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하다. 마누라가 안 들어온다. 전화를 해본다. 핸드폰이 꺼져 있다. 언제 들어올지 알 길이 없다. 막막하다. 기다려지기도 한다. 안달이 나기도 한다. 전화가 온다. 5시 넘어서 들어온단다. 이젠 기다릴 필요가 없다. 갑갑증이 조금 사라졌다. 막막하지 않다. 언제 들어오는지 알게 됐으니.
일상의 풍경이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일상의 풍경을 닮았다. 갑갑하다. 노동이고 문화고 환경이고 모두 죽일 작정으로 나선 삽질정권 탓에 세상이 뒤집어질 만도 하건만 혁명이 마누라처럼 들어오질 않는다. 마누라에게 전화를 해보듯이 노조법 강행 처리에 맞서 서울상경 투쟁을 하고 칼바람에도 천막을 치며, 국회고 청계광장이고 2.28 공원이고 대백 앞이고 매일매일 집회를 하건만 혁명의 핸드폰은 꺼져 있다. 수천 번 기자회견을 하고 수십 만 장의 찌라시를 뿌려도 이 세상은 꿈쩍하지 않는다. 하기야 철옹성 같던 군사독재정권이 종말을 고하는데 수 십 년이 걸렸으니 앞으로도 몇 천 번 몇 만 번 전화를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막막하고 갑갑하다. 조급증은 금물이라지만 또 이렇게 부질없이 속절없이 한 해가 가고 똑같은 한 해가 다시 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알몸을 드러낸 길가의 가로수들처럼 노동자의 가슴들이 용산만이 아니라 철거민들의 가슴도 헐벗은 반복을 하는 세월인지라 전화만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막막하다. 안달이 나 득달같이 전화를 해 보고 또 해 보건만 대한민국은 모래시계 사회로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변해 가고 모래는 위에서 아래로 급속하게 빠져 나가고 있다.
내년 상반기 혹은 후반기에 경기가 회복된다는 이야기들을 하지만 로버트 브레너의 최근 글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다다랐다.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미국이 회복하는 것은 상당한 기간 동안 불가능하다. 명리학에 따르면 2011년 대한민국은 무지개가 자기 모습을 감추어 앞길이 보이지 않는 홍장불견虹藏不見의 시대가 될 전망이다. 핵심소비인구라는 개념으로 20세기 지구경제의 전망을 예측해온 헤리 덴트 같은 사람에 따르면 2023년이 되어야 세계 경제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로버트 브레너나 명리학이나 헤리 덴트나 다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세계는 깊고 깊은 늪에 빠져 있고 삽질정권은 ‘과속스캔들’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4대강 사업은 결국 돈 많은 인간들 3달에 2천만 원 내가며 크루즈 호 타고 뱃놀이하자는 거다. 요트 사업이 전망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강부자 정권 요트놀이하고 뱃놀이하는데 4대 강을 희생시키고 노동자 농민들의 목숨을 잡자는 거다. 삽질정권의 전 방위적인 과속스캔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도 철군하는 마당에 다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다고 하고 작년에 그렇게 혼 줄 났으면서도 다시 광우병 위험성이 큰 캐나다산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한다. 삽질정권이 자충수를 두는 거야 나쁠 것은 없지만 그것이 내 마음의 조급증을 불식시키지는 못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10년 경인년에도 살림살이가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커녕 한 줌도 안되는 폭주족들의 무한질주로 대한민국 사회는 더욱 더 모래시계 사회로 질주할 것이다.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오듯이 혁명이 핸드폰을 켜놓고 내 전화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조급증도 사라질 터이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내가 변해야 한다는 뜻일 텐데 내년에도 또 다시 헐벗은 반복만 하게 되지 않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삽질정권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나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문제 아닌가.
막막한 세월이다. 군사정권 무너지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면 자본주의는 그 몇 배 이상의 세월과 노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노동권을 박살내려고 작심한 삽질정권의 심판을 넘어, 헐벗은 반복에서 벗어날 새로운 길을 밟으러 경인년을 만나러 가자. 호랑이와 쥐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질 신년으로 줄달음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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