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노동자성' 반대만 하고 떠난 경총

국가인권위 주최 특수고용 토론회서 노동자들 빈축 사

3월 30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 7층 레이첼카슨룸에서 '특수고용 종사자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공개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특수고용 종사자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용역 의뢰한 결과를 발표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됐다.

실태조사 결과분석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대응과 정책적 과제'는 연구용역팀인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가 각각 발제를 맡았고, 이에 대한 토론자로 박대규 건설운송노조 위원장, 이호근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 강성태 한양대 교수 등이 나왔다.

최근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안팎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토론회에는 정부-자본 관계자를 비롯해 레미콘 기사, 화물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등 건설산업연맹과 서비스연맹 소속 특수고용 노동자들 100여 명이 찾아와 자리를 가득 메웠다. 참가 인원을 예상치 못한 주최측이 대여한 장소가 협소해, 많은 참석자들이 바닥에 앉거나 자료가 동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조사대상 10개 직군 모두 노동자성 갖고 있어"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한 '특수고용직 종사자 실태조사 결과분석'에 따르면 이번 조사 대상은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레미콘 운송차주, 텔레마케터, 애니메이터, 화물운송기사, 덤프트럭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 배달원, 간병인 등 10개 직군이다.

면접조사와 설문조사 결과 중 이들 특수고용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주로 언급한 김영두 연구위원은 노동자성 관련사항을 업무시간·장소·방법의 통제, 지시와 감독, 복무규정과 징계, 필수 서비스 여부, 근로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 작업수단 소유 여부, 교육 실태, 독자사업 전개 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검토하며 이들 특수고용 종사자들이 노동자성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김영두 연구위원은 이번 분석 결과 중 노동자성에 대한 시사점으로 "조사대상인 10개 직종 종사자들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인적 및 경제적 종속성을 지니고 있었다"며 "조사된 직종의 종사자 절대 다수가 스스로를 노동자로 간주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의 적용을 받길 원한다는 주관적 요구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종사자에게 노동법 적용해야"

  이승욱 이화여대 법과대학 교수
이승욱 이화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대응과 정책적 과제'를 발표하며, 주요하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과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은 차이가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요컨대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은 근기법상 근로자 개념에 비하면 경제적 종속성의 측면에서는 양적 질적으로 동일하지만 인적 종속성의 측면에서는 질적으로 동일하나 양적으로는 차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으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행법의 해석에 의하더라도 앞에서의 실태조사에 해당하는 직군에 대해서는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충분히 인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승욱 교수는 이를 위한 과제로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들면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노동보호법적 규율은 특별법에 의해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집단법적 지위와 관련해서는 근로자와 동일하게 노조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누가 근로자인가'가 아닌 '누구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해야 하며, 노무제공만을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정책적 이유가 없는 한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승욱 교수는 이같은 관점의 연장선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특수고용직 노동자 관련한 진정을 잇달아 각하시킨 것을 지적하며 "근로자의 개념이 각 법의 목적에 따라 다른 만큼, 엄격하게 해석해 온 판례를 근거로 특수고용종사자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인권위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경총, "근로자 아니다, 명백한 개인사업자다"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
발제가 끝난 이후 토론자들이 토론시간이 되었을 때, 일정을 이유로 가장 늦게 도착한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이 토론 순서를 바꿔 먼저 발표한 후 자리를 뜰 것을 요청하자 플로어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사회자가 '진행은 사회자에게 일임해 줄 것'을 제안하자 참가자들이 최재황 본부장과의 질의응답을 요구하며 한동안 소란을 빚기도 했다.

최재황 본부장의 토론문이 앞서 발표한 두 연구자의 발표 내용을 전면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도, 특수고용 당사자인 참석자들의 원성을 샀다. 최재황 본부장은 김영두 연구위원의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골프캐디협회'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월평균 소득과 노동자성을 부인했으며, 학습지 교사와 레미콘 운송차주 등에 대해서도 "사용 종속관계가 없다"며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재황 본부장은 "정부가 또다시 보호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관한 문제는 노동법이 아닌 민·상법, 경제법, 공정거래법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는 치면서 경기보조원 노동조건은 모르나"

최재황 본부장이 토론문 발표를 마치고 일정을 이유로 퇴장하려 했으나 청중들의 요구로 두 가지의 질문이 허락됐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김경숙 씨는 "최재황 본부장이 반박 근거로 제시한 '한국골프캐디협회'의 설문조사 설문지를 나도 받아보았는데, 노동자와 개인사업자 개념이 정확하지 않은 대다수 경기보조원들이 모순에 빠질 수 있는 설문이었다"며 "사업자의 의도에 의해 이뤄진 조사가 정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느냐"며 반박했다.

아울러 "경총에 계시니 골프도 치실 것이고 그렇다면 경기보조원이 내장객 예약 시간에 맞춰 출퇴근한다는 것도 잘 아실 텐데, 그렇다면 배차시간에 따라 출퇴근하는 버스기사도 노동자가 아니라고 할 셈이냐"고 묻기도 했다. 김경숙 씨는 "경기보조원이 근로소득세를 안 내는 것을 지적했는데, 나는 내고 싶은데 안 걷어가서 못 내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년 간 레미콘 기사를 했다"고 밝힌 참석자는 "레미콘운송차주는 업체로부터 물량을 독점적으로 운송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업상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레미콘업체와 운송도급계약을 체결한 개인사업자"라는 최재황 본부장의 발언을 전면 반박했다. 그는 "회사에서 물량이 감소하면서 5,6년 된 차량을 받지 않으면 그만두라는 압박이 있었고, 매달 갚아나가고 있다"고 토로하며 "복귀시간이 임의로 결정된다는 말도 전혀 사실이 아니고 모든 차량에 GPS가 설치돼 감시받고 있다, 경총의 자료를 보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화물노동자라고 밝힌 참가자도 "아무 것도 모르는 20대에 회사측 권유로 위수탁으로 갔다"며 "화물연대가 불법 집단행동을 했다고 하는데, 자영업자라면서 자영업자가 일 안하는게 무슨 불법이고 파업이냐"라고 되물었다. 참석자들의 원망 어린 질문 공세가 터져나오자 사회자가 발언을 제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질문하려는 청중을 만류하는 등 다소 소란이 일기도 했다.


"경총 때문에 왔는데..." 일당 포기하고 온 노동자들 허탈

최재황 본부장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근로자냐 아니냐를 결론낸 것은 경총이 아니"라며 "'한국골프캐디협회'의 설문 대상자 3천8백 명이 뭘 잘 모른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지 말라, 김영두 선생의 조사발표 대상자는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냐"라고 대꾸했다. 레미콘 노동자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레미콘의 특성상 GPS 설치는 물건의 하자 관리 엄격화 차원에서 좋게 이해하셔야 한다"는 등으로 간단히 답변한 후 토론회 자리를 떴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대다수인 청중들은 "그런 게 바로 관리감독이다", "반대만 하고 가는 경우가 어디 있나", "토론회에 참석하려면 일정을 넉넉히 보아두어야지 이럴려면 참석 안하는 것이 낫다"는 등 불만을 쏟아냈다. 주최측인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해서도 토론이 충분히 되도록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은 물론 정부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방안에 대해서도 꾸준히 반대의사를 펴 온 경총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 실태를 발표하는 토론회 자리에 참석한다는 것에 일손을 놓고 토론회장을 메운 대다수 노동자들은 최재황 본부장의 태도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정이 바쁘다"며 토론회장을 나가는 최재황 본부장의 등 뒤로 "난 오늘 일당을 포기하고 왔다"는 덤프기사, "1억3천만 원에 매달 270만 원 할부를 붓는 차를 세워놓고 참석했는데"라는 레미콘기사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