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노조법 개정 말고 그냥 시행하자”

민주노동당, “임금지급 금지 되더라도, 복수노조 즉각 시행”... 노동부는 행정예고

민주노동당이 “우선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시행하자‘며 국회 환노위 노조법 개정안 합의시도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현행 노조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지급은 금지하고 복수노조는 즉각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현행법을 시행하자는 이유는 민주당이 반발하고는 있지만 같은 당 소속인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의 중재안이 한나라당안을 뼈대로 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강기갑 의원 등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추미애 환노위원장의 중재안은 야합으로 점철된 12월4일 노사정합의와 그에 기초한 한나라당안을 기본 뼈대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중재안은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우선 현행법을 시행하고 그 이후 모든 대화 자리를 통해 헌법정신과 국제기준에 맞는 새로운 노동관계법을 만들어 내자”고 제안했다.

민주노동당은 중재안을 두고 “복수노조를 1년간이나 더 유예할 뿐만 아니라 이미 합법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산별노조의 지부조직과 기업별 노조의 동시 인정이라는 틀을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다”며 “과거 어용노조를 막기 위해 활용되던 복수노조 금지는 이미 노동자의 단결권을 막는 독소조항으로 변질됐다”고 강조했다.

또 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두고는 “형사처벌을 전제로 전임자 활동을 일일이 규제하고 그 상한을 정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자주성 상실을 의미한다”면서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이 형사처벌의 전제가 된다면 것은 사실상 19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가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민주노동당이 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규정한 현행법 시행을 주장하는 것은 개정안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와 타임오프제가 실제 노동운동을 말살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교섭창구단일화는 산별교섭 자체를 막고 있어 78만 명의 산별노조 조합원들 중 상당수는 교섭권 없는 산별노조 대신 어쩔 수 없는 방편으로 전근대적인 기업별노조체계로 흩어지고 말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런 주장은 복수노조 즉각 실시와 더불어 사실상 타임오프제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인식도 있어보인다. 이미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대신 받아낸 유급근로시간면제제(타임오프제)가 사실상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보다도 오히려 더 노조 활동을 제약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차라리 현행법대로 시행되는 것이 누더기 합의안보다는 나은 셈이다.

민변, "노동부 행정예고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교사"

반면 노동부는 개정안이 합의되지 못하고 현행법 시행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과 절차를 담은 고시와 예규 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 법이 개정될 때까지는 행정예고가 복수노조 시행의 가이드라인이 된다.

노동부는 복수노조사업장에서 노조가 첫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공고를 통해 ‘교섭 창구 단일화’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이때 노조가 자율적으로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면 교섭대표가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지만, 자율적으로 창구를 단일화하지 못하면 과반수 노조가 교섭권을 갖는다. 노동부는 노조가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지 않는다면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기로 했다. 현행법은 노조의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

또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과 관련한 행정지침도 냈다. 행정지침은 노조 전임자의 법적 지위를 무급 휴직 상태로 보기로 했다. 전임자를 무급휴직 상태로 보기 때문에 사용자가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게 된다.

다만 노동부는 고충처리나 산업안전활동 등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관련한 업무 수행이나 사용자의 승인 아래 협의와 교섭을 위한 노조 자체 협의 등에 참여한 것은 근로시간으로 처리한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해온 타임오프제를 그대로 담았다.

그러나 노동부의 행정 예고는 바로 거센 논란이 됐다. 29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는 노동부 행정예고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입법으로 할 사안이었기 때문에 지난 13년 동안 유예하면서 그 때마다 정치권과 노동계, 재계가 입법논의를 해 왔고 그 중심에 노동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행정입법에 대한 위임규정으로 전제하고 논의한 예도 없었다는 것이 민변 설명이다.

민변은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헌법상 기본권이므로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의 방식으로만 제한할 수 있고, 국회 입법으로도 그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교섭창구단일화 강제는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국회에서 법률로 그 내용을 정해도 이는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노동부가 고시로 창구단일화를 요구하고, 창구단일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겠다는 취지의 방침을 공표하는 행위는 직권을 남용하고 직무를 유기하는 범죄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부당노동행위를 교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