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라는 시선 걷어내고, 감염인의 권리를 외치자"

[에이즈공동기획](8) - 강요된 침묵, 이제 감염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이제 막 시작된 HIV/AIDS 감염인 운동의 현 주소는 어디쯤일까?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 한국감염인연대(KANOS), 인권하루소식, 민중언론 참세상은 7차례에 걸친 공동기획을 통해 국내 감염인 인권문제와 해외 감염인 운동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그 마지막 순서로 공동기획팀은 한국 감염인 운동의 현실을 짚어보는 집담회를 지난 12월 21일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진행했다.

이날 집담회에는 감염인 단체 보다 한발 앞서 사회적소수자 운동의 지평을 연 장애인이동권연대와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자들도 참석해 각 운동의 경험을 공유했다. 현재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염인 단체 대표자들은 감염인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편견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그 인식을 같이 했다. 그러나 첫 발을 내딛고 있는 감염인 운동의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앞서 소수자운동의 경험을 축적한 장애인단체와 동성애자단체 대표자들은 감염인 단체들에 대해 ‘구체적 쟁점을 통한 이슈화’와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주문하기도 했다.

“‘에이즈 환자는 죄인’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걷어내야 한다”는 사회를 맡은 권미란 나누리+ 활동가의 말처럼 그간 감염인들은 그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아왔고,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죄인’들이 이제 막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멀지 않은 미래에 찾아 올 이들의 ‘복권’을 기대하며 이번 에이즈공동기획을 마치고자 한다.

한편, 이날 집담회에는 박영길(가명) 한국감염인협회(KAPF) 대표, 김창수(가명) 러브포원(LOVE4ONE) 대표, 김진섭 한국감염인연대(KANOS) 대표와 이동수 사무국장 등 국내 감염인 단체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고,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김정숙 활동가, 김도현 장애인이동권연대 정책교육국장, 윤호제 나누리+대표 등이 참석했다.

권미란(사회, 나누리+): 우선 소속 단체와 해당 운동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부탁한다

박영길 카프 대표: 카프는 주로 40-50대 연령대의 회원들이 많다. 카프의 기본모토는 자활, 자립, 복지다. 인권은 맨 나중이었다. 아직까지는 인권 문제에 대해 회원들로부터 많은 동의를 못 받고 있다. 회원들의 중요한 관심은 ‘어떻게 자활을 할 수 있는가’다. 쉽게 말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는 것이다. 회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생계문제인데, 카프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카프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 틀 안에서 만들어진 단체이고, 거기서 모든 지원을 받고 있다. 독립성을 갖추기에도 많이 부족하다.

김창수 러브포원 대표: 2000년도에 아프리카에 갔다가 외국 감염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 감염인들과 너무 분위기가 달랐다. 한국 감염인들은 움츠러들고, 숨어 지내려고 하는데, 그 분들은 당당히 생활한다.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한국에서 감염인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러브포원은 초기 감염인들이 많고, 연령층이 낮은 편이다.

이동수 카노스 사무국장: 카노스는 2002년도 유엔개발계획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2002년부터 감염인 인권․자활․연대사업 세 가지를 모토로 매월 정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온라인으로 상담과 24시간 감염인 전용상담을 받고 있다. 그리고 회원들은 매월 정기프로그램을 통해 감염인 인권과 성생활에 있어서의 문제점 등 실제 생활에서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

유호제 나누리+ 대표: 나누리+는 민중의료연합과 동성애자인권연대가 주축이 되어 2004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어떻게 운동을 해야할지 막막했지만, 배우면서 운동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고 있다. 2005년에는 감염인들의 건강권․치료권․노동권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했고, 의료인․감염인․동성애자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또 2004년에는 태국에이즈 회의에 참석해 다른 국가들 감염인들의 상황을 접하고 돌아왔다.

김진섭 카노스 대표: 2002년 준비해서 2003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는데, 2005년까지 유엔개발계획 집합프로젝트 계약기간이었다. 3년 동안의 훈련의 과정을 거쳤고, 2006년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단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카노스는 감염인 운동이냐, 활동이냐를 처음부터 제기하면서 출범했던 것은 아니었다. 감염인 네트워크를 고민하며 출범했고, 이후 나누리+가 생기고 연대활동을 하면서 감염인 운동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도 이후 우리 활동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동성애자운동은 2001년 경 청소년보호법상 동성애자 조항 삭제 운동을 하면서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쟁점이 해결된 이후 2004년부터 여러 가지 논의를 진행했고, 2005년 들어 청소년과 에이즈 문제에 대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김도현 장애인이동권연대 정책교육국장: 장애인 운동이 활성화되었던 때를 80년대 말로 본다. 60-70년대에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만든 단체가 아니라, 의료․재활전문가들에 의해 꾸려진 단체였다. 일종의 재활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장애인촉진법 등을 중심으로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른 운동들이 그렇듯이 90년대 들어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다가, 다시 복원되는 시기가 2001년 정도다.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계기로 2001년부터 사회적으로도 이슈화가 되었고, 이동권을 넘어서 노동권, 수급권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김정숙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에이즈라는 병이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사실 여성동성애자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이 많이 부족하다. 에이즈는 게이들의 병이지, 여성동성애자들이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년에 한겨레에서 여성동성애자들도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면서, 동성애자 집단을 에이즈의 주범으로 몰아넣은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단체들이 반발하며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에이즈 관련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생계문제, 우울증 그리고 차별과 편견

권미란: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에 갔었는데, 장애인교육권, 장애인노동권, 장애인이동권 연대 등 등 장애인 주체들이 자기 권리와 요구를 정식화하고 쟁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집회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감염인들은 언제쯤이면 다 같이 우리의 권리를 정식화시키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면서 모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각 단체들의 경험을 통해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고, 감염인들이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언인지에 대해 얘기했으면 한다.

김창수: 한 가지는 생계문제다. 회원들 중 70%가 기초수급자다. 사실 생계비 나오는 것 가지고는 생계유지가 안 된다. 건강문제가 아니더라도 하던 일도 못하게 되고, 일을 다시 하려 해도 쉽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감염인들이 비감염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감염인이라는게 알려지면, 사회적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감염인들이 주는 차별과 편견도 있지만, 감염인 스스로가 감염인에게 주는 차별과 편견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차별을 먼저 깨지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박영길: 백이면 백 감염인들은 생계문제를 호소한다. 정부에 생존권과 관련한 관련한 것들을 요구해야 한다. 정부지원금의 50%가 유관단체 인건비로 쓰이고 있다. 이것을 감염인들에게 직접 지원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동수: 정신과 병동이 보통 일반병동, 반폐쇄병동, 폐쇄병동 세 가지로 운영이 된다. 그나마 개방형 병동에 있을 수 있는 정도면 상관이 없는데, 의사들은 폐쇄병동의 경우 응급상황이 발생하거나 했을 때 수혈사고 걱정을 한다. 예전에 한 감염인이 입원을 할 수 없어 수 십 군데의 병원을 돌아다닌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은 정부정책의 문제도 있지만, 의사의 자질 자체도 문제가 있다. 의사들이 인식을 못하니 차별과 편견이 생긴다.

김진섭: 감염인들은 친구, 직장, 가족, 병원 등 어느 곳에든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차별과 편견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보다는 구체적인 사안, 즉 병력자정보공개 철회 등과 같은 사안을 매개로 활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차별과 편견의 문제는 구체화되어야 하고, 구체화된 문제를 가지고 조직적 논의의 과정을 밟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단체들이 워낙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보니, 어떤 이슈에 대해 명확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단체는 어디도 없다. 때문에 단체들 간의 보다 긴밀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편견은 ‘편견 갖지 말라’는 말로 절대 깨지지 않는다”

김도현: 차별과 관련해 인식상의 차별인 편견이 있겠고, 구체적인 제도와 구조 안에서의 차별이 있겠다. 지금까지 장애인계에서 여러 노력이 있었는데, 편견을 깨기 위한 홍보와 캠페인도 사업 중 하나였다. 그런데, 편견은 교육을 하고, 캠페인을 하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따라서 제도적 차별을 고쳐 그 안에서 개인의 편견이 깨지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반대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장애인 혹은 HIV의 내용을 잘 설명하면, 편견이 깨지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구체적인 매개점과 쟁점을 잡고, 그것을 통해 문제가 사회화되지 않으면 차별과 편견의 문제들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병력자정보제공 철회 등의 쟁점을 잡고, 사회화시키는 방식. 이것은 문제 자체를 해결하거나, 그 사안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하나의 쟁점을 잡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산적한 문제들이 한방에 해결되지 않을 것인데, ‘무엇으로부터 쟁점을 잡아서 사회화시킬 것인가’와 그로부터 ‘제도적 차별의 문제와 인식의 차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장애인 투쟁 안에서도 이동권 투쟁이 가져온 효과로 저상버스 얘기를 많이 하지만, 사실 돌아다니는 저상버스를 장애인들은 거의 타지 못한다. 저상버스가 2%도 안 되는데, 언제 이 버스를 타겠는가? 이동권문제는 단지 그 사안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매개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투쟁은 중요했던 것이다. 편견은 ‘편견 갖지 말라’는 식으로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정욜: 01년 이동권과 관련된 쟁점이 형성되고, 최근에는 노동권, 교육권 등으로 확대되고 있고, 최종적으로 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이 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모아질 수 있었다는 것. 이동권이라는 쟁점이 뿌리를 내리고, 영향을 미친것, 장애인들이 그 안에서 단결하고, 하나의 연대체를 만들어낸 장애인운동은 소수자 운동이 참고할 만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병력자정보제공 철회와 같은 하나의 쟁점이 뿌리를 내린다면, 장애인운동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수: 우리가 연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각 단체 회원들도 아웃팅 두려움 때문에, 얘기를 꺼내면 ‘나는 못한다, 못 나간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회원들도 많이 달라졌고, 예전에 비해 조금씩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감염인이 직접 외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김도현: 보통 사람들은 들어나지 않은 장애를 숨기려 하는 경향이 많다.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이미 아웃팅된 상태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장애인, 동성애자, 감염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보면, 약간 맥락이 다르다. 비장애인들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시혜와 동정의 차원으로 드러난다면, 동성애․감염인은 공포와 혐오라는 차원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또 그 때문에 감염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모여 공적인 공간에서 표출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예전에 성매매여성집결지의 여성들이 아웃팅의 위험에도, 자신들의 권리를 얘기하기 위해 마스크까지 쓰고 거리로 나왔던 것.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그에 따른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는 것. 감염인들도 이 같은 다른 운동의 경험들을 기반으로 현재의 조건을 극복해가야 할 것 같다.

윤호제: 한국에서 감염인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운동을 하기에는 힘든 상황이다. 이는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멕시코에서 에이즈 약값 인하를 위해 싸우는 감염인들이 온몸을 해골문양이 들어간 옷으로 가리고 나와 투쟁을 하는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시급한 사안이 있다면 이것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주장하고, 외치지 않으면 어떠한 문제도 쟁점화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처해진 불가능한 요소들이 있다. 그럼에도 최대한 스스로를 보호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김도현: 장애인운동도 초기에는 휠체어 20대 모이면 많이 모인다고 생각했다. 감염인운동과 장애인 운동이 다르지만, 여전히 공통분모가 있다. 장애인들 대부분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모여 활동할 수 있는 주체들, 이 수를 점차 늘려가는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다. 현실적인 어려운 상황과 조건에만 갇히면, 무엇을 행동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장애인들이 집회를 하면 많이 모이는 것 같지만, 지금도 서울에서 모이면 50-60명 정도다. 작은 인원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첫 걸음을 떼어야 한다.

“‘죄인’이라는 시선을 걷어내야”

권미란: 예전에 백혈병 환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백혈병 환자들, 감염인 그리고 장애인이 처한 어려운 조건이 어떻게 다를까 비교해보곤 한다. 예컨대 백혈병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눈물의 병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너무 착한 사람이 저렇게 안타까운 병에 걸려서 저걸 어쩌나’라고 묘사되곤 한다. 그리고 에이즈 환자는 그냥 죄인이다. 장애인 같은 경우는 ‘참 안됐는데, 내 옆에는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백혈병 환자들이 약값과 관련한 투쟁을 했던 경험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백혈병 환자들의 경우도 대부분 건강상 이유로 직장생활을 못하거나,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당연히 그들도 싸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백혈병환자들이 문제제기할 때 ‘이 불쌍한 사람들 약 좀 먹게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약이 개발되었는데 왜 못 먹게 하는가’라며 그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고, 제약회사들의 문제로 지적했다. 그것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었다. 백혈병은 눈물의 병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혜와 동정으로 문제를 끌고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백혈병 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죄인’이라는 그 시선들을 먼저 걷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조건이 어려운 만큼 참여가 어렵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거점과 공간마련이 시급한 것 같다.

“처한 현실에 기반해야 하지만, 함몰되지는 말아야”

김진섭: 감염인의 경우 우리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것이 시급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염인들의 활동의 영역들이 다양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쟁점의 사회화와 이슈의 구체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상황에서 어떤 것이 쟁점이 될 수 있을까 논의해 볼 수는 있으나, 그것을 객관화시키는 작업들은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기반해야겠지만, 현실에 함몰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 점검들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현재 정부에서 약값 본인부담금의 80%를 감염인들에게 지원해주고 있다. 이 수급을 정부의 감염인에 대한 지원으로 볼 것인가? 감염인들에 대한 보다 엄격하고 효율적인 통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감염인 단체들 간 시각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체마다 활동의 목적과 방향이 ‘반정부’, ‘정부와의 협상, 파트너쉽’, ‘기금 마련’ 등등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쟁점들을 둘러싸고 단체들 간 논쟁도 있을 것이고, 이러한 다양한 논의가 우리의 활동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와 같이 가는 입장으로, 협조 받을 것은 받아야”

박영길: 카프에서는 정부에 공적인 홍보활동을 해달라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식변화 얘기만 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다. 특별법 만들면 뭐 하는가? 투쟁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투쟁으로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할 시기이다. 우리가 ‘공익광고를 하나 해달라’고 정부에 구체적으로 건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에이즈에 대해서 무지한데, 단체들이 분야별로 나뉘어서 싸우는 것은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와 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같이 가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정부에 협조를 받아야 할 것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

“정부와의 협조를 논할 단계 아니다”

김정숙: 홍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정부에서 돈을 받아다가 홍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언론이 바뀌는 게 아닐 것 같다. 언론이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장하고 있는데, 몇 번 홍보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겠는가? 홍보가 중요한 부분이지만, 감염인들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언론홍보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감하지만,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방식에 있어서 이견이 있는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 무엇이 효과적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 앞으로 환자수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지원은 축소되면 축소되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정부와 협조해야 하는지, 선을 그어야 하는지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협조라는 것과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협조라는 것은 ‘우린 충분해’라는 것을 전제로, 협상과 타협을 통하는 것인데, 과연 지금까지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얻어왔는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보다 분명하게 요구해야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가 원하는 협조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