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Before & After-양심선언]"나는 기억 못해도 좋지만 폭로 내용은 잊지 말자"

선언한 사람들

▲ 여기 '양심선언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부정선거를,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F-X사업 외압을 '고발', '폭로'했던 사람들.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시대에 한 줄기 빛처럼 등장했던 사람들. 가장 처음 일어나 가장 먼저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가를 감수해야 했던 그들의 어제와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은 이문옥 감사관이 양심선언후 구속돼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 이지문 중위와 윤석양 일병이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왼쪽부터 반시계방향).


윤재설 dllp21@kdlpnews.org / 정경섭 jks@kdlpnews.org
90년 5월 10일, 감사원이 재벌의 로비에 밀려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를 중단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은 12년이 지난 지금,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지방선거에 나선다. 민주노동당 부패추방운동본부장, 양심선언자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이 본부장은 폭로 당시 “양심선언자의 법적 보호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커다란 탄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53세의 나이에 폭탄선언을 한 이 본부장은 이후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이 본부장은 “양심선언을 할 때나 지금이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내부고발자센터 소장된 이지문 중위

90년 10월 4일, 보안사가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재야인사, 학생 등 1천3백명의 민간인을 사찰한 내용이 담긴 컴퓨터디스켓을 빼내 언론에 폭로한 ‘윤석양 이병(당시 26세)’은 2년여에 걸친 수배생활도중 92년 9월 검거돼 징역 2년을 만기 복역하고 출소했다. 윤씨는 출소 후 학원강사 등을 거쳐 요즘은 벤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윤씨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틀리기 때문에 인터뷰를 사양하겠다”고 밝혔다. 윤씨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관은 해임됐으며 보안사는 기무사로 명패를 갈아야 했다.
92년, 3월 22일 군대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선거를 폭로한 이지문(당시 24세) 중위. 이 씨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군부재자 투표는 사병, 장교, 하사관 1인씩 참관했던 이전의 영내투표에서 중앙선관위의 감독하에 영외에서 투표하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 이 씨는 양심선언 이후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했으며 95년 ‘꼬마민주당’후보로 서울시 시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씨는 “2000년 석사논문으로 “내부고발과 부패 심각성간의 관계’를 제출할 정도로 양심선언 이후 내부고발자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내부고발자센터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양심선언을 하기 위해 일주일간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는 이 씨는 “구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내를 빠져나온 뒤에 집에 들러 부모님을 뵙고 기자회견장으로 갔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1992년 8월 “정부가 지난 14대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금권·관권선거를 지시했다”고 폭로한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당시 61세). 한씨의 폭로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과 중립내각 구성으로 이어졌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씨는 그해 말 정년퇴직 직전에 보복성 파면 처분을 받았고 국회의원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돼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됐다. 한씨는 최근의 각종 비리사건을 거론하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바른 소리하는 사람 얘기를 안 듣는다”고 개탄했다.
95년 효산종합개발의 경기도 남양주시 콘도 특혜허가 사건을 감사하다 감사원 상부의 지시로 감사가 중단된 사실을 폭로한 현준희(당시 43세) 감사원 감사주사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법정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파면취소소송 대법원에 계류중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강식품. 학습지 방문판매, 휴대폰 영업사원, 전화번호설계사 등을 전전하며 살아온 현씨는 이문옥 후보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는 “서울이 깨끗해야 나라가 깨끗하다”를 이문옥 후보의 서울시장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제안하기도 했다.

감사원주사에서 전화번호 설계사로

지난 3월 3일 조주형 대령(49·공사 23기)은 “국방부에서 전화 등을 통해 (특정기종 선정을) 강요하고 있다”며 “‘F-15가 아니면 사업 안하겠다는 생각을 국방부가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언론에 전해 기무사에 연행됐다 3월 9일 군형법의 군사상 기밀누설 및 형법의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조 대령의 가족과 변호인단은 3월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1월초 F-X사업의 책임자인 국방부의 최모 획득실장이 F-15기가 선정되지 않으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큰일이라는 압력성 발언을 했다”는 내용의 조 대령 육성 녹음테입을 공개했다. 한편 조 대령은 40여일간 수사를 받고 4월 16일 F-X 기종선정 발표 직전에 기소됐다.
[ 87호] 5.13 ~ 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