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말입니다. 심지어 나이트클럽에서 만나도 (현대)자동차 다닌다면 하청인지 정규직인지부터 묻습니다.”
“연애 안하는 이유요? 비정규직은 주눅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3년 전에 소개팅을 했습니다. 여자에게 사는 집이 어딘지 물어봤더니 양정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 길래 ‘나 거기 맨날 간다’고 했어요. 그러자 여자가 감을 챈 거에요. 제가 자동차에 다닌다는 것을 안거죠. 바로 묻더라고요. ‘정규직이세요?’ 순간 그러면 안 되는데...부끄러웠습니다. 떳떳하게 하청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대답을 못했어요. 말이 안 나왔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제가 변했습니다. 하청일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누굴 만나기가 싫습니다.”
▲ 정규직이 되기위해 농성장 입구 계단을 지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
공장 점거 20일째로 접어든 울산 현대차 1공장 농성장. 여기선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오래된 낙인이다. 그리고 이제는 신분이 됐다. 그 낙인이 불러온 열망은 정규직화라는 요구로 뜨겁게 타올랐다. 침낭도 없고, 12월 부터는 들어오는 식사도 하루 한 끼로 줄었다. 단전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농성장은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차가운 분노와 정규직화 열망이 부른 뜨거운 희망이 묘하게 공존했다. 분노와 열망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의 공존은 농성 장기화로 모아지고 사회적 이슈로 커가고 있다.
공장 내 차별과 멸시가 일상생활에서 신분이 됐다
현대자동차 농성장엔 짧게는 4년-5년, 길게는 8년-12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아픔들이 뭉쳐 있다. 그런데도 농성장엔 서른을 갓 넘기거나 중반인 청년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는 시대 이들은 일찌감치 하청노동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왜 독기를 품고 공장을 점거했을까.
07년 5월에 입사한 32세의 A 조합원은 얼마 전 4년 넘게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 A씨는 정규직이라면 진작 결혼을 했겠지만 여자친구의 집에서 반대했다. 그는 홀아비를 모시는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A씨는 미남형 얼굴에 키도 컸다. 함게 농성중인 주변 조합원들은 그를 두고 마음도 따뜻하고 무척 성실한 청년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비정규직’은 신분이었다. 그는 “너무 억울해서 농성 올라올 때 빈손으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반드시 이겨서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투쟁 교섭위원으로 농성에 함께하고 있는 박점규 금속노조 교섭국장은 “이제 비정규직은 신분이 돼 버렸다”며 “비정규직이 공장내에서만 차별과 멸시, 설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장 밖 일상생활과 삶 전체에서 신분이 됐다는 것이 이번 농성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얼굴도 잘생기고, 마음도 따뜻하고 성실한 청년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애인과 헤어져야 하는 현실은 정말 비참하다”며 “자본이 나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두 개의 계급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98년 IMF 경제위기는 구조조정을 강요했고, 자본은 정리해고와 파견법으로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기 시작했다. 정규직이 떠난 일자리엔 비정규직 일자리가 채워졌고 본격적인 그 후과는 2002년 이후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0년 현재 30대 초 중반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2002년 이후 20대중반이나 후반 무렵 현대차 하청으로 입사했다. 당시 이들에겐 정규직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 였다. IMF 시대가 부른 사회현상이었다. 청년실업과 고용의 양극화가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도 이런 사회문제의 희생양이었다.
사회문제는 구체적으로 A씨처럼 청년 남성 노동자들의 생활에서 드러났다. 농성자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여기는 노총각 들이 억수로 많습니다”란 얘길 자주 듣게 된다. 하청 노동자는 연애도 쉽지 않지만 연애를 해도 결혼으로 가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위해 자신이 하청이라는 것을 속이고 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연애는 해도 결혼을 위해 자신이 하청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그 순간 아웃이다. 34세의 비정규직 노동자 B씨는 이모를 통해 여성을 소개 받았지만 끝내 하청이란 말을 못했다. 결국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처음부터 아예 업체 다닌 다고 밝히고 사귄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성 노동자는 결혼을 원했지만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깨졌다. 농성에 결합한 40대 중반의 한 노동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여기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애들 결혼을 포기하고 사는 애들이 많다. 잘 사귀다가도 결혼 얘기만 나오면 대부분 깨진 걸 많이 봤다. 농성자들 중 절반 정도는 혼자 산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 농성 18일 되던 지난 2일 저녁, 간신히 밥이 들어와 밥을 받고 먹으려는 순간 회사가 전기를 끊었다. 매일 김밥이나 컵라면 하나 정도가 나오다 이날은 밥과 김치가 제공됐다. 농성자들이 빙 둘러앉아 스티로폼 위에 밥과 김치를 받아와 손전등을 켠 채 밥을 먹고 있다. |
여자 친구 어머니, 자동차 하청이랬더니 인상이 바뀌었다
04년 11월에 입사한 C씨. 그는 20대 후반 나이다. 그는 아직 서른이 안 됐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낙인에 받은 상처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저 자동차 다니는 데요’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정규직인지 하청인지 묻는다. “정규직인지를 안 물어 보면 그냥 자동차 다니는 게 되요. 미리 하청이라고 대답하지 않죠. 누구 앞에 굽히지 않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요. 여자 친구 어머니도 처음 뵀을 때 직영이냐고 물으셨는데 하청이라고 했더니 인상이 바뀌었습니다.”
현대차 하청에서 6년 동안 근무한 D씨(31살)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연애나 결혼 할 생각이 없다. 비정규직으로 살며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주눅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3년 전에 소개팅을 했습니다. 여자에게 사는 집이 어딘지 물어봤더니 양정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 길래 ‘나 거기 맨날 간다’고 했어요. 그러자 여자가 감을 챈 거에요. 제가 자동차에 다닌다는 것을 안거죠. 바로 묻더라고요. ‘정규직이세요?’ 순간 그러면 안 되는데...부끄러웠습니다. 떳떳하게 하청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대답을 못했어요. 말이 안 나왔습니다.”
그에겐 이 소개팅이 인생의 큰 상처였다. 여자의 의도적인 질문에 말을 피했고 한 시간 뒤에 헤어졌다. 다음날 그는 예비군 훈련 중에 소개를 시켜준 사람으로부터 퇴짜 전화를 받았다. “그때부터 여자 만날 생각을 안 하게 됐습니다. 연애요? 사람에게 자격지심이 생기고 나니까 누굴 좋아해도 나서지 못하겠더라고요. 자신감이 안 생기도 저 사람이 나 같은 놈을 좋아할까 이런 생각부터 듭니다. 그 충격 때문에 제가 변했습니다. 이 일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결혼을 해도 문제, “젊은 애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청신세는 결혼을 해도 문제다. 그 다음은 애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해야 한다. 2002년 29살에 입사한 E씨. 그는 오랜 연애로 일찍 결혼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아이가 없다. “한번 유산을 했는데 그 이후론 주야 교대로 일을 뛰고 하니 두려웠습니다. 처음엔 애를 가질 생각이 많았죠. 그런데 생활도 어렵지만 여기를 다니면서도 불안이 더 컸스니다. 매년 고용이 제일 불안한데 그게 안정되면 낳을 생각이 있지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올해 46세인 F씨는 딸이 둘이다. 그는 하청 8년차지만 항상 마이너스 통장으로 산다. 평소엔 1200만원이 마이너스다. 그는 잔업과 특근은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특근자리가 비면 거의 쉬지 않고 특근을 했다. “연말 성과급이나 나와야 마이너스 통장을 조끔 깝니다. 애들 둘 키우면서 지금 상태로 평생 살아봐야 마이너스 통장 신세를 면키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돈을 아이들 교육비를 위해 벌지만 정작 몸이 아프고 힘들어 아이들과는 놀아주지도 못한다.
농성장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G씨는 “여기 비정규직들이 선이나 소개팅을 하면 제일 먼저 듣는 얘기가 것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것”이라며 “주말에도 특근 하고 나면 집에서 잠이나 자지 누가 놀러다니고 연애하나. 애들 연애도 어렵다”고 안타까워 했다. G씨는 “여기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은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한다”며 “자동차 정규직이냐 하청이냐는 말을 하도 듣다 보니 차라리 중소기업 정규직을 가겠다고들 한다. 이젠 젊은 애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고 말했다. (울산=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