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업국장
약물(藥物)은 생명을 구하는 물질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 약은 이미 고부가가치 상품으로서 자본주의 상품의 꽃이 되어있다. 이미 제약기업의 이미지는 생명의 기업이 아닌 로비집단으로서 정평이 나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예만 보더라도 퇴임 장관이 제약기업의 압력에 밀려난 것이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제약기업의 로비와 압력은 전방위적이다. 특허 의약품을 무기로 들어오는 초국적 기업의 경우 통상압력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으며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경쟁 없는 독점권을 무한정 향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여가 넘게 투쟁과 협상이 진행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초국적 기업 노바티스의 전 세계 특허권을 앞세운 동일약가정책의 공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라별 경제력과 보건의료제도와 상관없이 기업의 정책이 관철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또한 제약기업의 신약 개발 추세는 ‘비만치료제’나 ‘발기부전치료제’ 등 생명과 직접 관련 없는 의약품으로 높은 이윤을 추구하는 약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가난한 나라의 사망 원인 윗순위를 차지하는 결핵의 경우 결핵치료제의 개발 능력이 있는 제약기업이 개발을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30년 전에 나온 약으로 온갖 부작용을 감수하고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특허 제품을 사줄 리 없기 때문에 개발비용을 환수할 수 없음이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결핵이 토착병화되어 매년 발생인구가 줄지 않는 대표적 질환임에도 치료에 있어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이미 이런 흐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에이즈 치료제 문제에서 심각하게 드러났다. 전 인구의 30%이상, 신생아의 40% 이상이 에이즈 감염자로 태어나는 국가에서 에이즈 치료제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하지만 에이즈 치료제 특허권을 갖고 있는 초국적 제약기업그락소웰컴은 미국이나 유럽과 마찬가지의 가격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약을 두고도 죽어 가는 형국이었다.
결국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약가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었고 강제실시를 대안으로 제약기업과 협상을 통해 가격을 인하하는 긴급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제약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 특허로 인해 벌어들인 돈이 개발비용을 상회하고 있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만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게 되었다.
남미 브라질의 경우도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강제실시를 예고하면서 가격협상을 벌여 가격을 낮추었으며 복제의약품을 생산할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아주 예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제실시가 오히려 선진국의 일반화된 관행이 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강제실시에 대한 행정적 절차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난 9.11 테러 직후 미국의 탄저병 백색테러의 진행과정에서 탄저병 예방 및 치료제로 알려진 ‘씨프로’(바이엘 제품)의 경우 특허가 진행 중인 약이어서 정부예산이 많이 소요될 것을 우려하여 바로 강제실시를 단행하겠다고 했다.
이에 바이엘은 미국정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가격을 인하해 공급하겠다는 발빠른 대응으로 다른 회사 제품과의 경쟁을 막아버렸다. 독점 공급의 위력과 미국의 힘이 결탁한 결과이다. 따라서 아직 미국에서는 가격이 인하된 특허제품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미국도 싼 가격으로 공급받는 윈-윈(win-win) 게임이 된 것이다.
초국적 제약기업의 횡포는 이런 뉴스꺼리 외에도 일상적인 방법으로 일어나고 있다. 자신들의 정책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로비는 의료공급자(병·의원, 의사·약사 등) 뿐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에까지 이를 정도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확인된 것이다.
약이 약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약이라는 물질의 중요성 뿐 아니라 약의 공급을 책임지는 제약기업과 국가 간의 문제 그리고 국민을 위한 보건의료제도 시스템의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이 제약기업의 정책을 그대로 받아주는 역할이 아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정책과 구조로서 기능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퇴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이 시끄럽게 여러 언론을 움직이고 있지만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이 국민을 위한 시스템이냐는 물음을 남기면서 현행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97호] 7.22 ~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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