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권리 뺀 방통기본법

[미디어 관련법 진단](4) - 방통기본법 vs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최시중, 사실상 MBC 사유화 의지 천명

19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창립 20주년 기념식.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공영방송, 공민영방송, 민영방송 등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MBC의 현실이다. 이제 MBC의 정명(正名)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볼 시점”이라고 언급하고 “내년부터 다가올 미디어 대개편의 계절에 MBC가 자리 잡아야 할 것과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돌아볼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시중 위원장은 계속해서 “내년에 신문과 방송의 겸영규제 틀에도 어쩌면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MBC는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어야 했고, 무엇을 했던가를 생각해보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결의를 다질 때”라고 덧붙였다.

MBC 제1 주주인 방문진 현 이사진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은 내년 8월. 최시중 위원장의 발언대로라면 이즈음 MBC 민영방송화, 사유화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이 지난 12월 3일 발표한 방송법 개정안에서 자본의 소유 상한선을 49%로 높인 건, MBC 정수장학회의 지분 30%를 감안해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상위 대기업 자본의 진출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되면 방문진 지분 70% 가운데 49%는 조중동이나 대기업, 또는 외자와의 컨소시엄에 넘기게 되고 일부는 국민주 형식으로 재편이 이루어진다.

‘언론장악 7대악법’에 공영방송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정도

이번 ‘언론장악 7대악법’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은 내년 2월 경 2004년 국가기간방송법의 내용을 담은 공영방송법을 제정할 방침이다.

한나라당 미디어특위는 지난 10일 공영방송법 제정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영방송의 예결산 심의권을 국회가 갖도록 하는 공영방송법이 적용되면, 현재 사장이 편성해 이사회 의결로 확정하는 KBS의 경우 독립성 문제가 불거지고,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MBC는 공영방송과 민영방송 중 한쪽의 선택을 강제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공영방송법이 적용되면 KBS 1국(공)영에 KBS2, MBC를 포함한 다민영 체제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언론장악 7대악법’에 공영방송법 추진, 여기에 지난 12월 16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방송통신발전기본법(방통기본법) 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방통기본법은 기존의 방송법,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화촉진기본법 등에 적용된 방송통신에 대한 기본사항을 통합한 법이다. 방송과 통신 융합에 따른 융합정책의 모법이 될 방통기본법은 ‘방송통신’에 대한 개념 정의를 비롯, 방송통신 산업 진흥을 위한 연구개발과 표준 제정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특히 오는 2011년 신설될 예정인 방송통신발전기금은 지식경제부의 정보통신진흥기금과 함께 IT산업 진흥기금으로 자리잡게 된다. 양 기금은 모두 통신사업자들이 납부하는 주파수 할당대가를 재원으로 한다. 방통위는 2010년 경 방송통신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의 규모를 결정할 계획이다.

방통기본법 제정, 모든 미디어 관련법의 모법 지위

방통위는 현 방송통신 관련 법률을 ‘기본법+개별법’ 체계로 통합하되, 방통기본법을 기본법으로, 개별법을 방송통신사업법으로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방통기본법과 방통사업법 이외 법률은 추후 환경 변화를 고려해 별도 법률로 존속시키거나 기본법과 사업법으로 편입한다는 입장이다.

방통기본법은 기존의 방송법과 인터넷멀티미디어법 그리고 전기통신기본법에 각각 규정된 방송,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 전기통신 활동 등을 일차적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방통발전기금이나 재난방송, 기술진흥 및 인력양성, 방송통신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 등도 기존의 개별법이 아니라 방통기본법을 따르게 된다.

방통기본법에서 밝히고 있는 다른 법령과의 관계에서도 기본법의 지위가 가늠된다. 방통기본법 시행 당시 다른 법령에서 종전의 전기통신기본법, 방송법, 정보화촉진기본법, 정보통신망법, 국가재정법 또는 그 규정을 인용하고 있는 경우 방통기본법에 해당하는 규정이 있으면 방통기본법의 해당 규정을 따르는 것으로 적시하고 있다.

방통기본법은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 총칙, 제2장 방송통신의 발전, 제3장 방송통신기술의 진흥 및 인력 양성 등, 제4장 방송통신발전기금, 제5장 방송통신기술기준 등, 제6장 방송통신 재난관리, 제7장 보칙 순이다.

방통기본법은 방송통신의 개념을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방송통신 콘텐츠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수단”으로 정의한다. 방송 개념이 없다. 현행 전파법이나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 개념이 ‘공중에 대한 송신’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융합 환경이라고 방송의 특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그만큼 ‘통신’과 ‘산업’에 치우친 개념 설정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월 24일 ‘기본이 빠져있다’는 미디어행동의 토론회에서는 방통기본법에 대해 △방송통신서비스(방송통신설비를 이용하여 방송통신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를 위해 방송통신설비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한 정의 △‘기본적 방송통신서비스'라는 신설된 개념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다.

이밖에 방통위의 권한 남용 문제로, 신규 서비스사업자 심의에 대해 30일 안에 결정하면서 별다른 절차 규정을 두지 않고, 방통발전기금 운영(방송통신발전기금운용심의위원회)도 사실상 방통위원장이 좌지우지하도록 하고 있다.

방통기본법 터무니없는 탓에 만들게 된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지난 8월 방통기본법 제정 초안이 확인되면서 미디어행동의 활동가들은 긴급하게 검토한 후 대안 법률을 만들기로 했다. ‘방송통신’이라는 병렬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전자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을 적용했다. 올해 미디어행동이 만들어낸 가장 의미있는 실천 성과물 중 하나이다.

김지현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활동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만든 법안을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 법을 막 만들어도 되는 건가 싶어 화가 났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아울러 “미디어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정말 제대로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우리 나라 미디어 법안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지현 할동가는 “한편으로는 희망이 생겼는데, 방통위 법안의 문제점이 워낙 명확해 우리가 법률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문제제기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뭐랄까 그 정도면 나도 법을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결국 방통위가 일종의 법제정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준 셈이었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김지현 활동가는 방통위의 법안 마련 과정의 절차 문제도 따졌다. 11월 21일 열린 공청회패널 구성에 시민사회는 아예 배제됐고, 법안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도 단지 20일만 가졌을 뿐이다. 또한 8월 말에 법 제정안을 만들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긴 했으나 법안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9~10월 동안은 부처들끼리만 협의했다는 것. 공청회 이후 3일만에 방통위 회의에서 의결된 점도 문제로 들었다.

미디어행동 방통융합TF는 2-3개월에 걸친 논의를 통해 방통기본법의 체계와 구성을 다시 짜고, 무엇보다 △시민과 이용자의 권익 보호 △사업자 간의 공정 경쟁 △수평적 규제체계의 유연한 도입 등의 문제의식을 정선했다.

팀은 우선 어수선한 미디어 관련법을 교통정리부터 했다. 융합에 따른 모법으로서 전자커뮤니케이션법을 제정하고, 아울러 방송법 개정안 작업을 병행했다. 한나라당이 추진중인 국가기간방송법에 근거한 공영방송법 제정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의 후속으로 ‘보편적 방송서비스사업법’을 마련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자커뮤니케이션법은 제1장 총칙, 제2장 방송통신위원회, 제3장 공공복리의 증진 등을 별도의 조항으로 강조했고, 기본법의 주무 행정기관을 명시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방송통신의 개념에 대해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에서는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공중(개별계약에 의한 수신자 포함)에게 신호를 송신하거나, 송신자(개인과 집단을 포함)와 수신자(개인과 집단을 포함)가 신호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으로 정의했다. 방통기본법의 정의와 크게 비교된다.

김지현 활동가는 특히 ‘공공복리 증진’에 대해 “방통위의 법안은 총칙에서만 잠깐 언급하고 이후부터는 온통 산업발전에 관한 내용뿐인데 반해, 우리 법안은 공공복리의 증진에 관한 장을 독립적으로 만들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어떻게 공공복리를 증진시킬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프레임을 제시했다”며 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민의 미디어 권리에 대한 부분도 빠트리지 않았다. 김지현 활동가는 “시민들이 미디어에 관해 가지는 권리가 무엇인지도 명시하고, 산업발전과는 별도로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한 진흥 계획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는 의무도 명기하고, 그래서 진흥해야 할 영역으로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서비스 및 콘텐츠, 보편적 전자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미디어 리터러시, 망의 고도화 등을 명시했다”고 밝혔다.

방통위의 권한 남용에 대한 대책으로는 방통위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으로,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행정기구가 아니라 독립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도록 했고, 방통위의 정책 수립 및 임무 수행에 있어 다양한 의견 조사와 결과의 반영 여부도 공표하도록 하는 등 민주적인 정책 결정 절차 규정을 강화했다. 역시 방통기본법에는 확인되지 않는 규정들이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제정안이 시사하는 것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제도의 완성 시나리오를 요약하면 이렇다.

방통기본법 제정으로 방송통신 산업 진흥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설정하고, 공영방송법을 통해 1국(공)영 다민영 체제를 형성한다. 방송법 개정으로 지상파의 20%, 종합편성.보도 PP의 49%까지 자본의 제한없는 진출을 보장한다. 신문법 개정으로 신문사의 방송사 겸영을 허용한다. 인터넷멀티미디어법 개정으로 대기업, 신문사, 통신사의 종합편성.보도 PP의 소유지분 한도를 49%까지 허용하고 외국 자본에게도 20%까지 열어준다. 인터넷실명제, 사이버모욕죄 등 정보통신망법 개정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 통제를 강화한다.

이같은 정부의 구상대로 미디어 재편이 완료되면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권리는 대폭 축소, 후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목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사회에서 개인과 집단 간의 창조적이며 상호존중하는 상호작용의 사이클을 만드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며, 현실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알려낼 수 있으며, 다른 이로 하여금 그러한 생각을 들을 수 있고 고려하며 반응할 수 있도록 할 권리를 사회적으로 승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CRIS 캠페인)

김지현 활동가는 지난 4월 열린 미디어행동 워크샵에서 융합기구의 최고 정책 목표를 공공적 시스템 정비와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보장으로 놓고, 4대 지향가치와 5대 커뮤니케이션권리를 가설로 제시한 바 있다.

4대 지향가치는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최고 지향 가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위 지향가치로서 보편적 접근, 시민의 자율적 참여, 다양성의 원리 등으로, 5대 커뮤니케이션권리로는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문화적 권리, 프라이버시, 미디어 리터러시 등을 꼽았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은 이같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권리에 충실하다. 총칙의 제2조 정의, 제3조 시민과 소비자의 권익보호 원칙, 제5조 국가의 책무, 제6조 전자커뮤니케이션 기본계획의 수립 등의 내용과 제3장 공공복리의 증진, 제4장 전자커뮤니케이션의 발전 등이 그러하다.

자본의 권리는 확장되고 시민의 권리는 축소된다. 전조를 알리는 ‘언론장악 7대악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무릇 살펴볼 겨를도 없는 시국이지만, 시민의 미디어 권리의 확장을 내포한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제정안은 그런만큼 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소통하고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미디어 주체의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면 머지않아 시민사회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