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강제철거 원칙’ 정부에 제시

강제철거 원칙적 금지...“법적 강제력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2일 거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강제철거때 준수해야 할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인권위가 제시한 기본 원칙은 △ 퇴거 이후에만 강제철거가 가능하다는 원칙 확립 △ 퇴거 당하는 이들에 대한 협상기회와 보상 제공 및 퇴거 시기에 대한 사전고지 △ 공무원 또는 대표자 입회 및 강제철거 상황에 대한 관리 △ 겨울철과 야간 등 부적절한 시기의 강제퇴거 금지 △ 강제철거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 제공이다.

인권위는 "강제철거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하고 불가피한 경우 최소범위 내에서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인권위는 국토해양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에게 이번 기본원칙이 실현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정비하고 강제철거 현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국토해양부 장관에게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과 '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정비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에겐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금지하는 규정 마련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철거업체 및 경비업체에 의한 폭력을 예방.처리하기 위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더불어 인권위는 "강제철거는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와 적절한 생활을 누릴 권리를 총체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며 이번에 제시한 기본원칙이 정부 정책에 충실히 반영돼 주거권과 기본권이 보호되길 기대했다.

재영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이번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기본원칙을 마련한 점은 환영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재영 활동가는 빈 집 철거와 지자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한계가 있으며 권고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해 효과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하기 했지만 ‘강제철거 자체를 인정’하는 등 지난 2007년 유엔에서 나온 강제철거 가이드라인에 비해 그 수준이 미비하다고 설명했다. 재영 활동가는 "적극적인 조사를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보다 실질적인 법 개정 등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용산철거민범국민대책위(대책위)는 이번 권고에 대해 "의미는 있으나 법적 효과가 없어 아쉽다"는 입장이다. 대책위는 지난 11일 재개된 용산 4구역 철거에 대해 "70가구 정도가 사는데도 철거가 진행됐다"며 '(거주민의) 퇴거 이후에만 강제철거하라'는 인권위 권고의 첫번째 기본원칙마저 저버렸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폭력 없는 인간 중심의 재개발'을 위한 실질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용산 살인진압 50일째인 11일 낮 세입자들의 반대 속에 참사 현장에 대한 업체의 철거 작업이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