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들이 왜 파업을 하냐구요?"

덤프·레미콘노동자들은 왜 '차라리 죽여라'고 외치나

12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지 사흘째 되는 건설운송노조 덤프분과, 레미콘분과 조합원들은 특수고용노동자, 실제로는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 즉 '사장님'들이다. 이들은 '근로계약서'나 '위탁계약서'가 아닌 '도급계약서'를 쓰고 일을 시작해, '월급'이 아닌 '수수료'를 받으며,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낸다.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려 들면 도로법, 불법다단계 하도급, 표준임대차 계약, 허가제, 수급조절 등 낯선 용어들이 어지럽게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사실은 쉽다. 신용불량자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잘못된 정책을 바꾸라는 것, '사장'이 아닌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는 것, 단결할 권리, 파업할 권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지난 12일 밤 열린 덤프연대와 레미콘노조의 총파업 출정식/참세상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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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보름도 일 못하는 신용불량자들

덤프노동자와 레미콘노동자들은 원래 건설회사와 레미콘회사에 소속된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이 회사들의 신 노무관리에 의해 강제로 아웃소싱돼 사업자로 전환됐다. 대규모 건설회사들은 당시 대당 5천여 만원에 달하는 레미콘 트럭을 기사들에게 강제로 불하하고 매월 운반료에서 불하비용(트럭 가격)을 공제했다. 하지만 이들은 형식만 사업주일 뿐 회사의 지시를 받으며 정규직 노동자와 다름없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덤프노동자들은 건설현장에서 골재와 토사, 아스콘을 운송하고 레미콘노동자는 레미콘을 운송하며 전국적으로 덤프는 5만여 대, 레미콘은 2만 3천여 대가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 가동하는 차량은 전체의 절반밖에 안된다. 왜 그럴까?

건설 경기는 갈수록 하락하는데 덤프, 레미콘은 너무 많다. 포화상태에 이른 건설운송기계 덕에 건설운송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없어 매달 적자신세를 면치 못하고 전체 4분의 1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운전자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한 번에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도 매출의 절반 이상이 기름값으로 지출되며 차량 수리나 타이어 등 부품교체도 여기서 떼어내야 하는 현실 때문에 매월 100만 원 이상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따라서 파업에 들어간 덤프·레미콘 노동자들은 '허가제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건설기계의 수급 조절을 위한 방안으로 건설운송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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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한 총파업 이틀째인 13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과천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덤프노동자들/안창영 기자

건설현장 '만악의 근원', 불법 다단계 하도급

대규모 건설회사는 건물을 지을 때 다른 회사에 '하도급'을 준다. 하도급을 받은 회사는 또 다른 회사에 '재하도급'을 준다. 건설비용을 줄이려는 이런 속셈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관례다. 여러 차례의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피해는 운반비 덤핑이나 횡령, 체불 등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운반비 단가가 지나치게 낮아지자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시간을 감수하려 하게 되고 이는 과적이나 대형 사고 등으로 이어지며, 부실한 하도급사의 부도나 분쟁으로 운반비 체불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모순된 구조를 타개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 '표준임대차계약'이다. 표준임대차 계약서를 명문화해 건설기계(덤프·레미콘) 운전자들이 건설회사와 직접 계약할 수 있게 되면 노동자들은 적정한 운반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며, 건설산업에 만연했던 중간 건설회사의 공사비 유용이나 세금 포탈과 같은 비리도 줄어들 수 있다는 공공적 의미도 담고 있다.

과적 강요에 전과자 딱지, 신고해도 운전자만 처벌

덤프노동자들의 투쟁과 꾸준한 요구로 얻어냈던 바 있는 개정 도로법은 '과적'(제한규정을 초과해 적재하는 것)을 지시한 임차인을 처벌하되 과적을 강요, 지시받은 운전자는 처벌하지 않게끔 되어있다. "화주로부터 받을 경제적 불이익이 우려돼 신고하지 않고 과적운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 경제적 약자인 운전자를 보호하고 임차인을 처벌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개정된 도로법이 무색하게도 건설운송노동자들은 과적단속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덤프연대 조합원들은 건당 평균 200여 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과적단속에 1인당 평균 4회의 '전과자'들이다. 과적을 하고 싶지 않은 노동자들은 건설현장에서 최하위의 위치에 있으므로, '더 많이 실어나르라'는 지시와 강요를 계약해지를 감수하고 거부하기란 어렵다.

개정된 도로법에 따라 이를 강요한 임차인을 신고한다고 하자. 실제로 물건을 싣고 있는 건설현장에 과적 단속원은 들어갈 권한이 없다. 그렇다면 과적한 차량이 직접 도로에 나가 신고해야 하는데, 과적을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에서 단속된 운전자만 처벌받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과적이 일어나는 건설현장을 우선 조사하고 이를 강요한 임차인을 처벌해 달라는 요구는 그냥 '법대로' 하면 될 일일 뿐이다.

  무기한 총파업 돌입과 함께 상경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덤프레미콘 노동자들이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안창영 기자

  안창영 기자

열 가지 경제법 보호가 아니라 단 하나, '노동자성 인정'

덤프·레미콘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제도개선' 문제보다 가장 상위에 있는 요구가 '노동기본권 보장'이다. 이들은 실제로 노동자이면서도 자영업자로 둔갑된 탓에 4대보험이나 실직, 산재에 어떤 대책도 없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일반사업자로서 납부하거나 고용보험은 아예 해당이 안된다.

이런 상황에 노동부가 지난 10월 25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보호대책'이랍시고 내놓은 대책은 오히려 이들을 '사장'으로 못박으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덤프·레미콘·화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경제법적 보호방안'은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입법예고된 것들이며 '노동법'상의 보호와 양립하기 곤란하다. 정부 대책 자체가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6월에 국제노동기구(ILO)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권고했음에도 그렇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에 따르면 정부의 보호대책이 오히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있게 된다"는 지적이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11월 3일 노동법상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로 규정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여러가지 복잡한 경제법을 동원해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그냥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노동자'로 불러줄 때 많은 것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과연 모를까. 덤프·레미콘 노동자들은 오늘로 사흘째 노동부, 열린우리당, 전문건설협회, 국회 앞 등 곳곳을 누비면서 '차라리 죽여라'고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