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양당의 적대적 공생 구조”에 맞선 “녹색·진보정치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내걸고 6.3 지방선거에 나선 신호등연대(노동당·녹색당·정의당)가 64명의 후보 가운데 7명의 당선자를 냈다(4일 오후 1시 10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 현황 기준). 후보는 광역단체장 2명, 광역의원 3명, 광역비례 20명, 기초단체장 4명, 기초의원 30명, 기초비례 5명으로 구성됐다. 이른바 ‘보수 텃밭’으로 불려 온 경북 안동에서는 녹색당 허승규 후보가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2012년 녹색당 창당 이후 첫 공직선거 당선이다. 정의당에서는 기초의원 6명이 당선됐다. 광역의원 2명과 기초의원 7명을 배출했던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 비해 3명이 줄어든 결과다. 지난 대선에서 0.98%를 득표했던 권영국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1.03%를 얻어 3위를 기록했다.
지난 5월 19일, 신호등연대 공통공약 발표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류민.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 모두 51명의 후보를 냈다. 당선자 6명은 모두 기초의원으로, 전남 목포시의원 마선거구 최현주 후보와 사선거구 백동규 후보, 영암군의원 다선거구 김기천 후보, 무안군의원 나선거구 김미경 후보, 강원 춘천시의원 라선거구 윤민섭 후보, 인천 제물포구의원 나선거구 김종호 후보가 의회에 진입했다. 최현주 후보는 1위, 윤민섭·백동규·김기천 후보는 2위, 김종호 후보는 3위, 김미경 후보는 4위로 각각 당선됐다.
김기천 후보를 제외한 5명은 현역 의원이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 현역 지방의원 9명 가운데 8명이 다시 출마했고, 이 가운데 5명이 재선에 성공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26명 등 지방의원 37명을 배출했던 정의당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2명, 기초의원 7명으로 줄어든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광역의원 당선자를 내지 못했지만, 전남 서남권과 강원 춘천, 인천 일부 지역의 기초의회 기반을 이어갔다.
정의당은 서울과 전남·광주, 목포 등에서 단체장 후보도 냈지만, 거대 양당 중심의 구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권영국 서울시장 후보는 1.03%를 득표해 3위, 강은미 전남·광주 통합특별시장 후보는 3.85%로 3위를 기록했다. 목포시장 선거에 나선 여인두 후보는 3.86%로 4위, 대구 동구청장 선거의 양희 후보는 2.71%로 3위를 기록했다(4일 오후 1시 10분, 개표율 99.54% 기준).
노동당에서는 9명의 후보가 나섰다. 단체장 선거에는 서울 강북구청장 윤정현 후보와 울산 동구청장 이장우 후보가 출마했다. 윤 후보는 1.62%로 3위, 이 후보는 14.05%로 3위를 기록했다. 윤 후보는 강북도시관리공단 노동자들의 투쟁, 마을버스 공영화와 지역순환 공공셔틀버스 도입, 개발주의 공약 비판 등을 통해 구정의 공공성과 노동권 문제를 제기했다. 조선업 노동자가 밀집한 울산 동구에 출마한 이 후보는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와 노동자 중심의 지역 회복을 주요 의제로 내걸었다. 노동당은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지만, 서울 강북과 울산 동구에서 노동권과 공공성, 지역경제 전환의 의제를 앞세워 선거를 치렀다.
녹색당은 모두 3명의 후보를 냈다. 이 가운데 허승규 후보가 경북 안동시의원 마선거구에서 당선됐다. 허 후보는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안동에서 세 번째 도전 끝에 시의회에 들어가게 됐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했던 허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 풀뿌리 활동의 축적을 바탕으로 녹색당의 첫 공직선거 당선자가 됐다. 녹색당은 4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허 후보의 당선을 “보수양당의 정치독점체제에 균열을 내고, 진보정치 도약의 불씨를 살려낸” 결과이자 “기득권 정치의 장벽을 뚫고 피어난 끈질긴 풀뿌리 정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서울 강서구의원 선거에 나선 김유리 후보와 제주도의원 비례대표 김순애 후보는 당선권에 이르지 못했다. 녹색당은 제주에서 제2공항 백지화와 무상버스 등을 전면에 내걸고 노동당·정의당, 노동·시민사회와 함께 광역비례 후보 단일화에 나섰지만, 의회 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원외 진보정당들에게 단순한 득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후 선거에서 후보와 정책을 유권자 앞에 드러낼 제도적 조건과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토론회 초청 대상에 국회 5석 이상 정당, 직전 대통령선거 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지방의원 선거 등에서 전국 유효투표총수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의 추천 후보, 일정 기준 이상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얻은 후보 등을 포함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광역 및 기초비례 개표 현황상 신호등연대에 참여한 세 정당 모두 전국 단위 3% 기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적 진보정치, 끝이 아닌 시작”
선거 결과가 윤곽을 드러낸 뒤 각 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재확인한 진보정치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번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촘촘한 평가를 바탕으로 독자적 진보정치의 희망을 다시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 겸 서울시장 후보는 3일 서울 구로구 정의당사에 마련된 신호등연대 공동개표상황실에서 이번 선거를 두고 “정책이나 공약이 매우 중요하게 반영된 선거라기보다는 여전히 내란 청산 분위기와 경북·대구를 중심으로 한 세력 결집이 작용한 선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정치가 서민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삶에 정확하게 다가가지 못한 취약함과 부족한 점이 그대로 작용했다”며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고 지지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과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선거”라고 했다.
권 후보는 정의당 대표이자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책임도 밝혔다. 그는 “정의당이 대중과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며 “신호등연대를 더 긴밀하게 만들고 화학적 결합을 높이지 못한 후보로서, 또 신호등연대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정의당의 대표로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권 후보는 “보내주신 마음과 기대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다”며 “더 많은 분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임은 온전히 저의 부족함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선거는 끝났지만,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진보정치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며 “진보정치의 여정을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공동개표상황실에서 이번 선거가 “이재명 정부 1년에 대한 평가라는, 본질과 무관하게 형성된 여론의 주도력 속에서 치러졌다”고 짚었다. 그는 “이재명 정부의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본질을 선거 과정에서 더 돌파하는 방식으로 치르지 못한 내적 역량의 한계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는 이번 결과가 독자적 진보정치의 방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그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힘의 부족이라면, 그 힘을 어떻게 상호 연대하는 과정에서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이 훨씬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당 내부뿐 아니라 사회대전환연대회의를 포함한 연대 과정 전반에 대한 평가를 통해, 부족했던 힘을 어떻게 다시 조직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았다는 취지다.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신호등연대의 의미를 민주당 중심 연합정치에 기대지 않는 독자적 진보정치의 필요성과 연결해 설명했다. 그는 진보정치가 오랫동안 보수세력에 맞서는 민주당 중심 연합정치의 왼쪽에 자리해 왔지만, 이제는 그 구도 안에 머무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계속 민주대연합의 왼쪽에 존재할 수는 없고, 독자적인 힘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지배계급의 액세서리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어 신호등연대를 두고 “법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 우리는 정당연합을 한 것”이라며 “좌절하지 말고 우리가 이룬 성과로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머리를 맞대고 같이 싸워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녹색당은 4일 입장문에서도 신호등연대를 “이번 선거의 값진 성과”로 평가했다. 10대 공동정책을 발표하고 공동 대응에 나선 시간이 “진보진영 공동의 성장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연대했던 시간”이었다는 설명이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가 ‘내란세력 심판’ 구도 아래 치러졌지만, 민주당의 승리가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할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도 밝혔다. 이어 “풀뿌리에서, 더 아래에서 시민과 소통하고 부단한 조직활동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며 이번 지방선거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삼겠다고 했다.
신호등연대는 노동당·녹색당·정의당과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함께 추진해 온 독자적 진보정치 공동 대응의 흐름 속에서 꾸려졌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는 보수 양당이 담지 못하는 광장의 목소리, 사회대개혁과 체제전환, 평등한 세상의 노동정치를 의제로 독자적 진보정치 세력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노동운동 조직들이 함께 결성한 연대체다. 이들은 비상계엄과 윤석열 파면 투쟁, 21대 대선 공동 대응을 거쳐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신호등연대는 지난 4월 공동선언에서 “정권교체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밝혔다. 내란 종식은 계엄세력 심판에 그치지 않고, 지역과 일상에 누적된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는 사회대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공동선언은 선거 이후에도 공동의 평가를 진행하고, 독자적 녹색·진보정치 세력화를 위한 논의와 행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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