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 After-의약분업]의약분업,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진보진영의 길찾기

우석균/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 연합 정책국장
이 글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의 평가를 위한 글이다. 우리의 시선을 우리 내부로 진보진영으로 돌려보자는 것이다. 왜 의약분업은 초기의 진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여러 측면에서 왜곡되었을까?

가장 쉬운 평가는 이럴 수 있다. 김대중정부의 한계와 시민운동이라는 추진주체의 한계 때문이라고. 물론 맞는 이야기다. 김대중정부는 ‘서민을 위한 개혁’을 스스로의 헤게모니의 주요한 부분으로 내세우면서 기초생활보장법, 국민연금법, 의료보험통합, 의약분업도입 등의 사회보장분야에서 상당한 정도의 진보성을 담보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면서 사회보장예산의 증액으로 뒷받침하지 않고 그 정책들을 자본과 기득권층의 이해범위내에서 추진하였으며 나중에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전환했다. 의약분업의 왜곡과정은 김대중정부가 병원 및 제약 자본과 그 이해를 상당부분 같이하는 전문가집단에 대한 항복과정에 다름아니다.

시민단체의 한계? 시민단체는 병협과 의사협회가 수가인상을 주장하고 폭력적인 진료봉쇄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반대운동을 조직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대응하였다. 시민단체나 보건의료단체들은 민중을 이끌어나갈 조직적인 힘도 명확한 비전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렇다면 의약분업은 추진주체와 정권의 한계로 어차피 좌절될 정책이었단 말인가?

매우 편한 평가이지만 의약분업 왜곡과정에 이어 건강보험재정적자국면에서 민중들에게 돌아온 구체적인 피해, 즉 본인부담금의 인상과 보험료의 인상 나아가 사회보험제도의 붕괴를 꾀하는 자본의 무지막지한 공세를 생각한다면 매우 안이한 평가이다. 더욱이 의약분업의 왜곡과정에서 민중들은 보건의료개혁에 대해 염증을 보이는, 탈정치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에 중요한 지점이 있다. 민중운동진영은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무엇을 했는가? 의사폐파업이 터지고 나서야 민주노총이 개입을 시작했고 민주노동당은 한 참 뒤인 재정적자-민간의료보험도입국면에서야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민중운동진영의 정치적 역할은 미미했고 시민운동과 보건의료단체들로 주로 이루어진 의약분업 추진세력(또는 사회보장운동세력)은 개혁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한 위에서 운동을 추진할 구체적인 집행계획을 갖질 못했으며 정부와 자본의 ‘예상할 수 있는’ 반개혁에 대해 무기력했다.

의약분업 추진과정과 그 왜곡과정에서 보아야 할 것은 결국 보건의료부문에서도 민중운동진영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그 주도속에서 민중운동-시민운동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는 것은 구체적인 생활상의 피해와 개혁에 지친 미조직화된 대중(보수야당정권에 실망하여 자동적으로 각성된 민중이 아니라)일 뿐이다.

또 하나 민중운동의 헤게모니가 관철되었다면 의약분업추진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행위별수가제를 통한 의료기관의 이윤제한, 제약회사의 이윤통제, 공공의료기관의 확대 등 보건의료공공성 강화 프로그램과 좀더 통일적으로 추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추진할 운동의 방향도 의약분업을 통해 추진한 진료의 질 향상, 참여권과 알권리의 강화, 사회보험강화를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 프로그램의 하나로 위치지우는 것이다.
[ 97호] 7.22 ~ 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