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이면합의 없는 딜브레이커 되길

양국 모두 후퇴할 수 없다면 '결렬'이 적기

정부가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국민들을 상대로 한미FTA 협상의 거짓말 같은 '협상 타결'을 선언할 모양이다.

30일 낮에 퍼진 ‘협상 연장’ 보도에 한국 정부 그리고 스티븐 노튼 미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이 직접 나서 ‘사실 무근’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청와대 발 '협상 연장설'은 결국 '48시간 연장에 합의했다'는 것으로 확인 됐다. 논의하고 있으면서도 대 놓고 국민들을 향해 '아니다'라고 ‘거짓말’을 한다. 한미FTA 협상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그러했지만, 협상 막판인 지금, 과연 한국 정부의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현재 언론에서 제기되는 쟁점은 쇠고기 등 민감 농산물과 자동차, 섬유, 금융 등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미국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외 쟁점이었던 나머지 분야는 어떻게 타결되었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타결이 아니라 상납의 방식으로 정리됐다는 게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측의 확신이다.

시청각미디어공대위는 “더빙 문제만 빼고 모두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게 됐다”는 내용을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적재산권 공대위도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일시적 저장만 빼 놓고, 미국 측의 요구를 다 받는 것”으로 정리한 외교부의 독단을 규탄했다. 심지어 지적재산권의 ‘마지노선’이라 일컬어 지던 비위반제소(Non-Violation Complaint : 협정의 체결로 기대할 수 있었던 혜택이 무효화되거나 침해되었을 경우 국가 대 국가 간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미국 측 요구대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한미FTA 협상의 포문’을 열었던 한국 정부가, 막판 스스로 정한 협상 시한까지 넘겨 가며 협상에 끌려 다니고 있다. 보도 되는 내용만 봐도 미국 협상단의 강공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에 한국 측이 밀려난 분과만 진전을 내고 있다. 과연 정부가 어디까지 밀릴 것인가에 국민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계속된다. 31일 오전 10시 농업분과 협상을 시작한 데 이어 오후 2시 반에는 섬유분과 협상이 시작됐다. 또 자동차 협상은 장관급과 수석 급에서 수시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날까.

48시간 협상 연장.. 더 초조해진 한국 정부

목 마른 자가 우물 파기 마련이다. 그런데 TPA(무역촉진권한) 만료 시한의 조건을 가진 미국 보다 한국 정부가 더 한미FTA 협상에 초조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정부의 ‘쌀은 안 된다’는 공언도 수 많은 거짓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쌀'의 경우 한국과 미국은 이미 2014년 까지 관세유예 하기로 합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2004년 9개국과 쌀 협상을 종료한 한국이 미국과의 양자협정을 통해 별도의 추가 방을 한다면 미국을 제외한 8개 피해국들이 한국을 제소를 할 수 있게 된다. 국제법상으로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진정 쌀은 한미FTA 협상의 의제가 아니라는 것이 통상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쌀'을 제외한 또 다른 쟁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여부이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쇠고기는 한미FTA 협상의 의제가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협상 막바지에 이르자 "미국이 농업에서 원하는 것은 쇠고기 시장의 전면 개방이며, 40%의 관세 문제가 아닌 광우병이 포함된 위생 검역이 핵심"이라고 밝히며 '공식' 딜브레이커(deal breaker, 협상 결렬 요인)로 인정했다.

  광우병 증언대회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진행됐다. [자료사진]

미국은 지난 9일 ‘06년 10월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신청한 광우병(BSE) 위험등급평가에서 OIE 과학위원회(Scientific Commission)로부터 3단계 등급 중 ’광우병 통제국가‘(controlled risk) 등급으로 잠정 판정 받았다.

미국 측은 여전히 이를 근거로 5월로 예정된 OIE 총회에서 ’광우병 통제국 등급‘ 판정을 기정사실화 하고 ’뼈‘를 포함한 검역기준 완화를 문서로 확약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현행 40%로 돼 있는 쇠고기 관세의 즉시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한국 협상단은 총회 이전에 검역 완화를 문서로 확약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관세에는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근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개방 시키겠다’고 미국 내 축산업 관계자들에게 공언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도 “쌀과 쇠고기는 안 된다”며 입장을 밝혔었다. 명실상히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는 딜브레이커의 합당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한국의 전체 수입 농산물 중에서 최대품목에 해당한다. 한국은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 금지 초치를 취하기 전인 지난 2003년, 미국으로부터 8억600만 달러 상당의 쇠고기를 수입한, 3위의 수출국이었다.

이 금액은 한국이 2003년 미국으로 수출한 의류 수출액의 46.5%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또한 이중 갈비가 2/3의 규모를 차지한다. ‘뼈’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갈비 수출이 불가능해 지는 것이고, 미국 측의 입장에서는 실익을 챙기기 어려워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아가 목장주 출신인 부시 미 대통령이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 미국의 ‘비프 벨트’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은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0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기부한 선거자금 4백70만 달러 중 79%가 부시에게 제공됐다.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축산업자들은 80% 이상의 기부금을 부시에게 몰아주었다.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 만큼은 부시 대통령에게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생색을 내야 할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소 뒷걸음질 치듯 후퇴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가보면, 한국과 미국은 06년 1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조건으로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으로 한정하는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뼈 조각 및 위험물질 발견 시 반입된 물량을 전량 반송하고 미국의 해당 도축장에 대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 시장 개척용’으로 들어왔던 대표 선수급 쇠고기 수입 물량이 3구 3진으로, 뼛조각이 발견돼 모두 폐기 반송 처리 됐다. 심지어 3번째 수입된 쇠고기에서는 죽음의 물질로 악명이 높은, 강력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까지 검출돼 안전성 논란이 빚어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소 뒷걸음질 치듯 수입재개 조건을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11월 한국을 방문한 척 램버트(Chuck Lambert) 미농무부차관보는 성명을 통해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품목에서 근막(silver skin)을 제외하는 것과, 연골(cartilage), 흉골(breast-bone) 및 뼛조각(bone chip)은 특정위험물질(SRM)로 간주되지 않는 것에 동의했다는 내용을 밝혔다.

그리고 급기야 정부는 ‘부분반송(뼛조각이 발견된 박스만 반송하는 방식)’안을 제안했다. 미 측이 별다른 반응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사실상 합의를 이뤘다’고 판단하고, 3월 내 수입재개를 위한 추가 계획을 발표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그러나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미 협상단은 '부분반송'이 아닌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고, 한국 정부만이 착각에 빠졌었다는 것이다.

  쌀 이면 합의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민들은 최초 '농민 총파업'에 돌입했다.[자료사진]

제기되는 이면합의 의혹.. 간과하지 말아야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는 국내 반대 여론을 고려해 문서가 아닌 구두로 약속하고, 한미FTA 타결 선언 이후 5월 OIE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 이라는 확정발표가 나오면 스리슬쩍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40% 쇠고기 수입 관세도 낮추는 것에는 합의하되, 다른 쟁점들이 팩퀴지로 거래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분위기다.

이런 시나리오를 고려할 때 최근 불거진 이면 합의 논란을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한미FTA저지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는 공화당 중진의원인 윌리 허거(Wally Herger) 의원이 언급한 "한국은 미국 농부들이 한국의 저녁 식탁에 그들이 생산한 쌀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쌀을 협상 대상으로 삼아야 해", "미 협상단은, 미국이 쌀 협상 요구를 포기해야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겠다는 한국의 제안을 전면 거절해야” 등의 발언에 근거해 이면합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국 협상단은 그간의 주장과 달리 쌀과 관련한 협상을 진행해 왔던 셈이다. 또한 쌀을 전제로 '쇠고기 수입 재개 약속'을 하고 있어 사실상의 거래의 논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신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 요구에 정부는 별다른 공식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패트릭 보일 미국 식육협회(AMI) 회장이 "1년 전 위생조건을 맺을 당시 양국 정부가 1단계 뼈를 제외한 살코기 수입에 합의한 뒤 2단계로 FTA 협상 등과 더불어 향후 1년 동안 함께 ‘뼈를 포함한 쇠고기 수입 재개 방안을 논의하기로 공감한 바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한미FTA협상 개시 선언 이전, 4대 선결 조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위생 조건을 협의 할 당시 '쇠고기'와 관련한 단계적인 개방을 이면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현재 국면에서 이면 합의 의혹의 경중을 따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4대 선결과제 논란이 미국의 보고서들을 통해 확인 됐던 전례와 현재 협상이 미국 협상단의 강공이 계속되고 있는 국면이라는 점, 한국 협상단이 '끌려 다닌다'는 비난 여론이 더 크게 일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

그리고 한덕수 한미FTA 체결지원 위원장은 마늘 협상 이면합의와 파동의 주역이었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쌀 협상 이면합의의 당사자 였음을 고려할 때 '데드라인'을 넘긴 한국 정부가 이면합의 없이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이면 합의가 없다면, 미국 측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는 방향일 테니 양쪽 모두의 경우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부디.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가 이면합의 없이 한미FTA 협상의 딜브레이크가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