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을 향해 쏴라
월드컵 빼고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는 6월이다. 텔레비전 광고는 모두 월드컵을 포맷으로 한 작품들이 점령했고, 패션 경향도 마찬가지다. 모든 브랜드들이 축구복 내지는 응원복을 아이템으로 한 상품들을 선보였다. 심지어 9시 메인뉴스 시간 역시 축구 경기가 점령을 한다. 신문과 방송의 월드컵은 이미 연초부터 시작돼 있었으니 두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대학가도 마찬가지. 월드컵 개최도시의 경우, 종강일시를 앞당긴 대학들이 있는 한편, 한국전이 있는 날은 자연스럽게 휴강이다. 지난 4일(화), 2002 월드컵 한국 첫 경기가 있던 날에는 건국대, 국민대, 경북대, 경희대, 부산대, 숭실대, 영남대, 전남대, 한양대 등의 여러 대학에서 단체관람과 응원이 펼쳐졌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1만 여명의 학생과 지역주민이 모여 또다른 축제의 장을 연출한 것이다. 이날 대형 멀티비전이 설치된 대학로와 광화문에는 낮부터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지경이었다. 더욱이 월드컵 역사상 한국 첫 승리가 있던 만큼, 앞으로 있을 한미전에의 관심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고조되어 있다. 한번의 승리로, 16강을 넘어서 이제 8강을 이야기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국가적인 행사, 월드컵
이같은 현상을 뒷받침한 것은 비단 앞서 말한대로 신문과 방송의 쇼만은 아니다. 월드컵은 국가적인 행사인 것이다. 한국 축구팀이 16강에 진출하면 볼 수 있는 효과들에 대한 다양한 추산들이 나오면서 16강 진출 역시 국가적인 과제가 됐다. 각 정부부처들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갖가지 조직구성과 프로그램 운영을 실행해왔다. 건설교통부에서는 '외국손님에게 맑은 공기를 제공'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동차 2부제를 실시했다. 국정홍보처는 '친절·질서·청결, 나도 월드컵 대표선수' 캠페인을, 행정자치부는 '2002 월드컵 지원단'이라는 조직을 진행·가동시켜왔다. 노동부는 6월말까지를 '부당노동행위 집중지도기간'으로 잡은 한편, 검찰청은 불법시위와 집회 피해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무사히 월드컵을 치러내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과제다.
월드컵은 경제회복면에서 가장 기대치가 높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고, 각 지하철 역사마다 월드컵 기념품 판매장이 들어섰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에 대비, 홈스테이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월드컵 중간 결산?
월드컵 개막 이후 일주일 여가 지난 지금, 그러나 예상했던 특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자랄 것으로 보였던 호텔 투숙객은 관광객이 예상보다 현저히 줄어 별다른 수입증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외국 관광객이 넘쳐났던 쇼핑거리도 요새는 오히려 한산하다. 월드컵이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효과를 줄 것인지 미리 예상하지 못한 채 추상적으로 '월드컵으로 외국자본이 유입되는 한편 홍보효과까지 있어 경제호황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만이 난무한 댓가다.
피파(FIFA) 조직위와 입장권·호텔숙박권 대행을 맡은 업체의 무능함으로 경기장에 빈 좌석이 보이고 호텔에 투숙객에 없는 것도 닥치고서야 문제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원인규명도 부재한 상태다. 국가적인 행사, 국가적인 이데올로기 '월드컵 성공적 유치'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당신이 열광하는 것-축구, 실은 월드컵
그렇다면 당신이 열광하는 월드컵의 의미는 이제 한국 축구팀의 16강 진출만이 남았다. 이것은 냉정하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자명하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든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든 그렇다면 꼭 한국축구팀을 좋아해야 할 이유는 어디 있는가. 그것도 단지 우리나라에서 하는 월드컵이어서 더 좋은 것 아닌가. 이미 월드컵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특별한 게 없다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한국전이 벌어진 날 대형 스크린 앞에 몰려든 인파는 한국 사람이 축구를 사랑한다는 방증이 아니라 우리는 목매 사랑할 무언가 없이 살아가느라 메말라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나쁘지만도 않은걸까.
당신이 축구를 좋아한다면, 월드컵이 아닌 축구경기를 즐길 일이다. 초국적자본의 후원을 받는 피파 월드컵의 축구공 피버노바가 제 3세계의 아이들 손에 피를 흘리게 하며 수제작업된 것이라는 현실을, 보다 냉정히 볼 수 있도록.
대학생신문 원주 기자 hoho@e-uni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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