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안 겪어 보셨죠?”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파업 38일째를 맞은 명지대 행정조교 해고 조합원들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이었다. 시커먼 남학생들이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는 우리 학교와 기찻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자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그 여고 연극반 학생들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극작가 이강백의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라는 작품이었다. 연극이라는 것을 처음 본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아 며칠 동안 그 연극 생각만 하느라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날씨가 어떻든 나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제목은 그 뒤로도 잘 잊혀지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찌는 듯한 더위와 맞서며 집회에 참여한다거나 콧물까지 얼어붙을 지경으로 추운 날에 물대포를 맞는다거나 하는 날이면 꼭 그 연극 제목이 생각났다.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누구를 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주먹을 치켜 들고 막 을러대고만 싶었다.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 행정조교 해고 조합원들의 목요 촛불 문화제가 있던 날, 나는 옷장 앞에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겨울 외투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늘 이맘때면 찾아오는 꽃샘추위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봄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무심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섭섭하고 감질났다. 더구나 바깥 바람 맞으며 거리에서 살도록 내몰린 사람들이 이 세상엔 아직도 많고 많았다.

명지대 행정조교 조합원들은 지난 3월 1일부로 재계약 없이 해고되었고, 지난 달 17일부터 시작된 총파업은 어느덧 38일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천막 농성장을 설치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이름은 ‘행정조교’지만 그들은 학과 사무실에서 대학원생 신분으로 일을 하는 ‘조교’가 아니라, 온갖 행정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버텨 가며 일 년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학교 측은 돈이 없다는 핑계로 그들을 더뻑 해고해 놓고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을 ‘행정 보조원’이라는 이름으로 뽑았다.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기 싫어서 멀쩡한 행정조교들을 잘라 버린 것이다.

  명지대 행정조교 비정규직 조합원과 함께 하는 촛불 문화제

명지대 정문 앞 저녁 일곱 시 반. 집에 가는지 술 한잔이라도 꺾으러 가는지 상글상글 웃으며 새살거리는 학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촛불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려고 와 있는 학생들인가 싶으면 곧바로 다른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 버렸다. 학교 앞에는 당구장과 술집과 밥집 뿐이었다. 저리도 반들거리는 닳고 닳은 젊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전기인지 뭔지를 하나씩 든 웬 늙수그레한 아저씨들이 조합원들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경찰인 듯했다. 내 옆에 있던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경찰 아저씨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투덜거렸다. “스피커 학교 정문 쪽으로 돌려 놓으면 하나도 안 시끄러운데!” “경찰이 상인들 권리 보호해 주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짭새는 새장으로!” 정문 어름에 작달막하게 붙어 있는 경비실 앞에는 다른 투쟁 사업장이었다면 ‘용역’이나 ‘구사대’로 불렸음 직한 남정네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학생들과 차들이 정문 앞을 쉴 새 없이 오가는 가운데 여덟 시쯤 촛불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하나씩 촛불을 켜 들었다. 해는 떨어진 지 오래라 어둑어둑했지만 학교 앞에 죽 늘어선 상가들에서 나오는 불빛이 하도 밝아서 따로 조명이 필요 없었다.


문화제 중간에 행정조교 조합원들이 몸짓 공연을 보여 주었다. 3월 중순쯤에 조합원들 중에서 나이 어린 순서 대로 밑에서부터 잘라서(?) 조직했다는 몸짓패의 이름은 ‘미완성’이었다. 얼마나 연습하셨는지 딱딱 맞춰서 되게 잘하신다고 옆에 있던 연세대 학생들이 놀라워했다. 나도 보면서 좀 놀랐다. 한겨울 날씨처럼 매운 바람이 불어치고 있었지만 조합원들은 팔다리를 한껏 뻗고 신나게 흔들어가며 그동안 갈고 닦은 몸짓 솜씨를 뽐냈다.

  몸짓 공연을 보여 주고 있는 조합원들

문화제가 끝날 때 즈음에 조합원들이 샛노란 색 헝겊을 나누어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라고 했다. 투쟁이 승리로 끝나게 되면 헝겊 한 장을 추첨해서 푸짐한 상품을 준다는 말이 오가자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기다란 노끈을 조합원 둘이 양쪽에서 붙잡아 늘어뜨리고 마치 앉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훑듯 천천히 지나가면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적은 헝겊을 그 노끈에 매듭 지어 묶었다. 순식간에 노끈이 산수유 나뭇가지처럼 샛노랗게 되었다. 노란 꽃을 피워 낸 마음들. 어쩌랴. 상징 의식은 사람들의 가없는 마음을 온전히 담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항상 모자랄 수밖에 없다. 행정조교 조합원들도, 촛불 문화제에 온 사람들도 노끈에 노란 헝겊을 묶는 작은 행위가 단순히 노끈 한 가닥을 샛노랗게 물들이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었다.

  노란 헝겊을 달아매고 있는 사람들

문화제가 끝나고 행정조교 조합원들의 천막 농성장으로 갔다. 지원대책위 사람들은 회의를 하러 학관으로 갔고 나는 어느 조합원 한 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한다.) 학생회관 안으로 함께 들어가 깔개 하나씩을 깔고 앉고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 측과 싸우고 계신 조합원 분들은 몇 명인가요?”

“열 아홉 명이에요. 명지대 서울캠퍼스(서울캠)와 용인캠퍼스(용인캠) 두 곳에서 행정조교들을 싹 다 해고해 버렸어요. 서울캠에서 일곱 명. 용인캠에서 열 두 명.”

“다 여자 분이신가요?”

“여자만 뽑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행정조교 자리가 박봉이라 남자 분들이 잘 안 와요. 한두 명 정도는 있어요.”

“나이는 대충 어떻게들 되세요?”

“가장 어린 조합원이 스물 아홉이고........ 마흔 한 살 먹은 언니가 가장 나이가 많아요.”

“행정조교로 일하시는 분들이 학내에 많이 계시나요?”

“학과마다 한 명씩은 있구요. 교학팀이나 총무팀 같은 학내 모든 조직들에도 행정조교가 있어요.”

“행정조교는 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되게 많죠. 학교 업무라고 해서 그때그때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저는 대학원 XX처에서 일했는데 시시때때로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전화 받는 것부터 시작해서....... 퇴근한 뒤에까지 일을 해도 다 못 끝내면 집으로 일을 싸 들고 가서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해요. 직원들은 야근 수당이 따로 있는데 조교들은 그런 것도 없구요. 학부에는 각 학과마다 조교들이 한 명씩 있는데 대학원 같은 경우는 학과 구분도 없이 행정조교들이 모든 대학원생들과 관련된 업무를 맡아요.”

“가장 바쁘실 때 하루 일과가 대강 어떻게 되나요?”

“음........ 제가 서울 사는데 출근은 용인캠으로 하거든요.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서는 교직원 버스를 타요. 여덟 시 반쯤에 용인캠에 도착해서 근무를 시작하구요. 서류 찾아와서 공문 접수하는 일도 하고 전화도 받고........ 수강 신청 기간에는, 지금은 수강 신청이 전산화돼서 학생들이 인터넷으로 하잖아요. 근데 대학원은 타 대학원 교차 수강이 있어서 학생들이 수강 신청한 것을 따로 조교들이 수기로(손으로) 수정을 해야 해요. 그걸 또 학생들에게 확인해 보라고 넘겨줘야 하고. 근데 아시겠지만 수강 신청이 한번으로는 안 끝나잖아요. 학생들이 계속 수정을 하니까. 그래서 같은 일을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거죠. 저녁 다섯 시면 퇴근인데 일곱 시까지는 서울로 가는 교직원 버스가 있어요. 일이 남으면 일곱 시까지는 계속 일을 하다가, 다 못 끝내면 일을 싸 들고 일곱 시에 나와서 버스 타고 집으로 오는 거죠. 더 늦게까지 있다간 고속버스타고 집에 가야 하니까. 집에 와서는 열두 시 넘어서까지 또 일하고. 매일 그러는 건 아니고, 바쁠 때는 그래요. 저는 대학원에서 일하지만 학과에서 일하는 학부 조교들은 교수 뒤치다꺼리에서부터 학생들 학점 관리까지 일이 엄청 많아요.”

“학교 측에 요구하고 계신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처음엔 ‘우리 왜 짤랐냐?’ 그 얘기를 학교 측에 했는데 도무지 우리 얘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어요. 처음엔 정년 보장 이런 것도 아니고 그저 1년마다 계약서를 꼬박꼬박 쓰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학교 측이 그것조차 안 받아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냥 나가라는 거였죠.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어요. ‘부당해고 철회’와 ‘고용안정 보장’이 저희가 요구하는 핵심적인 것들이에요. 정년 보장인 거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을 하시면서는 어떤 점들이 힘드셨나요?”

“되게 많은 업무량이나 임금 차별 빼고는 사무실 분위기는 참 좋았어요. 친구들 이야기 들어 보면 다른 사무실도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일이 고되고 차별 받는다는 게 아무래도 힘들죠.”

“어떤 차별을 받는데요?”

“돈이 크죠. (웃음) 돈 떼어갈 때는 교직원으로 봐 주면서 뭔가 더 줄 때는 교직원으로 절대 안 봐 주고 그래요. 똑같이 시험 감독을 들어가도 직원들한테는 더 주고 조교들한테는 덜 줬어요. 그래서 그 얘기를 했더니 나중에는 시정을 해 줬어요. 저녁 식사도 직원들은 공짜였는데 조교들은 돈 내고 먹어야 했죠. 그것도 나중에 시정이 되긴 했지만.......”


“명지대 학생들은 투쟁에 함께 하러 오는 편인가요?”

“몇 명 없어요. 서울캠에는 저희를 적대시하는 친구들은 없는데 용인캠 같은 경우는 총학생회가 학교 편에 붙어서 방해를 해요. 부당해고 철회 서명을 받으려고 하면 저쪽에서 웬 여학생이 나타나서 다른 학생들에게 ‘저기 이상한 여자들 있으니 가자 마라’, ‘저 사람들 다시 들어오면 등록금 오른다’, ‘졸업했는데 무슨 선배냐’ 하는 말들을 해요. 저희 쪽으로 아예 오지를 못하게 하는 거죠.”


해고된 명지대 행정조교 열 아홉 명 가운데 두 명을 뺀 전부가 명지대 졸업생이라고 했다. 학교 측이 해고 사유로 내세운 것들 중 하나가 ‘불분명한 신원’이었다는데 자기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에게 신원이 불분명하다고 뒤집어씌우는 건 결국 누워서 침뱉기라는 사실을 학교 측은 모르는 것일까? 나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조합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한번은 용인캠 정문 앞에서 집회를 하는데 갑자기 총학생회장단이 뛰어들었어요. 사회자한테 달려들어서 사회를 못 보게 하려는 걸 저희 조합원들이랑 연대 단위들이 가서 말렸지요. 결국 나중에 얘기로 다 풀긴 했지만....... 근데 그때 체육교육과 학생들이랑 총학생회 학생들 백여 명이 저쪽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뭐가 잘 안 되면 뛰어들어 오려고 했던 거죠.”

“용인캠에서도 서울캠과 함께 투쟁을 해 나가시는 건가요?”

“원래는 용인캠과 서울캠에서 따로따로 집회를 했어요. 근데 파업 30일을 넘기면서 총력전을 펴기로 해서 총장이 출근하는 곳에 집중을 하기로 했죠. 총장이 월수금에는 용인캠에, 화목에는 서울캠에 출근을 해요. 탄압은 용인 쪽이 더 심해요. 총학생회도 총학생회지만, 용인캠에도 천막 같은 걸 쳐 놨는데 3월 초쯤에 직원들이 들이닥쳐서 철거해 버린 적도 있어요.”


명지대는 용인캠 쪽에 학교 본부가 있다. 용인에는 이공계 캠퍼스가 있고 서울에는 인문 사회 캠퍼스가 있는 식으로 나뉘어 있다.

“용인캠 총학생회는 그렇다 쳐도...... 서울캠 총학생회는 어떤가요?”

“별로 관심 없어 해요. 사회과학대 학생들만 와 주고.......”

“학교 측과 교섭 같은 건 계속 진행하고 계신 건가요?”

“3월 1일이 재계약 날짜였으니까....... 2월 28일 이후로는 학교 측이 ‘대화할 이유가 없다’라는 말만 하면서 저희랑 대화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그래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비롯해서 몇 가지를 신청하긴 했어요. 4월 중순쯤에 결과가 나온대요.”

  조합원들의 천막 농성장

“지금까지 한 달이 넘게 투쟁하시면서 힘든 일도 많으셨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뭔가 재미있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요?”

“음....... 재미있는 일이라면........ 아, 어제가 재밌었어요. 용인캠에 갔는데, 총장실이 있는 행정동 건물에 문이 세 개가 있거든요. 근데 저희가 못 들어가도록 직원들이 문 하나에 서너 명씩 붙어서 문을 다 막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수들도 학생들도 밥 배달 온 사람들도 물품 배달하러 온 사람들도 온통 못 들어가고 있었죠. 그 앞에서 구호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데 안에서는 창문으로 교직원들이 그런 저희를 다 쳐다보고....... 정말 기분이 비참하더라구요. 그런 거 안 겪어 보셨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저희를 내려다보는데........ 아무튼 나중에 총장이 들어가려 하니까 비로소 문을 열더라구요. 총장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가서 몸싸움도 좀 했죠. 저희가 여자들이니까 그렇게까지 할 줄은 생각 못했나 봐요. 근데 하다 보니까 악다구니가 생기고 재미도 나고....... (웃음)”


내가 방금 들은 얘기가 ‘재미’있는 얘기인가 아니면 지독히도 슬프고 씁쓸한 얘기인가 잠시 생각해 보고 있는데 조합원이 갑자기 고갯짓으로 저쪽 구석 의자에 앉아 있는 경비 아저씨를 가리켰다.

“저기 아저씨 보이시죠? 저희가 천막 농성장을 설치하니까 천막 지키는 경비 아저씨 두 분을 학교 측에서 새로 고용했어요. 저희가 문화제 할 때마다 구호 뭐 외치는지 다 적어요.”

“24시간 감시하는 건가요?”

“밤 열두 시쯤에는 퇴근하시는 것 같아요. 저분들도 참 안됐어요.”


어느덧 밤 열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집에 가셔야 하는 조합원을 너무 붙들고 있는 것 같아서 슬슬 대화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끝으로 한 말씀만 해 주세요.”

“일단 자기 일이 아니지만 비정규 투쟁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자기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고는 조합원과 헤어져 명지대 정문 쪽으로 가는 내리막길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밤이 늦어 바람이 더 차가워졌다. 정문을 나서다가 천막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되짚어 올라가 천막 농성장 앞으로 갔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쳐나오려는데 천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띄었다.

‘노동자의 오늘은 학생의 미래다!’

악담도 아니고 저주도 아닌 차라리 팩트라고 해야 할 저 글귀에 담긴 뜻은 날씨가 어떻든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거 안 겪어 보셨죠? 조합원이 들려준 말을 귓가에서 차마 떠나보내지 못했다.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내가 오랫동안 품어 온 목소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천막 안에서 내일 투쟁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을 수많은 해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어느새 바뀌어 들리는 것 같았다. 날씨가 춥다고 웅크리는 건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디를 가나 비정규직법이 있고 어디를 가나 2년이라는 숫자에 삶이 휘청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봄은 올까? 이렇게 찬바람만 쌩쌩 부는데........ 나는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옷깃을 여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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