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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것만 살아남는 세상, 독하지 않은 까마중

[강우근의 들꽃이야기](61) - 까마중

길을 걷다 까마중을 봤다. 까만 열매를 알알이 달고 있는 그 모습이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어린 시절 저 열매를 참 많이도 따 먹었다. 도시의 아이들도 까마중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열매 하나를 따서 손바닥 위에 굴려 본다. 탱글탱글한 검은 자주색 열매가 흑진주만큼이나 예쁘다. 열매를 먹어 보려 했지만 길가에서 매연을 뒤집어쓰고 자란 것이라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열매에는 솔라노닌이나 솔라마진 따위 독성이 있다는 것도 이미 알아 버린 것이다. 아이들이 까마중 열매를 먹어도 되냐고 물어 보면, 먹어도 되지만 많아 먹지는 말라고 일러 준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단맛에 중독된 아이들은 한 개 이상 먹지 않기 때문이다. 또 예전에 그렇게 많이 먹었지만 독성으로 고생했다는 아이를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까마중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데 까마중의 옛 친구는 이미 그 열매가 꺼림칙해진 것만큼 변해 버렸다.

까마중은 독성이 있어도 큰 탈이 날 만큼 강하지 않다. 까마중은 마치 '먹더라도 조금만 먹고 가세요'라고 속삭이는 거 같다. 잎사귀에는 벌레 먹은 흔적이 있다. 먹은 흔적이 꼭 밭이랑처럼 남아 있는 걸 보니 이십팔점무당벌레가 갉아 먹은 흔적이다. 이십팔점무당벌레는 조금만 먹고 갔다. 까마중이 속삭이는 것을 들은 걸까? 신기하게도 가지과에 속한 식물만 골라먹는 편식쟁이 이십팔점무당벌레는 구기자나무나 감자 잎을 먹을 때는 게걸스럽게 먹어대더니 까마중 잎은 조금만 맛보고 간 것이다.

거리에서 사람들 발에 밟히며 살아가는 풀들은 독성이 강할 것 같지만 애기똥풀이나 미나리아재비쯤을 제쳐두면 큰 독성을 지닌 게 없다. 그래서 한두 번 우려내면 대개 다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까마중도 삶아서 물에 담가 독성을 빼내면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물러서 어떻게 험한 거리에서 살아갈까 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이들은 전 세계의 거리로 퍼져나가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까마중 역시 온대, 열대에 걸쳐 온 세계에 분포하고 있다. 독하고 잘난 것만 살아남을 것 같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 때, 높은 곳만 올려 보지 말고 발밑을 보자. 거기 자라는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풀들은 이미 세상을 이긴 풀들이다. 그래서 잡초를 보이면 희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