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파 내에서 비대위원장으로 ‘제3의 인물’을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그는 “심상정 의원이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제3자가 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심 의원이든 제3자든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김창현 전 사무총장과의 7일 인터뷰 전문이다.
▲ 정서 기자 |
비대위 구성이 무산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대선 결과에 대해 지난 4년간 당권을 쥐고 있었던 다수파가 책임지고 당권에서 물러서는 게 당연하고 비대위도 넘겨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대선후보 경선 차점자고 국민적 지명도도 높은 심상정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당내에서 갑자기 종북주의 논쟁이 불거졌다. 개인적으로 당황스러웠고, 특히 조승수 전 의원 등 일부 당원들이 종북주의가 척결되지 않으면 분당하겠다고 하는 데 경악했다. 대선에 대해 함께 평가하고 시급히 총선 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서 평등파의 문제제기는 과연 대선 패배를 제대로 반성하려 하는가, 당을 살리려고 하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이 과정에서 심상정 의원의 비대위 조건 제시에 굉장히 놀랐다. 심 의원답지 않게 왜 그러나 했다. 평등파에서 종북주의 청산을 들고 나온 데 이어 심 의원이 공천권을 갖겠다고 말한 것은 ‘이번 기회에 다 쓸어서 정리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비례대표 후보에서 정파 핵심들은 책임지고 물러나자고 하는 말한 것은 그 자체만 떼놓고 생각하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전략공천 문제에 있어서도 총선 돌파를 위해 정파 색깔을 지우고 대중적인 훌륭한 분을 앞세워보자고 제시했다면 누구도 거부하기 힘들지 않았겠냐.
자주파에서 먼저 제안해 비대위 인사권을 줬다. 인사권은 전권이다. 받아서 하면 되는 거였다. 전략공천은 정치력으로 풀어야지 법과 제도로 풀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풀려는 순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결국은 지난 중앙위원회에서 그 사단이 났다. 그런 점에서 심 의원에게도 비대위 무산의 책임이 있다.
“종북주의 딱지, ‘수사해서 잡아가라’는 얘기”
종북주의 문제가 대선 결과와 관련이 없다는 건가. 또 평등파가 북핵 입장, 일심회 사건, 북한 체제에 대한 태도 문제를 들어 종북주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혀달라
종북 얘기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고 대선 평가에 전혀 맞지 않다. 대선서 그래서 졌냐? 아니다. 엉뚱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종북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담긴 정치적 의미다. 경멸의 뜻이 담긴 표현이고 같이 할 수 없다, 깨자는 말을 하기 위한, 분당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분당을 전제로 한 토론은 할 수 없다. 당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당을 망가뜨리자는 태도다. 대화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분당론에 대해서는 응징 밖에 없다.
▲ 정서 기자 |
주장의 내용 자체도 왜곡되어 있다. 북한식 사회주의로의 통일을 주장한 적 없다. 흡수통일 방식에 일관되게 반대해왔고 남북 상호 체제를 존중한 연방제 통일로 구동존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단지 연공연북을 강조했다. 북한과 연대해 함께 통일하자는 것이다.
북핵실험 시기 한반도 비핵화의 걸림돌은 미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정치권 반응을 살펴볼 때 한나라당에서는 북에 대해 전쟁불사 태도를 취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인도적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에 요구되는 태도는 이것도 나쁘고 저것도 나쁘다는 식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짚어내는 것이다.
(이용대 정책위원장의 “북핵은 자위권”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해당 발언의 전후 맥락에 대해 명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미국에서의 핵 공격 위협이 북핵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관점이 녹아 있는 발언으로 보인다. 북핵을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일심회 사건에 있어서 우리의 기본 입장은 국보법에 반대하며 국보법이 적용되는 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친북당 이미지는 일심회 실체를 인정하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자르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싸우지 못해 생긴 것이다. 당 지도부가 당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진보정당 탄압’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다. 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부당한 국보법으로 동지가 잡혀가는데 국정원장의 말을 믿나. 동지가 부인하면 믿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다.
국보법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종북주의 딱지 매기기는 “여기 간첩 있다 수사해서 잡아가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측면에서도 옳지 않다. 종북주의 딱지 안 받으려면 북핵 사태 때 북한을 열렬히 비판했어야 한다는 건가.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다. 북한 체제를 인정한다면서 그 정부를 가리켜 ‘군사왕조 집단’이라는 말은 쓸 수 없다. 소위 수구꼴통을 제외하고는 그런 표현 안 쓴다. 평등파에서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내면에 반북주의가 깔려 있다고 본다.
비대위 구성 무산 이후 당 수습 방안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보나. 자주파 일부에서는 당직 선거를 앞당겨 새 지도부를 선출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비대위가 잘 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서로 으르렁대다 당직 선거 들어가면 당이 잘 되겠나.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해야겠지만 조기 당직 선거는 물리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장애인 할당이 생겨서 당헌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1월 말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지도부 선출은 2월 말~3월 초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때까지 지도부도 없이 직무대행밖에 없는 당이 총선을 치를 당이냐. 그렇게 가면 총선에서 무슨 모습을 보이겠냐. 그런 점에서 비대위 구성이 급선무다.
▲ 정서 기자 |
“‘잘 해봐라, 안 되면 죽인다’는 거 아니지 않냐”
당 지도부에서 비대위 구성에 좀처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방안이 있나
문제의 본질은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 (심 의원이) 전권을 가지고 해보라는 말을 신뢰했다면 (비대위원장직을) 받았을 것이고, 신뢰를 못하니까 제도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 (자주파가) 전략공천권을 달라는 요구를 ‘싹 죽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선거 잘 해보겠다는 진정성으로 받아들였다면 (심 의원 요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쪽도 신뢰가 없는 거다. 종북주의 척결 얘기하니...양쪽 다 본질적으로 신뢰가 없다. 그러니 이럴수록 통 큰 정치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정파적 흥정으로 비대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원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진심을 믿고 조건 없이 비대위원장직을 받아야 한다. 설령 심 의원이 못하고 제3자가 하더라도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 비대위원장은 분당론자와 선 긋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분당 주장은 ‘반당적 행위’라고 일갈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분당론자 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치더라도 당 대표의 위치에서, 10만 당원의 구심으로서 당 단결을 해치는 행위는 단호히 자제시켰어야 했다. 종북주의에 대해서도 한쪽 정파의 견해에 손 들어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선 평가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 수습에 있어서 핵심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줬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심 의원에게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점이 있었다.
▲ 정서 기자 |
심 의원이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3자가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심 의원이든 제3자든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위원장 선출이 표결로 가는 게 아니라 합의 추대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심이든 제3자든 앞서 밝힌 그런 원칙 제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한을 달라는 표현은 불신이다. 조건 없이 갔으면 더 잘 됐다. 배수진을 치면 답이 안 나온다. 비대위에 권한이 없는 게 아니다. 인사권을 준 것은 전권을 준 것이다. 그 정도에서 나머지는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 의논하면 된다. 그것조차 믿지 못하고 또 다른 의구심을 앞세우면 안 된다는 거다. 위원장 뽑아놓고 ‘자알 해봐라 안 되면 죽인다’ 이런 게 아니지 않느냐. 협조할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이해를 해야지...갈등의 고리를 푸는데 원칙, 기준, 상호신뢰, 지혜가 필요하다. 중앙위 전까지 모든 노력들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