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싸운 시간들

[인터뷰] 투쟁 천 일을 넘긴 기륭분회 조합원들

그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어버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20일 오전부터 늦은 저녁까지 진행된 빡빡한 일정에 얼마나 많은 언론이 왔는지만 보더라도 이들이 얼마나 ‘떴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계속되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힘들어 죽겠다”고 한 조합원이 말할 정도였다.

“눈만 봐도 다 아는 사이”


농성장에서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농성장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수시로 커피를 타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커피 30잔 정도를 타고 있던 이미영 조합원에게 ‘손님 접대’를 일일이 하는 게 힘들지 않은지 물어봤다.

“한 번도 일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의 대답에 득도한 사람에게 소인배가 엉뚱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무안해져 버렸다.

이들의 ‘득도의 경지’는 집회나 문화제를 준비하는 모습에도 묻어났다. 조합원들은 별다른 말이 없어도 누구는 음향을 준비하고 누구는 대오를 정리하는 식으로 알아서 자신의 일들을 찾아서 하기 때문이다.

오석순 조합원은 “출근투쟁을 할 때 구호를 외치면 누가 어떤 구호를 할지 모두 알아요. 그 사람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어떤 구호를 외칠지까지 다 예상하게 되요”라며 “눈만 봐도 다 아는 사이가 된 거죠”라고 천일동안 끈끈해진 이들의 유대감에서 ‘득도’의 이유를 찾았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유대감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잡담만으로도 해고가 되는 강압적 노무관리와 수시로 행해지던 해고는 이들이 친해질 이유조차 박탈했었다.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질적으로 충실해 행복해요”

이들이 서로 알아가고 주체적으로 변화한 데는 연대투쟁이 큰 몫을 했다. 연대투쟁 가는 차안에서 나눈 수다는 TV드라마 얘기에서 남편 흉보는 얘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서로를 알게 했다. 연대투쟁의 장소는 투쟁전술에서 노동운동의 미래까지 생각하게 하는 숨 쉬는 교육의 장이 되었다.

오석순 조합원은 “전국으로 연대를 다니니까 연대투쟁이 여행이 되는 거예요. 한번은 점거투쟁까지 열심히 연대하고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바다가 있어 서로 빠뜨리면서 놀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노예처럼 일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았는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당당하게 할 이야기하면서 질적으로는 충실한 삶을 살아 한편으론 행복해요”라고 연대투쟁의 소중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천일, 도 닦는 시간이었죠”

하지만 천 일이라는 숫자는 이들에게 고통과 아쉬움의 시간이도 하다.

천 일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이인섭 조합원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어요.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공장에서 땀을 흘려야 되잖아요. 회사가 망하나 우리가 망하나 그렇게 견디고 있어요”라며 피곤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천 일의 시간이 흐르면서 200명이었던 조합원은 40여 명만이 남았다.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에서조차 또 다시 해고됐다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노조를 떠나면서 상처를 남긴 사람들도 있다.

“좋지 않게 정리한 분들도 있어요. 그래도 함께 했던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갑게 만날 수 있는데 당사자들은 죄책감을 계속 가져가는 것 같아요. 마음은 풀라고 해서 풀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안타까워요”라며 윤종희 조합원은 떠나간 조합원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기쁨과 고통이 교차한 천 일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간,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투쟁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유흥희 조합원은 “천 일동안 도 닦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랑 많이 싸운 것 같아요. 지금까지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라며 웃으며 지나온 천 일과 다가올 시간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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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금속노조 , 기륭전자 , 기륭분회 , 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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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어처구니

    어처구니가 없다... 회사가 망하나 자가들이 망하나 보자고..? 그게 댁들의 논리요..? 회사를 망하게 해서.. 그럼 거기 남아있는 직원들도 댁들처럼 됐으면 하는게 너희들의 바램이니..? 이런것들이 무슨 양심이라도 있는양 떠드는게 우습다...

  • 조합원

    도대체 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건가요?
    회사가 망하나 누가 망하나 보자고 한 말이요?
    오죽 답답하고 악에 바치면 그런말을 했을까요?
    누가 처음부터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고 했나요?
    우리는 현장으로 돌아가서 사람대접 받으면서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노동자들을 다 정리해고
    하고 땅팔아먹고 주식차액 노리고 있는게 누군가요?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나요? 투기자본 경영진들 아닌가요?
    경영진 몇사람만 그렇게 배불려놓고 노동자들은 다 쫓겨나고
    정리해고 당하면 그런 회사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나요? 대체.
    닉네임 내용처럼 어처구니 없게 글 올리신 당신의
    논리를 한번 듣고싶네요.

  • 시민

    어처구니님~기사의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기륭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이 지난 시간 얼마나 힘겹게 싸워왔는지를 돌아본다면...표현 하나를 꼬투리 잡아서 얘기하는 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노동자들을 못살게 하는 회사는 망하는게 지당한 것이 아닐까요?

  • 시민

    어처구니님~기사의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기륭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이 지난 시간 얼마나 힘겹게 싸워왔는지를 돌아본다면...표현 하나를 꼬투리 잡아서 얘기하는 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노동자들을 못살게 하는 회사는 망하는게 지당한 것이 아닐까요?

  • 쨔스

    한겨레 블로거입니다. 기사작성하신 분의 허락을 받지 못했는데, 기자를 제 블로그로 스크랩해 갑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쪽지 남겨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http://blog.hani.co.kr/p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