련이고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하자카니는 강경한 민족주의 노선을 내세우며 자신의 정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야당 보수당은 피에르 폴리에브(Pierre Poilievre) 대표 체제 아래 2023년 여름부터 2025년 초까지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러나 트럼프의 허세 섞인 발언 이후카니는 자유당에 유리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특히 보수당이 트럼프의 발언 이후에도 트럼프주의’ 정책 노선을 고수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트럼프가 캐나다의 주권을 끝장내겠다고 공공연히 말한 이후였기 때문이다카니는 이런 상황 속에서 노골적으로 캐나다 민족주의에 호소했고이를 통해 노동당 성향의 신민주당(New Democrats)과 퀘벡 민족주의 성향의 퀘벡블록당(Bloc Quebecois)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의 상당수를 자기 편으로 끌어모을 수 있었다.

여러 면에서 카니는 캐나다의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와도 같다드라기가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계속해서 지도력을 기대받았듯카니 역시 그런 존재다두 사람 모두 골드만삭스 출신이며모두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고모두 자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드라기는 유럽의 영웅이었고이제 카니는 캐나다의 영웅이 된 셈이다일부 국가들에서는 지배계급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결국 돈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민족주의적 반()트럼프 담론과 더불어카니는 국가 경제 문제 해결책으로 흔히 쓰이는 신자유주의 경제 공식을 채택했다감세와 정부 지출 삭감이다카니의 경제적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필자의 과거 글을 참조하라.

마크 카니: 가치인가, 가격인가?

그러나 문제는 산적해 있다캐나다 경제의 현 상태와 백악관의 광란을 고려하면카니가 승리하더라도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G7 중 캐나다는 GDP와 인구 측면에서 가장 작지만영토 면적에서는 세계 2위이며 해안선 길이도 세계 최장이다캐나다는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위치해 있어미국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무역에 이상적인 지리적 위치를 갖고 있다캐나다는 에너지 자립국으로고품질 우라늄 매장량 세계 1확인된 석유 매장량 세계 3위이며천연가스 생산량은 세계 5위다비료 원료로 쓰이는 포타시(potash)의 최대 매장량을 포함해전 세계 인증 삼림의 3분의 1, 지표수의 5분의 1이 캐나다에 있다또한 재생에너지 기술에 사용되는 코발트흑연리튬기타 희토류 원소 자원도 풍부하다.

이러한 비교우위에도 불구하고캐나다의 GDP 성장률은 오랫동안 G7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구매력 평가 기준으로는 세계 16위에 불과하다이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진 나라라면 더 높은 산출량을 기록했어야 마땅하다그러나 캐나다의 자본가 계층은 (에너지 부문을 제외하고는생산적 투자와 노동생산성 향상에서 뒤처지고 있다.

경제 성장은 거의 전적으로 인구 증가 때문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 캐나다는 G7 국가들 중 가장 빠른 인구 성장률을 기록했다연평균 1.1%의 인구 증가율은 G7 전체의 연평균 인구 증가율인 0.5%의 두 배가 넘는다전체적으로 보면캐나다의 인구는 30% 증가한 반면, G7 전체는 고작 11.5% 증가했을 뿐이다인구 4천만 명 규모의 국가에서 1년 만에 100만 명이 늘어나는 일은 전례가 없다그러나 실질 1인당 GDP로 측정한 캐나다인의 생활 수준은 2014년에 비해 2024년에 거의 오르지 않았다지난 10년간 생활 수준이 정체된 것이다.

그 이유는 생산성 증가의 급격한 둔화 때문이다팬데믹 이전 10년 동안 캐나다의 민간 부문 생산성은 연평균 1.2%라는 준수한 속도로 증가했다그러나 2019년 이후부터는 생산성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고이로 인해 캐나다는 주요 선진국들 중 가장 부진한 성과를 보인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캐나다의 재화 생산 산업 내에서 생산성 증가는 둔화된 것을 넘어 역전되기까지 했다그 결과팬데믹 이후 캐나다의 재화 부문은 전체 생산성 증가에서 매년 평균 0.4%포인트를 깎아 먹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생산성 증가의 붕괴를 초래한 주된 이유는 경제의 생산 부문에 대한 투자 증가가 제로에 가까워질 정도로 둔화되었기 때문이다캐나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제프 매코맥(Geoff McCormack)이 지적했듯이, “수익성 악화부진한 자본 축적제한된 설비 가동률낮은 고용과 낮은 실질임금 증가율을 고려하면 실질 GDP 성장 역시 약세를 보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대신 캐나다에서는 주택 시장에서 신용에 의존한 붐이 일었다인구 4천만 명에 불과한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 중 하나지만놀랍게도 선진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평균 주택 가격은 지난 20년 동안 세 배로 치솟았고높은 주택 담보 대출 부채는 소비 지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투자율이 하락한 배경에는 캐나다 자본의 수익성 급락이 있다캐나다의 이윤율 궤적은 언제나 원유 가격에 크게 좌우되어 왔다. 1990~92년 '캐나다 대침체' 이후 13년 동안 캐나다 자본의 이윤율은 상승세를 보였다그러나 2005년 정점을 찍은 뒤유가 하락과 함께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고결국 2020년 팬데믹 경기침체 국면에서 바닥을 찍었다.

출처: EWPT 7.0 series, AMECO, author

1993년부터 2005년까지 자본의 이윤 총액은 142% 증가했다그러나 2005년 이후 2019년까지는 정체 상태에 빠졌으며이 전체 기간 동안 증가율은 고작 1.5%에 불과했다.

이제 캐나다의 기업 부문은 부채 상환 비용에 짓눌리고 있다전체 기업 소득의 절반 이상이 대출의 이자와 원금 상환에 쓰이고 있다캐나다에 상장된 기업 중 약 25%는 이른바 '좀비 기업'으로 간주될 수 있다이들은 지속적으로 자사의 미지급 부채 이자조차 감당할 수 있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는 석유와 천연가스기타 광물 자원 생산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따라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화석연료 생산 중단의 동력은 존재하지 않는다이전 자유당 총리인 저스틴 트뤼도는 몇 년 전 텍사스의 석유업계 인사들 앞 연설에서 이를 노골적으로 말했다. “어느 나라도 지하에 1,730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는 걸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전 세계 인구의 0.5%에 불과한 캐나다가 지구가 남긴 탄소 예산의 거의 3분의 1을 소모할 계획인 것이다캐나다는 2050년까지 설정된 순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물론 다른 주요 경제국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트럼프는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에 대해 관세 인상을 발표했으며더 광범위한 관세도 위협하고 있다캐나다는 미국에 철강(112억 달러 규모브라질멕시코한국독일을 제치고 1)과 알루미늄(95억 달러)의 최대 공급국이다트럼프는 미국이 캐나다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캐나다는 나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캐나다가 자동차를 만들어 주는 걸 원하지 않는다우리가 직접 차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미국의하나의 주로서라면 아주 잘 굴러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티프 매클럼은 미국의 관세가 캐나다를 경기침체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관세의 범위와 지속 기간에 따라 경제적 충격은 심각할 수 있으며불확실성만으로도 이미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캐나다 담당 디렉터 토니 스틸로와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데이븐포트는 미국이 세계 각국에 부과하는 높은 관세는 세계 수요를 크게 위축시키며 캐나다의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옥스퍼드는 미국의 대외 관세가 캐나다의 수출도 약화시키는 한편, “무역전쟁과 만연한 불확실성은 민간 투자를 마비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옥스퍼드는 2025년 2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GDP가 정점 대비 1.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또 2026년 중반까지 캐나다 주택 가격이 8~10% 하락하고, 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올해 말까지 실업률이 7.7%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장기적으로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 GDP 성장률이 연평균 1.9%에 머무를 것이라며무역전쟁이 확대되고 보호주의 장벽이 높아지는 더 나쁜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이 연 1.1%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미국과 가졌던 기존의 관계즉 경제 통합의 심화와 긴밀한 안보·군사 협력을 기반으로 했던 관계는 끝났다언젠가 우리는 안보와 통상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협상할 시점을 맞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디로 이어지든 말이다.

[출처Canada: election under the shadow of Trump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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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자유당 총선 관세 총리 보수당 트럼프 마크 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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