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부터 진다는 생각 안 했어”

대우센터빌딩 늙은 노동자들의 승리보고대회

“투쟁으로 맺은 약속”

대우센터빌딩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86일 간의 싸움이 승리했다.

31일,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투쟁승리 보고대회’에는 승리한 늙은 노동자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색색의 풍선에는 “살 만한 세상이다”, “투쟁으로 맺은 약속, 변치말자 동지여”, “현장 가서도 투쟁하자”라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담겨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오랜 만에 보는 노동자들의 웃음이다.


60여 명의 노동자를 쫓아내기 위해 2900여 명의 용역경비 고용한 대우센터

대우센터빌딩에서 청소하고, 시설을 관리하고, 보안을 책임졌던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수 십 년 동안 일했던 현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에 시달렸지만 늙은 노동자들은 새벽 5시면 일터에 나와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욕설이고, 반말이고, 인간 이하의 취급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다들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네들에게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길은 일자리를 내놓고,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청 사용자인 대우건설에게 노조는 그저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대우건설의 귀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대우건설은 60여 명 남짓의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를 없애기 위해 그 유명하다는 ‘김&장 로펌’까지 동원해 노조파괴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dw project'였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따라 작년 11월 24일, 노조에 가입되어 있던 노동자들을 전원 계약해지하고 일자리에서 내쫓았다.


  대우건설이 작성한 'dw project'

그러나 노동자들은 승리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승리했다. 대우건설은 60여 명의 노동자를 쫓아내기 위해 2900여 명의 용역경비를 동원했지만 노동자들은 승리했다. 로비에 있던 천막이 무너지고, 건물 앞에 다시 세운 천막도 무너지고, 용역경비에게 폭행당하고, 경찰서에 끌려가고, 6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청구가 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승리했다.

지난 1월 25일 대우센터 노동자들은 △일괄고용 △노조활동 보장 △면책 합의를 주 된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에 도장을 꾹 찍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2월 2일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대우건설비정규노동자 생존권 및 원청사용자성 쟁취 투쟁위원회’(대투위)라는 긴 이름의 조직을 이끌었던 구권서 대투위 위원장은 “86일 간의 투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만감이 교차한다”라며 “함께 싸운 동지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존경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구권서 위원장은 87년 6월 스물 여덟, 푸른 꿈을 안고 대우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노동자이기도 하다. 구권서 위원장은 “현장에 복귀하고 나서도 대투위의 성과를 대우센터분회가 튼실하게 이어받아 현장조직 강화로 새로운 투쟁으로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함께 해준 연대단위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제 알았어. 노동자들 싸우는 거 정당하다는 것“

뭐니 뭐니 해도 승리의 주역은 계약해지라는 무시 무시한 통보를 받고 서도 새벽 5시면 농성천막에 나와 동지들과 함께 먹을 밥을 하고, 아침이면 머리띠를 메고 찬 바닥에 앉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이었다. 투쟁 한 달, 첫 눈과 함께 했던 권옥분 조합원은 아직도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권옥분 조합원

권옥분 조합원은 “시작할 때부터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어”라며 웃었다.

“용역깡패들이 새벽에 쳐 들어와서 천막을 부수고, 나를 내동댕이치는데 너무 무서웠어” 권옥분 조합원은 지난 12월 7일 새벽 용역경비들이 대우센터빌딩 로비에 있던 천막에 쳐 들어와 거리로 쫓겨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권옥분 조합원은 협약서에 도장 찍 던 날 만세 삼창을 했다고 했다. 너무 좋아서 로비 한 가운데서 만세 삼창을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측이 고용한 용역경비들도 “아줌마 최고”라고 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 했다.

“이제 알았어. 노동자들 싸우는 것 남일이 아니라는 것. 너무나 정당한 싸움이라는 거 말이야. 다시 일터에 돌아가는데 가서도 거들먹거리지 않고 오히려 비조합원까지 감싸면서 같이 노조하자고 말할꺼야.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하잖아. 요즘 사람들은 벼를 쌀 나무라고 한다며?(웃음) 같이 돌아가니까 더 열심히 투쟁해서 노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야지. 일도 열심히 할꺼야”

권옥분 조합원과 기쁘게 맥주잔을 부딪쳤다.


대투위는 이제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조 대우센터분회로 조직명을 바꾸고 다시 싸움을 준비한다. 이제 그네들의 목표는 ‘정규직화’라고 했다. 올 해로 66살이 된 한 할머니 노동자는 “내가 얼마나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노조하고 끝까지 싸울꺼야”라고 말했다. 늙은 노동자들의 승리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