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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생태계 파괴 심각, 미흡한 주민 생계지원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49) - 기름유출 사고 피해 지역을 다녀와서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을 규탄하는 내용으로 태안군 의항리 2구 마을앞에 붙여 놓은 현수막

지난 2월 23일(토) 대규모 기름유출 사고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2구 지역을 다녀왔다. 이 지역은 원래 개미목 마을로 의항해수욕장과 구름포 해수욕장, 그리고 암석해안, 갯벌, 논경지 등이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번 기름유출 사고가 바로 앞 바다에서 발생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대표적인 마을 중의 하나이다.

이 마을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지난해 12월 7일 기름유출 사고 이후 이틀 후 찾았던 곳이 만리포와 천리포 였다. 이후 기름제거 작업을 하러 간 때가 12월 15일이었는데 바로 그곳이 의항리 2구의 의항해수욕장 부근 암석해안이었다. 그때 엄청난 기름을 제거하고 난 후 얼마나 기름제거 작업이 잘 되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1월 5일에 잠깐 방문한 적이 있을 때는 독살에서 방제 작업을 하시던 할머니들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모두들 잘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충남대학교 마을연구단에서 조사를 해서 ‘대원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판한 단행본 ‘태안 개미목마을’을 구입해서 보았기 때문에 더욱 마을 주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더욱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나 또한 전북대학교 새만금생활사 연구단의 전임연구원 자격으로 새만금 연안 지역에서 어민들의 생활문화와 생태인식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기도 해서 더욱 관심이 있었다.

서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7시 30분에 서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태안행 직행버스를 탔다. 7시 50분쯤 태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터미널 담장에 ‘유류피해 주민은 총궐기하자’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다시 의항리행 시내버스로 갈아 탄 다음 8시 10분 출발했다. 승객은 나 혼자였다.

  의항리 해수욕장 옆에서 바위를 들추면서 기름제거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주민과 방제업자, 보험회사측 관계자

태안 시내를 가로질러 의항리 방향으로 가는 길가와 네거리 주변엔 다양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해수부 없어지면 피해보상 따로국밥 책임질 놈 한 놈 없다’, ‘원유 유출사고 회사는 진실하게 사죄하라’, ‘태안의 어려움을 대구시민도 함께 하겠습니다’, ‘정부는 특별법 제정하여 어업인 살려달라!’, ‘터전잃은 영세 어민에게 하루속히 보상하라!’, ‘삼성미술품 팔아 태안굴밭 매입하라’, ‘자원봉사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초동대처 늦은 정부는 신속히 특별법 제정하라. 우리의 살길은 정부의 선보상입니다’.

그리고 의항 2구 주민일동 이름으로 ‘삼성인지 정부인지 우리 생계터전 다 죽였다. 정부는 신속하게 선보상하라!!’, ‘어장을 망가뜨리는 방제업체는 물러가라! 삼성은 물러가라’ ‘그리고 1월 25일 한국관광협회중앙회의 주최의 ‘태안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 - 태안관광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행사 안내 현수막도 붙어 있었다. 한참 현수막을 촬영하자, 이 노선만을 다니신다는 버스 기사님은 삼성의 무책임한 태도에 비판적인 말을 했고, 주민들의 편에 서서 배상소송을 맡은 어느 변호사의 최근 발언에 대해 문제를 삼으면서 비판을 가했다.

한참 서로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차는 벌써 소원면 소재지를 지나 만리포 방향으로 가다가 의항리 방향으로 우회전을 했다. 낮은 고갯길인 이 길은 조선 중종 때는 안면도 수로처럼 안흥량에서 송현리 수유동을 거쳐 의항리로 연결되는 무너미재 운하 굴착공사가 있었다가 포기했던 곳이다. 저수지를 지나 농경지 쪽으로 접어들자 기러기 50여 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다. 다시 삼거리에서 좌회전하기 직전 차를 기다리고 있던 3명을 태웠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분들이다. 기사님 말로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들인데 매일 기름제거 작업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식사제공 일을 하러다니는 사람들이다”며 “무료로 태워준다”고 말했다. 이 분들과 기사님이 우리말로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시내버스가 큰 고갯길을 지나 고부랑길을 내려가는데 의항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왔고, 간척지인 농경지가 보였다. 기러기 떼가 앉아 있었다. 조금 더 지나자 '큰말'로 들어갔다. ‘큰말’은 의항리 2구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다. 버스 기사님이 어촌계 사무실 앞이라고 말해 주어서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출발한지 35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2층에 위치한 어촌계 사무실로 들어가니 의자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놓여있고, 8명 정도의 어민들이 앉거나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전에 마을 회의가 있었다고 한 어민이 말했다. 어촌계장이 어제 방제작업을 한 어민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었다. 어민들 간에 삼성 책임 문제, 보상 문제, 부실하게 이루어지는 방제업체들의 방제 작업, 양식장 굴 조사 상황 등 다양한 내용의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고 갔다. 현황판에는 매일 주민 210여 명, 사고 이후 총 7,200여 명이 방제작업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피해보상 대책위 명단도 적혀 있었다. 다음과 같은 홍보물도 붙어있었다. ‘검찰은 전면 재수사!! 삼성은 무한손해배상!! 삼성은 행복한 눈물!! 태안군민은 검은 피눈물!!’.

참고로 이충경 어촌계장과 나눈 대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생존권 보장’이라는 두건을 쓰고 있던 의항리 2구 어촌계장

작업을 못나가신 지 오래 됐지요?
기름 유출 사고 이후로 계속 못 나갔다.

어촌계장을 언제 맡으셨는가?
전임 어촌계장이 작년 초에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선거를 했는데, 당시 간사였던 내가 잔여 임기인 2년을 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가 임기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38세다.

주 어업은?
어선어업을 갖고 있다. 어선이 있어도 배를 몇 번 못나갔다. 일도 배워야 하고 사업도 많고 교육도 많고 어촌계장일 하다 보면 거의 어업을 못한다. 유어선(낚시업)이다. 계속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작은 배 1톤으로 시작했다가, 작년 사고 이전에 어민후계자 자금으로 3.14톤으로 배를 키웠다. 운이 안따르는 모양이다. 작년엔 어촌계장 되고 배도 키웠는데... 새롭게 배를 만들었는데 4천만 원 들었다.

굴양식은 하지 않았는가?
굴양식은 하지 않고 유통업을 했다. 시장은 충남권과 경기권이었다. 광천, 대천, 대전, 평택, 수원, 안양, 인천까지 많이 다녔다. 처음엔 원주까지 갔었다. 겨울철에 굴을 하는데 혼자 하다보니 여유가 없고 힘들어서 점점 줄이다가 어선을 구입해서는 하지 않았다. 10여 년 하다보니까, 운전도 그렇고 갈수록 힘들어졌다. 무서운 것을 느꼈는데 운전을 하다가 자더라고요. 하루 일상은 낮 12시에 일어나서 각 하우스에 들려서 주민들에게서 굴을 채집해가고, 저녁 5-6시쯤 박스에 굴 포장을 해서 오후6-7시 출발하면 빠를 땐 밤 12시에 오기도 하고 늦을 땐 새벽 3-4시경 오는 경우도 있어 매일 자고 일어나고 해서 너무 힘들었다. 개인적인 시간도 없고.

낚시업이 잘 됐는가?
낚시업은 그렇게 많이 하지 않고, 여름철에 민박 (학교 앞 청운민박)과 같이 하다보니까 손님들이 많이 왔다. 그래서 작년도에 배를 키우게 됐다. 그런데 바로 사고가 나버렸다.

다른 어민들도 어선어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작업여건이 안좋다. 사고 지점이 어민들이 조업하는 장소다. 낚시, 주낙, 통발 등 대부분의 어업을 그곳에서 했다. 멀리까지 나가지 않고 사고 지점 주변에서 했다. 그래서 사고 직전에 쳐 놓았던 통발도 아직까지도 수거하지 못했다. 방제선들이 왔다 갔다 하던 시기에 파도도 많이 쳤었고, 유실된 것도 많았다. 꽃게가 작년에 많이 나왔고 나오는 기간도 길어서 꽃게 풍년이었다. 그런데 조업하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통발도 유실됐고 깃발도 유실된 것이 많았다.

물속 밑바닥 상태는 어떤지 아는가?
방제 관할하는 해경소장에게 부탁을 했다. 해안가에서 부터 사고지점까지 바다 속을 조사를 해서 조업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 했더니, 그 부분은 해수부 소관이라 하더라.

주로 잡던 것은 무엇인가?
우럭, 광어, 놀래미, 주꾸미 등 서해안에서 나오는 것은 대부분이 나왔다. 주꾸미 잡는 시기가 되어 주꾸미 통발을 넣은 분이 있는데 수거했는지 모르겠다. 주꾸미가 대부분 뻘 바탕 등 해안가에서 노는데 워낚 직격탄을 맞아 잡힐 지도 모르겠고, 잡아봐야 판매도 되지 않을 것이다.

주민 수는 얼마나 되는가?
원래 주민은 360명 정도 되는데, 방제작업 나가는 사람은 210여 명 된다.

굴 양식장 피해 상황은 어떤가?
양식되고 있는 굴의 경우, 굴 껍질에 붙어있는 생물들이 죽어서 썩는 냄새가 난다. 굴이 벌어지면 굴 속살이 없어진다. 거의 대부분 살아있으나, 점점 죽어나가고 있다. 처음 붙어있는 기름들이 붙은 상태에서 뻘층이 덮어서 버렸다. 날이 따뜻해지면 녹아내려 2차, 3차 오염을 유발시킬 것이다. 굴 피해 보상액 산정과 철거문제 때문에 조사를 하고 있다. 코스모측이나 수협, 군 관계자, 해양수산청 관계자가 같이 참여해서 조사하고 있다. 배로 나가서 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

굴 작업은 하고 있는가?
사고 이후 아직까지 굴 채취나 굴까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고 발생 이후 어떻게 대처 했는가?
사고 발생 당일 날 여기에 없었다. 어촌계장 교육에 2박3일 참여했었는데 이틀째 되는 날 마을에서 아침7시 50분에서 8시 사이에 전화가 와서 기름 냄새가 많이 난다고 했다. 초소장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라고 했었다. 다시 태안으로 되돌아오면서 들으니 태안읍내와 서산까지 냄새가 났다고 들었다. 바람이 많이 세게 부니까 그랬던 것 같다. 멀리서 보다 보니까 그렇게 심한지 몰랐다. 냄새가 광범위하게 퍼지는 것을 알고 얼마나 피해가 심한지 알았다. 기름이 몰려오는지 시간마다 순찰을 다녔는데 저녁 7시반이나 8시가 됐나. 기름이 밀려왔다. 유화제 뿌리는 배들이 멀리 유조선 근처에 있었는데 점점 가까워졌다. 두 시간이면 오겠다 했는데.

근소만이라도 팬스를 쳐서 막았으면 굴 어장은 살짝 유막만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9일 날까지만 해도 굴 어장에 기름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고 다음날인 8일 날에 오일펜스가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았다. 배를 새벽 3시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 다 하고 꼬박 밤을 새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오지 않았다. 마음만 애태웠다. 해경 방제지원단이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아서 많이 싸웠고, 공무원들과도 많이 싸웠다. 워낙 대처가 늦다 보니까. 공무원들에게 말하면 상급자의 결제가 떨어져야 된다. 흡착포가 필요하다고 전화를 해도 기름이 보여야 밀려야 지원이 된다고 답변만 했다. 다 섞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소 다 잃어버리기 전에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한심하다. 숭례문 불타는 것을 봐도 그렇고. 도대체가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부인은 무엇을 하는가?
민박과 구멍가게를 했었는데 손님도 없고 해서 문 닫고 지금은 방제작업을 나간다.

기름유출 사고 이후 건강에 어떤 피해는 없는가?
방제작업 하기가 아주 어렵다. 나도 밤에 집에 들어가면 눈도 아프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아주머니들이나 의료봉사식으로 와서 건강진단을 해 가는데 정확한 결과를 받아 보지 못했다. 피 검사도 했으나 아무런 결과를 알려 주지 않고 있다. 인체에 어떤 피해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노출된 상태로 작업을 했으니까, 어떤 피해가 있을지 모르겠다. 저 같은 경우도 배가 간지러워 많이 긁게 된다. 애들이 5살 쌍둥이인데 방제작업 때문에 학교에 맡겨 놓았다. 남자애가 기관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자주 기침을 한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종합진찰을 받게 해줘야 어떻게 대책을 세우던지 하는데....

언론사와 정부에 대해 느낀 점은?
언론사들도 믿을 사람이 못 된다는 것도 배웠다. 꾸준히 다루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삼성에 대해서 말해도 아무것도 보도되지 않는다.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정부나 언론사, 삼성 모두 다 짰다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주민들도 말을 만들어 내고 그 말이 퍼지고 해서 분위기가 점점 더 안좋아진다. 자꾸 유언비어만 터져 나온다. 알려줄 것은 알려 주고 정부가 해 줄 것은 해주고 그런 부분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떼 쓰고 울어야만 하나 더 챙겨 주니.

사고 난 이후 마을에서 돌아가신 분이 있는가?
아직 돌아가신 분이 없다. 어른신들에게 분들에게 항상 건강 챙기시고 단단한 마음을 갖고 계시라고 말씀드린다. 어르신들이 연세가 높으셔서 언제 배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3년, 길면 5-6년 이런 말이 나오는데. 그때까지 연명을 이어갈지 모른다. 그때 배상을 탈지 못탈지 모른다. 몸도 안좋은데. 몸이 아프면 나오지 말라고 하고 몸 챙기시라고 말씀드린다. 그런데도 항상 굴까고 조개까던 분들이라 안 움직이면 병 생긴다. 시골분들이라 일 해야 하고. 몸을 안쓰면 몸이 금방 녹이 슨다. 항상 일을 하는 분들이라 일을 해야 건강이 유지 되다 보니까.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환경이 안좋다 보니까 이번에 몸들이 참...

주민간에 갈등은 없는가?
큰 갈등은 없다. 처음 생계비 지원 문제에 대해서 집은 여긴데 주소지가 다른 곳에 있는 분들과 약간 갈등이 있었다. 이장이나 계장이 일 잘 못한다고 말하면서 약간 갈등이 있었으나 큰 갈등은 없다. 주소지가 서울에 있으면서도 여기서 방제작업을 하는데도 방제작업 인건비가 법에 따라 지원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항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었다.

매일 방제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인건비 지급은?
인건비는 남자가 7만 원, 여자가 6만 원 받는다. 8시 출근해서 3-4시에 끝난다. 두 달에 한 번씩 받는다. 한 달은 일하고, 청구하는데 한 달이 걸린다. 생계비는 한 세대당 470여 만원씩 똑 같이 받았다. 121세대 정도다. 이장이 지급했다. 어디는 600만 원 받는데 왜 우리는 적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바로 앞 마을에는 600만 원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굴 하는 바닷가 사람들만 받은 것이고, 안쪽 사람들은 우리 보다 더 적게 받았다. 그래서 각 면으로 나누지 말고, 군 수산과에서 일괄해서 바닷가 피해 받은 사람들은 A급으로 주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서 농사짖는 사람도 피해를 받았으니까 일부라도 주는 식으로 구분해서 내려주었으면 한다. 돈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동네 사람 간에 형제 간에 싸움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수입 확보 방안이 있는가?
현재 마을 사람들이 수입이라고 기댈 것은 방제작업 밖에 없다. 그것도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생계비 지원도 계속 될 것이라고 안보고. 지원도 안되고, 방제작업 끝나다면 우리는 수입도 없고 기댈 곳도 없다. 다른 데로 다 나가야 한다. 배도 못나가지 굴도 못까지 조개도 못 꼽지 여기서 어획물은 거의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관광객들이 오나 민박이 되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당장은 방제해서 인건비 타 먹는 것 밖에 없다.

앞으로 마을 유지 방안와 수입창출할 수 있는 다른 계획은 없는가?
정부에서나 어디서 무슨 확답을 줘야지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데, 우리가 계획한다고 해서 정부가 들어줄 것도 아니고. 이번 제정된 특별법에서도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올렸는데 들어준 것이 없다.

특별법 내용중 어떤 것이 문제인가?
워낙 많이 바뀌어서 자세히 모르겠다. 지금은 많이 헷갈린다. 통과는 되었지만 피해주민들이 원하는 법안에 대해에서 거의 묵살됐다고 봐야 한다. 정부안만 된 것이니까. 차후에 어떤 부분이 개정이 될지 모르지만, 주민들에게 직접 와 닿는 부분이 못 된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과 체결된 법안대로 하자고 하니까. 거의 규정대로 하기 때문에 배상 못 받는 것이 많아진다. 무면허나 입증자료가 없으면 배상을 받을 수 없다. 국가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그쪽 법안 내용대로 미뤄버렸다. 도와주는 의원도 있지만 어떤 의원은 꼭 특별법이 필요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특별법과 관련해서는 피해대책위에 문의했으면 한다.

배상을 받기 위해서 주민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없는 주민들이 더 많다. 매출액과 세금 영수증이다. 정확하게 이것만 된다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고 있다. 매일 작성한 수입에 대해 작성한 것은 있지만 몇 명만 있다. 해양수산부 소속 해양조사소에서 의뢰를 받아 작성한 사람들만 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줄 알고 정확히 작성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마을 자체라도 매출액 등이 정확히 작성했어야 하는데. 이제라도 어촌계에서라도 수입량, 입증 자료가 될 만한 것을 비치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또 닥칠지 모르니까.

  의항리 해수욕장의 모습

대화를 마친 어촌계장을 따라 나섰다.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안쪽에 포크레인 한 대가 서 있다. 급하게 달려가는 어촌계장을 뒤따라 가까이 가보니, 어촌계 사무실에서 만났던 몇몇 주민들과 방제업체 관계자들이 바위를 뒤집고 있다. 주민들은 바위 밑에도 아직 기름이 남아 있다며 방제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철저히 작업을 해 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방제업체 관계자는 방제작업이 거의 끝났다고 말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지역을 기록하고 있었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방제업체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방제업체는 방제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 방제인력과 장비 투입을 줄일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 외국인은 영국 소재 유류보험회사(ITOPF)측 기술자문관임이 나중에 확인되었다.

강하게 불어오는 찬바람 속에서 서로 옥신각신하며 주변지역을 계속 확인했다. 모래사장 쪽으로 이동을 해서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놓은 곳에 고인 바닷물 표면에 기름막이 생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름제거용 부직포를 적시고 냄새를 맡는 등 확인을 계속했다. 기름 유막이 얕게 깔리는 현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올 여름에 해수욕장을 개장하려면 더 엄밀하고 정확하게 해수욕장의 모래를 뒤집어서라도 기름제거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외국 기술자문관이 모래사장에 그림을 그리면서 트랙터를 이용해 모래 뒤집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바위들이 많아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구름포 해수욕장의 모래를 뒤집으면서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어촌계장과 함께 방제작업을 위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다는 구름포로 향했다. 임시로 만든 주차장엔 대형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가득 차있고, 오전 방제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거나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있었다. 어촌계장을 따라 커다란 텐트 쪽으로 갔다. 바깥엔 장화가 층으로 나눈 신발장에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고, 작업복도 옷 거리에 걸린 채 잘 정리돼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름제거 작업하는 모습들과 주민들의 얼굴을 촬영한 사진이 걸려있고, 동영상도 상영되고 있었다.

어촌계장이 말하기를 “봉사단체가 만든 시설로서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주민들의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다”면서 아주 고마운 분들이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다음 만난 오렌지재단의 고재일 대표는 “대형할인 업체 ‘세이브존’에서 기금을 조성해 만든 재단으로서 기름제거 작업을 하러 왔다가, 주민들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식사제공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며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올해 2월 1일까지 55일 동안 재단에서 사용한 돈이 총 5천만 원 정도 되었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여러 가지로 물품을 제공해 주고 해서 어려움 없이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잠시 후 주민들의 식사가 거의 끝나자 일반 자원봉사자들도 줄을 지어 식사 배급을 받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잔득 쌓인 기름제거용 헌옷더미에 기대고 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몇 마디 여쭈었다. 한 할머니는 “기름유출 사고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오고 있다”며 “여기 모두 굴 까는 선수들이여. 예전 같으면 굴 까서 하루에 20만 원씩 넘게 벌었어. 이렇게 독한 냄새를 맡으며 일하다 보니 어지럽고 혈압이 올라갔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바다만 보고 사는데 바다가 언제 회복된데”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아프지만 제대로된 진찰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잠시 후 기름이 잘 닦이는 헌옷들을 골라 자루에 담았다. 어떤 할머니는 “오랜만에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왔다. 오늘처럼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오는 날이면 이런 일만 하고, 자원봉사자가 별로 없으면 직접 기름제거 작업에 나선다”며 “앞으로도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자원봉사자조차 없으면 쓸쓸해서 어떻게 해”라며 힘없이 말을 이으셨다. 건너편 비닐하우스 안에는 아직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안쪽 깊숙한 곳엔 충남 공주의료원에서 의료봉사를 나와 건강진단을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의항교회에서 직접 천막을 치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컵라면을 끓여 주고 있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단체별로 해수욕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뒤따라 가 보니, 바위들을 들추면서 기름을 닦거나 모래 속을 삽이나 호미로 파서 고인 기름 덩어리를 자루에 담고 있었다. 바닷가 쪽에선 삽질을 해서 자루에 담고있었다. 자세히 보니, 기름덩어리가 아니다. 감기가 걸려서 냄새를 맡기는 어려웠다. 기름덩어리처럼 보였지만 색깔이 흑갈색이었고 분명히 흙이었다. 다시 잘 확인해 보라고 말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을 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여럿 보였다.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체감온도는 더욱 떨어졌다. 강한 바람에 꽤 커다란 파도가 밀려왔다.

바닷물이 점점 밀려오자, 해안가 절벽 쪽으로 돌아가서 작업을 하던 자원봉사자들이 작업을 그만두고 장비를 챙겨든 채 빠져 나왔다. 옛 등산로를 따라 반대쪽 해안가로 이동을 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는데 큰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고 있었고, 건너편의 가파른 벽을 한 무리의 자원봉사자들이 자루들을 연달아 전달해서 올린 다음 기어오르고 있었다. 등에는 ‘바다야 미안해!’라는 문구를 달고서 말이다. 올라오던 쪽으로 다가가 보니, ‘나눔문화’에서 2차 방제작업을 나온 것이다. 어떤 학생이 말하기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말했다. 기름제거 작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장소를 골라 열심히 작업을 했던 것이다.

등산길을 따라 나오는데 포크레인으로 길을 냈는지 넓은 흙길이 보였고, 기름제거용 자루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남미에서 왔다는 외국인이 바다를 등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흙길은 바닷가로 급한 경사를 이루며 만들어져 있었다. 따라 내려가 보니, 사람이 하나도 없고 파도만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있었다. 해수욕장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지난해 12월 16일에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바위틈과 바닥에 엄청나게 많이 고여 있었던 기름을 제거했던 장소가 멀리 보였다. 당시엔 국세청 80여 명, 해양수산부 지원 10여 명,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모임에서 30여 명,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당원 10명 내외, 군산지역 사람들 4명 등이 같이 참여했었다. 정말 뜻 깊은 하루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본의 아니게 전체를 통제하는 역할을 했었다.

최초 이 장소를 확인하고 나서 돌을 닦고 있던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동시키면서 역할을 하게 됐었다. 하루에 기름 덩어리들이 모두 제거하지 못해 당시에 이 지역을 담당하던 태안군청 공무원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후 기름제거 작업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올해 1월 5일에 기름오염 조류조사를 위해 잠시 들르긴 했으나,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었다.

바위 사이를 걸어가는데 작업을 하고 있던 포크레인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행히도 거의 모두 제거되고 없었다. 포크레인으로 호박돌을 파헤친 자리엔 기름이 고이더니 파도에 따라 출렁거렸다. 그런데 바위벽엔 아직도 기름색깔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포크레인 길을 만들면서 바위가 깨져 있었다. 기름제거가 우선이어서 그렇게 했겠지만 바닷가 자연석을 깨서 도로를 만들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37일 전에 보았던 많은 기름들이 그래도 많이 제거되어서 다행스러웠다.

다시 이곳을 빠져나와 구름포 지역의 임시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작업을 모두 끝냈는지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먼지를 내면서 지나갔다. 임시주차장엔 아직 대형버스와 승용차들이 남아있었고, 방제작업을 마친 자원봉사자들이 벗은 장화는 재활용을 위해 가지런히 놓았고, 방제복은 커다란 폐기물 수거용 자루에 담았다. 자원봉사자들이 입었던 옷들은 실제로는 방제복(기름 제거시 입는 옷)이 아니고 방진복(먼지 차단용 옷)이었다.

할머니들은 떠나고 없고, 할아버지 몇 분이 기름제거용 옷 정리와 장화 정리를 하고 있었다. 비나 눈에 젖지 않도록 천막으로 덮었다. 옆에 컨테이너 박스로 사무실을 차려놓은 방제회사측도 작업을 정리하는지 컨테이너 박스 앞에 가득 쌓아 놓은 물품들을 정리했다. 아직도 방제 물품이 가득 쌓여있어 더 이상 방제작업이 필요하지 않아서 쌓아놓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태안군 의항리 2구 마을 주민들이 설치해 놓은 굴 양식장의 굴들이 기름에 오염된 채 철거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

며칠 전에 자원봉사자가 1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금껏 계속 자원봉사자들이 오고 있는 것에 놀라웠고, 우왕좌왕했던 초기 상황과는 달리 많이 정리정돈이 되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점검해야 할 것들과 체계적으로 방제작업을 해야 할 점도 확인되었다.

대부분 지역주민들은 해양생태계가 파괴된 바다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특히 주민들에게 하루 일당으로 주어지던 방제비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피해주민들에 대한 생계대책을 명확히 수립하고, 주민들의 건강상에 피해가 없는지를 진단하여 육체적인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잠시 시간을 내서 이곳을 찾아 이후의 해양생태계와 주민들의 생활변화를 가능한 대로 파악해서 알리고 싶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제거 작업을 했던 마을과 자매 결연을 맺어서 가끔씩이라도 마을을 방문하거나 서로 연락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이 같은 내용을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들의 모임의 어느 선생님께 제안한 바 있었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쓸쓸해진 의항리 2구를 뒤로 하고 전주에서 온 자원봉사자의 승용차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태안의 자연과 주민들이 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