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노동자, “법이 있으면 뭐합니까”

여성노조, ‘최저임금 현실화, 877,800원’ 촉구 집회 열어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월드컵은 없습니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밤잠을 설쳐가며,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전 세계적 축구이벤트에 열광하고 있다. 모두에게 월드컵은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축제일까? 하루 9시간 씩 한 달 꼬박 청소 일을 하고도, 한 달 7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임금을 받는 최저임금노동자들에게도 월드컵은 신명나는 축제일 수 있을까?

2007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는 20일 오후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현실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우리도 대한민국을 외치고 싶습니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퍼포먼스 및 사례발표회를 갖고 월드컵 열풍 속에서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최저임금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했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월드컵이라는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 드는 비용과 정신적 여유가 최저임금노동자들에게는 없다”며 “생계비조차 빠듯한 월급으로는 월드컵을 즐기는 것조차 사치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그 축제에 끼어들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국립대학도 최저임금 ‘나몰라라’

서강대에서 청소용역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허성임 씨. 6년째 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그에게 법률로 정해있는 최저임금은 곧 최고임금이다. 현재 그는 주 44시간 근무에 최저임금 70만6백 원을 받는다. 월차수당, 연차수당 그리고 특근을 해야지 겨우 74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허성임 씨의 월급명세표 [출처: 전국여성노조]

허성임 씨는 “지금도 어려운데 올 7월부터는 재계약 시 주당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단축되면, 64만7천9백 원으로 줄어들게 된다”며 “그 임금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가 없고, 빚을 내서 살아야 하니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국립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상황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몇몇 공공기관과 국립대학은 대놓고 법정 최저임금을 위반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이는 등의 편법으로 저임금 초과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인천지방법원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권순화 씨는 “법원의 경우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예산 설계를 하고 있다”며 “법원은 해마다 청소용역 금액 설계 시 용역금액을 동결하거나 최저임금 인상률도 보장되지 않는 5%미만의 한 자리수로 체결해왔다”고 말했다.

권순화 씨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의 경우 임금인상률이 2006년 최저임금 인상률 9.2%에도 못 미치는 6% 인상에 그쳤으며, 현재 권순화 씨는 60만 원이 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안동의 모 국립대학은 청소용역노동자들에게 연차, 퇴직수당, 상여금 등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용역업체와 계약기간을 11개월로 정하는 등의 편법을 쓰고 있다. 이 학교에서 6년간 근무한 민동희 씨는 “회사는 최저임금에도 미달되는 기본급 59만에서 시작하여 교섭을 거듭해도 작년에 비해 임금을 올리기는커녕 오히려 삭감하려한다”며 “학교 측은 용역업체와 최저임금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은 계약을 체결했다며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안 주려고 근무시간 단축하나”

이밖에도 대전 목원대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이 법정 최저임금 준수를 요구하자,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최저임금제를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신명숙 씨는 “그동안 최저임금에도 미달되는 임금을 받아왔던 청소용역노동자들이 2006년에 최저임금 수준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자, 학교가 근무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대폭 줄여버렸다”며 “그러면서 최저임금 3,100원이 아니라 3,150원으로 계산했다고 선심 쓰듯 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목원대의 경우는 시급으로 고시되는 최저임금제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편법으로, 이 같은 문제 때문에 그간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최저임금 보전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신명숙 씨는 “어디서 보니까 주 40시간제라는 것이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던데 아닌 것 같다”며 “현실은 이런데 법만 만들어놓으면 뭐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35시간 편법 적용된 월급명세서 [출처: 전국여성노조]

매년 최저임금 결정시기가 되면 최저임금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증언대회와 최저임금 현실화를 촉구하는 집회가 잇달아 개최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최저임금의 ‘계절’은 돌아왔고, 최저임금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와 ‘최저임금 현실화’를 외친다. 월드컵에 익사당한 작금의 한국사회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점점 더 이들의 ‘증언’이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게 들린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이날 집회참가자들은 최저임금 877,800원을 향해 슛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