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유족-범대위, “검찰 잘못 덮으려 8년 구형”

변호인단, “화염병 외에도 합리적인 제2, 제3의 발화 원인 많다”

용산 철거민 망루 농성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이 죽고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죽은 사건의 피고인 철거민 9명에게 검찰이 징역 8년에서 5년을 구형해 유족과 대책위가 강하게 반발했다.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 심리로 열린 용사참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변호인단이 주장한 경찰진압의 적법성 문제와 화재 원인 등에 대해 기존의 의견을 유지하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죄를 적용해 높은 형량을 구형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발화원인이 된 화염병을 본 특공대원이 없고 합리적 의심이 되는 여러 발화가능성이 있는데다 경찰 특공대 투입은 적법하지 않다”며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죄는 무죄”라고 최후 변론을 했다.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검찰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한 구형을 남발했다”면서 반발했다.

  검찰이 8년을 구형하자 눈물을 흘리는 유족들

검찰은 특공대 투입의 적법성에 대해 “과격한 전철연 회원들이 완강기 등을 미리 준비하고 화염병과 새총, 골프공 등의 시위용품 규모를 보면 장기간 극렬저항이 예상 됐다”며 “농성을 방치할 경우 피해가 더 커지고 진압작전의 위험을 고려한 경찰의 합목적적인 판단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발화원인으로 “4층 농성자가 계단에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면서 “2차 진입 전에 망루 4층으로 시너와 화염병을 옮기고 일부는 방독면을 나눠 쓴 것은 화염병을 사용할 의사가 있었기에 망루 탈출자들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공범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어 “변호인이 주장한 발전기는 국과수 감정 결과 스위치가 꺼졌고 연결선은 원인에서 배제해도 된다고 나왔다”면서 “일부 농성자의 증언에서도 발전기는 두 대 모두 밖에 있거나 일부는 누전 위험으로 코드를 뺐다는 진술이 있다”고 발전기 발화가능성을 부정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이충연 용산 철거민대책위원장에겐 “농성을 총괄 기획하고 주도했으며, 화염병 추가제작 투척, 운반, 끝까지 망루 사수 한 주범인데도 책임 회피적 진술로 일관하고, 재판과정을 투쟁 과정으로 삼는 등 매우 불량한 자세로 임했지만 사망한 이상림 씨 유족임을 감안해 징역 8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또 김 모씨 등 2명에게도 망루 내에서 적극적인 저항을 했다며 8년을 구형했다.

또 천 모씨 등 4명에겐 징역 7년을, 망루 1층에서 검거 됐지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의 공범으로 진압 시 화염병 투척 등의 폭력에 가담한 조 모씨 에겐 6년을 구형했다. 망루가 아닌 건물 옥상의 창고에서 큰 저항 없이 연행된 김 모씨 에게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를 적용해 5년을 구형했다.

반면 김형태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이 사건은 외견상 철거민과 경찰의 충돌사건인데 분위기는 제가 20년 전 겪은 공안사건 분위기”라며 “희생자가 많은데도 그 사건의 주위 배경은 사라지고 맨 앞에서 부딪힌 말단 경찰과 철거민의 죽음에 8년을 구형한 경찰이 답답하다”고 말을 뗐다.

김형태 변호사는 “경찰 지휘 책임 수사기록 3천 쪽 기록이 안 나왔지만 2-30년 뒤엔 인혁당 사건처럼 반드시 재심이 이뤄지고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을 90% 장담한다”면서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때문에 사람이 죽은 사건이라는 것이 실체”라고 규정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국가가 만든 재개발 법에 의해 발생하는 이익의 배분법을 국가가 만들지 않아 자본의 논리로 돈 있는 사람에게만 배분하다 보니 헌법 위반으로 위헌제청이 신청되어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헌법에 위반되는 법에 의해 출발했다”고 밝혔다.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과정에서 경찰과 자본, 용역의 연관 관계가 나오고 협상을 시도 하지 않은 증언이 나왔다”면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적용해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8년, 7년씩 구형하는 이 법정이 참 딱하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헌법을 위반한 법을 만든 국가에 있고, 그로부터 이익만을 추구한 자본에 있고, 그것을 그대로 둔 국가 권력에 있으며, 그 권력에 잘 보이려는 경찰청장에 있다”고 사건의 실체를 규정했다.

검찰의 화염병에 의한 발화 주장에 대해선 “피고인들과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에 피고인에 유리한 진술을 할 리가 없는 특공대원 모두 발화 원인으로 화염병을 모두 보지 못했으며 심지어 두 명은 망루 내부에서 불이 붙은 화염병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면서 화염병 발화가능성을 부정했다.

반면 김형태 변호사는 다른 발화가능성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동영상에 1차 진입 시에 망루 외부에 흐르는 유증기로 나타난 불똥과 화재당시 불똥이 같다”면서 “2차 진입 때 특공대가 망루 함석판을 젖히면서 망루내부로 산소가 유입되고 흐르던 불똥이 확산 될 합리적인 의심의 가능성이 있다”고 다른 발화원인의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또 두 대의 발전기도 발화원인으로 충분히 의심이 된다고 주장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무엇보다 현장검증 당시 발견한 동력절단기 사용 흔적을 또 다른 원인으로 강하게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원이 동력절단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태연하게 웃어 믿었지만, 현장검증에서 함석판을 젖힌 부분에 동력절단기를 사용한 흔적을 발견했다”면서 “화재 직전까지 외부 함석판을 젖히는 과정에서 전동그라인더 불꽃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은 관념의 의심이 아닌 충분한 합리적 의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시너 유증기는 전기스파크나 인체에서 나오는 정전 스파크, 기계적 마찰, 고온의 열면 등으로 발화할 수 있다”면서 “검찰이 주목한 발화원인의 증거는 모두 깨진 반면 제3의 원인은 많다. 화염병은 경험치와 증거법칙에 반하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변론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특공대 투입의 적법성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에서 기본권을 제한 할 때는 필요한 경우에 한해 과잉금지의 원칙으로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면서 “제한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 최소화, 법의 균형을 맞추어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태 변호사는 “망루를 지어 미리 위법이 예상 된다고 해서 주거침입죄에 특공대를 투입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미 망루를 짓기도 전에 특공대 투입을 결정하고 하루 이틀 뒤에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을 미리 막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또 “경찰 지휘무전에는 용역과 함께 해체작업을 하고, 컨테이너를 용역을 통해 구입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 이 사건에서 경찰은 서부 영화에 나오는 부자 목장 주인을 옹호하는 엉터리 보안관 같다”면서 “자본에 억울하게 당한 서민을 극악무도한 폭력범으로 몰은 경찰과 검찰의 기소의도가 보인다. 공무집행방해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평범한 피고인들의 과거전력과 현 상태를 감안해 관대한 처벌을 바란다”고 변론을 마쳤다.

이충연 피고인은 최후 진술에서 “저희가 바라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 재판부에 역사에 남는 정의로운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난자리에서 “민사문제에 특공대가 투입되면 앞으로 민사재판은 필요 없다”면서 “경찰이 용역과 현장에 같이 있는 것은 민사문제에 한 쪽 편을 든 것이라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 볼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8년 구형은 건설자본과 조합의 편을 들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화염병 부분은 무죄를 확신하고 공무집행방해 부분은 민사에 편든 경찰지휘부의 형사책임을 되물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용산범대위와 유족은 강력하게 검찰구형에 반발했다. 이충연 위원장의 형 이성연 씨는 “우리 불쌍한 제수씨는 새 색시가 되고 1년도 안 됐는데 검찰은 8년을 구형 했다. 철거민 돼서 살고자 망루에 올라갔는데 한 참 잘못된 나라다. 부디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주시길 바란다.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안 나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류주형 범대위 대변인도 “검찰이 자기 죄를 덮기 위해 높은 구형을 내렸다”고 밝혔다.

변영식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성명서를 통해 “경찰의 진압은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을뿐더러 검찰 역시 발화 원인을 정확히 증명하지 못했으므로, 철거민들에게 덧씌워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는 무고다. 오히려 경찰과 검찰에게 각각 살인진압과 무고의 죄를 물어야 마땅하다”고 범대위 입장을 밝혔다.

범대위는 또 “검찰은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라는 일방적인 수사 프레임 속에서 철거민들을 기소했다”면서 “이것은 정권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의도적인 거짓 수사에 다름 아니다”고 주장했다. 범대위는 “오늘 검찰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한 구형을 남발했다”면서 “우리는 공안검찰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철거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과도한 죄책을 물은 검찰을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