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니 전투, 그리고 로자바의 민주 연방제 실험

[국제포럼] 로자바 민주연방제의 배경과 개요

[편집자주] 발제 파일과 토론 파일을 다운 받으시고 이 페이지와 창을 하나 더 여셔서 참세상의 쿠르드의 질곡에서 ‘로자바 혁명’(최재훈)을 같이 보시면 됩니다.

발제에서는 1)로자바(Rojava) 개요 2) 배경과 전개 3) 제3의 길 4) 로자바 헌법에 보장된 인권과 평등, 공존으로 진행한 후 향후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향후 해결할 과제로는 1)로자바 주변에 우군이 없음과 2)경제 문제 해결 3)전쟁의 문제를 제시합니다.

토론은 PPK가 어떻게 노선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면서 시작합니다. 로자바에서의 페미니즘과 억압적인 쿠르드 가부장 문화, 압둘라 와잘란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머레이 북친의 코뮌주의, 로자바와 상황적 측면에서 유사함을 느끼게 하는 쿠바, 자파티스타, 공권력이 물러난 후 생기는 코뮌들(파리코뮌, 아랍의 봄, 로자바 등장 이전 팔레스타인의 첫 번째 인피파다와에서 열렸던 짧은 코뮌) 등을 토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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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방위대 [출처: http://www.ozgur-gundem.com/]

2015년 1월 26일,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에서 동시에 총공세를 가해온 이슬람국가(IS) 무장 세력에 맞서 134일 간에 걸쳐 시리아 동북부의 코바니 시를 방어했던 지역 인민방위군(YPG) 사령관은 도시 주요 지역에서 IS 세력을 완전히 물리치고 사실상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로써 2014년 1월부터 이라크 서북부와 시리아 남부를 거쳐 북부에 이르기까지 파죽지세의 승리를 이어오던 IS의 군사적 신화는 그 기세가 한 풀 꺾이게 됐으며, 코바니는 IS의 영토 확산에 맞선 저항과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전 세계가 코바니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대격돌에 주목하는 동안,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코바니를 비롯한 시리아 북부의 민주자치지역(Democratic Autonomous Regions)에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진짜 전투’가 진행돼오고 있었다. 2012년 여름부터 지역의 정치조직들과 활동가, 주민들은 수평적 민주주의와 성 평등, 다원주의, 생태주의에 기초한 민주적 자치 실험을 진행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대안적 정치, 사회, 경제 모델을 만들겠다는 로자바의 실험은 이제 막 밑그림을 그리는 상태에서 IS의 공격이라는 외부변수를 만나 더욱더 불확실한 미래에 놓인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식민주의와 독재, 권위주의, 사회적 불평등, 종교 및 인종 간 갈등에 신음해온 중동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공존을 위한 실험이 주민들 스스로의 참여 속에 현실에서 직접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것이 갖는 상징성과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이에 본 자료에서는 이른바 ‘로자바 혁명’이 걸음마를 떼게 된 배경과 그 구상에 대해 간략히 짚어보도록 한다.

1. 로자바(Rojava) 개요

- 지리 : 시리아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어 서西 쿠르디스탄(Rojavayê Kurdistanê)이라고도 불리며, 북쪽으로는 터키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로자바를 구성하는 3개 주(canton) 가운데 하나인 자지라(Kantona Cizîrê)는 동쪽으로 이라크 쿠르디스탄과 접해 있음.
- 인구 : 약 3백만~4백만 명 가량으로 추산
- 인종 구성 : 쿠르드계(약 2백50만 명), 아랍계, 아르메니아계, 아시리아계, 체첸계, 시리악(Syriac) 등
- 종교 : 이슬람, 기독교, 아르메니아 정교회, 야지드 등
- 언어 : 쿠르드어, 아랍어, 기타 소수언어



2. 배경과 전개

1946년 시리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래로, 그 국호가 암시하듯이(‘시리아 아랍 공화국’) 시리아 중앙정부는 북부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소수민족 쿠르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 그들은 단지 인근 터키와 이라크로부터 넘어온 ‘외국인들’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구의 15-2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쿠르드인들 중 상당수는 시민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마치 불법 체류자들과 같은 삶을 이어가야 했으며,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도 이등 시민으로 취급받았다. 지역 경제는 저개발 상태 그대로 방치돼 쿠르디스탄 지역에는 변변한 공장조차 없었으며, 전체 빈곤층의 40퍼센트가 쿠르드 출신들이었으며, 지역 전체에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이 없어 청소년 대부분은 중학교를 마치면 학업을 포기하거나 타지로 떠나야 했다.

그러던 2011년 시리아에서도 대규모 민주화 항쟁이 시작됐고, 항쟁은 이내 내전으로 급격히 번져갔다. 내전 초기, 쿠르디스탄에서도 평화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쿠르디스탄 사람들은 자유시리아군(FSA)와 시리아국민회의(SNC)로 대표되는 반정부 무장투쟁과는 거리를 두었다. 여기엔 2004년 카미슈리(자지라 지역의 수도) 폭동 당시에 눈앞에 펼쳐졌던 아랍인들의 반쿠르드 정서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 아사드 정권 축출 이후에 쿠르드인들에게 평등한 대우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끝내 주저한 반정부 세력의 태도도 영향을 미쳤으며,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탄압해온 터키 정부가 반정부 세력을 지원한다는 사실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쿠르디스탄 지역의 핵심 정당인 쿠르드 민주연합당(PYD)의 사라리 무슬림 무함마드 의장에 따르면,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지에서 반군에게 고전하던 시리아 정부군을 쿠르디스탄 지역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기 위한 전술적 판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3. 제3의 길

따라서 쿠르드 정치세력들은 정부와 반군 모두와 거리를 두는 이른바 ‘제3의 길’을 향해 가는 결정을 내렸다. 2012년 7월 19일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결국 시리아 정부군이 철수하자, 쿠르드 민주연합당(PYD)은 지역의 또 다른 정치 세력인 쿠르드민족회의(KNC)와 공동으로 쿠르드 최고위원회(Kurdish Supreme Committee)를 결성해 정치적, 행정적인 권력 공백을 메웠다. 또한 그와 동시에 민주사회운동(Democratic Society Movement, TEV-DEM)이라는 기구가 만들어져 새로운 통치 구조를 만들고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터키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이 주창한 민주 연방제(Democratic Federalism)에 기초한 민주적 자치를 시리아 쿠르디스탄 사회의 미래 모델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적용해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 연방제란, 간단히 표현하자면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주민들 모두가 지역의 정치와 행정, 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상향식 참여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남녀가 모두 평등하고 종교와 인종간의 차별이 없으며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민주적 연방제는 유연하고 다문화적이며, 독점에 반대하고 전체의 합의를 지향한다. (그리고) 생태와 여성주의는 그 핵심 기둥이다. 이런 종류의 자치정부는 공동체의 자원이 착취되지 않고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대안적 경제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 압둘라 외잘란, 민주적 연방제, 2012년


그를 위해 쿠르드 독립국가의 수립이라는 특정한 민족적 요구는 더 이상 현실에서의 고려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시리아라는 국가로부터의 분리나 탈퇴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2014년 1월 6일 로바자 민주자치정부(Rojava Administration of Democratic Autonomy)의 입법의회에서 통과된 헌법(‘Charter of Social Contract') 제12조에 “자치 지역은 시리아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를 구성하며, 시리아에서 미래의 탈중앙집권화된 연방 시스템을 위한 모델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듯이, 장차 로자바의 민주적 자치 모델을 시리아와 더 나아가 중동 지역 전체의 대안 모델로까지 확대 발전시킬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커다란 밑그림 하에 그로부터 로자바의 정치세력과 활동가, 주민들은 구체적인 얼개를 짜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지역의 소규모 공동체 단위로 30-150가구를 묶어 주민회의를 구성하고, 다음으로 7-30개의 공동체 대표들로 구성된 마을위원회가 꾸려지며, 마을위원회의 대표들이 모인 도시위원회, 도시위원회의 대표들이 모인 주(canton) 의회 하는 식으로 차곡차곡 위로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노동자위원회, 의사위원회, 여성위원회 같은 직능별, 부문별 위원회도 꾸려졌다. 그리고 그런 구조를 통해 주민들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국가(state)”나 “정부(government)”라는 표현 대신 “행정부(administration)”라 불리는 로자바 전체의 자치 행정기구는 헌법상의 원칙과 충돌하는 지만 점검하고 지역 간의 의사를 조율하는 역할만 할 뿐, 직접 통치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정부 소유였던 토지는 농민 협동조합이 알아서 용도를 결정하고 관리하고, 석유 생산은 지역 자치 의회가 통제하고 노동자 위원회가 운영하며, 물가도 주(canton) 단위로 알아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4. 로자바 헌법에 보장된 인권과 평등, 공존

위에서 언급한 참여민주주의구조 이외에도 로자바의 민주적 자치 실험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사회 전반적인 인권 수준의 향상과 남녀간, 종교간, 인종간의 평등과 공존이다. 몇 가지만 짚어 보자면, 각 자치위원회의 구성원들은 어느 한쪽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최소한 40퍼센트를 넘어야 하며, 대표는 남녀 각각 1인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각 행정기구의 최고 책임자들은 반드시 이슬람을 믿는 쿠르드인과 아랍인, 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나 아시리아인 같이 인종과 종교를 두루 아우른 세 명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그 셋 중 한 명은 또 반드시 여성이어야 한다. 정교분리의 원칙 아래 각자의 신앙의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며, 행정기관과 학교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소수 언어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군과 경찰에서는 여성주의와 생태 교육이 필수 과정이며, 장교들 또한 사병들이 직접 선출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개인의 사유재산은 인정하고 보장하되, 공공의 필요를 위해서 사용할 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준다. 어찌 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그동안 정부 관리들이나 그와 결탁한 지주, 기업가들이 시민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강탈하고 착취해온 지역의 현실을 볼 때 헌법에서 그를 보장한다는 자체가 혁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일시] 2015년 2월 25일
[장소] 참세상 회의실 5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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