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신문 기획특집] 월드컵, 그리고 아무 것도 없다

2002년 6월 4일 저녁, 한갓진 도로는 조용하다. 멀리 집집마다 불켜진 창틈 사이로 한숨과 환호가 고스란히 밀려나온다. 술집마다 '월드컵 관람은 대형 스크린으로, 시원한 맥주와 함께'라는 방이 붙어 있다. 조용한 곳을 찾아 라이브 음악이 나오던 단골술집으로 들어서자 전에 없던 24인치 텔레비전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대학가로 들어선다. 캄캄한 밤임에도 잔디밭에 빽빽이 모여앉은 사람들. 도시락과 캔맥주를 먹으며 정면을 응시한다. 그동안 신문에서, 텔레비전에서, 길거리에서 익혀온 선수들의 얼굴이 등장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함성들. 그저, '등장'하기만 했을 뿐임에도 터져나오는 함성은 당연히도 그들이 달릴 때. 공 한번 잡았을 때, 슛팅을 했을 때, 고조되어만 간다. 눈을 감고도 그려지는 장면들.

어디서도 월드컵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다. 꾸역꾸역 구석진 곳을 찾아들어가 보지만, 때마침 터지는 밤을 뒤흔드는 함성. 대한민국,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아까까지 통일되지 못했던 구호는 이제 혼연일체가 되어 밤을 흔든다. 조용한 곳으로 가려던 욕심을 버리고 들어갔던 길을 되돌아나와 집으로 향하려할 때, 마침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 잔디밭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밀려나오는 틈에 휩싸여 축제의 기쁨에 저도 모르게 휘말렸다. 붉은 티를 입고, 등에 태극기를 두른 사람들은 둥글게 둘러 서 다시 한번 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을 부른다. 열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겨우겨우 빠져나와 버스에 오른다. 목에 수건을 두른 학생들의 얼굴이 번들거린다. 직접 보지 못한 경기장면이 그들의 흥분 속에 생생히 전개된다. 월드컵 소식을 전하던 아나운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도처에서 기쁨을 나누려는 전화가 쇄도한다. 이 기쁨을 누구와 나누시겠습니까. 예, 제 가족들과 온 국민과 함께 나눠야지요! 우리 민족의 기쁨 아닙니까!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행복해야 하는 날이다. 왜? 한국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첫 승리를 거뒀으니까!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 없는 방에 눕는다. 이제 밤이 지나간걸까. 아니다. 집집마다 틀어놓은 텔레비전 수상기들은 한결같이 같은 멘트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주고 있고, 모든 집에서 함께 흘러나오는 그 소리들은 밤새 끊이지 않는다. 밤은 끝나지 않는다. 제발 조용히 잠들고 싶다고 빌며 생각해본다. 언젠가 이것도 한순간의 꿈으로 기억될테지. 그때는 참 좋았는데, 하고.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알까. 우리가 무엇에 흥분했었고, 함께 흥분해야 했던 다른 무언가는 없다고 오해했다는 것을. 열광하지 않았던, 열광할 수 없었던 누군가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는 걸.


대학생신문 원주 기자 hoho@e-uni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